“안 됩니다.”
“강 작가.”
드라마 국장은 당혹스러웠다. 권선재라는 배우의 하차에 대해서 작가가 이렇게 강하게 반대를 할 줄은 몰랐다.
“왜 이러는 거요?”
“국장님이야 말로 왜 이러세요? 제가 권선재 씨랑 얼마나 작품을 하고 싶었는지 아시는 분이잖아요. 제가 권선재 씨를 섭외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면서도 그러고 싶으세요?”
“말을 안 듣잖아요.”
“말을 안 듣기는요.”
작가는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국장님은 모든 이야기를 안 들으셨죠?”
“그게 무슨 말이오?”
“원주연 씨가 고의로 NG를 내고 촬영장을 굉장히 나쁘게 만들었다는 거 말이에요. 모르시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국장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고, 감히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그 배우가 왜 그런 짓을 해요?”
“그거야 저도 모르는 일이죠. 아무튼 권선재야 NG 한 번 안 내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거 아시잖아요.”
“그렇다고들 하더구려.”
“그런 사람이에요. 맞아요. 그 사람은 자기가 직접 작품도 쓰는 사람이라서 작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어느 장면에서 어떻게 들어가야 할 지도 잘 알고 말이에요.”
“그게 지금 무슨 상관입니까?”
“그런 사람이 드라마가 안 되게 방해를 놓았다고요? 어긋나게 굴었다고요? 그게 사실이라고 믿으세요?”
“흐음.”
국장은 가만히 미간을 모았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니 또 이 여자의 말도 그리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튼 기사도 그렇게 나고 이제 어떻게 안 되는 거요. 이 드라마에서 이제 권선재 씨를 하차 시켜요.”
“그럴 거면 저도 그만 두겠어요.”
“강 작가!”
국장은 결국 참지 못하고 고함을 쳤다. 누가 자를지 몰라서 자르지 않고 있는 줄 아는 걸까? 국장의 마음대로 무조건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
“내가 강 작가 밀어준 겁니다.”
“제가 권선재 씨를 밀었어요.”
“그래도 안 되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안 하겠다고요.”
“계약을 위반하는 거요.”
“하나도 안 무서워요.”
“이런 식으로 하면 다시는 드라마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소. 그래도 그리 말을 하는 겁니까?”
“네.”
작가는 힘을 주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제대로 자신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가게 된다면 드라마를 쓰고 싶은 마음이 반도 안 될 것 같았다.
“권선재 씨를 그 동안 너무나도 만나고 싶었다고요. 그리고 이렇게 길게 들어가는 드라마에 들어온 적 한 번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권선재 씨가 들어왔다는 사실 하나로도 이 드라마가 산단 말입니다.”
“그래도 촬영장을 어긋나게 구는 사람은 드라마를 위해서 빼야 하는 것이 맞는 겁니다. 강 작가도 알지 않소?”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니까요?”
작가는 답답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꾸 원주연 씨가 일부러 NG를 내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권선재 씨가 거기에 엄포를 둔 거라고요.”
“아무튼 안 되는 겁니다. 그리고 연기가 되지 않으니까 NG를 낸 것이지 일부러 그러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소?”
“그러니까 화를 낸 거죠.”
작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주연 씨가 왜 그러는지 이제 알겠네요.”
“뭐라고요?”
“제게 전화를 다 해서 대본 수정을 다 요구를 하더라고요. 그냥 젊은 사람이라서 그렇게 당찬 것인가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아하니, 국장님이 그 사람을 너무 위해주시는 군요.”
“무슨!”
국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마에서 땀을 훔쳤다.
“강 작가도 알다시피 내가 누구를 편애하고 그런 사람인가? 지금 드라마에 도움이 되니까 그런 거지.”
“진짜 도움을 아셔야죠.”
“아무튼 알겠네.”
국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권선재 퇴출은 다시 한 번 생각을 하지.”
“빠르셔야 할 겁니다.”
작가는 다소 진지한 눈으로 국장을 바라봤다.
“늦으면 늦을수록 드라마에 해가 갈 테니까요.”
“아 좋다.”
“그러니까요.”
방학이라서 그런 것인지 초등학교의 운동장에는 아이들도 없었다. 철봉에 올라 앉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는요. 학교를 다닐 때는 운동이 제일 싫었어요. 그냥 안에서 있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어. 그런데 지금 생각을 하니까 좀 뛸 걸 그랬어요. 생각을 하니까 그 시절에 추억이 없는 것 같아.”
“나도 운동 되게 싫어했는데.”
“그렇게 생겼어요.”
“에?”
선재가 은근히 서운하다는 눈으로 은비를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다 만능 스포츠맨이었을 것 같다는데, 조은비 씨는 또 어긋나게 놀려고 그러네.”
“누가 그래요?”
은비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자, 선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딱 봐도 그렇게 생기지 않았나?”
“안 생기셨습니다.”
“완전 너무하네.”
“너무하기는.”
하늘이 너무나도 맑았다. 회사를 그만 둔 날의 하늘이라고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맑은 날이었다.
“권선재 씨.”
“왜요?”
“선재 씨는 꼭 드라마를 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잖아요.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뭔지 모르겠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뭔지 모르겠어요.”
“소설을 쓰는 건 어때요?”
“소설이요?”
은비가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소설을 써요?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한다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것을 이야기를 해야죠. 나 같은 게 무슨 소설을 쓴다고 그래요. 말도 안 돼.”
“은비 씨가 뭐가 어때서?”
“평범하잖아요.”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소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 같은 사람이 소설을 쓴다고 하면 다들 웃을 거야. 너 같은 것이 도대체 무슨 소설이냐고 말이야.”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왜요? 맞는 말이지.”
