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요즘 매일 매스컴이다.”
“그러게.”
선재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들이 나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큰일이라니까.”
“지랄.”
희준은 낮게 욕설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너는 꼭 한 번씩 그런 식으로 지랄을 하더라. 그렇게 지랄을 하지 않으면 속이 안 시원한 거냐?”
“너는 친구라는 게.”
선재는 살짝 미간을 모았다.
“지랄이 뭐냐? 지랄이? 무식하게.”
“친구가 지랄을 해서 지랄이라고 했는데 뭐가 문제가 되는 거냐? 그나저나 어머님께는 전화 드렸냐?”
“아니.”
선재는 너무나도 쾌활하게 대꾸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왜?”
“걱정하시잖아.”
“됐네요.”
선재는 길게 몸을 누우면서 나태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답니다.”
“그러면 어디에 신경을 쓸 겨를이 있다는 거냐?”
“너 오늘 왜 그래?”
선재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희준을 바라봤다.
“평소에는 그렇게 나에 대해서 꼬치꼬치 묻는 성격이 아니었잖아.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
“너희 어머니가 불쌍해서 그런다.”
“우리 어머니가?”
선재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엄마가 왜?”
“아저씨께 또 한 소리 듣고 계실 거 아니야. 본인이 잘못을 하신 것도 아닌데 말이야. 너는 어머니께 안 죄송해?”
“조금은?”
“그런데 연락을 안 드려?”
“안 드리는 게 나아.”
“어째서?”
“그럼 또 엄마는 아빠한테 말을 할 거고, 그러면 또 엄마한테만 난리를 피우실 게 분명하다니까?”
“미치겠다.”
희준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라면 그렇게 안 해.”
“뭘?”
“나도 부모님이 있다면 그렇게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고. 최대한 걱정을 하지 않게 해드릴 거야.”
“희준아.”
선재가 자리에서 앉아 가만히 희준의 얼굴을 살폈다.
“너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네가 너무나도 미워서 그런다.”
“내가 뭐가 밉냐?”
“너는 부모님 있다고 그렇게 구는 거 아니야. 옆에서 보면 네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아냐? 내가 너 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어휴. 가만히 안 뒀어. 그러니까 너는 네 어머니랑 아버지께 잘 해야 하는 거야.”
“나름 잘 하고 있습니다.”
선재가 살짝 미간을 모으면서 투정을 부리듯 대꾸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면 더 화를 내거나, 당황스럽기만 하실 텐데 뭘.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어. 네 앞에서 투정을 부리는 건 조금 그렇지만. 아무튼 이건 아니야.”
“미치겠다.”
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랜 친구로써 선재가 부모님에게 구는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자신에게 부모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선재의 행동은 너무나도 예의가 없는 것들이었으며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만일 자신이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더욱 살갑게 대하고, 더욱 다정히 대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계속 방송으로 네 소식 들려드린다고?”
“이제 어떻게든 결정이 나겠지.”
“너도 참 대책이 없다.”
“나도 이런 내가 싫다.”
“그럼 고쳐야지?”
“안 고쳐지는 걸?”
“고치도록 노력도 안 하면서.”
“아우, 나는 너랑 다른 인종이야.”
“못난 놈.”
희준의 말에 선재는 귀를 막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희준처럼 바른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확실히 그건 어려웠다.
“그럼 내가 전화 드려도 되냐?”
“아니. 그것도 안 되지.”
선재는 황급히 귀에서 손을 떼고 희준을 바라봤다.
“누구 집에서 쫓겨나는 꼴 볼래?”
“그러니까 그럴 일을 왜 만드냐고?”
“내가 만들었냐? 그래. 저 년. 저 계집애가 한 거라고.”
마침 방송에서 주연의 얼굴이 비치자 선재가 흥분을 하면서 텔레비전 화면을 손가락질 하기 시작했다.
“쟤가 다 한 거란 말이야. 그런데 엄마한테 뭐라고 말을 하냐? 아니, 엄마.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나랑 같이 연기를 하는 애 있지? 그래. 그 눈 쫙 찢어지고 못 생긴 애. 그 싸가지가 내 성격을 건드린 거 있지? 그렇게 말을 하리? 이럴 때는 오히려 숨기는 것이 부모님께는 더 좋아.”
“네가 알아서 하겠지 뭐.”
희준도 결국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피했다.
“이게 뭡니까?”
“죄송합니다.”
주연의 매니저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주연이 그런 식으로 기자회견장에서 날뛸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제 불찰입니다.”
“드라마 안 한답니다.”
“네?”
주연의 매니적 놀란 눈으로 선재의 실장을 바라봤다.
“그, 그게 무슨?”
“댁 같으면 하시고 싶으시겠습니까?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고요? 오히려 이미지만 완전히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드라마에 함께 출연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안 되는 거지요.”
“그래도 지금 나가면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주연의 매니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진짜로 엄한 선배로 알 겁니다.”
“뭐 거짓은 아니니까요.”
선재의 실장은 태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선재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앞으로는 조심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권선재 씨 합류 안 하면 주연이 첫 주연인 드라마 엎어질 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뜨는 애 첫 드라마 엎어지면 이제 끝인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대중이 뭐라고 알건 그게 무슨 상관이랍니까? 방송가에서 지금 어떤 소문이 퍼지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연이가 여우짓을 해서 드라마 하나 해먹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만일 여기서 드라마 엎어지면 그거 사실이 되고 주연이 다시는 드라마 하지 못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부탁입니다. 주연이가 하는 짓이 밉상인 건 알지만 그래도 한 번만 이해를 해주시고 다시 합류를 하시죠. 내일이라도 합류를 하면 드라마 펑크는 막을 수 있다고 하던데, 권선재 씨도 드라마 중도 하차가 경력에 남는 거 도움 안 되지 않습니까?”
