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두 명의 시어머니
“갑자기 못 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아니 김한나 씨도 알다시피 이거 너무 하잖아.”
신인 배우의 매니저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성주까지 왔는데 비중이 이게 뭐야?”
“애초에 유투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셨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어떤 영상인지 아셨어야죠.”
“그래도 이건 아니지.”
한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매니저님. 저희는 이미 어떤 영상인지 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와서 이러시면 안 되는 거죠.”
“뭐가 안 되는 건데?”
“매니저님. 너무하시네요.”
“우리 애 생긴 거 봤잖아. 앞으로 정말 대단한 스타가 될 거라고. 그런데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 거야?”
“저희가 언제 홀대를 했습니까? 그 영상 그대로 촬영 좀 하자고 한 건데. 그게 뭐가 문제가 되는 건가요?”
“산을 올랐잖아요. 산을.”
한나는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 그러면 성주 8경에 산이 있는데 산을 안 올라요? 어떻게 산이 있는데 산을 안 올라가요? 네?”
“아니 그러면 헬기를 타고 가도 되는 거고. 우리 애가 무슨 강철 체력도 아니고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거 제대로 된 프라임 시간대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오후에 나가는 거잖아요. 오후에.”
“그래서요? 뭐가요?”
한나가 눈을 치켜뜨자 매니저는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속상해서 그런 거지. 속상해서. 우리 애가 고생을 했으니까.”
“지금 그 사람만 고생을 했어요? 저도 산 올랐어요. 카메라도 들고 갔다고요. 매니저님도 아시지 않나요? ENG 카메라가 얼마나 무거운 건지. 저희 그것도 들고 지금 산에 올라간 거라고요.”
“알지. 알아.”
“그럼 그만 두세요.”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럼 그만 두시라고요. 아셨죠?”
한나의 엄포에 매니저는 울상을 지었다.
“그럼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우리 배우가 이렇게 산을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는데.”
“뭐가 그렇게 힘든데요?”
“아니 다리도 당기고. 온 몸이.”
“운동 부족이네. 그렇게 운동을 안 해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매니저님. 요즘 여자들은 운동 잘 하는 남자 좋아해요. 그렇게 비리비리하기만 해서 운동 하나도 못 하는 남자는 딱 질색이라고요.”
한나는 매니저의 가슴을 검지로 밀어내고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이런 걸로 감정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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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위가 그렇게 아파?”
“응, 그 놈의 위염이 도진 모양이다.”
한나는 보건소 침대에 누워서 울상을 지었다.
“대학 다닐 적에도 이놈의 위염이 나를 따라 다녔는데.”
“지난 번에 누나 나에게 막 자랑했잖아. 식도부터 위까지 하얀 염증이 꽃처럼 피어있다고 말이야.”
“그랬지.”
한나는 실실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람이 아프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내가 아파요. 이렇게 말할 수 있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사람이 안 아파야지. 누나 그렇게 아프다고 하면 내가 얼마나 속상한지 알아?”
“또 오버한다. 또.”
한나는 태민을 보며 입을 내밀었다.
“채태민. 나를 신경을 써주시는 건 되게 감사한대요. 너무 오버하지 말라고 내가 부탁을 했지?”
“이건 오버하는 것이 아니라 보건소 의사로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야. 누나가 뭐 언제까지 마냥 젊기만 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이제 자기 나이도 생각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나이를.”
“내 나이가 뭐가 어때서? 너만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아직 사람들은 나 꽃띠라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얼씨구. 미쳤네.”
태민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나는 그런 태민을 보며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안 되겠다. 나 읍내 병원에 갈래.”
“왜? 나도 의사거든요. 그냥 나한테 약 받아.”
“됐어. 무슨 의사라는 녀석이 환자를 구박만 하고 있냐? 환자 위로도 하고. 뭐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잘못된 것은 잘못이라고 말을 해줘야지. 그게 정말로 환자를 위한 거지. 그냥 다 잘 될 겁니다. 그게 무슨 의사냐?”
태민은 입을 내밀고 처방전을 건넸다.
“나가서 구기자 씨에게 약 받아서 가.”
“너밖에 없다. 이런 약 길게 잘 안 주거든.”
