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9
“여기 이렇게 막 와도 되는 곳이에요? 그래도 사장님께서 사시는 곳인데 되게 무례한 것 같은데.”
“사장님은 무슨.”
선재가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제 더 이상 은비 씨 그 자식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사장님이라고 해요?”
“어떻게 그래요?”
은비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래도 사장님이셨는 걸요.”
“그 전에 제 친구에요.”
“저랑 권선재 씨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도대체 몇 번을 말을 해야 알아들으실까? 아직도 몰라요.”
“알겠습니다.”
선재가 장난스럽게 경례를 했다.
“아무튼 그래도 희준이 녀석에게 그렇게 격식을 차리지 말아요.이제 아무 사이도 아닌데 격식을 차리면 우스워.”
“노력은 해볼게요.”
“오케이.”
선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장을 본 물건을 주방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사도 괜찮아요?”
“희준이 자식도 먹을 건 있어야죠.”
“사장님은.”
순간 선재가 자신을 보며 살짝 미간을 모으자 은비는 재빨리 입을 가렸다. 또 그 사장님 소리를 했다.
“그러니까 차희준 씨는.”
“그렇지.”
선재는 다시 미소를 지으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밥을 잘 안 드시잖아요? 레스토랑에서 하루 세 끼를 다 해결을 하시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두 끼. 그 자식 원래 아침은 안 먹거든요. 그래도 가끔은 집에서 먹기는 하는 것 같은데?”
“그래요?”
은비가 외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선재의 곁으로 왔다.
“뭘 도와줘요?”
“일단 손부터 씻기.”
“아!”
은비가 후다닥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 은비의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서 선재는 미소를 지었다. 참 귀여웠다.
“다 씻었어요.”
“그럼 먼저 달걀말이를 해볼 거예요.”
“달걀말이요.”
은비가 살짝 긴장된 표정을 하고는 선재를 바라봤다. 달걀 프라이도 제대로 못하는데 말기까지 하라니.
“내가 옆에 있잖아요.”
“알았어요.”
은비는 조심스럽게 달걀을 집어들었다.
“일단 보울에 달걀을 깨봐요.”
“네, 으왓.”
달걀을 도대체 어떻게 쥔 것인지, 양손에 달걀을 집자마자, 달걀이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튀었다.
“죄, 죄송해요.”
“그것도 능력이네.”
“놀리지 말아요.”
“알았어요. 이제 그만.”
선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은비의 머리에 붙은 달걀 껍데기를 떼어냈다. 은비는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어졌다.
“아우 완전 창피해.”
“창피하기는 뭐가 창피해요?”
“무슨 여자가 이렇게 요리를 못 하니까 창피한 거죠. 나 왜 이렇게 요리를 못 하는 걸까? 나 진짜로 손재주가 없나봐.”
“여자라고 요리를 잘 해야 하나?”
선재가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 있잖아요.”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남자라고 요리를 잘 할 수도 있고, 여자라고 요리를 못 하는 걸 수도 있지. 꼭 여자라고 요리를 잘 할 필요는 없는 거라니까요. 은비 씨 이상한 생각을 하지 말아요.”
“진심이에요?”
“네.”
“하여간 선재 씨는 특이해.”
은비가 살짝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다른 남자들은 요리 못 하는 여자라고 하면 되게 이상하게 생각을 하던데, 설마 선재 씨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괜찮은 거예요. 하면서 인자한 척 하는 거 아니에요?”
“나도 평범하지는 않으니까?”
“네?”
은비가 눈을 깜빡이며 선재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은비 씨도 알잖아요. 나 너무나도 깔끔 떠는 거. 라면 하나를 끓이더라도 타이머가 있어야 끓여요.”
“뭐, 그 정도야.”
“쿡.”
선재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은비를 바라봤다. 이 여자와 자신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런데도 이 여자가 너무나도 좋았다. 은비의 말처럼 전에는 요리를 할 줄 모르는 여자는 여자로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기본이라고 생각을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 여자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달걀을 너무 세게 쥐지 말아요. 가볍게 톡 하고 부딪히면 되는 거니까. 어렵지는 않잖아요. 안 그래요?”
선재는 너무나도 쉽게 달걀을 깨서 보울에 떨어뜨렸다.
“은비 씨 다시 한 번 해봐요.”
“네.”
