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요?”
“실장님.”
“아, 드라마 떄문에요?”
“네.”
선재가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드라마를 그만 두는 것은 조금 웃긴 일이 아니겠냐고. 아직 안 늦었으니까 다시 하는 것이 어떤지 묻더라고요.”
“그럼 해요.”
“네?”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하는 은비에 선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쉽게 대답을 하다니.
“그냥 드라마를 하라고요?”
“네.”
은비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선재 씨는 선재 씨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들하고는 약속을 한 거고 말이에요. 약속을 한 거니까 당연히 그 약속을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권선재인데.”
“그래도 이미 안 한다고 했잖아요.”
선재는 명랑한 표정을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오히려 지금 한다고 하면 더 웃길 거야.”
“왜요? 사람들은 좋게 생각을 할 걸?”
“좋게 생각을 한다고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는데도, 한 번 하기로 한 거니까 끝까지 한다. 그렇게 보지 않으려나?”
아까 실장이 한 말과 같은 말이었다.
“은비 씨는 내가 계속 드라마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선재 씨의 일이니까요.”
“그럼 나는 이제 조은비 씨랑 못 놀아주는데도 괜찮아요? 조은비 씨 혼자서 하루 종일 놀아야 하는데?”
“너무 바쁘게 일을 했어요. 그리고 남들이 들으면 권선재 씨가 엄청나게 놀아준 줄 알겠네. 하루 놀아줬다.”
“하루라도.”
선재가 장난스럽게 울상을 지어보이자 은비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나는 권선재 씨가 출연을 하는 드라마를 보는 것만 하더라도 너무나도 재미 있을 것 같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정말로요?”
“네.”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밀렸던 드라마나 보고 너무 좋을 것 같아.”
“그래도 영 마음에 안 드는데.”
“그래도 한 번 시작을 한 일이니까 마무리를 지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못 지었으니까. 적어도 권선재 씨라도.”
“아우, 모르겠다.”
“뭘 몰라요. 권선재 씨는 남자니까. 조금 더 남자다운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는 건가? 나는 좀 그랬으면 하는데.”
“어허.”
“네?”
선재가 갑자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을 하자 은비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
“왜요?”
“내가 언제 은비 씨 한테 여자라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아, 아니요.”
“그런데 왜 은비 씨는 남자라서 내가 해야 한다고 말을 해요. 그렇게 말을 하면 듣는 남자 섭섭하죠.”
“알았어요.”
은비는 엷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냥 남자라서가 아니라, 나를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 남자로써 그랬으면 하는데. 어때요?”
“그건 접수.”
선재가 유쾌하게 웃음녀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드라마 계속 하도록 할게요.”
“정말이죠?”
“진짜 내가 한 여자 때문에 내 소신을 버린다.”
“쿡.”
은비는 가볍게 눈을 흘겼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친 후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가 있어서 참 즐거웠다.
“뭐라고?”
주연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매니저가 가져다 준 A4 용지를 받아들었다. 모두 자신이 잘못을 한 거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뭐야?”
“기자회견문이지.”
“아니, 내용이 이게 뭐냐고.”
주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부 다 내 잘못이라고 적혀 있잖아.”
“네가 국장님께 그러겠다고 이미 했잖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건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이게 지금 나 혼자 나쁜 년이라는 거지. 어떻게 나도 빠져나갈 구석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무조건 나 혼자서 다 죽으라는 거야?”
“그런 건 아니잖아.”
“맞잖아!”
주연은 고함을 지르면서 기자회견문을 마구잡이로 구겼다.
“나 못 해.”
“원주연.”
“안 할 거라고.”
주연이 사나운 눈으로 매니저를 노려봤다.
“오빠는 내 매니저라고. 내가 가장 잘 될 수 있게 나를 도와야 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런데 이런 걸 가지고 와? 이런 걸 가지고 나보고 발표를 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제발 그만 둬.”
“이게 다 널 위한 거야.”
“날 위한 거라고?”
주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째서?”
“다른 사람들이 너를 좋게 볼 지도 몰라. 그리고 이미 소문이 나고 있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네 입으로 푸는 게 나아.”
“소문이라니?”
주연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무슨 소문을 말을 하는 거야?”
“네가 중간에 끼어 있다는 거 말이야.”
“하.”
주연이 코웃음을 치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누, 누가 그런 말을 해?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러니까 누가 그런 헛소리를 퍼뜨리고 다닌다니?”
“다 알고 있더라고.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빠르게 네 입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더 나을 거야.”
“말도 안 돼.”
주연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나는 천하의 원주연이야.”
“누가 뭐래?”
“그런데 이렇게 이미지가 망가지는 것을 해야 하는 거냐고.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이건 정말로 아니야.”
“다른 사람들에게 망가지는 것 보다는 네 손으로 직접 망가지는 것이 훨씬 그림이 괜찮을 거야.”
“오빠!”
주연은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매니저를 노려봤다.
“지금 나 약올리니?”
“지금 내가 약올리는 걸로 보여?”
“그래. 지금 나 열 받아서 죽게 만들려는 걸로 보여. 당장 새롭게 기자회견할 거 다시 만들어 와.”
“시간이 없어.”
매니저는 다급한 표정으로 시계를 가리켰다.
“이제 20분도 채 남지 않았어. 이걸 어떻게 고쳐?”
“그래도 이대로는 못 한다고.”