“어떤 미친 의사가 위장약을 한 달 치를 주냐? 한 달 치를. 그거 그렇게 많이 먹으면 안 좋아.”
“알고 있어.”
한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요즘 일이 되게 복잡해져서 그런다.”
“왜? 이제 정말 제대로 방송하기로 되었다고 나에게 막 자랑하더니.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뭐. 별다른 문제는 아니고. 거기 출연하는 신인 배우가 힘들다고. 막 뭐라고 하더라고. 되게 우습지?”
“그냥 잘라.”
“어떻게 그러니?”
한나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태민은 그런 한나를 보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누나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더 알아주는 것도 아니니까. 누나만 더 고생하는 거잖아. 안 그래? 그렇게 고생한다고 해서 결국 얻을 수 있는 것 하나 없습니다.”
“알고 있어. 그래도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나름 더 노력을 해야 하는 거지. 내가 제대로 노력을 하지 않아서 여기에 온 거니까.”
한나의 대답에 태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그래? 누나가 서울에서 노력을 안 했다고?”
“내가. 내가 그러고 있어. 그런 생각이 드니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내가 제대로 안 한 것이 맞거든.”
“아니거든.”
태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김한나 서울에서부터 고군분투한 거 내가 다 봤거든요. 그런데 뭐 그냥 운으로 이 자리에 온 것처럼 말을 하고 있어. 누나 충분히 노력했어요. 누나보다 더 노력한 사람 많지 않아요. 내가 봤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걸까?”
한나의 물음에 태민은 고개를 저었다.
“누나 이렇게 된 거 누나 잘못이 아니야.”
“그럼 누구 잘못으로 내가 이렇게 된 거라니?”
“누구라도 인생에 한 번 부침 정도는 있을 수 있으니까. 누나는 그냥 그 정도 아픔을 겪는 거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한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제 조금 일이 풀리는 거 같지?”
“그럼요. 그러니까 힘을 내요. 누나 위해서 그게 전부야.”
“응.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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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꼭 여기가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뭐죠?”
“성주에서.”
“아니요.”
한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특정 업체가 성주 8경 안에 들어가기 원하지 않습니다. 그건 너무 상업적인 것이 되어버리잖아요.”
“어차피 없는 것을 새로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있는 것을 없게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겁니까?”
“왜 말이 안 되죠?”
한나의 말에 업체 담당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나오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쪽에서 왜 거절하는 겁니까?”
“제 컨텐츠입니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PD님이나 다른 분들에게 말씀도 하시지 마세요. 이건 제가 오케이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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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 씨 그 PPL 그냥 받지. 우리가 뭐 제작비가 아주 널널한 것도 아니고 도움을 받으면 좋잖아.”
“PD님. 저희가 뭐 상업 방송도 아니잖아요. 그렇게 돈을 많이 받을 이유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작비 들지도 않아요.”
“그래도 도움까지 거절하는 건.”
한나는 문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들 오케이하면 저희가 쓰자는 대로 가지도 않을 거라고요. 하자 보면 자기들 입장을 이야기를 할 거고요. 그런 거 하나하나 다 받아주다 보면 결국 처음에 하고자 하는 것도 못 할 거예요.”
“하여간 고집은.”
문대는 미간을 모으다가 씩 웃었다.
“내가 처음에는 김한나 일하는 거 하나도 이해를 못 했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보니 나름 이해가 가기도 해.”
“그거 칭찬 맞는 거죠?”
“그래. 내가 김한나 씨 칭찬하는 거야.”
한나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을 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조금씩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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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지금 말이나 됩니까?”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겠나?”
복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이거 지금 생산비도 그럼 안 나옵니다.”
“서울에서 누가 참외 먹나? 다들 체리 먹고 파인애플 먹고 그러지. 참외 별로 인기도 없어.”
“그냥 넘기라.”
득수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서 뭐라고 한들 뭐 하나 답이 나오겄나?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다 이 가격에 파는 거고.”
“그나마 이 두 사람은 내가 알고 있고 참외 질 좋은 거 아니까 특으로 가는 거야. 특 아닌 것도 있는 거 알지?”
“알겠습니다. 그리 해주소.”
복규는 한숨을 토해내며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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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화났나?”
“아니다.”
