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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나랑 너 [2화]

권정선재 2012. 1. 29. 07:00

2

젠장.”

하지만 주율에게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서도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주율이 도대체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할지도 전혀 확신이 잡히지 않는 지우였다.

우리 형이랑 제대로 이야기를 한 것도 너무 오랜만인데. 이거 강가나 이야기로 해도 되나 모르겠네.”

지우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나도 머리가 복잡했다. 주율을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런 정리도 되지 않았다. 당장 주율을 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나도 많았다. 그러나 정작 주율을 보면 아무런 이야기도 하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시계를 확인하니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요즘 들어서 주율의 회사에 소속이 된 연예인들이 나름 방송에서 잘 나간다고 하던데 그 이유로 많이 늦는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늦는 것인지 잘 몰랐지만 아마도 늦을 거였다. 주율은 주율 대로 자기 일이 바빴고, 지우는 지우 대로 바빴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아마도 평소랑 그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전화라도 해봐야 하나.”

혹시나 전화를 할까 망설이면서 전화기를 꺼냈던 지우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전화기를 집어넣었다. 그런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형제라고 하더라도 적당히 거리감이 있는 두 사람이었다.

이런 거 이야기를 해준다고 해서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괜한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자신 보다 가나와 더 가까운 사람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이는 분명히 아닐 거였다. 게다가 회사에서도 철저하게 사장과 실장이라는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이었다. 강가온이라는 사람을 가운데 두고서도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두 사람 사이가 더욱 어색해질 지도 몰랐다.

게다가 우리 형이라면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가나 누나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할 것 같지도 않은데. 정말 미치겠네.”

원래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닌 주율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준다고 해도 별다른 일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을 지도 몰랐다. 더더군다나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크게 생각을 안 하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가나의 고집을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주율일 거였다. 그렇다면 가나가 선택을 한 것을 그냥 믿고 그대로 행동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 나랑 남주율 씨 사이는 더욱 어색해질 텐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가나가 혼자서 그렇게 끙끙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보기만 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버겁고 힘이 들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아니라 가나를 우선으로 두고서야 생각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시간을 확인했는데 자정이 넘어서는 시간이었는데도 주율은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우는 한숨을 내쉬면서 엎드렸다.

이런 것도 나 혼자서 처리 못하는 내가 너무나도 싫다.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가나가 아프다는 것을 그래도 먼저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정말로 다행이라고 자위하면서도 지우는 마음이 무너졌다.

정말 괴롭다.”

목을 이리저리 푸는데 문이 열리고 주율이 들어왔다. 지우는 살짝 목을 풀고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 오늘도 늦었네.”

안자고 있었네? 어쩐 일이야?”

그냥 형 얼굴 보려고. 많이 늦었네.”

일이 많잖아. 그런데 내 얼굴은 왜 봐.”

얼굴도 제대로 못 보는 거 알아?”

갑자기 뭐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무슨 생각?”

새벽이 다 되어서, 아니 아침에 가까운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온 자신을 먼저 반기는 것이 지우의 진지한 말이라는 사실에 주율은 살짝 긴장했다. 서울로 온 이후로 지우가 저렇게 진지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오늘 가나 누나 우리 병원에 다녀왔어.”

정기검진?”

.”

별 거 아닌가 보네.”

주율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셔츠 단추를 풀었다. 지우는 그런 주율의 등을 바라보면서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두 사람 한 회사에서 일을 하는 거 맞아?”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별로 안 좋네.”

?”

결과가 안 좋아.”

피로야?”

주율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를 했다. 요즘 들어서 가온 때문에 유난히 피곤한 가나였다. 안 그래도 몸이 약한 것 같아서 많이 걱정이었는데 그것이 검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 모양이었다.

별 거 아니야. 너도 뉴스 보니까 알잖아. 요즘 강가온 그 자식이 사고를 하나 둘 쳐야 뭐 가나가 쉴 틈이 있지. 강가나 요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느라고 간이나 그런 것 별로 수치가 좋지 않을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면?”

암이야.”

