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떻게 할 거야?”
“뭐가?”
가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지우를 응시했다. 지우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숨길 건데?”
“뭐가?”
“아픈 거 말이야.”
“이야기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잖아.”
가운을 여미면서 가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우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런 가나를 못 마땅하게 응시했다.
“너랑 강가온이 어떤 사이인데 이야기를 안 해? 나중에 강가온이 알면 놀랄 거라는 생각 안 해?”
“그 녀석 지금 나에게 신경을 쓸 여유 없는 놈이야. 남지우. 너 지금 나한테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니야?”
“신경이 쓰이니까 그러지.”
지우는 한숨을 내쉬면서 차트를 내려다 봤다. 난소암이 위험할 정도라는 소견서. 자신이 쓴 것이고, 다른 이에게 확인까지 받는 것이었다. 이미 확실한 것인데도 가나는 수술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난소암이 퍼진 거라고. 지금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언제 시한폭탄처럼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란 말이야.”
“아직 괜찮다며?”
“그 괜찮다의 기준이 누나가 생각하는 그런 기준이 아니라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그 괜찮다가 아니라고.”
“아무튼 죽는 건 아니잖아.”
“강가나 씨.”
지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올 겁니까?”
“의사가 너무 신경 쓰고 있는 것 아니야? 환자가 치료를 받기 거부하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의사는 무조건 환자를 치료해야 햐는 거거든? 강가나 씨가 치료를 안 받으면 그건 내 죄가 되는 거라고.”
“그럼 감옥에 넣던가.”
가나는 명랑한 어조로 대꾸하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지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남지우 네가 너무 신경을 쓰는 거라니까? 가온이랑 내 사이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그리고 지금 애 드라마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내가 아프다는 것 이야기하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그러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으라고?”
“그것도 뭐 나쁘지 않네.”
“강가나 씨.”
“나도 내 몸한테 뒤통수 제대로 맞은 거라고. 지우 너도 알다시피 내가 어디 뭐 문란한 생활을 하기를 했니? 누구한테 뭐 나쁜 소리를 하고 살았니? 그런데 난소암이 뭐야. 난소암이. 으, 싫어.”
“그래서 수술을 안 받을 거야?”
지우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가나를 응시했다. 벌써 난소암이라는 것을 안지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가온이 드라마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수술도 받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는 상황이었다.
“수술을 받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거 아니야? 이 정도면 이미 전이가 된 것 같은데.”
“전의 안 되었어. 누나 내 실력 못 믿어? 우리 병원 실력 못 믿냐고. 누나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내가 너를 어떻게 믿니?”
가나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우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자 가나가 먼저 말을 이었다.
“수술은 안 받더라도 지금처럼 치료는 꾸준하게 받을 거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으니까.”
“그런데 수술을 받지 않겠는 이유가 뭐야? 누나 생각 외로 상태가 괜찮은 편이라고. 아직 전이가 안 된 것 같아.”
“너도 모르는 거 아니니?”
“나도 모르지. 하지만 사진 상으로 이것밖에 잡히지 않으면, 전이 안 된 것이 분명해. 이 정도면 수술을 해도 괜찮은 거라고. 나도 의사야. 수술을 해서 가망성 하나도 없는 거면 수술 하라는 이야기 안 해.”
“열어 봐서 가망 없으면 닫을 거니?”
“뭐? 왜 그런 이야기를 해?”
“너는 못 해.”
가나는 씩 웃으면서 지우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지우는 신경질적으로 입술이 닿았던 자리를 손으로 문질렀다.
“뭐 하는 거야?”
“너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이런 방식은 아니야.”
“까다롭기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너 너무 착해서. 그리고 너는 나를 좋아해서 나 열고나서는 절대로 못 닫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 고칠 생각을 할 거라고.”
“그게 걱정이면 다른 사람에게 수술을 받으면 되는 거잖아. 우리 병원에 좋은 선생님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병원이 싫으면 누나 마음에 드는 어느 병원에라도 내가 수술 잡아 놓을게. 그러면 되는 거잖아.”
“네가 아니면 싫어?”
“도대체 뭘 하자는 거야?”
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가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속이 상해?”
