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퍼펙트우먼[완]

[로맨스 소설] 퍼펙트 우먼 [1장. 김한나 인생 추락]

권정선재 2014. 6. 30. 07:00

1. 김한나 인생 추락

자기는 언제 반지 받나?”

?”

이거 안 보여?”

한나는 진선이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을 내밀자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다. 꽤나 커다란 다이아가 박힌 손은 아닌 게 아니라 꽤나 부러운 것이기도 했다.

자기 좋겠다. 벌써 남자가 청혼을 한 거야? 이번 남자 그렇게 오래 만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진선은 볼을 살짝 부풀리더니 가볍게 한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자기는 뭐니?”

?”

자기 애인은 결혼하자는 소리 안 해?”

. 그거.”

한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늘 결혼하자는 소리를 듣고 있지.”

그런데 왜 안 해?”

나 이제 겨우 스물아홉이야. 그런데 내가 무슨 결혼을 해. 그리고 이 바닥에서 결혼한 사람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자기가 더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다. 결혼하는 순간 그냥 일자리 바로 끝이에요.”

하긴. 리포터가 그렇지.”

리포터가 아니라 아나운서.”

그게 그거지.”

진선은 거울을 보며 가볍게 얼굴을 매만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드는 여자였다. 한물 제대로 간 여배우이면서 여전히 고고한 척 행동을 하는. 결국 자신도 리포터면서도 한나와는 구별을 두는 중이었다.

자기도 빨리 시집을 갈 생각을 해야 한다. 여자 나이는 말이야. 그냥 훅 가는 거야. 그냥 훅. 그리고 리포터가 뭐 서른 되고 마흔 되고 그냥 하는 일도 아니고. 이제 자기는 얼마 안 남았을 걸?”

나는 여기 정규직이라서.”

그건 모르는 거다.”

 

김한나 아나운서 오늘 다녀오신 곳은 어디죠?”

오늘 다녀온 곳은 경북 성주입니다. 맛 좋은 참외가 나는 물 좋은 고장 성주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졌는지 확인하시죠.”

영상이 켜지고 한나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초라하고 나이가 들어가는 여자 하나가 어색한 미소를 짓는 중이었다.

자기 왜 그래?”

?”

너무 늙기는 했지?”

?”

진선의 자극에 한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니고 그냥 조금 피곤해보여서요. 요즘 일이 많아서 조금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거든요. 그런 것 말고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자기 이제 한 물 간 것 같다.”

뭐라고요?”

왜 화를 내고 그래?”

진행자들도 두 사람을 바라봤다. 한나는 애써 입을 꾹 다물었다. 일단 더 이상 동요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제 시집도 못 가고 어쩌니?”

이봐요.”

?”

다 늙어서 남자에게 팔려가는 것이 그렇게 좋아요? 여자가 자존심도 없이 그렇게 남의 돈 받아먹고 사는 게 행복하냐고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 남자 재혼이라면서요?”

진선의 얼굴이 구겨지더니 그대로 한나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다. 화면이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오고 생난리는 전국을 통해서 방송되었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검색어 상위권에 두 사람의 이름은 나란히 올라있었다.

 

김한나 뭐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나 참.”

아나운서 국장은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도대체 거기에서 그런 식으로 싸우면 어떻게 하냐고? 지금 시청자들이 얼마나 항의 전화를 하는 줄 알아?”

죄송합니다.”

너 하나 죄송하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국장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리포터는 그만 둬.”

국장님.”

뭐가 국장님이야? 지금 이 상황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다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 시청자들이 얼마나 지금 난리를 치고 있는 줄 알아? 그리고 억울해하지 말라고 저쪽도 결혼 문제로 하차니까.”

하지만 이건 그 여자가.”

그만.”

한나가 변명하려고 하자 국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막을 수 있는 선도 아니라니까? 내가 너를 그냥 버리고 싶겠어? 아니지. 그런데 위에서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냐? 위에서. 그냥 이대로 접어. 그게 너를 위해서도. 그리고 아나운서 국을 위해서도 좋은 거야.”

정말 죄송합니다.”

한나는 깊이 허리를 숙이고 국장실을 나섰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김한나.”

거울을 보고 몇 번이나 자책을 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늘 자신을 자극하는 진선이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냥 참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왜 참지 못하고 그렇게 지르는 것인지 자신이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었다.

그래. 참자. 참아.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는데 왜 그걸 못 참아서 그 난리를 피우는 거냐고. 그래 참자. 무조건 참아.”

