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마녀? 악녀? 어쩌면 선녀!
“그런데 시골이라는 말이 그렇게 기분이 나빠요?”
“안 그렇겠습니까?”
“그런가?”
복규가 날을 세우자 한나는 볼을 부풀렸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거든요.”
“뭐라고요?”
“아니 솔직히 시골은 맞잖아요.”
“아니 그렇지만.”
“나는 부산도 시골이에요.”
한나의 말에 복규는 미간을 모았다.
“아니 무슨 사람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막 할 수 있는 겁니까? 부산처럼 큰 도시가 왜요?”
“좀 그렇잖아요.”
한나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은.”
“당신이 보여줘요.”
한나는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당신이 성주가 시골이 아닌 것을 보여주면 되는 거잖아요. 이 일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 것을 내가 보여준다고 당신이 알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까? 김한나 씨가 스스로 깨닫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하나도 달라질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내게 뭘 바라는 겁니까?”
“나 같은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네?”
“다들 나랑 같아요.”
한나의 말에 복규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서울서 자란 아이들은 서울이 아니면 다 시골이라고 한다고요. 하다못해 경기도도 시골이라고 한다고요.”
“그거야 그 녀석들이 아직 멍청해서.”
“다들 멍청하다고요?”
“아니.”
“그러니 보여줘요.”
한나의 말에 복규는 한숨을 토해냈다.
“나 그런 거 잘 못합니다.”
“그래도 나보다 성주를 보는 눈이 다를 거 아니에요. 한 장소를 가보고서도 다르게 볼 거고 말이죠.”
“그거야 그렇지만.”
“내가 객관적이라 더 잘 볼 수도 있을 거라고 하기는 했지만 그런 거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어요.”
한나의 대답에 복규는 입을 꾹 다물고 그녀를 응시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실이 그렇잖아요.”
한나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서 오복규 씨가 성주가 아무리 좋다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고요.”
“그런 것 하나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기 위해서 여기에 사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겠죠.”
한나를 바라보던 복규가 한숨을 토해냈다.
“사람이 원래 그렇게 악랄합니까?”
“네?”
“아니 사람 마음을 막 가지고 놀고. 김한나 씨는 그런 것을 너무 잘 하는 사람처럼 보여 말입니다.”
“아, 그래요.”
한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눈을 찡긋했다.
“내 특기에요.”
“잔인하군요.”
“매력이죠.”
“그래서 무조건 내가 돕기를 바라는 겁니까?”
“긍정적인 마음으로요.”
“하.”
“어렵나요?”
“어렵습니다.”
한나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복규의 옆에 앉았다. 복규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뭐 하자는 겁니까?”
“내가 뭐 오복규 씨를 잡아먹기라도 해요? 아니 사람이 옆에 온 것 가지고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
“아무튼 나는 지금 그쪽하고 별로 이야기하고 싶은 상황이 아니니 그냥 저리로 도로 갔으면 합니다.”
“알겠다고요.”
한나는 입을 잔뜩 내밀면서 다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이건 좋은 기회에요.”
“방송이 되기는 하는 겁니까?”
“네.”
한나의 대답에 복규는 끙 하고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이 무조건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 그쪽이 더 잘 알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럼요.”
“그리고 내가 지금 당신을 돕게 되더라도 당신이 좋아서 돕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할 겁니다.”
“그 이야기는?”
“하겠습니다.”
한나가 고함을 지르자 복규는 미간을 모았다.
“이봐요.”
“아, 미안해요.”
한나는 눈을 찡긋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쉬울 줄 몰랐는데.”
“뭐라고요?”
“고맙다고요.”
복규는 혀를 끌끌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까?”
“네.”
한나는 꿔바로우를 우물거리며 씩 웃었다.
“그나저나 성주 10경은 언제 보여줄 거예요?”
“8경입니다.”
“네?”
“10경이 아니라고요.”
“아. 미안해요.”
한나의 대답에 복규는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뭐 하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낚인 기분이었다.