복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농사 빼 빠지게 지어봤자 결국 다른 놈들 배불리 주는 거 하루이틀 아닌데 내가 와 그러겠노?”
“그래도 이건 좀 서운하기는 하더라. 그래도 니도 인터넷에서 그 매실 팔리는 거 봤잖아. 거 대면 낫지.”
“그라네. 좀 낫네.”
복규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입가를 소매로 닦았다.
“서울서는 참외가 그리 비싸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와 이 가격 밖에 몬 받는 건지 하나 모르겠다.”
“촌놈들이 뭘 알겠나?”
“하여간 화가 난다. 속이 터진다.”
복규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며 득수는 어깨를 두드렸다.
“니 너무 그라지 마라. 그리고 기분 풀고 가라. 저녁에 김한나 씨 만난다고 하면서 그리 가서 되겠나.”
“그러지?”
복규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잊어야지. 별 것도 아닌 일인데. 늘 있는 일인데. 이걸 괜히 특별하게 생각을 하면 그게 더 우습제?”
“하모.”
“알았다.”
복규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을 하나하나 다 가슴에 담는다면 더 답답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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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게 지쳐보여요.”
“그래요?”
복규를 보며 한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힘들 것이 뭐가 있어. 나보다 오복규 씨가 훨씬 더 힘들죠.”
“사람들의 일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내가 들어줄게요.”
“아니에요.”
한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행복한 표정으로 복규를 바라보다가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편하다.”
“마음껏 기대요.”
“오복규 씨.”
“네.”
“심각한 이야기 해도 되나요?”
“네.”
복규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고 싶지도 않으니까. 당신이 묻는다면 다 이야기를 해주겠습니다.”
“어머니 이야기에요.”
“해요.”
복규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나는 짧게 한숨을 토해내고 자세를 바로잡고 고개를 숙였다.
“오복규 씨 어머니 봤어요.”
“누구를?”
“그 분.”
복규의 얼굴이 곧바로 구겨졌다.
“그 사람이 뭐라고 합니까?”
“오복규 씨랑 어머니 사이가 별로 좋아보이지 않아서 내가 이런 말을 괜히 하면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쁜 것 같았어요.”
“네. 잘 말 했습니다.”
“돈이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한나의 대답에 복규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미안합니다. 그 여자가 당신을 만나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 그 여자는.”
“괜찮아요.”
한나는 복규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나 아무런 일도 당하지 않았어.”
“정말 미안합니다.”
“어딘지 슬퍼 보였어요.”
“뭐라고요?”
복규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여자는 그런 마음 같은 거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한 번 대화를 해봐요.”
“아니.”
“오복규 씨.”
“분명 돈을 달라고 할 겁니다.”
복규의 대답에 한나는 할 말이 없었다. 복규는 짧게 한숨을 토해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들어갈게요.”
“같이 갈까요?”
“아니요.”
복규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할 것이 좀 있어서요.”
“괜히 이런 이야기를 해서.”
“아닙니다.”
복규는 허리를 살짝 굽혀 한나의 얼굴을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 알아서 할게요. 내 걱정을 해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누가 걱정을 해주는 거 되게 기분 좋네.”
“내가 앞으로 걱정 많이 해줄게요.”
한나는 손을 내밀어서 복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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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다.”
“그렇지?”
“응. 같이 있어서 좋아.”
한나는 물끄러미 신인 배우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좋아.”
“그러게. 이런 시간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어.”
“참 좋다.”
한나는 기지개를 켰다. 컷 소리가 나고 한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카메라로 다가왔다.
“어때요?”
“잘 된 거 같아.”
“정말요?”
“김한나 감각 있네.”
문대의 칭찬에 한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바로 방송국에 가야지.”
“아, 오늘이 첫방이죠?”
“그래.”
“알겠습니다.”
한나는 장난스럽게 경례를 하고 옷을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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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두웨이에서 유쾌한 소식이 있다고요?”
“네. 성주 8경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부터 8주간 매일 이 시간에 전해드릴 텐데요. 미리 인터넷을 통해서 보신 분들도 다시 한 번 두 눈 크게 뜨고 확인해주세요. 조금 달라졌거든요.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한나는 영상을 보면서 성심성의껏 설명했다. 내가 직접 고생을 했기에 조금 더 애착이 가고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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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반응이 좋아.”