“은비 씨 눈에는 그렇게 내가 특별하게 보여요?”
“네.”
은비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자 선재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생각을 하기에는, 은비 씨가 나보다도 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은비 씨는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고 했잖아요. 거기를 나왔으면 소설을 쓰기에도 충분한 사람이 아닌가요?”
“국어국문학과 나와서 무슨 소설을 써요?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아니야. 그런 건.”
“왜요?”
“그냥요.”
은비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생각을 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내가 무슨 재주가 있다고 소설을 쓰고 그래요. 우스운 일이지.”
“에이 왜 이러실까?”
선재가 장난스러운 듯 그러나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은비의 옆에 섰다.
“내가 맨 처음 왜 소설을 썼는지 알아요?”
“왜 썼는데요?”
“그냥 생각이 나서.”
“생각이 나서?”
“네. 별다른 어려운 것, 그리고 엄청난 의도가 있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을 한 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그냥 머릿속으로 두 명의 사람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머리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냥 썼어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걸 내 블로그에 올렸더니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선재 씨는 연예인이었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처음부터 다르다는 거죠.”
은비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우리 두 사람은 애초에 시작이 다르잖아요. 내가 만일 그렇게 썼다고 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 리도 없고.”
“왜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게 맞으니까.”
“이거 서운하네.”
“뭐가요?”
“나는 지금 조은비 씨랑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조은비 씨도 그래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내가 이상한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맞아요.”
은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철봉에서 내려왔다. 선재의 말처럼 그것을 나쁘게 생각을 할 것은 없었다. 그것은 선재와 자신이 원한 것도 아니었고, 두 사람 중 누구의 탓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소설을 써봐요.”
“시작이 다르다니까.”
“내가 도와줄게요.”
“어떻게요?”
“뭐. 여러 가지?”
선재가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은비 씨의 말처럼 시작이 달라서 못 할 것 같다면, 내가 여기저기 손이 닿는 대로 연을 이어줄게요. 은비 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할 테니까, 일단 한 번 해봐요. 나쁜거 아니잖아.”
“그런 건 싫어요.”
은비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왠지 비겁하잖아.”
“왜 비겁해요?”
“그럼 안 비겁해요?”
“은비 씨가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도전을 해보는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도전을 한다고 해서 누가 해코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그냥 걱정이 되어서요.”
“좋아요.”
선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부터 그렇게 조급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일단 쉬어요. 그러면 답이 나올 테니까요.”
“네.”
선재는 조심스럽게 은비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을 뺄까, 생각을 했지만 은비는 가만히 있었다. 선재의 손은 참 따뜻했다.
“저기 채연 씨.”
“네?”
퇴근을 하고 문을 나서던 채연이 고개를 돌렸다. 희준이 머뭇거리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쁘지 않다면, 이야기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무슨?”
잠시 말을 멈추는 희준을 보며 은비의 이야기라는 것이 확신이 되자, 채연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럼 사장실로 가죠.”
“네.”
“나는 내가 잘못을 한 줄 모르겠어요.”
사장실에 들어가자 희준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이었다.
“나는 그것이 합당한 일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조은비 씨는 혼이 나야 하는 사람이니까 말이에요.”
“네.”
채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친구였지만, 그녀 역시도 너무나도 당혹스러웠고 서운한 일이었다. 오래 일을 한 홀 식구들이 욕을 먹게 되었으니까, 어느 정도 잔소리는 당연했다.
“하지만 그걸 주방에서는 나쁘게 봤나봐요.”
“그럴 수도 있죠.”
“나는 조은비 씨가 안 나갔으면 좋겠어요.”
“은비가 왜요?”
“그냥요.”
채연은 다소 이상하다는 눈으로 희준을 바라봤다. 처음에 은비가 접시를 깨기만 한다고 너무나도 싫어하던 그였다.
“조은비 씨가 일을 잘해서 두고 싶다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조은비 씨가 언젠가는 나가야 한다는 것도 맞아요. 조은비 씨는 접시만 닦을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도 이런 식으로 나가는 건 아니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도와줘요.”
희준이 다소 절실한 눈으로 채연을 바라봤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 것도 있고,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도, 그런 식으로 나가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아요.”
“그건, 은비가 심했어요.”
“그렇죠?”
“네.”
희준은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이 너무 모진 사장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던 거였다.
“그러니까 은비 씨를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그 방법은 잘 모르겠어요. 채연 씨가 도와줘요,”
“그런데 사장님.”
“네.”
“은비는 다시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아요.”
“어째서요?”
“제가 은비를 알잖아요. 하지만 은비의 성격상 절대로 아니에요. 은비는 그렇게 나가다고 했으면 나갈 아이에요. 그리고 은비가 나간 것은 사장님께 화가 나서 나간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요?”
희준은 당혹스러운 눈으로 채연을 바라봤다. 자신이 뭐라고 해서 나간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미안해서 나간 걸 거에요.”
“미안해서요?”
“어떻게 해서라도 책임을 지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사장님꼐서 주방에 뭐라고 하니까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을 한 거죠. 그게 은비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말이에요.”
“이런.”
희준이 가볍게 고개를 두 어번 저었다.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 부분에 있어서는 사장님도 심하신 것이 있었어요. 그건 쉐프에게 따져 물을 문제가 아니니까요. 조금 더 아래에 계신 요리사님한테 물었으면 되는 일이었어요, 그럼 주방 사람들 기강도 죽으니까.”
“내가 몰랐네요.”
“사소한 실수니까요.”
희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채연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이 다소 심하게 군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안 돌아올 것 같다고요?”
“네.”
“이런.”
채연은 희준의 그러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지금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희준의 눈은 단순히 직원이 나간 것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는 사장의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안타까움이었고 너무나도 미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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