“그럼 촬영 일정은 추후 알려줄게요.”
“알겠습니다.”
한나는 가방을 뒤적거려서 휴대전화를 건넸다.
“번호 눌러요.”
“번호까지 알아야 합니까?”
“아무리 그래도 같이 일을 하기로 한 사람인데 뭐라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내키지 않습니다.”
“그러지 말고요.”
복규는 끙하는 소리를 내며 번호를 눌렀다.
“고마워요.”
“업무적인 전화만 하기 바랍니다.”
“내가 뭘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해요?”
통화버튼을 누르고 복규의 전화도 울리는 것을 확인한 한나는 씩 웃으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오복규 씨.”
“괜히 이 일을 하는 것 같군요.”
“그거야 보면 알겠죠?”
열심히 입에 무언가를 밀어넣는 한나를 보며 복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가만 있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그 역시 황급히 식사를 시작했다. 한나는 그런 복규를 보며 씩 웃었다.
“잡아 왔어요.”
“정말이야?”
“그럼요.”
문대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지난 번에도 말을 했지만 말이야. 이게 사람만 있다고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이 말이야.”
“PD님 또 그 소리 하실 거예요? 일단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다행인 거죠. 여기에서 물러나면 안 되는 거죠.”
“그거야.”
“제가 다녀올게요. 서울.”
“하지만.”
“제가 할게요.”
“김한나 또 무슨 사고를 치려는 거야?”
아나운서 국장의 질책에 한나는 싱긋 웃었다.
“국장님 제가 무슨 문제 일으키는 거 아니잖아요. 정말로 잘 하려고 그러는 거니까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정말로 잘 하려고 그러는 거면 이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거지. 도대체 어떻게 수습을 하려고 그래?”
“방송을 잘 하면 되는 거죠.”
“방송을 잘 해?”
국장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해?”
“왜 안 되나요?”
“뭐?”
“할 수 있어요.”
“김한나.”
“어차피 저질러진 거라고요. 여기에서 설마 안 된다고 하실 건 아니죠? 그것도 되게 이상한 것 같은데.”
한나의 대답에 국장은 미간을 모았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허락해주세요.”
“내가 무슨 권한으로.”
“힘 센 거 알아요.”
국장은 물끄러미 한나를 응시했다.
“그래. 나 힘 세다. 그래서 네가 사고치는 거 어느 정도 수습할 수 있었어.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왜요?”
“뭐라고?”
“국장님. 그냥 그 자리에서 제가 주저앉기라도 바라셨던 거예요? 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그거야 알지만.”
“정말 잘할 자신 있습니다.”
국장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한나 네가 거기에서 얌전히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사고를 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래도 거기에서 정말 제대로 하려고 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정말 될 것 같아?”
“네.”
“아니야.”
국장은 단호했다.
“그게 될 거 같으면 진작 다 했어.”
“국장님.”
“괜히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고. 그게 얼마나 큰 돈인데 그걸 다들 안 했다는 것은 안 된다는 거야.”
“아무도 제대로 해본 적 없잖아요. 다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흉내만 내다가, 아 이거 정말로 안 되네요. 이렇게 포기를 하고 만 거잖아요. 이런 것을 가지고 포기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왜 이렇게 고집이야?”
“할 거예요.”
“만약 되면 어떻게 할 건데?”
“네?”
국장은 한숨을 토해내며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너 거기서 살거야?”
“그건 아니죠.”
“어차피 너 서울로 올 사람이야. 그런데 거기에서 그렇게 자꾸만 일을 벌려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거야?”
“그게 무슨?”
“거기에서 계속 있을 거 아니잖아.”
국장의 물음에 한나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랬따. 정말로 거기에 그대로 머물 사람은 아니었다.
“서울 올 거지?”
“네.”
“그럼 사고치지 마.”
“사고 안 쳐요.”
“김한나.”
“아무리 그래도 내려가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입 꾹 다물고 있는 거 아니라고요. 거기 사람들이 무슨 벙어리들도 아니고.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뭐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아니야.”