은비는 낮게 심호흡을 하고 달걀을 조심스럽게 깨뜨렸다. 아까처럼 우악스럽게 깨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안으로 껍데기가 떨어졌다.
“아우, 이거 봐요.”
“왜요? 건지면 되죠.”
선재는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까보다 훨씬 양호한데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은 쓰지 말아요. 하다보면 요리는 자꾸 늘게 되어 있으니까.”
“책임질 수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맛있다.”
“그렇죠?”
“네.”
은비는 처음으로 직접 만든 달걀 말이를 먹고 있었다. 우유를 넣어서 폭신폭신한데다가 치즈까지 듬뿍 들어서 더욱 맛있었다.
“이제 채연 씨에게도 집에 가서 해주면 되겠네.”
“안 먹을 걸요?”
“왜요? 맛있잖아요.”
“선재 씨가 없으면 또 못 해요.”
은비는 엷게 미소를 지으면서 살짝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뭐. 선재 씨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도와줘서 겨우 한 거잖아요.”
“에이, 그래도 은비 시가 한 요리죠.”
“아니라니까.”
“쿡. 알았어요. 그러면 더 연습을 해요. 그러면 내가 하지 않고도 맛있는 달걀말이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보장하는 거죠?”
“그렇다니까.”
‘Rrrrr Rrrrr'
액정을 보니 매니저였다. 무슨 일일까?
“나 잠깐만 전화 좀 받고 올게요.”
“네.”
선재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거실로 향했다.
“무슨 일이에요?”
‘드라마 그냥 해야겠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가 안 한다고 하면 작가님도 안 한다고 하셨나 보더라. 아무튼 방송국 잘못이 될 것 같으니까 계속 하자.’
“그게 좀 그런데.”
선재가 어색한 표저을 지으면서 부엌을 바라봤다. 자신과 눈이 마주친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안 하기로 한 거 다시 번복을 하는 것도 우스운 거잖아요.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이건 가벼운 게 아니지. 신의를 지키는 거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도 끝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 얼마나 멋져? 안 그래도 사람들이 너 너무 여리여리 하다고 남자답게 안 보는데 이 기회에 어떠냐?’
“글쎄요.”
선재는 살짝 아랫입술을 물었다.
“형도 알잖아요. 저 진짜 쉬지도 않고 계속 일만 했다는 거 말이에요. 이제 겨우 휴식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미안해. 하지만 너 여기서 방송을 그만 둘 거는 아니잖아. 그리고 그만 두더라도 지금 작가님에게 해는 가지 않아야 할 거 아니야. 원주연 걔가 싫다고 다른 사람까지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
“지금 결정을 해야 해요?”
‘아니.’
“그럼 생각을 좀 해볼게요.”
‘그래.’
선재는 전화를 끊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드님께서 이번에 드라마를 그만 두셨다고 하던데?”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선재의 부친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만나도 자신의 아들은 늘 사람들의 입에 오르곤 했었다. 연예인을 하는 아들을 두는 것은 이래저래 보이는 것이 많았다.
“왜 그리 된 것입니까?”
“제가 알 턱이 있나요. 이제 그 녀석도 어른이 되었으니,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 거겠죠.”
“참 대단도 하십니다.”
밖에서 그를 보는 눈은 아들과 사이가 좋은, 그리고 무조건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밀어주는 아버지였다.
“나라면 내 자식이 그러는 걸 못 볼 걸.”
“암요. 내 아들이 회사 일을 하지 않고 연예인을 한다고 하면 두 팔 걷어서 말리고 나설 겁니다.”
“소설도 쓰잖아요.”
“그러게요. 참 다재다능합니다.”
“허허.”
부친은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아들도 다른 사람들의 아들처럼 평범하게 경영에 신경을 쓰면 좋을 거였다. 하지만 선재는 경영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아무튼 싸인 하나 받아야 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 마누라도 선재 군 싸인 받아오라고 아주 성화입니다. 드라마에서 너무 멋있다고.”
“저도 얼굴을 못 볼 때가 많습니다. 워낙 촬영이라는 것이 길더군요. 쉬워 보여도 나름 바쁜 모양이더이다.”
“그렇군요.”
부친은 점점 미간을 모았다. 이 양반들은 회사 이야기를 하자고 모였더니 선재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그래 다들 앞으로 경영의 흐름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주제를 말을 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본래 모인 목적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화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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