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미친 왕자님
“니 어데 갔다 오는 기고?”
“뭐가?”
“아니 물건 놓고 왔다는 놈이 아무 것도 들고 오지 않고 그냥 이대로 온 것이 너무 이상해서 안 그카나? 도대체 뭐꼬?”
“치아라. 마.”
복규는 무덤덤하게 작업을 계속했다. 득수는 연신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복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임마 뭐 있는데?”
“있으면 햄이 뭐 어쩔기고?”
“아이지. 니가 뭔 일이 있으면 내가 다 해결해야 하는 기 아이가? 아무리 그래도 내가 햄 아이가. 햄.”
“됐다. 일이나 해라. 사람 하나 없다고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어디서 햄 노릇을 하려고 하는 기고?”
“뭐라카노?”
“얼른 일이나 해라. 일이나.”
득수는 입을 쭉 내밀고 복규를 바라봤다.
“그 남자 도대체 뭐야?”
한나는 머리를 감고 나오다 다시 짜증이 확 솟구쳤다. 아니 자신을 기다려주기로 했으면 그냥 기다리지 간 이유가 뭔지 그것도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그냥 가면 갔지 다시 올 것은 또 뭐람?
“설마 나 좋아하나?”
한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경표가 아닌 다른 남자는 그녀의 짝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그래. 김한나. 정신 차리자. 정신.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놈팽이에게 엮여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어.”
경표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경표가 지금 당장은 귀찮아하고 그러기는 하지만 결국 그녀를 다시 받아줄 것이 분명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두 사람 사이는 너무나도 좋은 사이였다.
“고경표. 정말 마음에 안 들어.”
경표의 번호를 누르던 한나가 손을 내렸다.
“그래. 나도 여자야. 자존심이 있다고. 네가 먼저 연락을 하기 전에 내가 절대로 먼저 연락 안 한다.”
한나는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를 욕하는 기사가 포털 사이트 메인에 그대로 남겨져 있는 것이 더 짜증을 더했다.
“아니 다들 왜 이렇게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야? 내가 자기들에게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거라고.”
한나는 냉장고로 향해서 소주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비장한 각오로 뚜껑을 따서 들이켜고 시작했다.
“니 무슨 일이고?”
“아무 일도 없다.”
“와 아무 일이 없노?”
“뭐가? 뭐가 있어야 하는데?”
“아니. 네가 그렇게 그냥 가뿌렸는데 안 궁금하나? 무슨 일인지 내한테도 말을 못 하는 기가?”
“됐다. 치아라.”
“와?”
복규는 사나운 눈으로 득수를 노려봤다.
“햄한테 이야기하며 고마 울 엄마 귀에 다 들어가는데 내가 햄한테 순순히 다 불 거라고 생각하는 기가?”
“그기야 다 너를 걱정해서 내가 그러는 거 아이가? 너한테 안 좋은 일인데 내가 그럴까? 안 그러나?”
“그러니 됐다는 기다. 햄이 들으면 분명히 또 온갖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면서 지낄일 기라. 내는 그런 거 하나도 듣고 싶지가 않다.”
“이런 빙신.”
득수는 복규의 머리를 검지로 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 세상 사는데는 다 이렇게 햄처럼 나이가 있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기다. 그런데 너 혼자서 뭘 할 수 있다고?”
“나 혼자 다 알아서 하니 닥치세요.”
복규는 득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정면에서 웬 형체가 나타나자 그대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뭐꼬? 친기가?”
“아이다.”
“그럼 뭔데?”
“좀 조용히 해봐라.”
복규는 짜증을 내리며 차에서 내렸다.
“저기요.”
“흐음. 아파.”
“저기요?”
헤드라이트 앞에 얌전히 누워있는 게 누군지 확인한 복규는 미간을 모았다. 아까 그 말도 안 되는 여자였다.
“사람 아이가?”
“그러네.”
“이기 누꼬? 근데?”
득수는 발끝으로 여자를 툭툭 차며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동네에 이런 처자는 하나도 없는데. 누구 친척이나. 뭐 그런 사람이 아인가? 이런 사람 니 아나?”
“친척 아일기다.”
“응?”
“일단 실어라.”
“뭐라꼬?”
“그럼 길바닥에 이리 철푸덕 있게 그냥 둘 기가?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우리 앞에 있는 거니 그냥 치워야지. 얼른 들어라.”
득수는 복규의 말을 듣고 여자의 발을 잡았다. 복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트럭 뒤에 여자를 실었다.
“미친 가시내. 말만한 가시내가 어디 술쳐먹고 아무 데서나 자빠지 자는 기가? 이런 미친 가시나가.”