여기에서도 밀려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 정도는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밀려날 수 없었다. 아니 밀려나면 안 되는 거였따. 여기에서 더 밀려난다면? 정말로 자신은 퇴물이 되는 거였다.

김한나. 참자. 참아.”

 

자기 어떻게 하니?”

송아는 걱정을 하는 듯 반은 놀리는 어조로 물었다.

정말 큰일이 난 거라며?”

큰일이랄 거 있어요? 국장님도 그냥 이렇게 잘 수습을 하면 된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그거 듣고 왔어요.”

잘 수습을 해?”

.”

한나의 대답에 송아는 살짝 미간을 모았다.

그게 어떻게 대충 잘 수습이 될 수가 있는 걸까? 인터넷에서 난리가 난 거 자기는 전혀 못 봤니? 아주 난리가 났어. 너 이제 큰일이다. 큰일. 김한나 이제 프리도 못하고 어떻게 하니?”

어차피 프리할 생각은 전혀 없어서요.”

어머, 그래.”

저 라디오.”

아 못 들었니?”

자리에서 일어난 한나를 보며 송아는 씩 웃었다.

자기 그거 잘렸어.”

?”

그거 이제 내가 들어가.”

무슨?”

아 몰랐구나. 오늘 아침에 갑자기 결정이 난 거야. 이제 자기에게 일을 못 맡기겠다고 해서 말이야.”

한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처음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 5년 동안 진행하던 라디오였다. 청취율도 나쁘지 않고 앞으로 계속 할 라디오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그럼 오늘만 특별히.”

아니.”

송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기가 그걸 어떻게 해?”

?”

그거 우리 두웨이 메인이잖아. 두웨이 라디오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자기에게 그 일을 맡기고 그러니? 이제 내가 하기로 했어. 자기는 뭐. 이제 그냥 자리나 지키고 있으면 되는 거지. . 안 그래?”

송아의 목소리가 되게 끈적거리고 불쾌하게 들렸다. 한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송아는 직속 선배였다. 그녀와까지 부딪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래도 참 수습이 잘 된 거야.”

.”

프로는 안 날아가잖아.”

 

그래도 너 그 정도면 다행 아니야?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도 생각을 하고 있었어야 하는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하수의 말에 한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렇게 한 순간 무너지는 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냐? 이건 아니지.”

어차피 너 별로 중요한 아나운서도 아니잖아.”

은하수!”

?”

너는 친구가.”

위로다. 위로.”

하수는 한나의 잔에 술을 따르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잠시 쉬었다가 가는 거라고 생각을 해. 그냥 앞으로 달려만 가는 사람은 더 큰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거 알고 있잖아. 적당히 쉬고. 그러다 보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여기에서 그냥 고꾸라지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안 그래?”

너무 우울하게 생각하지 마라.”

상황이 우울한데 어떻게 안 우울하게 생각하니?”

너 그거 다 네 마음에 있는 거야. 네가 그렇게 심각하게만 생각을 하지 않으면 괜찮은 거라니까?”

됐다. 됐어.”

한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도 억울한 일이었다.

아니 자기는 가진 것 다 가졌으면서 도대체 왜 다들 나를 이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는 거니?”

네가 너무 예쁘니까 그런 거지. 그냥 좋게 생각을 해. 그리고 이번 문제로 오히려 일도 줄고 다행 아니야? 평소에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잡무가 되게 많다고 투덜거리던 것이 너였잖아. 아니야?”

그건 그렇지.”

하수의 물음에 한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말도 따로 없이 일을 하는 것이 바쁘기는 했었다. 그다지 좋은 이유로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쉬게 된다는 것이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남들은 쉬고 싶어도 못 쉬잖아. 그런데 너는 실직한 것도 아닌데 쉴 수 있게 된 거니 좋은 거 아닌가?”

이게 좋은 건지 모르겠다.”

한나의 대답에 하수는 살짝 입을 내밀면서 더 이상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한나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아나운서 국의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나가 갸웃거렸지만 저마다 자기 일을 할 뿐 그녀를 아는 척 하는 사람이 하나 없었다. 후배 아나운서에게 말을 걸자 아나운서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다들 뭐 하자는 거야?”