“그럼 누나라면 안 상하겠어?”
“미안해.”
“도대체 왜 나에게 온 거야?”
“네가 제일 믿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 믿어야지.”
“너는 믿어.”
“그런데 왜 수술을 안 받아?”
“나를 못 믿어.”
“뭐라고?”
“나를 못 믿는다고.”
가나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지우의 눈을 응시했다.
“아직 가온이에게도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했어. 그런데 수술을 받으라고? 나에게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것 아니야?”
“그러니까 강가온 그 망할 자식에게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거잖아. 누나 몸 상태 지금 최악이라고 이야기 하면 되잖아.”
“못 해.”
“왜 못 해?”
“내가 사랑하는 동생이니까.”
“지금 누나 사랑하는 나는 안 보이니?”
“네가 나한테 뭐라도 되니?”
“강가나 씨.”
“알아. 네가 나 오래 좋아한 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네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못 되잖아. 나 갈래.”
“후우. 가지 마.”
“왜? 섹스라도 하자고?”
“미쳤어?”
“뭘 미쳐?”
가나는 장난스럽게 엄지를 깨물면서 지우의 몸에 기댔다. 그리고 허벅지로 지우의 그곳을 부드럽게 눌렀다.
“어차피 너 나랑 섹스를 해도 아이도 안 생기잖아. 자연의 피임. 이렇게 좋은 것이 있는데 왜?”
“정말 미쳤구나?”
“이 상황에서 제정신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어려운 거지. 그런데 나는 미치지 않았어. 정상이라고.”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게 미쳤다는 거야.”
“하나도 안 미쳤다니까.”
“누나 미쳤어.”
“왜 이렇게 안 믿어?”
“뭘 안 믿어?”
“나 안 미쳤다니까?”
가나가 유쾌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어깨를 으쓱하자 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부터 그가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행동할 줄은 몰랐다.
“누나가 강가온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내가 이야기를 할 거야. 지금 누나의 몸 상태 이야기를 할 거라고.”
“네가?”
“내가 못 할 것 같아?”
“그럼 내가 고소할 거야.”
“뭐라고?”
“원래 환자와 의사 사이에 있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걸로 아는데. 아닌가?”
“가족이잖아.”
“가족이라도.”
가나는 명랑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우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지우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가나를 응시했다.
“그래서 정말 가온이에게 계속 숨기겠다고?”
“응.”
“그러면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이제 머리도 빠지기 시작을 할 거괴, 밥도 제대로 못 먹을 거야.”
“그럼 살도 빠지고 좋겠네.”
“강가나.”
“너 왜 이렇게 심각한 거라니? 정작 환자 자신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을 하는데 말이야.”
“환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을 하니까 그러는 거야.”
“네가 너무 심각한 거야.”
가나는 환하게 웃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이리저리 몸을 풀었다. 몸이 약간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몸속에 암세포가 차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별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그나저나 정말 이렇게 통증이 느껴지지가 않는데도 암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야? 너무 담담하잖아.”
“누나는 케이스가 되게 특이하니까. 아프지는 않을 거야. 마지막까지도 누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고.”
“그럼 운이 좋은 거네.”
“뭐가 운이 좋아? 내가 누나에게 자궁 검사를 받으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게 있다는 것도 몰랐을 텐데. 암이라는 녀석이 적어도 자기가 있다고 어느 정도 사람은 아프게 해야 할 거 아니야.”
“내가 워낙 독한 년이라서 암도 그걸 알고 티도 못 내나 보다.”
“정말 대단하다.”
지우는 혀를 내둘렀다. 가나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곧바로 장난스러운 시선으로 지우를 응시했다.
“나 담배 한 대만.”
“뭐? 무슨 담배?”
“피고 싶어서 그래.”
“암 걸린 사람이 담배는 무슨 담배야.”
“이미 걸린 거잖아.”
“강가나.”
“뭐 이제 내가 담배나 술 같은 것을 가려야 하는 이유도 없는 거 아니야? 이미 다 늦은 건데 말이야. 그러니까 지우야. 누나 담배 좀 피워보자. 우리 온이 목 걱정해서 집에 가서는 못 핀단 말이야.”
“내가 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응. 당연하지.”