“경찰이라도 불러야 하는 기 아이가?”
“사람이라도 죽었나?”
“와?”
“누군지는 몰라도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무지하게 쪽팔릴 기다. 그리고 지가 알아서 갈 테니 그냥 데불꼬 가면 된다. 그리고 햄. 나는 오늘 햄 방에서 좀 자야겠다. 저 말만한 미친 가시나가 있으니.”
“뭐. 마음대로 해라.”
복규는 한숨을 토해내며 시동을 걸었다. 도대체 저 여자랑 무슨 인연으로 자꾸만 엮이는 건지 내키지 않았다.
“아 머리야.”
한나는 머리를 매만지며 자리에 앉았다. 머리가 핑핑 도는 것이 전 날 마셔도 너무 많이 마신 모양이었다.
“미친 년.”
손을 더듬는데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눈을 떠는데 살짝 낯선 풍경이 보였다. 잘못 본 것인가 고개를 흔들던 한나의 얼굴이 굳었다.
“여기가 지금 어디야?”
“일어났습니까?”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상체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사내가 나타났다. 사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나를 응시했다.
“뭐 합니까? 안 일어나고?”
“나한테 무슨 짓 한 거야?”
“뭐라고요?”
“너 나 덮쳤지?”
한나는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렸다.
“너 나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친 건가?”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모았다.
“아무리 술이 떡이 되게 마셨다고 하지만 관계가 있었던 건지 없었던 건지 그런 것도 모를 정도로 많이 마신 겁니까? 그쪽. 나 지금 기억이 안 나요? 어제 편의점에 가는 차에 올라 탔던 거?”
“아.”
“아?”
사내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제 길 한 복판에 술취해서 누워있기에 내가 데리고 왔습니다. 이 동네 가로등도 없어서 깔려죽기 딱 좋거든요? 그리고 나는 자기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여자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니 헛꿈은 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쪽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얼른 나와요.”
“어디를요?”
“밥 먹어야죠. 밥.”
한나는 아랫입술을 물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얼른 들어요.”
“혼자 살아요?”
“왜요?”
“아니.”
“혼자 삽니다. 혼자.”
한나는 숟가락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즉석 북엇국을 뜯어서 한나의 국그릇에 부었다. 한나는 국물을 살짝 맛보고 주위를 둘러봤다. 꽤나 깨끗한 집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사내의 복근이 눈에 들어왔다.
“고맙습니다.”
“이제 정신 좀 듭니까?”
“그게.”
“무슨 여자가 그렇게 생각도 없이 사는 겁니까? 무슨 여자가 술을 또 그렇게 마시고. 위험한 거 모릅니까?”
“고맙지만. 이건 아니죠.”
“네?”
“설교라도 하자는 거예요?”
한나는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 그렇게 안하무인인 겁니까?”
“뭐라고요?”
“밥 먹고 가세요.”
“아니 저기.”
“나 바쁜 사람입니다. 그냥 닫으면 닫히니까 알아서 가면 됩니다. 그리고 뭐 훔쳐갈 생각 하지 말고요.”
“아니 그러니까.”
사내는 그대로 티셔츠 하나를 들고 나가버렸다. 한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 식사를 마쳤다.
“도대체 뭐야?”
시골 촌놈이면서 조금 몸이 좋다고 생각을 했는데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녀와 두 번이나 마주쳤다고 생각을 하니 아무리 그래도 보통 인연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지?”
“그 여자 갔나?”
“아직 있다.”
“좋았나?”
“뭐라카노?”
복규는 득수를 사납게 노려봤다.
“햄은 할 말이 그리 없나?”
“와 또 그카는 기가?”
“오늘 택배 가기로 했제. 그거 준비는 잘 했나?”
“하고 있다.”
“아직도 하고 있으면 우야노?”
득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는 복규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뭐 그리 열심히 일하노? 어차피 니가 안 해도 사람들 사가 하면 될 일을 가지고. 와 그라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돈 아이가? 그리고 내가 있는데 사람을 왜 쓰노? 햄이야 말로 쓸데 없는 소리 말고 일해라. 일.”
“알았다. 일 한다. 일.”
“안녕하세요. 김한나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래. 어서와요.”
사무실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한나 입장에서도 이대로 그냥 숙이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기는 일이 없다고요?”
“무슨 일이 있겠어요?”
작가 별나의 반문에 한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이 없다는 일을 이리 당당히 말할 줄은 몰랐다.
“그럼 일을 만들면 되죠?”
“만들어서요?”
“네?”
“누가 방송이나 해준대요?”
“그게 무슨?”
“지방 방송 없어졌어요.”
