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도 맞추는 남자, 밥물도 못 맞추는 여자
15
“이제 술도 많이 마셨으니까 은비 씨에게 전화라도 해주는 거 어떠냐? 너야 이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니까 그리 걱정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은비 씨는 되게 걱정을 할 수도 있는 일이잖아.”
“그런가?”
선재는 미소를 지으면서 살짝 고개를 떨어뜨렸다.
“희준아.”
“왜?”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이 자식이 왜 이래? 징그럽게.”
선재는 미소를 지으면서 희준의 허리를 안았다. 희준은 잠시 밀어내려다가 선재가 그대로 잠든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너 정말 왜 이러냐?”
희준은 남은 술을 모두 들이켰다. 이 녀석은 은근히 자꾸만 신경이 가게 하고 있었다. 답답한 녀석이었다.
“꽨찮아?”
“응.”
초콜렛을 건네주면서 채연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은비의 귀에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Rrrrr Rrrrr'
“여보세요?”
‘이런. 미안해요.’
상대편에서 나오는 사과에 은비는 살짝 표정을 풀었다.
“아, 사장님.”
‘선재 자식에게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거죠? 미안해요. 내가 이 녀석에게 술을 조금 먹여서 말이에요. 지금 잠에 곯아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은비 씨 혹시나 기다리고 있을까 전화를 했는데.’
“감사해요.”
‘내 전화를 기다린 것 같지는 않은데.’
희준의 살짝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를 들으니 선재는 별다른 문제는 없는 모양이었다. 은비는 겨우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장님은 아세요?”
‘저도 모르죠. 선재 이 자식이 워낙 그런 일들은 숨기는 편이거든요. 그래도 그거 하나는 아시면 될 겁니다. 대놓고 은비 씨를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이제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요.’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요.”
‘그러게요. 아무튼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를 드린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은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선재가 괜찮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이는 그녀였다.
“사장님이 뭐래?”
“선재 씨 지금 술을 마셔서 전화를 못 하는 거라고 내가 걱정을 하고 있을 까봐 사장님이 걱정을 하셨나봐.”
“좋은 친구네.”
“어?”
은비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채연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친구가 좋아한다는 여자에게까지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경우는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이게 특이한 거야?”
“조금?”
채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여러 남자를 봤지만 친구의 여자에게까지 이 정도로 오지랖을 펼치는 남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신경을 쓰는 남자는 본 적이 있었지만 이건 그래도 도를 넘었다고 해야 할까?
“두 사람은 오랜 친구니까.”
“그렇겠지 뭐. 그나저나 우리도 이제 자야겠다. 내일 출근을 해야지.”
“그러게.”
“잘 수 있어? 수면제라도 줘?”
“아니.”
은비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일 보자.”
“그래.”
채연은 방으로 들어가는 은비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당신 아직도 그 녀석과 전화가 안 되는 거요?”
“네. 바쁜가봐요.”
유자가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낮게 한숨을 토해냈다. 낲면이 언성을 높이니 자꾸만 기가 죽는 그녀였다.
“당장 찾아내요.”
“아니 당신은 나보고 그 아이를 어떻게 찾으라고 자꾸만 성화세요. 다 큰 아이인데 말이에요.”
“다 커? 그 아이가? 당신의 눈에는 선재 그 녀석이 다 큰 아이로 보여서 그리도 품에 싸고 돈단 말이오?”
“그건. 아무튼 나는 당신이 더 이상 아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제라도 자립을 해야죠.”
“그건 당신이 나에게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부친의 서운한 말에 유자는 살짝 미간을 모았지만 곧바로 표정을 풀었다. 이런 일로 남편과 다툴 나이는 지났다.
“아무튼 일단 오늘은 전화도 받지 않으니 마음 놓고 주무십시다. 댓글인지 뭔지 보니까 우리 선재 욕하는 것이 줄었다면서요?”
“그래도 그렇지.”
“그냥 넘어가요.”