지우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가나를 응시했다. 가나는 여전히 천진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어서 줘.”
“못 줘.”
“그럼 나 여기서 안 나갈 거야.”
“그럼 경비원 아저씨들 부르면 되는 거야.”
“네가 나에게 그럴 수가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금 내가 누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가지고 너무 협박하는 거 아니야?”
“응. 협박이야.”
“정말 잔인하다.”
“뭐. 내가 어쩔 수가 없잖아.”
가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가장 먼저 알린 것이 끔찍하기는 했지만, 지우가 먼저 그녀를 검사를 해주겠다고 한 것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절대로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런데 네가 나에게 그렇게 강요를 하더니.”
“어떻게 살면서 자기 몸을 그렇게 안 챙길 수가 있어? 누나는 강가온이 정말로 누나보다 소중하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당연하지. 우리 가온이는 내가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사람이야. 지금 이 상황에서도 만일 할 수만 있고, 가온이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내 간, 신장, 폐, 뭐든 다 떼어줄 수가 있어.”
“대단한 정이네. 대단한 사랑이야.”
지우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나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가나는 더욱 밝게 웃었다. 그런 가나의 얼굴을 본 지우는 더 이상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듯 시선을 피하며 전화를 들었다.
“여기 담배 좀 가져다주세요.”
“그럴 줄 알았어. 남지우.”
“진찰실에서 피우면 안 되는 것은 알지만, 지금 마지막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런 심부름 시켜서 정말 죄송합니다. 네. 맞습니다. 강가나 씨. 네.”
전화를 내려놓고 지우는 미간을 모으면서 가나를 응시했다. 가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지우의 책상에 앉았다.
“내려와.”
“이런 거 좋아하지 않아?”
“나 병원에서 얼마나 신사적인 의사로 알려졌는지 알아? 그런데 지금 간호사에게 담배 심부름이나 시키고. 분명히 나 엄청 씹고 있을 거라고.”
“그럼 네가 가지 그랬어?”
“내가 누나를 어떻게 믿고? 여기에서 내가 나가자마자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아무도 모르는데.”
“그렇지. 나도 모르지.”
가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런 말도 없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그리 좋지 않은 표정의 간호사가 담배와 라이터를 건넸다. 지우는 미안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선생님 잘못이 아닌데요.”
“네?”
“아니 그냥 누구 잘못인 거 같아서요.”
그런데 지우의 걱정과는 다르게 간호사의 싸늘한 시선이 가나에게 쏠려있었다. 가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여유롭게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연기를 간호사의 얼굴로 뿜었다. 간호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는 진찰실을 나갔다. 가나는 유쾌한 듯 웃음을 지었다.
“저 간호사 되게 웃긴다.”
“누나가 더 웃긴 거 알아?”
“아니 자기가 도대체 너한테 뭐라도 되는 사람이라니? 내가 너를 괴롭힌다고 저렇게 보는 것 좀 봐.”
“솔직히 지금 누나가 다소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잖아. 누가 진찰실에서 그렇게 행동을 해?”
“내가 뭐?”
“여기서 담배 피는 사람 누나가 처음이거든.”
“이해를 좀 해주라.”
가나는 입을 내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 누구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니?”
“우리 형 있잖아.”
“남주율 사장? 내가 그 양반한테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결국에는 다 하게 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 남주율 씨가 알게 되면 분명히 가온이 귀에도 들릴 거고 말이야.”
“내가 우리 형에게 이야기를 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거야?”
“그쪽은 괜찮아.”
“뭐라고?”
“네 형은 괜찮다고.”
가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지우의 눈을 바라봤다. 지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 대충 다 피웠으면 이제 일어나자. 집까지 내가 데려다 줄게.”
“됐어.”
“그 몸으로 어떻게 가? 지금 치료 받아서 몸도 안 좋으면서.”
“나 네가 생각을 하는 것처럼 약한 사람이 아니라니까? 치료 받고 나서 나처럼 담배 피는 사람 봤어?”
“못 봤지. 그러니까 지금 더 미칠 것 같은 거지. 안 그래도 토하고 싶어서 난리일 것 같은데. 속은 안 뒤집혀?”
“뒤집히지.”