별나는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녹화나 할까? 서울에서 네트워크라고 하는 그런 거 제외하고는 할 거 하나도 없다고요. 여기에 오시면서 그런 생각 하나도 못 한 거예요? 어디 지금 여행이라도 온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니.”
한나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아무리 지방에 발령이 났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한직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여기 지방 뉴스도 없어요?”
“뉴스가 있어야죠.”
“네?”
“아무 것도 없다고요.”
별나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려 열심히 쇼핑을 시작했다. 한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국장님 여기 일이 없어요. 일이 없다고요.”
‘그래. 그래서 한나 씨 좀 쉬라고 보낸 거야.’
“국장님!”
‘나 귀 안 먹었어.’
한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여기에 있으면 그냥 여기 수준에 맞게 된다고요. 제가 잘못한 거 아니까. 저 다시 서울로 돌아갈게요. 네?”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인 줄 알아? 거기도 그나마 나은 거야. 한나 씨 사표 받으라고 난리였다고.’
“차라리 사표를 내면 냈지. 여기에서는 못 있는다고요. 여기 동네에 슈퍼도 하나 제대로 없단 말이에요.”
‘그럼 그만 두던가.’
“네?”
‘그럼 그만 두라고.’
국장의 차가운 말에 한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국장의 한숨이 귓가에 들리자 더욱 당혹스러운 기분이 드는 한나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국장이라면 자신의 편일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김한나. 지금 내가 자네 말을 들어주는 것이 뭐 기분 좋아서 그러는 건 줄 알아? 나도 지금 미치기 일보 직전이라고. 그래도 한나 네가 일을 좀 해준 게 있어서 그나마로 봐주는 거야. 너는 지금 네가 뭐 대단한 아나운서라도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여기에 너 대신 할 사람 많아.’
“국장님.”
‘그럼 그만 두던가!’
국장의 엄포에 한나는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국장님이 그만 두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는 것은 다소 심각한 일이라는 이야기였다. 당혹스러운 기분이 자꾸만 온 몸을 감쌌다.
“제가 언제 그만 둔다고 했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게 너무 심하다. 뭐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거죠.”
‘김한나. 너야 말로 지금 심한 거 아니야? 도대체 내가 언제까지 너를 봐주고 있어야 하는 건데? 응?’
“네?”
‘더 이상 어리광 부리지 마.’
전화는 그대로 끊어졌다.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자기를 지켜줘야만 할 것 같은 사람이 이렇게 자신을 버릴 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사고를 쳤다고 하더라도 부하직원에게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정말 쪼잔한 거 아니야?”
전화기를 던지고 한나는 허공을 향해 발을 마구 찼다.
“정말 싫다. 진짜 싫다!”
“일이 없다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만들어야지.”
“왜요?”
한나의 말에 별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이 없이 그냥 여기에 있으면 되는 거라고요. 굳이 왜 일을 자꾸 만들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니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에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우리를 신경을 써라. 그런 거 해야 하는 거잖아.”
“아무리 그런 걸 해봐도 사람들은 봐주지 않는다고요. 아직 여기 오신지 얼마 안 돼서 모르시는 것 같아요.”
“아니.”
“그만 둬.”
문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김한나 씨가 지금 우리 방송국에 와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말이야. 여기는 말 그대로 백업인 곳이야. 이제 여기도 사라지기 일보직전이고. 여기에서 충성을 해봐야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여기에서 뭐라도 해야 하는 거죠. 그냥 여기에 있다가 끝이 나면 되는 거라고요?”
“그래.”
한나는 이마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안 돼요.”
“왜?”
“이대로 끝이 나면 안 되는 거죠.”
“왜 안 되는 건데요?”
“어?”
“언니 지금 이상한 꿈 꾸는 거 아니죠?”
“이상한 꿈?”
별나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언니가 여기에서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절대로 다시 서울로 불러갈 수 없어요. 그건 언니가 더 잘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여기에서 서울로 가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고요.”
“하지만.”
“언니는 본 적이 있어요?”
“그건.”
한나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지금 들은 말이 사실이었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서울로 다시 돌아간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냥 끝이라는 거였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고요. 여기에 있다가 그냥 월급이나 받고 그러면 되는 거라고요. 괜히 이상한 일을 하다가 망하면 그건 도대체 누가 책임을 질 수가 있는 건데요? 책임을 질 사람이 있기는 한 건가요?”
“그건.”
한나는 할 말이 없었다. 무슨 일을 벌일 적에 그것을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문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결국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내가 할게요. 이 말을 해야만 했지만 그런 말도 쉬이 나올 수가 없는 말이었다.
“할 자신 없지?”
“죄송합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지금 바보로 보이지?”
