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20
“미친 년 아니야?”
선재는 머리를 헝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거기서 왜 그런 말을 하고 난리냐고?”
“네가 다시 드라마에 복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런 거겠지.”
실장도 미간을 모으면서 조심스럽게 답했다. 선재가 엄하다고 한 이야기는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이거 정말로 미치겠네.”
“그러자고 한 게 아닐 텐데.”
“그래야 하겠지.”
선재는 사나운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래서 내가 애초에 그냥 중간에 나갔으면 그걸로 끝을 내자고 한 거야. 자꾸만 일이 더 커지잖아.”
“이럴 줄 알았어?”
“그 쪽이 원주연이잖아.”
선재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했다.
“그 여자라면 형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 거 같네. 기자회견 장에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다 하니까 말이야.”
“정말, 도대체 그 여자는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어. 나를 약 올리면 그렇게 좋을까?”
“아무튼 큰일이다.”
“큰일은, 나 싸가지 없는 거 다 아는데.”
선재는 눈을 감고 등을 뒤로 기댔다. 머리가 아팠다.
“원주연 그 사람이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아마도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나 봐.”
“그럴 리야 있겠냐?”
“지금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아무튼 그쪽하고 다시 연락을 했으니까, 이번에는 조금 더 긍정적인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긍정적인 답?”
선재가 코웃음을 치며 실장을 바라봤다.
“그 여자는 구미호라고. 자꾸만 머리를 쓴단 말이야. 우리가 조금만 유리하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그 여자는 적어도 열 발자국은 앞으로 나가 있을 거야. 쉽게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게 왜 그렇게 원수를 진 거냐?”
실장은 마음에 안 든다는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내가 아무에게나 입바른 소리 하는 네 버릇이 이런 일을 만들 줄 알았다. 이건 네가 만든 사단이야.”
“내가 뭘 잘못했어?”
선재가 따지듯 물었다.
“우리 필름 값 엄청나게 비싼 것도 사실이잖아. 그래서 연기 좀 제대로 하라는 게 도대체 무슨 잘못이야?”
“원주연 같은 애를 건드렸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네.”
선재는 낮게 한숨을 토해냈다. 원주연이 행동을 하는 방식은 꽤나 유치하면서도 대처하기가 까다로웠다.
“사람들은 또 내 욕만 하지?”
“그렇지 뭐. 아무래도 그런 기사가 나니까.”
“아무래도 나는 십장생 중 하나로 들어가려나 보다. 평생 이렇게 욕 많이 먹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또 비꼰다. 하여간 너는.”
“형이라면 지금 이 상황이 편하겠어?”
“너만 속 타는 거 아니야. 네 매니저는 지금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으니까 너도 진정해.”
“미치겠네.”
선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시 드라마에 복귀를 하려고 했더니.”
“뭐? 너 다시 드라마를 할 생각이 있었어?”
실장은 금새 얼굴이 밝아졌다. 선재가 드라마를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기에 더욱 놀라웠다.
“그런데 뭐.”
선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는 어떻게 할 수도 없어져 버렸네.”
“왜 할 수가 없어? 네가 하고자 하면 하는 거지. 네가 드라마 한다는데 누가 말릴 수가 있냐?”
“엄한 선배라며?”
선재는 코웃음을 치며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사람이랑 대한민국에서 지금 가장 핫 하다는 여배우랑 같이 연기를 하도록 사람들이 놔둘 것 같아? 천만의 말씀이야. 내가 그 여자랑 다시 연기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을 할 텐데? 귀찮아. 나 더 이상 그런 대접을 받고 싶지 않으니까. 깔끔하게 그만 할 거야.”
“왜 그러냐?”
실장이 억울하다는 눈으로 선재를 바라봤다.
“네가 일을 해야 우리가 수익이 날 거 아니냐?”
“언제는 이제 제대로 휴가를 즐기라고 했잖아. 안 그래?”
“그때는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네가 다시 드라마를 할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 그렇게 한 거지.”
“그래서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암.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진 거지.”
한 번 아닌 것은 아닌 선재였기에, 이번에 다시 드라마를 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확실히 놀라운 것이었다.
“네가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하면, 내가 다시 제작진하고 이야기를 해볼게. 어려운 건 아닐 테니까 말이야. 어때?”
“나도 솔직히 내가 한 번 시작을 하기로 한 거니까 끝까지 제대로 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 이건 내가 시작을 한 거니까 말이야. 당연히 내가 책임을 지고 마무리도 지을 수 있어야 하는 거잖아.”
