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퍼펙트우먼[완]

[로맨스 소설] 퍼펙트 우먼 [20장. 흔들리다]

권정선재 2014. 7. 29. 07:00

20, 흔들리다

김한나. 너 어떻게 연락 한 번 안 하니?’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잘 지내긴.’

 

송아의 떨떠름한 목소리에 한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하여간 선배는 그대로에요. 까칠하고 그런 거. 후배가 여기에서 고생하고 있으면 그냥 안타까워해주시면 안 되는 거예요? 꼭 그렇게 까칠하게 후배를 막 혼을 내시고 그래야 하는 거예요?”

좋은 소식 있다.’

뭐요?”

너 서울 와.’

?”

 

한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안 그래도 아나운서 국장님이 너 거기에 보내고 되게 미안해했어. 그래도 아침 방송 책임지고 하는 거 너 하나였잖아. 다른 애들 다 하기 싫다고 빼던 거 네가 해준 거였고. 그 동영상도 방송과 상관이 없었고. 그 정도면 충분히 네 잘못 인정했다고 생각을 하고 다시 부를 거 같아.’

그래도 논란이 있지 않겠어요?”

 

한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반문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 동시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저 거기 가서 욕먹기 싫어요.”

다들 막아줄 거야.’

?”

 

아무렴 너 욕먹는 거 그냥 다들 보고만 있을까봐? 아무튼 이거 너에게 미리 알려주는 거야.’

선배.”

나중에 국장님이 말하면 놀라야 한다.’

? .”

 

한나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도대체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 건지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답답했다.

 

그럼 들어가.’

선배님돌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한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머리가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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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연 서원 이야기는 어떻게 쓸까요? 아무래도 거기가 한강 정구 선생이 제자들에게 유학을 가르치던 곳이니까.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소개하는 거 전통적인 것이 나쁜 것도 아니고요.”

 

볼펜을 물고 있던 별나가 물끄러미 한나를 바라봤다.

 

언니?”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 아무 것도 아니야.”

 

한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뭐라고?”

아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는 거면 나에게 이야기를 해줘요. 그래도 내가 좋은 상담 상대가 되어줄 테니까.”

그런 거 아니야.”

 

한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에 배우 쪽에서 산을 올라가는 것이 별로라고 했으니까 이번 봉비암은 그냥 핼리 캠으로 넣자.”

그래도 되겠어요?”

어차피 서원이 더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거 같아.”

그건 좋지만 좀 그렇지 않아요?”

그런가?”

 

한나는 물을 마시고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럼 나 혼자 갈게.”

?”

그냥 나 혼자서 그리워하는. 뭐 그런 걸로 가도 되는 거잖아. 그 배우 한 번은 쉬게 해줘.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너무 져주는 거 아니에요?”

 

별나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자기들이 무슨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반응을 하고 그러더라니까요. 그런 것도 하나 아니면서.”

그래도.”

 

한나는 별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 군청 협조도 좋고요.”

그래. 나는 먼저 들어갈게.”

. 언니 들어가세요.”

 

별나의 인사를 받으며 한나는 문을 닫고 회의실을 나섰다. 뭔가 별나에게도 큰 죄를 짓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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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간다고?”

.”

 

태민은 물끄러미 한나를 바라봤다.

 

그 이야기 나에게 하는 이유가 뭐야?”

?”

붙잡으라고?”

아니.”

 

한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냥. 그 사람에게 바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을 거 같더라고. 너무나도 큰 죄를 짓는 거 같아서.”

그래서 나는 괜찮다는 거야? 나도 누나 따라서 이 성주까지 왔는데. 그거 너무한 거 아닌가? 속상한데.”

내가 미안해.”

 

한나의 사과에 태민은 한숨을 토해냈다.

 

누나가 사과를 할 이유는 없는 거지. 애초에 누나가 여기 소속도 아니고 돌아갈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빠르게 돌아갈 줄은 몰랐어. 아무래도 너무나도 빠르게 돌아가니까 더 당황스러운 거 같아.”

누나 그런 거 아니야.”

?”

 

태민의 말에 한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여기에 정이 들어서 그렇지.”

?”

 

한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건 아닐 거야.”

아니긴. 그래도 누나 여기에서 살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을 거 아니야. 내 말이 틀려?”

그건 아니지만.”

나도 얼마 안 있었지만 느끼더라. 다들 진료비도 내고 가시면서도 옥수수, 참외. 막 가져다 주셔. 복숭아도 좀 주시고. 그 마음들이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해서. 나도 마음이 짠하더라고.”

그러게.”

 

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꼭 다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여기저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시장만 나가더라도 성주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참 많이 듣고 칭찬도 많이 들었다. 덤도 많이 받았고.

 

다들 정말 좋은 분이지.”

그래서 서운할 거야.”

그런가?”

그래도 말해야 해.”

 

태민의 말에 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확정된 거 아니니까.”

그래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모르겠어.”

 

한나는 한숨을 토해냈다.