“그럼 꺼.”
“이게 살아있다는 증거잖아.”
“어설픈 곳에서 살아있다는 증거 좀 찾지 마. 강가나가 무슨 드라마 속 여배우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러게.”
가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우의 머그에 담배꽁초를 집어넣었다. 가늘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담배가 꺼졌다.
“차라리 드라마 주인공이었으면 좋겠어. 드라마 주인공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멋지게 짠하고 연애를 하기도 하잖아.”
“그럼 나랑 연애 하자.”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야.”
“내가 농담으로 보여?”
“얘가 또 미쳤네.”
가나는 장난스럽게 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어린아이를 바라보듯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응시했다.
“네가 아무리 의사가 되고, 이렇게 잘난 척을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이 누나가 보기에는 아직 그냥 마냥 어린아이로만 보이거든. 그러니까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해서 괜히 뻥 차이고 아파하지 마시지.”
“지금 나 농담을 하는 거 아니야. 강가나 씨. 지금까지 내가 누나 좋아한다는 이야기 한 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잖아. 늘 내가 농담을 하는 것처럼, 늘 내 형에 가려서 내 말 제대로 들은 적이 있어?”
“네 말을 제대로 들을 것이 없으니까 그러지. 나보다 나이도 어린 것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라니? 너처럼 앞길이 창창한 애가 나 같은 여자를 만나서 뭘 어떻게 하자고? 내가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그러게. 누나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내 마음 속에, 강가나라는 여자가 너무 오래 자리를 잡고 있었나 봐.”
“어우, 뭐야. 닭살이야.”
가나는 일부러 팔을 비비면서 과장되게 행동을 했다. 지우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면 그녀 역시도 뭐라고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뻔뻔하게 행동을 한다고 해도 남자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약간은 무안해지는 그녀였다.
“나 이제 집에 가야겠다. 가온이가 기다리겠다.”
“자기 누나 아픈 것도 제대로 못 알아차리는 자식이 뭐가 좋은 동생이라고 그렇게 챙기는 거야?”
“내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내가 티를 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가온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야. 우리 가온이가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우리 남지우 씨. 너무 오버하지 마세요. 남지우 씨가 끼어들 수 있는 그런 우리 남매 사이가 아니니까 말이에요.”
“정말 답답해 보이는 것 알아? 사람이 어떻게 자기 속을 그렇게 못 차리니? 자기를 우선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남주율 사장도 마찬가지일 걸? 그 사람도 자기보다도 너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그럴 거야. 당연한 거라고.”
“여기에서 우리 형 이야기를 왜 해?”
“누나나 형이나. 마음은 다 똑같다고 그것을 이야기를 하는 거야. 아무리 겉으로는 사이가 안 좋아 보여도 속으로는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 게다가 나랑 우리 가온이 같은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그게 지금 변명인 거야?”
“너에게 내가 변명을 왜 하니?”
가나는 일부러 눈을 치켜뜨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몸을 이리저리 기지개를 폈다. 오랜만에 한참이나 누워있었더니 몸이 불편했다.
“부탁이야. 내가 아프다는 것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말아줘.”
“방금 전 까지는 그냥 이야기를 하라며?”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잖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끔찍해.”
“누나는 나보다 우리 형이 더 우선이야?”
“말했잖아. 만일 네가 내 검사를 맡아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너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거야. 그 누구에게도 지금 내 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강가나가 아프다는 것을 나 혼자 이겨내고 이해를 하라는 거지?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응.”
“잔인하다.”
“나 잔인해.”
“나 누나 좋아한다고.”
“고마워,”
“그게 다야?”
지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늘 가나가 자신을 밀어내고, 다시 또 밀어내고, 자신 역시도 그리 진지하게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늘 가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나가 이런 식으로 나올 때마다 그 어느 순간보다도 당혹스럽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지우였다. 지금처럼 아픈 상황에서는 자신에게 기대도 될 텐데 가나는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누나 지금 기댈 곳이 필요한 것이 아니야?”
“필요해.”
“그러니까 나에게 기대라고.”
“싫어.”
“왜 싫어?”
“너에게 부담이 되잖아.”
