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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21-1]

권정선재 2011. 2. 5. 07:00

 

 

 

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21

 

 

 

‘Rrrrr Rrrrr'

어머 아들.”

액정에 선재의 번호가 뜨자 유자는 재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아들이 먼저 전화를 걸다니 별 일이었다.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어?”

걱정했지?’

걱정은 무슨.”

하지만 유자의 목소리에는 금새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에 있어?”

싫어. 말하면 또 아빠한테 바로 불 거잖아. 내가 미쳤다고 엄마한테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을 해?’

네 아빠한테 말을 안 할 테니까 그냥 말해. 엄마가 너한테 안 좋은 일 생기게 둔 적이 있어?”

호텔이야.’

호텔? 어디? 서울?”

내 이름 대고 들어올 수 있는 호텔 대한민국에 두 개 있는데, 설마 미쳤다고 내가 제주도까지 갔을까 봐. 강남이에요. 아빠 호텔에 희준이 이름으로 묵고 있습니다. 내 얼굴 안 보이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엄마가 지금 갈까?”

됐어요. 지갑 내려놓으세요.’

너는 무슨.”

유자는 선재의 말에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었지만, 방금 손에 들었던 지갑을 재빠르게 탁자에 내려 놓았다.

그래도 아들 너무 무심한 거 아니야? 어떻게 엄마가 아들 소식을 자꾸만 방송으로 봐야 해.”

죄송해요.’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드라마는 계속 하기로 했어요.’

하기로 했어?”

유자는 금새 목소리가 밝아졌다. 아들을 매일 같이 좋아하는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기쁨이었다.

어떻게 그랬어?”

그쪽에서 아무튼 사과를 한 거니까. 그 정도는 받아줘야 하는 거잖아. 그래야지 엄마 아들이 좋은 사람이지.’

암 그렇지. 그럼 계속 나오는 거야?”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내일 드라마 현장에 복귀를 하면 펑크는 나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까.’

그럼 이제 집에 들어오는 거야?”

아니.’

어머, ?”

너무나도 빠르게 대답을 하는 선재 탓에 유자의 목소리는 금새 풀이 죽었다.

네 아버지 때문이면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그 양반을 말릴게. 하여간 그 양반은 애를 죽도록 잡아요.”

그런 게 아니라, 아무튼 이제 나도 독립을 생각을 해야 할 나이잖아요. 그러니까 겸사겸사 나오는 거지.’

독립? 그럼 네 오피스텔 있잖니?”

? , 그거.’

유자는 살짝 미간을 모았다. 얘가 또 오피스텔을 가지고 장난을 친 거구나. 유자는 이마를 짚었다.

너 오피스텔 어떻게 한 거야?”

뭘 어떻게 해? 잘 있지.’

아빠한테 이를 거야. 내가 네 아버지 모르게 그거 해주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면서 그래.”

임대 줬어요.’

어머, 미쳤어.”

나도 집에서 나올 줄은 몰랐지. 서울 시내에 휴식을 취하려고 ᄄᆞ로 오피스텔 구해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거야. 엄마는 엄마 아들이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다니기를 바라요?’

그건 아니지만, 그럼 그거 그냥 팔지 그걸 왜 임대를 하니? 그리고 네가 어디 돈이 궁해? 돈이 궁한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짓을 하는 지를 나는 모르겠다. 하여간 아들은 정말 이상해.”

그냥 놀려서 뭐 해? 아직 팔지도 않을 거고. 진짜로 돈이 필요했으면 팔았죠. 그냥 놀려두기 아까워서 그랬어요.’

정말이야?”

내가 엄마한테 거짓말해서 뭘 얻을 게 있다고. 진짜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혼자 살기에는 너무 컸어.’

오늘 아버지 늦으신다니까 집으로 저녁 먹으러 와.”

됐어요.’

아니 왜?”

유자가 다급히 반문했다. 남편도 없는데 왜 아들이 집에 들어오기 싫다고 말을 하는 것일까? 유자는 너무나도 서운했다.

우리 아들 엄마한테 너무 야박하게 구는 거 아니야? 같이 밥이나 한 끼 먹자는 것이 그렇게 어려워?”

내일 바로 드라마 들어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시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 오늘은 먹은 걸로 할게요.’

어떻게 먹은 걸로 해. 먹지도 않았는데, 그러면 케이터링 호텔로 넣어줄까? 아니면 뭐든 다 룸으로 시켜. 엄마가 지금 호텔에 전화를 걸어서 결재를 네 이름으로 하라는 소리를 안 할 테니까.”

저도 돈 벌어요.’

?”

저도 돈 잘 번다고요. 엄마는 내가 언제까지 그런 어린 아이인 줄 알아요? 돈 떄문이 아니에요.’

그래.”

은근히 서운한 유자였다. 선재의 말처럼 선재는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서운한 것일까?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화 드렸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하고 있으니까요.’

알았어. 그럼 자주 연락해.”

.’

전화를 끊고 유자는 가만히 전화기를 품에 안았다.

아들.”