셔츠 손목의 단추를 풀던 주율이 천천히 몸을 돌려서 지우를 응시했다. 지금 지우가 하는 이야기를 하나도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주율의 표정에 지우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가나 누나는 형한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아픈 것을 아는 것이 싫다고 말이야. 나도 내가 검사를 하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않았을 거래.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암이래.”

, 암이야. 요즘 뭐 다 낫지 않나? 여자들이 많이 걸린다는. 그거 뭐지? 그래 갑상선. 그거 아니야? 그거 뭐 수술만 하면 되는 거라며. 노래 같은 것은 못 부를 지도 모르지만, 가나가 어디 노래하는 사람이야?”

그런 암이 아니니까 지금 내가 형에게 이야기를 하는 거지? 심각한 일이 아닌데 내가 형에게 이야기를 하겠어?”

심각한 거라고?”

난소암이야.”

난소암?”

주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가나가 난소암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곧 대수롭지 않은 듯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괜찮은 거 아니야? 가나 걔가 원래 몸에 무슨 문제가 있던 애도 아니고 말이야. 이번에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발견이 된 거면, 조기에 발견이 된 거니까 그거 방사선 치료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수술해야 할 정도야.”

수술을 해야 할 정도면 조금 심한 건가?”

많이 심해.”

지우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답했다. 주율이 현실을 믿고 싶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자신은 미칠 것만 같은데 주율은 안 그런 모양이었다.

난소 안에 암이 꽉 들어차있고, 수술을 하기에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야. 본인도 수술을 하고 싶어 하지 않고.”

그러면 전이가 된 거야?”

아직 전이는 되지 않은 것 같아. 일단 화면상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보이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그럼 괜찮은 거네.”

본인이 수술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한 번 배를 열어보면 어떤 상황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 몰라? 누나 배 안이 온통 암으로 덕지덕지 도배가 되어있을 지도 모르는 거라고.”

왜 나에게 말하는 거냐?”

주율은 진지한 눈으로 지우를 응시했다. 평소의 지우라면 이러한 것을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였다. 하지만 유난히 열심히 자신에게 설명하는 지우를 보니 주율 역시 마음이 불편했다.

나에게 뭐 바라는 것이 있는 거야?”

수술을 하게 설들을 해줘.”

내가 어떻게 그래?”

누나가 나보다도 형을 훨씬 더 신뢰한다는 거, 형도 잘 알고 있잖아. 누나. 내 말이라면 듣지 않을 거야. 아니 이미 듣지 않고 있다고. 치료를 그렇게 받으라고 하는데도 모르는 척 하고 있어.”

그럼 그냥 둬. 가나가 뭐 어린아이도 아니고,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관리를 할 텐데 말이야.”

못 하고 있으니까 그러는 거지.”

가나도 다 생각이 있을 거야.”

생각은 무슨 생각!”

지우가 억지로 화를 누르면서 힘을 주어 말을 했다. 주율은 지우를 응시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라고 가나에게 뭘 어떻게 할 수가 있겠어? 가나가 네 말도 하나도 듣지 않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형도 알고 있잖아. 가나 누나가 힘이 들 때는 늘 형에게 먼저 의지를 하고 그런다는 것을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나를 수술을 하라고 설득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야. 그건 너도 잘 알잖아.”

잘 몰라. 그러니까 지금 형에게 이야기를 하는 거지. 내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있다면 형에게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어.”

그럼 계속 이야기를 하지 말지 그랬어? 나도 가나에게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입장의 사람인데 말이야. 나에게 왜 이야기를 한 거야?”

벌써 한 달이 되었어.”

지우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지우의 말에 주율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검사 결과가 나온 건지 한 달이나 지났다는 거야?”

그래. 그 동안 내가 누나를 설득을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었던 거는 누나가 꾸준히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전부였어.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거. 나도 잘 알고 있고, 가나 누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가나 누나는 가온이 녀석에게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안 받으려고 하는 거라고. 치료도 가장 낮은 단계의 것만 받고 있어. 몸이 조금이라도 못 견뎌서 티가 나면 강가온 그 자식이 다 알아차릴 거라고 말이야.”