“도움이야 안 되지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주연의 매니저는 너무나도 다급했다. 지금 말을 한 것처럼 여기서 끝이 나면 주연도 함께 끝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네?”
“알았다고요. 방송국에는 저희가 연결을 하죠.”
“고맙습니다.”
선재의 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로 했으니 주연도 당분간 선재에게 무례하게 굴지는 않을 터였다.
“결국 하는 거야?”
‘그래 이 자식아. 그러니까 제대로 해.’
“아우, 마음에 안 들어.”
선재는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바라봤다. 이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다시 일이었다.
“놀아보니까 나는 일하는 것이 체질에 안 맞던데.”
‘일하는 게 체질에 맞는 사람도 있냐? 나도 일하는 거 체질에 안 맞아. 아무튼 내일 아침부터 촬영이다.’
“알았어요.”
‘아참, 그리고 지금 분량을 매꿔야 한다니까, 당분간 너 일주일에 하루 쉬는 거 없어질 거야.’
“어?”
선재가 놀란 눈으로 하고는 휴대전화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이틀 빠졌잖아. 그거 제대로 채워 넣으려면 똑같이 이틀 가지고 안 된다는 거 알면서 그러냐? 게다가 대충 찍으면 중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때문입니다. 그런 기사 나는 것도 알잖아.’
“내가 미쳐.”
선재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원주연 그건?”
‘걔야 뭐 달라지겠냐?’
“아우, 그럼 싫은대.”
‘그래도 걔 매니저가 미안하다고 그러더라. 솔직히 말을 해서 그 사람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잖아. 우리가 계속 이러는 건 원주연 걔를 약올리는 것도 아니니까, 괜히 엄한 사람 잡을 필요 없겠다 싶어서 그냥 한다고 했어. 그러니까 너도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라. 그냥 하는 거다.’
“알았어.”
선재는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아침에 두웨이 호텔로 와.”
‘호텔은 왜?’
“그럴 일이 있어. 알았지?”
‘알았다.’
선재는 왼손 엄지를 물었다. 어떻게 해야 그거 기를 죽이지? 죽여야지 앞으로가 편했는대. 잠깐, 이제부터 은비도 만날 수 없는 거였다.
“그럼 안 되는 건데.”
선재는 황급히 전화를 눌렀다.
“이 크림이 정말 허벅지 살이 빠진다고?”
“그렇대.”
채연이 눈을 반짝이며 크림 하나를 자랑스레 은비에게 내보였다.
“여기 쓰여 있잖아. 가슴에 바르지 마시오. 이 말을 보니까 어딘지 모르게 제대로 효과가 있을 거 같지 않냐?”
“없을 걸.”
은비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크림을 바라봤다.
“세상에 바르기만 해서 살이 빠지는 크림이 어디에 있냐? 이게 있으면 노벨 평화상을 받을 거다.”
“화장품이 무슨. 의학상이면 몰라도.”
“여자들 살빠지게 돕는 건, 세계 평화에 일조하는 거야. 아무튼 이런 게 정말로 효과가 있을까?”
“은비 너 은근히 살쪄서 고민이잖아.”
채연이 은근한 눈길로 은비의 몸을 훑었다.
“요즘 들어 옆구리 살도 좀 붙은 것 같은데?”
“너, 너도 알잖아. 나 겨울이면 조금 살이 붙는 거. 이제 봄이 되니까 저절로 살이 빠질 텐데 뭐.”
“허 참.”
채연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가볍게 눈을 흘겼다.
“야 이 년아. 너는 화장품 발라서 살이 빠진다는 말은 안 믿으면서, 계절이 바뀌어서 살이 빠진다는 소리를 하냐?”
“진짜니까 그러지.”
“퍽이나,”
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이제 고등학교 교복 안 맞잖아.”
“그, 그때는 말도 안 되게 줄여 입었으니까 그런 거지. 그러는 너는? 고등학교 교복이 맞냐?”
“맞던데?”
“어?”
채연이 자랑스레 브이자를 그려보이자 은비는 의아하다는 듯 채연을 바라봤다. 아니 교복을 입을 일이 왜 있었을까?
“너 교복은 왜 입었어?”
“어?”
순간 채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게.”
“설마.”
은비는 입을 가리고 채연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니지?”
“그래서 헤어진 거야.”
“미친 년.”
은비는 재빨리 쿠션을 채연에게로 던졌다.
“아무리 남자 친구가 여고생 컨셉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지 교복을 입고 그 짓을 할 생각을 하냐?”
“처녀는 모르니라.”
“아우, 너도 참.”
은비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채연은 상상 이상의 행동을 하곤 했었다.
“너도 한 번 해보면 그 맛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거다.”
“그런데 어떡하냐? 요즘 독수공방이라.”
“뭐.”
채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눈을 반짝였다.
“전화만 하면 나올 남자들이 수두룩하지. 아흥.”
“아무튼 못 말려.”
은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열심히 다리에 화장품을 바르는 채연이 어디가 좋다고 남자들은 자꾸만 그녀에게 붙는 것일까?
“너도 다리 걷어 발라줄게.”
“나는 그런 거 안 믿어.”
“안 믿어도.”
은비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닥,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다리를 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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