주연이 울상을 지으면서 소파에 주저 앉았다.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착한 여배우, 예쁜 여배우란 말이야. 그런 내가 이미지가 망가지면 어떻게 되겠어?”
“금방 잊혀지게 되어 있어.”
“잊혀지지 않을 거야.”
주연은 사나운 눈으로 매니저를 노려봤다.
“이대로 내가 무너지게 된다면 오빠는 도대체 뭘 먹고 살 건데? 나를 이렇게 몰아세워도 괜찮은 거야?”
“주연아.”
“억울해. 나는 억울하다고. 내가 그 상황에서 말을 한 것 중에 거짓말이 있어? 권선재 그 사람이 감독님께 드라마 하기 싫다고 나간 거 맞잖아. 나는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단 말이야.”
“조금 과장은 했잖아.”
“그래 과장.”
주연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밖에 내가 더 했어? 그런데 이 기자회견은 뭐야? 내가 모두 다 뒤집어 써야 하는 거잖아.”
“그래야 해.”
“오빠, 정말 이건 아니지.”
주연은 미친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구 인생 망칠 일이 있냐고! 이런 식으로 하면 다시 내게 드라마 같은 것이 들어올 리가 없잖아.”
“왜 없어?”
“누구를 바보로 알아? 싸가지 없는 년 주인공으로 써줄 미친 감독도 있다니? 절대로 없잖아!”
“그걸 막자는 거야.”
매니저는 너무나도 답답했다. 지금 주연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소문이 더욱 이상하게 퍼질 터였다.
“네가 여기서 끝을 내야 한다고.”
“싫다면.”
“네 매니저 그만 둘 거다.”
“뭐라고?”
주연의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오, 오빠 지금 하는 말이 진심이야?”
“진심이야.”
매니저는 단호한 표정으로 주연을 바라봤다.
“내가 언제 너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자고 한 적이 있었어? 한 번도 없잖아. 나는 늘 너에게 득만 되려고 했어. 그러니까 제발 내 말 좀 들어. 너를 위해서 하는 일이야. 너를 바라서 하는 일이라고.”
“후우, 좋아.”
주연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 번만 오빠 말을 들어볼게.”
“죄송합니다.”
주연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기자들을 향해서 깊이 허리를 숙였다.
“오늘 기자회견에 오신 분들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저 같이 나쁜 아이를 위해서 여기까지 와주시다니 너무나도 감사해요. 오늘은 제가 너무나도 나쁜 아이라는 것을 고백을 하는 자리입니다.”
주연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조심스럽게 아랫입술을 물었다.
“다들 아실 겁니다. 저랑 같이 드라마를 하던 권선재 씨가 드라마를 하차를 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데 사실 그것은. 흑.”
주연은 순간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카메라 플래쉬들이 마구잡이로 터지고 있었다. 주연은 애써 진정을 하고는 낮게 심호흡을 했다.
“죄송해요. 제가 감정이 격해져서. 하아. 그럼 이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권선재 씨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습니다. 제가 자꾸만 NG를 내다보니 거기에 살짝 기분이 상하셔서 감독님과 부딪히신 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제 잘못이 있다는 말은 하나도 하지 않고 국장님께 말씀을 드려서 다시 권선재 씨랑 국장님하고 사이가 안 좋아져서, 그런 해프닝이 벌어진 거예요.”
주연은 기자들을 모두 둘러 봤다.
“두 분께 모두 죄송합니다.”
주연은 다시 한 번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럼 권선재 씨의 하차는 없는 겁니까?”
“모르겠어요. 제가 그 분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니까요. 다만, 이렇게 제가 오해를 풀게 되면 다시 드라마를 하시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 제 잘못이니까요. 좋은 드라마를 하기 위해서 뭉친 사람들이니까 제발 끝까지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혼자만의 결정입니까? 방송국의 권고입니까?”
“제가 결정을 한 겁니다. 이상한 오해가 자꾸만 퍼져나가는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야 하겠더라고요.”
“평소에 촬영장에서 행실이 안 좋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주연은 쓸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무래도 제가 성격이 그렇게 유들유들한 편은 아니거든요. 게다가 제가 신인이니까 다른 분들께는 다소 세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누군가를 무시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행실이 안 좋은 것이 아니라, NG를 많이 내는 것은 아직 제가 신인이라서 그런 거고요. 절대로 일부러, 고의성을 담아서 그러는 것은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뜨는 여배우가 이런 기자회견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진실이니까요.”
주연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실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인기가 떨어지는 것은 신경쓰지 않으셨습니까?”
“결국 제 인기는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미 기자님들도 여러 이야기를 듣고 계실 텐데요. 제가 못된 아이라는 이야기도 다들 듣고 계시잖아요. 그럴 바에야 제 입으로 진실을 말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고,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는 겁니다.”
“권선재 씨에게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권선재 씨요.”
주연은 아랫입술을 물며 살짝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그분과 사이가 안 좋아서.”
주연은 다시 눈에 눈물을 가득 고이게 만들었다.
“제게 굉장히 엄하신 분이거든요.”
기자들의 손이 어느 정도 바빠지는 것을 보고는 주연은 재빨리 양손을 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고 나쁜 분은 아니에요. 다만 너무나도 엄격한 분이니까. 이것으로 기자회견을 마치겠습니다.”
주연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도록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왔다. 주연의 매니저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독하다, 독하다 생각을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독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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