대단한 누나네. 그런 강가나를 지금 나보고 설득을 하라고 하는 거야? 나도 그런 재주는 없다고.”

형 밖에 없어.”

남지우. 네가 나에 대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가나랑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가나도 자기 일에 대해서 한 마디도 나에게 의논을 하지 않는다고. 네가 벌써 한 달 전에 알고 있던 그 사실을 나는 이제야 네가 겨우 말을 해줘서 알게 된 거야.”

씨발. 그럼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지우는 가만히 주율의 눈을 응시했다. 주율은 앞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지우의 시선을 피했다. 지우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나도 지금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 아예 내가 누나가 아픈 것을 몰랐다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이미 알게 되었으니까. 이미 누나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니까.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 그러니까 형이 제발 누나 좀 설득을 해줘. 수술은 받아야지.”

강가나가 고집이 얼마나 센 줄 너도 알고 있잖아. 한 번 강가나가 안 한다고 이야기를 한 것은 절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야.”

그럼 가온이 녀석에게 이야기를 할까?”

절대로 안 돼.”

왜 안 돼?”

단호하게 고개를 흔드는 주율을 지우는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결국 주율도 가나와 같은 마음인 모양이었다.

형은 지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말이야. 누나 지금 정말 상태가 최악이라고. 지금 바로 숨을 다 한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란 말이야. 그런데도 수술을 안 시킨다고?”

.”

도대체 왜?”

그게 가나의 선택이니까.”

잘못된 선택이잖아.”

그럼 네가 말려야지.”

내가 못 말리니까 하는 말이잖아.”

내가 의사야?”

.”

나는 의사도 아무 것도 아니야. 가나랑 나랑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그런데 내가 가나에게 뭘 어떻게 할 수가 있다고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그 말을 지금 나를 보고 믿으라는 거야?”

지우는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나가 얼마나 자신의 형인 주율에게 의지를 하는지 그 누구보다도 지우가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실로 인해서 아픈 것도 지우 자신이었으니까.

내가 지금 너에게 거짓말을 해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할 거라는 거야? 나도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가나를 묵묵히 보는 것뿐이야. 나는 너 이상으로 강가나라는 사람을 믿고 있으니까 말이야. 가나는 혼자서 알아서 잘 할 거야.”

지금 잘 못하고 있으니까 형에게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지금 강가나가 하는 행동이 바보 같은 일이니까.”

그럼 네가 가온이에게 말을 해.”

뭐라고?”

그럼 되는 거 아니야?”

형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금 가나가 수술을 받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가 강가온이라며? 그러면 그 녀석에게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보고 하라고?”

지금 네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잖아.”

지금 장난하는 거야?”

나는 말 하고 싶지 않아.”

주율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면서 지우를 응시했다. 지우는 코웃음을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율의 앞에 섰다.

형은 늘 그런 식이야.”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 거야?”

내가 뭐 하나 형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해도, 형은 나에게 제대로 도움을 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이런 일로 처음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네가 문제가 아닌가? 나는 너를 도울 수가 없는데 말이야.”

이런 일이 아니면 내가 형에게 뭔가를 부탁을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안 그래?”

그럼 부탁하지 마.”

정말 그런 식으로 나올 거야?”

나도 어쩔 수가 없다고. 나도 강가나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되게 무책임한 것 알아?”

내가?”

주율이 자신을 가리키면서 코웃음을 쳤다. 한 번도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주율이었다.

지금 네가 부탁을 하는 일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좀 그런 것 같은데.”

지금 내가 형에게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형도 잘 알고 있잖아. 지금 유일하게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형이잖아.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렇게 모르는 척을 하려는 거야?”

내가 해결을 할 수가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러는 거야. 지금 지우 네가 그것이 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그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있는 일이 아니거든. 나도 강가나가 한 번 결심을 한 것을 다시 돌리지 못한다고.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좋아. 그럼 나 강가온에게 이야기를 할 거야.”