“이게 왜 나에게 부담이 되는 거야? 나에게 그 정도 기댄다고 나 안 죽어. 나 아무렇지도 않다고.‘
“지금 내 눈에는 남지우가 무지하게 아파하는 것이 다 보이거든? 그런데도 지금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야?”
“누나가 그렇게 혼자 이겨내려고 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러는 거야. 나에게 기대면 다 괜찮을 거라고.”
“너보다는 남주율 사장에게 기댈 거야.”
“뭐라고?”
가나의 태연한 대답에 지우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늘 가나는 이런 식이었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금방 자신보다 형에게 가겠다고, 형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었다.
“도대체 나랑 남주율이 다른 것이 뭐야? 왜 나는 그렇게 믿지 못하면서 남주율에게는 그렇게 다 이야기를 하는 거야? 누나 원래 누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다 우리 형에게 이야기를 하잖아. 도대체 남주율이라는 사람이 강가나에게 어떠한 존재이기에 그러는 건데? 나는 이해가 안 가?”
“너 보다 단단한 사람이야. 너 보다 속이 꽉 찬 사람이라고. 그리고 나보다 연상이잖아. 내가 나보다 어린아이한테, 나 지금 속이 아파서 죽을 것 같으니까 좀 지켜봐주세요.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왜 못 그래?”
“어떻게 그러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의 지우와 다르게 가나는 그저 까르르 웃음만 터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우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가자. 내가 데려다 줄게.”
“됐어.”
“이 정도도 못 하게 하는 거야?”
지우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지. 너는 여자를 집에 데려다 주는 것이 얼마나 큰 특혜인지 모르고서 그런 말을 하는 거니?”
“특혜는 무슨 특혜. 지금 몸도 좋지 않으니까 당연히 내가 누나를 데려다주려고 하는 거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야?”
“이상한 생각 안 하겠니?”
가나가 검지로 꾹꾹 지우의 가슴을 누르더니 큭큭거렸다.
“어머, 우리 닥터 남. 운동은 좀 하나 보네. 이렇게 탄탄하고 실한 가슴팍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미쳤나 봐.”
지우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의사 가운을 여몄다. 가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혼자서 갈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하면 택시를 타도 되는 거고 말이야.”
“요즘 택시 위험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데려다 준다니까?”
“왜 이러실까?”
가나는 싱그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장난스럽게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냥 네 마음을 조금 달래려고. 그냥 나 혼자서 갈 수 있다고 보여주는 거랄까?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잖아.”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지금 치료를 받아서 머리도 많이 어지럽고 그럴 텐데.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가자.”
“가면 가온이가 볼 거야.”
“가온이 녀석이 보면 뭐가 어때서?”
“어디로 갔는지도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 놓고서는, 너랑 같이 나타나라고? 가온이 그 정도 눈치는 있는 아이야.”
“그럼 차라리 잘 되었지.”
“너무 앞으로 나가지는 마세요.”
가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지우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지우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진찰실을 나가 버렸다. 바로 쫓아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분명히 가나를 잡고 싶었지만, 지우가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가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보고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이럴 거면 아예 나에게 찾아오지도 말던가. 정말 미치겠네.”
자신이 검사를 하자고 해서 가나가 아픈 것을 알았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끔찍한 지우였다. 가나는 처음부터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했었다. 생리가 제대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 등으로 어쩌면 가나가 아주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우 자신이 지나칠 정도로 가나를 설득을 해서 검사를 받게 했고 난소암이라는 판정을 받게 했다.
“내가 미친놈이지.”
하지만 이렇게 혼자서 넋두리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미 모든 일은 진행이 된 이후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나가 그를 믿고 치료를 꾸준히 받으러 온다는 사실이었다. 그나마도 오지 않는다면 지우는 무너져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강가나 정말 밉다.”
유리창을 토해서 가나가 걸어가는 것을 보는 지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슬며시 미소도 지었다. 이런 상황인 데도 가나는 예의 그 성큼성큼 걷는 걸음 그대로 걷고 있었다. 어쩌면 저렇게 당당한 것인지. 하지만 곧 비틀거리는 가나를 보면서 지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절대로 혼자서 감당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가온이 아니라면 적어도 자신의 형에게라도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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