“당연하지.”
실장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오히려 네가 여기서 드라마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정말로 엄한 선배가 되고 말 거라고 생각을 한다. 네가 원주연 씨에게 못 되게 굴어서 그냥 드라마를 나갔다고 생각을 할 거야. 하지만 네가 드라마에 다시 복귀를 한다면 사람들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겠지.”
“아닐 거야.”
선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꾸했다.
“대중이 언제 그렇게 쉽게 반응을 바꾸는 거 봤어? 한 번 낙인이 찍히면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거야.”
“지워질 거야.”
실장은 힘주어 말했다.
“안 지워지면 내가 나서서 하나하나 지울 거야. 네가 어떤 사람인데? 너 절대로 나쁜 사람 아니다.”
“형이나 그렇게 생각을 하지?”
“그거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
실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선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지금 촬영 현장에 복귀를 하면 그리 많은 분량이 뒤처지는 것이 아니니까 문제는 없을 거야.”
“모르겠다.”
선재는 가볍게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로 다시 하는 것이 옳은 건지.”
“이 사람이 또 나를 두고 간을 보려고 그러네.”
“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옳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그래. 안 한다고 했으면 안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괜히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면 더 안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이미 너는 나쁜 사람이야.”
“그런가?”
실장의 말에 선재는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그럼 형이 좀 알아서 해줘. 할 수 있는 만큼. 나는 이제 형만 믿고 있다는 거 알고 있지?”
“오케이.”
실장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선재 씨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일까?”
“글쎄다.”
채연은 엄지손톱을 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네가 보기에는 어떤데? 나보다는 네가 더 권선재 씨랑 많이 만났으니까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아닐 거야.”
은비는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인정이 많은 사람인데? 그렇게 인정이 많은 사람이 나쁜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뭐 엄밀히 말을 하면 나쁜 짓은 아니지.”
“그래도.”
은비는 살짝 입을 내밀었다.
“나는 선배라고 해서 그렇게 위엄 있는 척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싫더라. 솔직히 재수 없잖아.”
“권선재 씨는 아닐 것 같아?”
“아마도, 아니 확실할 거야.”
“확실하다고?”
은비의 말에 채연이 가볍게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확신을 해?”
“그 사람이 나에게 요리를 가르쳐 줬거든.”
“요리?”
채연은 순간 얼굴이 굳었다가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권선재 씨가 너에게 요리를 가르쳤다고? 요리에 요 자도 모르는, 천하의 요리치 조은비에게?”
“그렇다니까.”
은비가 엷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사람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어. 오히려 나보고 잘 한다고 칭찬만 했다고. 그러니까 무조건 엄한 사람이라는 말은 틀렸을 거야. 나 같은 애에게도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는 걸.”
“그건 좀 다를 지도 모르겠다.”
“뭐가?”
“너는 좋아하잖아.”
채연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세상에 어떤 남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화를 내고 윽박을 지르고 그러겠냐? 바보나 그러지.”
“뭐, 그래도.”
“아무튼 선재 씨 보면 은근히 위아래 챙기는 것 같기도 해. 딱 보면 그렇게 생기지 않았어?”
“젠틀하게 생긴 거지 그런 건 아니야.”
“아이고.”
채연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은비를 쳐다봤다.
“그래도 서방님이라고 편을 드시는 겁니까?”
“서, 서방님은 무슨.”
은비의 얼굴이 황급히 붉어졌다.
“너는 말을 해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남들이 들으면 오해를 하기 딱 좋겠다. 서방님은 무슨.”
“그런 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권선재 씨의 편을 들고 그러냐? 네가 언제 그러기나 했냐?”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그래.”
“그러니까 서방님.”
채연은 여전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은비를 쳐다봤다.
“남녀 사이가 원래 다 그런 마음이 생기면 보는 눈도 달라지고 하는 거라니까. 너도 그런 것 같은데?”
“아니야.”
은비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언제 그런 적 있었니?”
“없으니까 더 수상하다는 거야. 옛말에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고 했다? 너 얌전한 고양이잖아.”
“채연이 너.”
은비가 가볍게 눈을 흘기자 채연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조은비 괴롭히는 것은 너무나도 재미있다니까. 아무튼 그래서 너는 그 사람을 믿는다고?”
“응.”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뭐.”
채연도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은비는 그런 채연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늘 힘이 되어 주는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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