이야기 해.”

정말로 이야기 하라고?”

그래.”

주율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더니 벽을 주먹으로 쳤다.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하지만 주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우는 늦은 시간임에도 비명을 크게 질렀다.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혼자 숨을 거야? 그렇게 아무 것도 없는 척. 아무 일도 아닌 척 행동을 할 거냐고!”

주율은 여전히 조용했다. 지우는 고개를 한 번 흔들고는 외투를 챙겨서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왜 그렇게 봐?”

?”

나 뚫어지겠네.”

사무실로 들어서던 가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주율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가나를 응시했다.

이야기 좀 하지.”

이야기. 설마. 남지우?”

알고 있는 거야?”

미치겠네.”

가나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지우가 주율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했던 것이 단순히 협박인 줄만 알았는데, 정말로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가나는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뭘 어떻게 하려는 거야?”

내가 뭘 어떻게 해?”

수술 받자.”

수술을 받으면 뭐가 달라져? 선배도 다 알고 있으면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라니? 평소에는 지우에게 그렇게 차갑게 대하면서도 이런 일에서는 또 지우 편을 들어주는 거야?”

그런 것이 아니잖아. 지금 네가 네 몸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니까. 네 몸부터 챙기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내 몸은 이미 충분히 챙기고 있어. 병원에 가서 이미 치료도 받고 있다고. 그것은 남지우가 이야기를 안 해?”

이야기 했어.”

그런데 왜 그래?”

그렇게 치료를 받는 것으로는 뭐 하나 달라질 것이 없다며? 수술을 받아야 뭐라도 희망이 보이는 것 아니야?”

희망은 그냥 알아서 가지는 거야.”

가나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를 뿜어대는 가나를 보면서 주율은 한숨을 토해냈지만, 딱히 가나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죽어버리려고 하는 거야?”

내가 그냥 이렇게 죽으려고 하는 거면 치료를 받겠어?”

그렇게 치료를 받을 거면 수술을 받지.”

그럼 우리 가온이가 알게 되잖아요.”

그냥 알게 되면 뭐가 어때서?”

그 아이 힘든 일도 많아.”

그 여자?”

.”

젠장.”

선배도 담배 필래?”

나는 됐어.”

가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짧아진 꽁초를 비벼서 끈 후,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가온이가 처음으로 뭐 하나에 열정을 가진 거니까. 나는 가온이가 하는 행동을 그냥 믿어주고 싶어.”

그러기에는 지금 네가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크니까 그러지. 내가 뭐 잘못 말하는 것은 아니잖아.”

알아. 지금 선배가 도대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래도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걸. 선배가 뭘 어떻게 하려고? 이미 나 이렇게 하기로 결정을 했으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요.”

그래서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러면 강가온 그 자식이 좋아라 할 것 같아? 너는 그래?”

안 좋아하겠지.”

그런데도 왜 그러는 거야? 일단. 네가 하던 일 다른 매니저 하나 더 붙일 테니까, 조금 나눠주도록 해.”

싫어.”

가나는 갑자기 흔들리는 눈동자로 주율을 응시하면서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주율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강가온 그 망할 자식을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 지는 잘 알고 있지만 말이야. 그래도 지금 네 몸 상태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하면서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데 말이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그리고 나만큼이나 우리 가온이 신경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도대체 누가 있다는 거야? 선배도 우리 가온이가 계속 잘되기만 하니까 싫어하고 막 그러잖아.”

내가 그런다고?”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주율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차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한강이 꽤나 빠르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강가나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우리 형제 두 사람 사이에 네가 있는 것만 해도 우리 너무나도 힘이 들어. 그런데 네가 우리에게 이렇게 아픈 일을 주면, 도대체 우리는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우리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거니?”

그냥 가만히 봐줘요.”

우리가 어떻게 그래? 강가나 네가 이미 아픈 것을 알아버렸는데. 몰랐다면 내가 뭘 어떻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어쩔 수가 없잖아.”

이미 늦은 것을 이야기를 해서 뭘 그래.”