부친은 살짝 입술을 비틀었다.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도대체 그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르고 있었다.
“아무튼 연락이 되면 바로 나에게 말해줘요.”
“알았어요.”
남편이 화장실에 신문을 들고 들어가는 것을 보며 유자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가면 한 30분은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얘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누.”
남편의 말이 아니더라도 선재와는 꼭 통화를 하고 싶은 유자였지만 그녀는 마음을 꾹 눌렀다. 아들이라면,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을 하고 있는 아들이라면 올바른 해답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믿어야 했다. 그리고 믿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아들이니까. 유자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가만히 두 손을 모았다. 아들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그녀는 간절히 바랐다.
“흐음.”
“일어났냐?”
“응?”
선재는 머리를 짚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숙한 공간, 희준이 녀석의 방이였다. 희준이 녀석은 벌써 출근 준비를 다 마친 모양이었다.
“하여간 엄청 자요.”
“몇 시야?”
“일곱 시.”
“늦었네.”
“더 누워.”
선재가 일어나려고 하자 희준이 재빨리 침대로 와서 선재를 다시 눕혔다.
“너 휴가라고 어제 얼마나 떠들었는지 아냐? 그러니까 휴가 한 번 제대로 즐기라 이 말이야.”
“은비 씨 출근 도와야 해.”
“내가 할게.”
“네가? 왜?”
희준은 물을 건네며 살짝 미간을 모았다.
“은비 씨 내 취향 아니니까 그렇게 긴장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는 길에 채연 씨도 데리고 갈 테니까 신경을 끄셔요.”
“뭐. 고맙다.”
선재는 물을 다 마시고 빈 잔을 희준에게 건넸다.
“집에 해장국 좀 있냐?”
“끓여놨어.”
“인스턴트지?”
“그럼 네가 끓여 드시던가. 아무튼 나는 이제 출근을 할 거니까. 갈 때 문자나 한 통 주고 가라.”
“그래.”
희준이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을 보며 선재는 다시 눈을 감았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제의 기자회견이 모두 꿈인 것 같았다. 그 앞의 데이트도 모두 꿈만 같았다.
“어머 사장님.”
“좋은 아침.”
희준이 미소를 지으면서 은비와 채연에게 커피를 건넸다.
“선재 그 자식이 꼭 데려다주고 싶어했는데,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꽤나 힘들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친구라는 죄로 여기에 왔습니다. 그 녀석 대신 제가 와도 두 분 기분 안 나쁘시죠?”
“어머, 그럼요.”
채연이 미소를 지으면서 재빨리 조수석에 앉았다.
“와, 차 되게 좋다. 선재 씨 차보다 더 좋은 거 같아요.”
“그럼요.”
채연의 칭찬에 희준이 살짝 웃음을 지으면서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이게 선재 그 자식이 산 차보다 후속 모델인데다가, 옵션들이 모두 고급이거든요. 진짜 좋은 차죠.”
“어쩐지 사장님 안목이 좋으시구나.”
“그렇죠. 푸하하.”
은비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채연이 다른 남자를 물겠다고 한 것이 사장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선재 씨는 술을 많이 드셨어요?”
“그 녀석 원래 술을 많이 안 마셔도 가는 스타일이라서요. 은비 씨가 그리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뭐, 걱정은 아니에요.”
은비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룸미러로 보며 희준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채연 씨 안번벨트 매세요. 출발합니다.”
“오케이.”
은비는 창밖을 보면서 선재의 생각에 잠겼다.
“흐음.”
선재는 부스스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세 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오래 잔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암.”
기지개를 켜는데 너무나도 개운했다. 이렇게 푹 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일까? 걱정도 없었다. 출근을 할 필요도 없으니 더욱 마음이 편했다. 아마도 드라마는 어떤 이유든 자신이 편집이 될 터였다.
“은비 씨는 지금 쉬려나?”
선재는 전화기를 들어 은비의 번호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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