문대의 물음에 한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전부 다 자기 나름대로 뭔가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야. 다만 아직 기회가 없는 거라고. 이런 사람들이 지금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고 혼자서 잘난 척 행동을 하는 것이 기분 좋은 건가?”
“아니요.”
“우리도 뭔가 하고 싶다고요.”
별나는 입을 내밀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래도 다행이에요. 언니가 왔다고 곧 서울하고 네트워크 연결을 하기로 했으니까. 그걸 잘 하면 되는 거죠.”
“네트워크?”
“그거 있잖아요. 농촌 보여주는 거.”
“말도 안 돼.”
일바지를 입은 한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40도 열기에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이야기였다.
“이걸 정말 해야 해요?”
“일하고 싶다며?”
“하지만.”
문대의 무심한 대답에 한나는 입을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더운 날씨에 여기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아니죠. 이건 정말 죽으라는 거잖아요.”
“누가 죽으라고 했어? 한나 씨가 일을 하기 싫으면 일을 안 하면 되는 거예요. 괜히 자기 혼자서 일을 한다고 난리를 친 거면서? 그리고 여기에 오면 당연히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거 알고 있었던 거 아니야?”
“하지만 이건 아니죠.”
한나는 연신 수건으로 땀을 찍어냈다. 공들인 메이크업이 지워지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다른 일은 없어요?”
“여기 성주야.”
“그런데요?”
“이거 말고 뭐 다른 일이 있어?”
“하지만.”
“저 사람들 뭐고?”
“니 모르나?”
“뭔데?”
“요늘 방송 있다 아이가?”
“방송?”
복규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런 아들 와봐야 일만 망치고 도움 하나도 안 되는 거 모리나? 당장 다 치워라. 저런 가시나 일도 하나 몬한다.”
“이것도 이모부가 이장이라서 겨우 가지고 온 거거든. 다른 사람들도 다 하고 싶어서 안달인 일이다.”
“그럼 다른 사람들 하라케라.”
“오복규!”
“와?”
복규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햄은 저 여자 기억이 안 나는 기가? 그 술쳐먹고 길 한 복판에 자빠져 있던 미친 가시나가 바로 저 가시나다.”
“아. 그러나?”
득수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도 인연이네.”
“뭐라카노?”
“잘 해봐라.”
“뭘 잘 해?”
“그래도 저 아가씨가 여기에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이 되게 기특하지 않나? 서울에서 그 난리가 있었는데.”
“난리?”
“아. 니는 티비를 안 보재?”
“와? 저 가시나 유명하나?”
“서울 아나운서다.”
“서울?”
복규는 미간을 모으며 턱을 만졌다.
“서울 아나운서가 여까지 와서 도대체 뭐 하는 기고? 서울 사람이면 서울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가?”
“사고쳤을 걸?”
“사고?”
복규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믄 그렇제.”
“와?”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보이니 그러는 거 아이가? 나랑 그렇게 부딪치는 것을 보면 뻔한 거 아이겠나? 도대체 얼마나 큰 사고를 치면 여기까지 쫓겨 올 수가 있겠노?”
“아무리 그래도 조금 불쌍하게 생각을 해도 되지 않겠나? 자기도 여기 오는 거 하나도 안 좋았을 기다.”
“여기가 뭐?”
“촌이잖아.”
“촌?”
득수는 사나워진 복규의 표정에 딴청을 피웠다. 다른 사람보다도 촌이라는 말에 유난히 난감하게 반응을 하는 복규였다.
“햄은 지금 여기가 촌으로 보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다. 나는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햄은 그런 자부심이 하나도 없는 기가? 그런 거면 도대체 여기에서 왜 사는 긴데? 자부심이 있어야 여기서 사는 것 아이가?”
“누가 뭐라켔나?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한 기지. 내가 잘못했다. 하여간 내가 너를 괜히 건드려서.”
“아무튼 내는 안 할란다.”
“와?”
“저 가시나랑 엮이는 거 싫다.”
“그럼 내가 해야 하나?”
“뭐라고?”
“니가 안 하모 내가 해야지.”
득수의 말에 복규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여자가 싫기는 했지만 득수가 일하는 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복규였다.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내가 왜 일을 제대로 몬 하노? 내가 너보다 일을 한참 더 잘 하는 사람인데. 네가 그렇게 이야기룰 하면 내가 막 서운할라한다.”
“치아라.”
복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할끼다.”
“참말이가?”
“그래. 참말이다.”
“여기는 오늘 같이 촬영하기로 한 오복규 씨.”
“안녕하세요. 김한나입니다.”
손을 내밀던 한나의 얼굴이 굳었다. 단단히 굳은 복규의 표정에 한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내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복규의 사나운 표정에 한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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