 

오복규 씨를 두고 갈 수 없어.”

그 사람이 그렇게 중요해?”

.”

이상하네.”

 

태민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남자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누나 인생에 뭐가 더 좋아한지 누나가 더 잘 알고 있잖아. 그렇다면 누나 인생에 더 좋은 것. 더 중요한 것을 생각을 하고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 사람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된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선택해야 하는 거야.”

 

한나는 태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지 말 걸.”

.”

채태민.”

누나가 이 일을 왜 한 건데?”

 

태민의 말에 한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누나가 정말 이 성주에서 잘 살기 위해서 이 일을 한 거야? 그 많은 만류를 막고. 일을 한 거냐고?”

아니.”

그럼?”

가고 싶었어.”

 

한나의 대답에 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누나는 서울로 가기 위해서 이 일을 한 거야. 누나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 일을 한 거라고.”

하지만 내가 원래 하기로 했던 그 일을 선택하게 되면 결국 그 사람을 배신하는 일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그게 왜 배신이야?”

그럼 아니니? 배신이 아니야?”

당연히 배신이 아니지. 그거 아니야.”

 

태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한나는 짧게 한숨을 토해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그럼 그러면 되는 거야.”

모르겠어.”

 

한나의 대답에 태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한나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

나도.”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 아니었어?”

채태민.”

김한나 컸네.”

 

한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잘 모르겠어.”

.”

그러기에 미안하잖아.”

만일 여기에 남으면. 누나는 오복규. 그 사람을 전혀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원망이라고?”

누나는 하게 될 거야.”

 

한나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누나는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사람은 어디에서라도 살 수 있어.”

그건 다른 거야.”

 

태민은 단호했다.

 

누나를 위한 것을 선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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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얼굴이 어두워요? 일이 힘들어요?”

.”

 

한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오복규 씨.”

?”

아니에요.”

 

한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복규의 얼굴을 보니 사실을 이야기를 하기에 너무나도 먹먹했다.

 

이번에 산은 그 배우 안 데리고 가기로 했어요.”

왜요?”

싫어하잖아요.”

너무하네.”

 

복규는 입을 내밀고 한나의 손을 잡았다.

 

내가 가서 영상 가져 올까요?”

아니요.”

 

한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곳에 직접 가서 이야기를 하는 거랑 가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거랑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맨 처음에 김한나 씨 싫어했던 거 알고 있죠?”

.”

그런데 이제 달라요.”

 

한나는 물끄러미 복규를 바라봤다.

 

내가 그렇게 달라졌어요?”

그럼요. 그 순간에 김한나 씨는 정말로 같이 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거든요. 자기만 생각을 하고.”

그거 욕인 것 같은데요?”

그런가?”

 

복규는 쿡쿡 거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지금은 달라요. 김한나 씨는 뭐가 더 중요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거 같아.”

오복규 씨가 하나하나 다 알려줘서 가능한 거야.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었을 거예요.”

내 덕이 아니죠.”

 

복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김한나 씨가 스스로 알아간 거예요.”

그런가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요?”

.”

 

한나는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먹먹했지만. 너무나도 먹먹하지만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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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 들어와 봐.”

?”

 

출근하기가 무섭게 문대가 불렀다.

 

들었지?”

뭘요?”

서울로 가야 한다는 거.”

 

문대의 말에 한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PD 님 저 가고 싶지 않아요. 적어도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마치고 싶어요. 그렇게 해주세요.”

나도 그렇게 말을 하고 싶지만 위에서 안 된다고 하는데 내가 무슨 힘이 있어? 위에서 당장 부르라고 하는데.”

하지만.”

김한나가 아까운 모양이지.”

 

문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이제야 겨우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야. 이런 일이 다 벌어진단 말이지.”

내가 안 가면 어떻게 되는 거죠?”

?”

 

문대는 미간을 찌푸렸다.

 

김한나 왜 이렇게 행동해?”

하지만 이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여기 와서 영상은 찍으면 되지.”

하지만.”

별 거 아니야.”

 

한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할 거 하나 없다고. 어차피 김한나 씨 여기에 오기 싫어했던 사람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그러니 당연히 가야 하는 거야. 어차피 거기로 다시 돌아갈 사람이라는 거 스스로 알고 있었잖아.”

 

한나는 뭐라 대답을 할 수 없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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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서울로 가요?”

모르겠어.”

부럽다.”

 

별나의 말에 한나는 고개를 저었다.

 

뭐가 부러워.”

다들 서울로 가고 싶어 하잖아요. 그리고 언니가 원래 있었던 곳도 거기니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래도 여기에 있을 수 있을 줄 알았어. 이렇게 빠르게 돌아가게 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

한 달도 더 되었어요.”

그래도.”

충분해요.”

 

한나는 짧게 한숨을 토해냈다.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처럼. 그냥 이대로 끝이 나버리고 싶지 않았다.

 

방송은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내가 와서 찍게 된다네.”

그럼 문제도 없는 거네요.”