가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가 나에게 딱히 할 이야기가 없으면 나는 나가서 가온이 일을 보러 나갈게요. 가온이 그 녀석이 기자회견을 한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이것저것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니까.”

너는 정말로 괜찮을 것 같아?”

뭐가?”

그렇게 가온이 녀석만 신경을 쓴다고 하더라도 가온이가 네가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가지지 않을 거라고. 가온이는 그냥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그런 거 상관이 없어.”

왜 상관이 없어.”

처음부터 내가 가온이에게 뭘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니까. 선배는 지우에게 뭘 해줄 때 다시 돌아올 것을 바라고 하는 거야?”

너 정도는 아니야.”

가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 사람들 모두 그녀에게 지나치게 극성이라고 했으니까.

선배는 나랑 가온이의 특별한 상황을 알고 있잖아.”

알지.”

그러면서 뭘 그래.”

하지만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두 사람이 되게 이상해 보이는 것 알아? 근친상간 같아 보이기도 한다고.”

내가?”

가나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차가운 표정으로 가만히 주율을 응시했다.

그런 이야기 절대로 가온이에게 하지 마.”

하라 그래도 안 해.”

그런데 나에게는 왜 하는 거야?”

너는 그나마 말이 통할 것 같으니까.”

나도 같아.”

대해보니까 그러네.”

그런데 왜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러네. 나도 참 바보 같네.”

주율은 가만히 유리창에 머리를 기댔다. 서늘한 느낌이 조금이나마 복잡한 머리를 편하게 해주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강가온 그 망할 자식이 네 몸 상태를 알고 나면 나에게 별 지랄을 다 할 거라고. 그건 너도 알지.”

알아.”

그런데 그 망할 자식이 지랄을 하는 것을 나 혼자서 다 감당을 하라는 거야?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해?”

말이 안 될 것은 또 뭐야?”

강가나.”

선배밖에 없잖아. 내가 뭐 가온이 말고 알고 지내는 사람이 또 있다고 그러니? 나 선배랑 지우 두 사람 뿐이거든요. 그런데 두 사람이 이렇게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몬다면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나쁜 사람이 맞으니까 그러는 거지.”

주율은 천천히 몸을 돌려서 가나를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서 가나가 많이 마른 느낌이었다.

밥은 잘 먹고 있는 거야?”

닭살 돋게 뭐 하는 거야?”

요즘 좀 마른 것 같아서 그래.”

요즘 여자 다들 다이어트를 하느라고 난리인데. 나는 자연스럽게 살이 빠지나 보네. 다행이다.”

그걸 지금 다행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럼 이것을 또 뭐라고 말을 할 방법이 있는 거야?”

지우 그 자식이 말을 하는 것이 바로 그거였군,”

주율은 혀를 차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가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문 옆에 섰다.

사장님이 어떤 선택을 내리건, 그건 사장님이 가장 좋은 방향이라고 선택을 한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럴 거야.”

하지만 사장님의 그 선택으로 인해서 내가 다시는 사장님을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요.”

지금 되게 잔인한 거 알아?”

내가 가진 유일한 방법이니까.”

이해가 안 간다.”

주율은 차가운 시선으로 가나를 응시했다.

세상에 어느 미친 사람이 자신 보다 자기 동생을 우선으로 생각을 하느냐고? 그것도 동생이 아픈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프면서도 말이야. 지금 강가온을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닌 거 몰라?”

알아.”

그런데 왜 그러니?”

그래도 어쩔 수가 없잖아. 내 마음이 가온이는 절대로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말이야.”

너를 아끼는 사람들은 아파도 되고?”

.”

정말 나쁘다. 강가나는 마녀네.”:

고맙네. 그 이야기. 그럼 나는 가볼게요.”

나가.”

밖으로 나가는 가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주율은 한숨을 내쉬었다. 잡아야 했지만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지우가 자신을 믿는 것은 알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무력하게 느껴지는 주율이었다.

 

 

 

[그녀가 돌아왔다. 1] [그녀가 돌아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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