한나의 물음에도 여전히 조용했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알고 이래야 할 거 아니에요? 내가 방송 사고 좀 쳤다고 지금 나 왕따 시키려고 하는 거야? 설마 지금 그런 거예요? 이거 되게 유치하네. 우리나라 대표 방송국 아나운서라는 사람들이 같은 식구를 감싸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지금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너 조용히 해.”

?”

송아는 한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따라나와.”

하지만 선배.”

얼른.”

송아가 아랫입술을 물자 한나는 한숨을 토해내며 그녀를 따라나갔다. 휴게실에 가기가 무섭게 송아는 한나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선배 뭐하는 거예요?”

너 미쳤니?”

?”

인터넷에 이상한 동영상 돌고 있는 거 알아?”

이상한 동영상이요?”

그래. 이상한 동영상. 설마 너 못 봤니?”

? .”

송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찾아 한나에게 건넸다. 동영상을 확인한 한나의 눈이 커다래졌다.

 

뚱뚱한 것들은 다 죽어야 해.”

말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내가 뭐?”

한나는 맥주를 들이켜며 고개를 저었다.

워너비 지랄을 하고 있어요. 지들이 노력을 안 하는 거면서 누구를 닮고 싶다. 그딴 소리를 왜 하는 거냐?”

너 취했어.”

내가 뭐?”

한나는 말리는 하수의 손을 뿌리쳤다.

미친 것들.”

너 왜 이래?”

뭐가?”

너 공인이야. 공인이 밖에서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아니기는.”

한나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나운서가 무슨 지들 봉이냐? ? 아니 평소에는 언론인의 자세를 갖추라고 해놓고서는 오늘은 또 예능인으로 본다. 내가 뭐? 미친. 그 뚱뚱한 년은 또 왜 나한테 그렇게 성질이야? 하긴 내가 아나운서라 만만한 거지? 역겹게 생겨서. 나는 그 년만 보면 막 속에서 구토가 치밀어.”

그 정도야?”

한물 간 주제에 김진선 그 미친년 편만 들고 있고. 그렇지. 이번에 꽤나 좋은 집에 시집을 가기는 하는 거지.”

아 몰라. 뚱뚱한 것들은 다 죽었으면 좋겠어.”

 

김한나.”

억울해요.”

국장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한나가 먼저 끼어들었다.

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여기 이렇게 동영상이 있잖아.”

그거야.”

뭐 변명할 거라도 있어?”

그러니까.”

뭐라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당장 변명이라도 해야 했었는데 무슨 변명을 해야 하는 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인터넷이 얼마나 시끄러운 줄 알아?”

그건 제가 사과를.”

됐어.”

국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게 그냥 사과를 한다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김한나. 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국장님 죄송합니다.”

일단은 무조건 낮추는 것이 우선이었다. 괜히 부딪친다고 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도 하나 없었으니까.

제가 다 수습하겠습니다.”

네가 무슨 수습을 해?”

?”

내려가.”

국장님.”

어차피 로테이션 해야 하잖아. 아직 안 되기는 했지만 미리 내려간다고 생각을 해. 사람들이 단순히 자기들 눈에 잘 안 보이면 그냥 쉽게 잊으니 말이야. 그냥 내려가. 그게 너한테는 답이야.”

싫습니다.”

한나는 단호했다. 그냥 이대로 물러난다면 결국 도망이나 치는 거였다. 절대로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이대로 밀려난다면 정말 잊히고 말 거였다.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차라리 더 유리했다.

제가 잘 할 수 있어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 제가 뭐라도 할 수 있게 좀 도와주세요. 국장님. 부탁이에요.”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선이어야 할 거 아니야? 이따위로 일을 저질러놓고 내가 수습을 해주기를 바라는 거야? 김한나. 너도 양심이 좀 있어라. 네가 그러면 내 입장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하지만.”

성주로 내려가.”

?”

이건 어떻게 내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이야. 너 막아줄 수도 없고. 막을 생각도 없어.”

국장님.”

?”

국장은 안경을 벗으며 한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너 조심하고 있으라고 했지? 그런데 이런 동영상까지 돌고 나면 도대체 우리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건데? ? 내가 너에게 도대체 뭘 어떻게 할까? 사직서 받으라는 거 말렸어.”

한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있다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아나운서 국으로 가니 누가 짐을 싼 것인지 박스만 놓여있었다.

신기하네.”

한나는 상자를 들고 아나운서국을 둘러봤다.

다들 너무 대단하다. 아무리 그래도 같이 일을 하던 사람인데 이렇게 그냥 가게 내버려둘 수가 있어?”