나이가 들고 나니 정을 붙일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남편도 아들도 그녀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려니 하더라도 늘 서운한 마음이 드는 유자였다. 하지만 그녀가 없다면 아들을 지켜줄 것은 없을 거였다. 유자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선재에게는 자신이 유일했다.

 

‘Rrrrr Rrrrr'

, 선재 씨.”

뭐 하고 있었어요?’

그냥 있었어요.”

은비는 채연을 보며 엷게 미소를 지었다.

이 늦은 시간에 왜 전화를 했어요?”

지금 좀 봐요.’

?”

은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보자고요? 지금 너무 늦지 않았어요? 밖은 이미 되게 깜깜한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요?”

나 다시 드라마 하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내일부터 은비 씨랑 못 놀아줄 테니까 오늘 놀아주려고요.’

.”

은비가 엷게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라면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요?’

선재 씨가 할 일을 하는 건데 나에게 미안해 할 필요 하나도 없다는 말이에요. 선재 씨 할 일을 하는 건데 왜 자꾸 나를 신경을 쓰고 그래요. 나는 선재 씨가 열심히 일을 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해야지, 나만 그렇게 신경을 쓰면 민망하고 그렇다고요. 그러니까 너무 내 신경 쓰지 말아요.”

이제 월요일에 못 쉬어요.’

?”

은비 씨랑 약속을 한 다음 월요일, 그리고 그 다음 월요일에 쉬지 못 한다고요. 그러니까 지금 봐요.’

.”

갑작스러운 선재의 통보에 은비는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며칠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남자는 은근히 마음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다음 월요일의 데이트가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너무 늦은데.”

알아요. 그리 오래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응? 내가 지금 바로 은비 씨 집 앞으로 갈게요.’

얼마나 걸리는데요?”

30?’

은비는 자신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금방 갈게요.’

전화를 끊자 채연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하나 가득 하고는 은비를 바라봤다.

뭐래?”

지금 온대.”

아이고, 권선재 그 사람도 어지간히 지극정성이다. 너도 이제 그만 튕겨야 하는 거 아니냐? 너무 대단한 사람인데?”

대단하기는.”

대단하지. 그냥 남자들도 그렇게 하기 어려운 거야. 그런데 권선재 씨가 너에게 그러는 건 말 그대로 쇼킹한 사건이지. 톡 까놓고 말을 해서 권선재 씨가 뭐가 아쉬워서 그러는 거겠냐? 다 너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지. 너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그런 일까지 하는데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

너 말이 이상하다.”

은비는 살짝 이상한 눈으로 채연을 바라봤다.

너는 누가 나를 좋아해주는 것을 고마워 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거야? 내가 겨우 그런 사람이야?”

은비야.”

너 솔직히 우스워. 권선재 씨가 뭐가 어때서? 내가 싫으면 그만인 거잖아. 그 사람이 유명한 것이 뭐가 그렇게 잘난 건데? 그 사람이 잘나서 그렇게 시작이 된 것은 아니잖아. 애초에 그 사람 부모님이 있어서 시작이 달랐던 거잖아. 그런데 너는 왜 자꾸 나를 그 사람보다 못 한 사람으로 취급을 하는 건데? 너는 왜 자꾸 권선재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건데?”

미안해.”

채연은 황급히 은비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네가 화 나라고 한 말은 아니야.”

알아, 내가 봐도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데, 너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어?”

그런 게 아니야.”

채연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은비의 손을 잡았다.

그냥 신기해서 그런 것 뿐이야. 너는 그 사람에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너를 좋아하니까 그게 신기해서.”

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이지?”

세상에 같은 사람이 어디 있어? 너랑 나랑도 이렇게 다른데. 같은 사람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 하지만 그런데도 그 사람은 너를 좋아해주니까 그걸 좋게 생각을 하라는 거야. 다른 걸 좋게 생각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말이야. 그냥 그 점을 좋게 생각을 하라는 거라고.”

알아.”

은비는 힘 없이 대꾸했다.

내가 자격지심이 있어서 그래.”

네가 자격지심이 있을 것이 뭐가 있어?”

왜 없어? 나는 이 모양인데.”

네가 뭐가 어때서? 나는 권선재 씨 보다 조은비 네가 백 배는 더 멋지다고 생각을 하는데?”

거짓말도.”

은비가 엷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뭐가 더 멋있어?”

진짜로 멋있다니까? 너는 그냥 당당하잖아. 내가 괜히 또 이상한 소리를 해서 네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나 보다.”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어. 그 사람은 내 어디가 그렇게 좋다고 나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것인지 말이야. 아무리 봐도 나는 그 사람에 비해서 너무나도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인데 이상해.”

그 사람도 부족한 곳이 있을 거야.”

?”

은비는 가만히 채연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아직 권선재 씨를 몰라서 그러지, 그 사람도 은근히 허당 기질이 있을 지도 몰라. 빈 구석이 있을 거라니까?”

됐네요.”

됐기는.”

채연은 은비의 뒤로 가서 따뜻하게 은비를 안았다.

조은비.”

?”

누가 뭐래도 나한테는 네가 권선재 보다 나아.”

진짜로?”

진짜로.”

고마워.”

은비는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참 고마웠다. 객관적으로 말을 해주는 자신의 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