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다.”
“진짜죠?”
“네.”
쌀쌀했지만 야외로 나와 도시락을 먹는 것은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선재가 직접 싼 도시락이라니, 은비는 유쾌한 표정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정말 권선재 씨는 재주가 많아.”
“괜히 하나도 제대로 못 하면서 이것저것 나댄다는 그런 뜻의 말은 아니죠?”
“물론 아니죠.”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권선재 씨 만큼 그렇게 다재다능해지고 싶은데, 그게 은근히 어렵단 말이에요. 완전히 부러워.”
“내가 가르쳐줄게요.”
“됐어요.”
은비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가르쳐주기는 뭘 가르쳐줘요.”
“흐음, 소설을 쓰는 것은 은비 씨가 일단 너무나도 부담스럽게 생각을 하니까, 요리를 가르쳐주는 것은 어때요?”
“요리요?”
은비가 놀란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하지만 선재의 표정을 보니 단순히 농담으로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 요리 잘 해요.”
“권선재 씨가 요리를 잘 하는 건 알지만, 그래도 우리 두 사람이 그렇게 요리도 배울 정도로 친한 사인가?”
“에이, 뭘 그런 걸 따져요.”
선재가 유쾌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배우면서 친해지면 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처음부터 친해져서 하면 너무 재미없잖아요.”
“재미는.”
은비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한테 요리를 가르치면 권선재 씨가 알아서 나 싫다고 멀리 가버릴 지도 모르는데, 괜찮을까?”
“절대로 안 그래요.”
“채연이도 포기를 했다고요.”
“네?”
선재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은비를 바라봤다. 도대체 무엇을 포기를 했다는 걸까? 그 사이좋은 친구가.
“내가 요리를 못 해도 정말 도를 넘게 요리를 못 하거든요. 심지어 이건 되게 부끄러운 건데 밥물도 못 맞춰요.”
“에이, 그게 무슨 문제라고.”
선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밥물 맞추는 거 은근히 어려워요. 사람들이 손등에 맞추라고 하는데, 쌀의 상태에 따라서 물도 다르고, 계절에 따라서도 다르고, 사람마다 손 크기도 다 다르고, 그걸 어떻게 쉽게 맞춰요?”
“그게 아니라.”
은비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게 아니면요?”
“전기밥솥이요.”
“네?”
선재는 잘 들리지 않은 듯 다시 은비를 바라봤다.
“뭐라고요?”
“전기밥솥 물도 못 맞춘다고요?”
“네?”
선재는 잠시 가만히 은비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전기밥솥이라고 하는 것은, 안에 밥통에 눈금이 다 그려져 있는 그거?
“거기 다 써져 있잖아요.”
“그러니까 참 신기하죠?”
은비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선재를 바라봤다.
“채연이 걔가 겉보기에는 되게 깔끔한 애 같은데 은근히 게으른 아이거든요? 그런데 밥을 먹을 떄 만큼은 엄청나게 부지런해져요. 제가 함부로 부엌에 들어가지 못하게 말리려고 말이에요.”
“그, 그 정도야 뭐.”
“그리고 저 달걀 프라이도 못 해요.”
“네?”
선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달걀 프라이는 요리라고도 할 수 없는 요리였다. 그러니까 달궈진 프라이팬에 달걀 한 알만 톡 하고 깨뜨리면 되는 건데? 그게 뭐가 어렵다고 못 하는 걸까?
“한쪽은 타고, 노른자는 안 익고 있고, 흔히 말하는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게 절 보고 하는 말이에요.”
“안 되겠다.”
선재는 도시락 뚜껑을 닫으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부터 가르쳐야지.”
“네?”
“오늘부터 하자고요.”
“무, 무슨?”
“라면 물도 하나하나 다 맞추는 섬세한 요리 실력으로 내가 조은비 씨가 나 없이도 사흘 밥 차려먹을 수 있게 해준다.”
선재는 장난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결국 안한다는 겁니까?”
“네.”
희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비의 성격을 보니 한 번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하지 않을 성격이 분명했다.
“내가 잘못한 걸까요?”
“아니에요.”
채연은 재빨리 양손을 흔들었다.
“그 아이가 충분히 많이 나갔어요.”
“그거 말을 했나요?”
“네.”
채연이 살짝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런데도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주방에는 잠시 온다고 하더라고요. 사과를 한다고.”
“사과라.”
희준은 엷게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빠르게 다른 사람을 알아봐야 하겠군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희준은 재빨리 고개를 저으면서 채연을 말렸다.
“그건 저랑 은비 씨 사이에 있는 일이지 채연 씨랑은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요. 저는 오히려 채연 씨가 가운데에 끼게 되어서 더욱 미안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 걸요. 은비 씨에게 너무나도 미안합니다.”
“더 하실 말씀은 없는 거죠?”
“네.”
채연은 짧게 고개를 숙이고 사장실을 나섰다.
“사과를 할 테니까 다시 드라마를 하자고요?”
“네.”
주연의 매니저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선재의 매니저를 바라봤다.
“솔직히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주연이 하나 가지고는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걸 말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있나요? 그 아이는 지금 가장 떠오르고 있는 스타인데 말이에요. 최대한 비위를 맞춰야지.”
“우리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저희 탓으로 할 겁니다.”
주연의 매니저가 다급히 외치자 선재의 실장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전부 다 그쪽 탓이라고요?”
“네.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가능하면 모든 사실을 다 말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믿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주연의 매니저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선재가 정말 빠진다면 작가도 빠질 것 같았다. 그렇다면 드라마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주연도 타격을 면하기 어려울 거였다.
“제가 보증을 한다니까요.”
“아직 확답은 못 드립니다.”
“실장님.”
“저희도 배우 우선이니까요. 권선재가 하지 않겠다고 하면, 아무리 그족에서 그렇게 나오시더라도 드라마는 할 수 없을 겁니다.”
“안 됩니다.”
주연의 매니저는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드라마 접습니다.”
“각오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라고 힘이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실장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권선재를 설득을 하겠다고 말을 드리죠. 하지만 어떻게 될지 확답은 못 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주연의 매니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을 나갔다.
“실장님 선재 형이 정말 드라마를 할까요?”
“하겠지.”
실장은 유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의자에 기댔다.
“그 자식이 원래 강 작가님하고 되게 작품을 하고 싶어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다시 하자고 할 거야.”
“안 할 것 같은데.”
“그럼 설득을 해야지.”
실장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우리 일이니까. 가자.”
“네.”
매니저는 재빠르게 실장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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