한나의 원망이 섞인 말에도 그 누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한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아나운서 국을 벗어났다.

 

도대체 누가 그런 동영상 찍은 거야?”

그러니까.”

하수는 한나의 어꺠를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지금도 누가 찍고 있는 거 아니야?”

변태 새끼들.”

김한나 그만해.”

그렇잖아.”

한나는 소주를 글라스 가득 따라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니 상식적으로 이러면 안 되는 거지. 내가 자기들에게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건데?”

아마 사건이 두 개가 같이 겹쳐서 그런 걸 거야. 그게 아니라면 너에게 그럴 이유 하나도 없는 거지.”

너 지금 염장 지르냐?”

?”

됐다.”

한나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가련다.”

내가 데려다 줄게.”

경표 씨 온다고 했어.”

. 그래?”

. 나 간다.”

그래.”

한나는 경표에게 전화를 걸며 술집을 나섰다. 멀지 않은 곳에서 헤드라이트가 번쩍였다. 한나는 비틀비틀 차에 올랐다.

오빠.”

술 마셨어?”

.”

좀 조심하지.”

경표의 말이 서운하게 들렸지만 그가 하는 말이 자신에 대한 걱정이 섞여있다는 것을 알기에 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은 채로 근처 조용한 카페로 향했다.

사람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다.”

그러네.”

오빠가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이번 휴가는 간만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그냥 쉬려고. 이번에는 그래도 될 것 같아. 방송국에서도 별로 내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참에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확 보여주는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으니까. 안 그래?”

그게. 좀 그러네.”

?”

한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 휴가 내기가 힘들어?”

아니.”

그럼?”

그게.”

경표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우리 헤어지자.”

한나는 명하니 경표를 응시했다. 그렇게 잠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아닌 것 같아.”

오빠 이건 아니지. 우리 이제 결혼만 하면 되는 사이 아니었어? 이렇게 오래 사귀고 지금 그냥 이런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야? 지금 오빠 농담하는 거지?”

내가 이런 말로 농담할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네.”

경표의 차가운 말에 한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 역시 경표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깐깐하고 도도한. 재벌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방구깨나 뀐다는 집안이었다.

내가 혼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거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뭘 어떻게 하고 싶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내가 그 동안 결혼하자고 하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물렸는지 알아?”

그럼 그 사람들 만나.”

?”

경표의 단순한 대답에 한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만나온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배신감까지 치밀었다.

오빠가 나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크게 했다고 이러는 건데? ?”

그냥 질린다.”

뭐라고?”

너 질린다고.”

한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멍하니 경표를 응시했다. 경표는 정말로 차가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내가 도대체 너에게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네가 그런 사고를 쳤는데 내가 그냥 너를 아무렇지도 않게 봐야 한다는 거야? 그건 너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닌가?”

오빠. 지금 내가 이기적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오빠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아? 나 안 그래도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고. 그런데 지금 오빠까지 나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너무한 거잖아.”

미안하다.”

경표의 사과에 한나는 고개를 숙였다.

오빠 정말 이기적이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지. 맨 처음 사귀기 싫다고 했을 적에 오빠가 졸라서 사귀었던 거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러면 안 되는 거지. 내가 사귈 적에 말을 했었잖아. 사귀자는 이야기는 오빠가 먼저 했을지도 몰라도 헤어지자는 이야기는 내가 먼저 할 거라고 말이야.”

너 너무 뻔뻔한 거 아니냐?”

뭐라고?”

됐다.”

경표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연락하지 마라.”

오빠.”

하긴 연락한다고 해서 쉽게 만날 수도 없겠지. 어디 지방으로 발령난다며. 차라리 거기가 너에게 잘 어울리는 걸 수도 있어.”

뭐라고?”

한나?”

경표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름 김한나로 바꾸고 그렇게 아나운서를 하면 세련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이 들었냐? 네가 아무리 그래봤자 김복순이라는 네 이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몰랐던 거야?”

?”

한나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경표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그건.”

? 부모님이 외국에서 사업을 하셔? 두 분 다 돌아가셨다며? 그리고 원래도 교수가 아니라 농부였다며? 그래놓고 지금 나랑 결혼해서 신분이라도 상승하겠다? 헛소리 하지 마. 너 정말 역겹다.”

경표의 말이 끝이 나기가 무섭게 한나는 그의 얼굴에 생과일 주스를 부어버렸다. 경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카페를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