국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할 이유 없는 사람이야. 아무 것도 할 필요 없는 사람들이라고.”
“국장님.”
“명심해.”
“어쩐 일이야?”
“아, 선배님.”
송아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한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정말 그걸 하겠다고?”
“네.”
“미쳤어.”
차를 마시던 송아가 낮게 타박했다.
“그런 곳에서 일을 벌이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너는 지금 그런 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니?”
“아무리 그래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거기에 있을 거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다들 그렇게 있어.”
“선배님.”
“그게 정답이고.”
송아의 말에 한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는 거죠. 거기서는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다른 사람들만 보면서 기다리기만 한다는 거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닌가요? 그렇다고 거기 사람들이 일을 못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같은 두웨이 식구고 시험을 본 사람들이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하는 일이 다르잖아. 그리고 작은 지역 방송국들이 다 나서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선배님.”
“아무튼 그래서 네 트위터가 시끄러웠구나.”
“그랬어요?”
“아무튼 잘 해봐.”
“네?”
“잘 해보라고.”
송아의 말에 한나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자신이 나름 라이벌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신기했다.
“그러니까.”
“내가 칭찬하니 이상하니?”
“네?”
“그렇지?”
“아니.”
“나도 그래.”
송아는 씩 웃으면서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래도 후배가 낯선 곳에 가서 새로운 일을 벌이겠다고 하는데 뭐라고 하는 것은 선배가 아니잖아.”
“고맙습니다.”
“내 도움 필요하면 말하고.”
“네. 감사합니다.”
“니 참말로 한다고 한 기가?”
“그래. 했다. 와?”
“잘했다.”
“치아라.”
득수가 머리를 쓰다듬자 복규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햄 때문에 미칠 거 같다. 도대체 뭘 우짜라고 그런 여자랑 자꾸 내를 엮을라고 하는 긴데?”
“아니 엮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그냥 서로 돕고. 그라는기 전혀 나쁜 게 아이다. 이 말 아이가?”
“치아라. 됐다. 마.”
복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여자 아무 지식이 없더라.”
“네가 알라주면 되지.”
“그게 될 거 같나?”
“와?”
“머리가 돌이라 안 카더나?”
“니가 너무 그 사람을 무시해서 그러는 거다. 잘 한다. 잘 한다.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우예아노? 안 그러나?”
“아이고. 사람 대단타.”
“와?”
“아주 배려심이 부처님 저리 가라세요.”
“내가 좀 그렇지?”
“칭찬 아니거든?”
“알거든요.”
“미치겠네. 진짜.”
복규는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왜 보자고 한 거야?”
“우리 아직 할 이야기 남지 않았어?”
“남았다고?”
경표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랑 더 할 이야기 없는데?”
“경표 씨.”
“그만 둬.”
경표는 차가운 눈으로 한나를 응시했다.
“너랑 보냈던 그 모든 시간들에 전부 다 위자료를 청구하고 싶은 기분이니까. 그냥 좀 닥치란 말이야.”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뭐라고?”
“아무리 그래도 사랑했던 사이잖아. 그러면 이렇게 심한 말. 막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미쳤구나?”
“그래. 나 미쳤어.”
한나는 물을 마시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경표 씨가 내 편을 조금이라도 들어줬으면 한다고. 그래도 우리 두 사람 좋은 사이였잖아. 안 그래?”
“그렇지.”
“그런데 왜 이래?”
“내 입장 생각 안 해?”
“뭐라고?”
“조롱이야.”
경표의 대답에 한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 점은 미안해.”
“다들 나보고 바보 아니냐고 그러더라? 어떻게 속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너 같은 거한테 속은 거냐고.”
“아무리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하잖아. 나 같은 거? 나도 사람이야. 나도 아프고 막 그랬단 말이야.”
“그래서?”
“경표 씨.”
“내가 뭘 해주기 바라.”
“다시 시작하자.”
“아니.”
경표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 없어.”
“왜 없다는 건데?”