그래도 다르지 않을까?”

다를까?”

너는 안 서운해?”

서운하죠.”

 

별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언니가 더 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서 했던 일이 잘 되었다고 위에서 인정을 해서 가게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걸 가지고 제가 뭐 서운하다고 말을 할 것도 없는 거죠.”

그래도.”

좋은 거예요.”

 

별나는 힘을 주어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언니도 그렇게 생각을 해야 하는 거라고요. 보통 이렇게 빠르게 돌아가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렇겠지.”

보통은 여기에서 끝까지 있는다고요. 여기에서 대구로 가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 그런데 대구도 아니고 서울로 바로 돌아가는 거는 언니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증거에요.”

대단하다.”

 

한나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을 해도 대단한 일을 한 거였다. 서울에 있을 때는 절대로 생각도 하지 않은. 스스로 일을 만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일은 서울로 돌아가기 위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들었다.

 

가기 싫다.”

왜요?”

그냥. 여기에서 정말 오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대로 떠나는 것은 뭔가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배부른 소리.”

 

별나는 한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복규 씨 때문에 그러는 거죠?”

?”

언니가 사실을 이야기를 하면 이해해주지 않을까요?”

그건.”

누굴 속여요?”

 

별나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그러니 더 미루지 마요. 이대로 가더라도 서운한 것이 달라지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그게 더 나쁜 거니까.”

그런 거겠지?”

당연하죠.”

--------------

어쩐 일이에요? 낮에 다 보자고 하고.”

그게.”

 

한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복규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 오복규 씨 좋아해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원한 한방차를 시키고는 복규는 싱글벙글이었다. 한나는 복규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그게.”

 

한나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로 가게 되었어요.”

 

복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는 가만히 한나를 바라보다가 한나의 손에 포개진 자신의 손을 빼냈다.

 

오복규 씨.”

서울로 간다고요?”

그게.”

 

한나는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미안해요.”

김한나 씨.”

다시 불려가게 되었어요.”

 

한나의 말에 복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돌아가는 겁니까?”

.”

 

한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서 부르면 돌아가야 하는 입장이거든요.”

어차피 여기에 오래 머물 생각도 아니었던 거군요?”

그런 것은 아니에요.”

 

한나가 다급히 대답했지만 복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러려고 한 것이 아닌데.”

애초에 마음을 주면 안 되었던 겁니다.”

오복규 씨.”

 

한나의 눈동자가 떨렸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복규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한나 씨가 모든 것을 두고 여기를 떠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그냥 남게 될 겁니다.”

그래도 방송이 끝이 나기 전에는 매주 한 번 성주에 내려올 거예요. 촬영도 해야 하는 거고요.”

촬영이 끝이 나면요?”

?”

방송이 끝이 나면 여기에 올 일이 없는 거 아닙니까?”

그건.”

 

한나는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복규의 말이 맞았다. 서울로 다시 돌아가서 여기에 올 일은 전혀 없었다. 평소에 성주 두웨이라는 곳이 있다는 자각도 전혀 안 하고 살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성주와 관련이 되어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가능성 같은 것은 애초에 하나도 없었다.

 

미안해요.”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으니까.”

 

차가 나오고 복규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쓴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픈 그의 표정에 한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됐습니다.”

오복규 씨.”

 

어차피 김한나 씨가 여기 사람이 아니라는 거 내가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떠나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는데 마음을 준 내가 잘못한 거고, 실수한 거죠.”

그러지 마요. 나도 가기 싫어요. 나도 가기 싫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내 입장이 그렇지가 않다고요.”

그러니 가요.”

 

복규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애초에 내가 마음을 열면 안 되었던 겁니다. 이럴 거라는 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런 거 아니라는 거 알고 있잖아요. 나에게 아무런 선택권도 없는 거니까요.”

누가 뭐라고 했습니까?”

 

복규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가세요.”

오복규 씨.”

 

한나가 애절하게 그를 불렀다.

 

나 이러면 못 가요.”

왜 못 가요?”

당신에게 허락을 구하고 싶어.”

똑같아.”

오복규 씨.”

다 똑같다고.”

 

복규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고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준 사람들은 도대체 왜 다들 이렇게 나를 떠나지 못해서 안달이 난 거죠?”

그게 아니라.”

뭐가 아니라는 겁니까?”

 

복규의 말에 한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결국 그녀 역시 은숙처럼 그를 두고 떠나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기에서 혼자 누군가를 기다리고 멍청하게. 이게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자주 올게요.”

아니요.”

오복규 씨.”

그만 두죠.”

 

복규의 말에 한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게 무슨 말이죠?”

애초에 우리 두 사람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이제 다시는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이고. 억지로 감정을 유지하고. 그럴 이유 하나 없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냥 가면 되는 겁니다.”

 

한나는 고개를 숙였다. 복규의 말이 너무나도 아프게 들렸다. 하지만 아니라고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복규는 그대로 한나를 둔 채로 카페를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