“애초에 너랑 나 어울리는 사이도 아니잖아. 안 그래? 어디 감히 네가 나랑 어울린다 생각하는 건데?”
“우리 두 사람 그 동안 잘 사귄 거야. 잘 사귀었다고. 그런데 내가 한 번 잘못 삐끗, 내 경력에 아주 잠시 금이 갔다고 해서 우리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사이가 되는 거니?”
“애초에 무슨 사인데?”
“뭐?”
“우리 무슨 사이였어?”
경표의 차가운 물음에 한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경표의 여유로운 태도가 너무나도 불편한 기분이었다.
“너무한 거 아니야?”
“누가 너무한데?”
“당신이지.”
“내가 너무해?”
“그래.”
“뭐라는 거야?”
경표는 와인을 마시며 한숨을 토해냈다.
“어차피 너랑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니었고 뭐 하나 약속한 사이도 아닌데 이런 대화 자체가 너무 우습네.”
“그럼 여기 왜 온 거야?”
“아.”
경표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할 말이 있어서.”
“할 말?”
“그래. 반지 줘.”
“뭐?”
“내가 준 반지 말이야.”
한나는 손을 아래로 감추었다.
“그러니까 지금 치사하게 나에게 준 반지. 겨우 그 반지 돌려받겠다고 여기에 왔다는 말이야?”
“겨우 반지라니?”
경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이아야.”
“그래서?”
“그래서라니? 뭐 결혼을 하는 사이도 아니고. 약혼을 하기로 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제 우리 두 사람 정말로 아무런 미련도 없는 사이가 된 건데. 그런 반지 네가 그냥 가지고 있는다는 것이 너무 우습다는 생각이 안 드니? 네가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네가 알아서 줘야 하는 거지.”
“하. 그래?”
한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몰랐네.”
“그럼 줘.”
“내가 안 주면 어쩔 건데?”
“뭐?”
경표는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다 씩 웃었다.
“뺏어야지.”
“뭐라고?”
“어차피 그 손에 있는 거 아니야?”
“경표 씨.”
“그거 내 놔.”
경표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너한테 내 물건이 단 하나라도 있는 거 너무 불쾌하니까. 그 반지 네가 가지지 말고 나한테 돌려주란 말이야.”
“이건 내가 선물 받은 거야. 내가 선물 받은 반지까지 돌려줘야 하는 의무는 없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래?”
“응.”
경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김한나 치사하네.”
“뭐?”
“그게 그렇게 갖고 싶어?”
“경표 씨 정말 이럴 거야?”
“그래. 너 가져.”
경표는 차가운 눈으로 한나를 응시했다.
“이제 가지고 있는 거 하나도 없고 저 멀리 시골에서 방송이나 하는 주제인데 그거라도 가져야 할 거 아니야.”
“시골 아니야.”
“뭐라고?”
“거기 시골 아니라고.”
한나의 대답에 경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투리나 쓰고 더럽고 안 씻고 무식한 사람들만 사는 곳이면 시골 아닌가? 거기 그런 사람들 있잖아.”
“누가 그래?”
“김한나. 그새 정이라도 들었어?”
“정이 안 들어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몰랐네. 나는.”
경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냄새나는 것 같아.”
“뭐?”
“그 시골에 있어서 그 냄새가 밴 거 같은데?”
“경표 씨 정말.”
“앞으로 보지 말자.”
경표는 씩 웃으면서 재킷을 들었다.
“같은 자리에 있으니까 괜히 나한테도 비료 냄새 나고. 막 그런 것 같거든. 다시 보지 말자. 그게 맞는 것 같아.”
“이거 가져가.”
한나는 손에서 억지로 반지를 빼냈다. 그리고 경표의 얼굴에 던졌다. 경표는 그것을 받아들면서 씩 웃었다.
“자존심은.”
“잘 살아라. 이 개자식아.”
한나는 경표의 얼굴에 남은 와인을 모두 부어버리고 정강이를 세게 깠다. 그리고 경표가 외치는 것을 뒤로 하고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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