“그래요?”
문대의 반응에 한나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우리가 여기에서 아무 것도 할 수없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야. 김한나 덕에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감독님이 알려주신 거죠. 여기에서 뭐라도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신 거니까.”
“뭐 그런가?”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
“그래도 되나요?”
“그럼.”
한나는 허리를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가방을 들고 별나에게 손을 흔들고 방송국 로비에 가다 걸음을 멈추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
은숙이었다.
“우리 이야기 좀 할까?”
“그게.”
한나는 머뭇거렸다.
“복규가 나 만나지 말래?”
“네?”
“그래도 내가 네 애인 엄마인데. 같이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어른을 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예의잖아.”
한나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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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 엄마가 어데 있는지 아나?”
“외숙모? 외숙모야.”
“아니.”
복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생모말이다.”
“아. 그 외숙모.”
득수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그거는 와?”
“김한나 찾아갔단다.”
“누가?”
“그 사람이.”
“미친 거 아이가?”
“그러니까.”
복규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내가 직접 찾아가서 그 사람을 찾아가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 사람이 괜히 힘들어하고 그러더라. 그래도 내한테 말을 했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더 큰일이 날 뻔 했다.”
“왜 찾아 간 긴데?”
“돈 달라고 했단다.”
“미쳤네. 무슨 돈을 맡겼나?”
“그러니 말이다. 내가 가서 만날게.”
“알았다. 내가 외숙모에게 좀 물어볼게.”
“아빠한테 물어라. 어머니 아시면 놀란다.”
“그래. 알았다. 내가 그거 알아서 할게. 하여간.”
득수는 혀를 끌끌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했지만 복규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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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놀라지도 않네?”
“네.”
한나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 번은 더 찾아오실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은숙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내가 왜 올 것 같았는데?”
“돈은 못 드립니다.”
“그래?”
“네.”
한나는 가만히 은숙을 응시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서요.”
“복규가 그러디?”
“아니요.”
“그럼?”
“오복규 씨가 뭐라고 하건 저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에 제가 어머니에게 돈을 드리면 안 된다는 거죠.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뭐 혼수로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건가?”
은숙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차피 결혼을 하고 그러면 시댁에 돈을 가지고 와야 하잖아.”
“그런 돈이 아니라는 거 저보다 어머니가 더 잘 아시고 계실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아닌가요?”
“그런가?”
은숙은 한숨을 토해내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내가 사는 것이 너무 팍팍해서 그래요. 돈도 제대로 없거든. 그래서 도움을 좀 받았으면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머니가 생각을 하시는 것보다 돈이 없습니다.”
“그래도 정규직인데?”
“아니요. 그래도 없습니다.”
은숙은 물끄러미 한나를 바라봤다.
“독하네.”
“죄송합니다.”
“건방지고.”
한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어머니께서 지금 이 자리에서 뭐라고 말씀을 하신다고 하더라도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 하나 없습니다.”
“아니 사람이 그래도 그런 것이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기가 사귀는 사람 엄마인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돈 그렇게 많이도 필요 없어. 일단 한 오백만 주면 된다니까?”
“드리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런 돈도 없습니다.”
한나는 분명히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숙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같이 일어났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할 일이 있어서요.”
“이게 정말.”
은숙은 그대로 한나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어디에서 건방지게 구는 거야!”
“이거 놓으세요.”
“못 놓으면!”
“놔라!”
은숙은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실라가 식식 거리면서 자신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네가 여기에 왜 있어?”
“니야 말로 여 와 있노?”
실라는 식식거리며 은숙을 노려왔다.
“와 내 매느리한테 이 지랄이고?”
“며느리?”
은숙은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런 싸가지 없는 년이 무슨 며느리? 네가 허락을 하더라도 내가 복규 짝으로 허락할 거 같아?”
“니가 무슨 자격으로!”
실라는 고함을 치며 한나의 손을 꼭 잡았다.
“내가 인정한기다.”
“뭐라고?”
“내가 내 매느리로 인정을 한 거라고. 그러니 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썩 꺼지라. 부끄럽지도 안하나?”
“내가 그냥 물러날 줄 알아?”
“퍼뜩 안 꺼지나!”
은숙은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더니 가방을 들고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은숙은 한숨을 토해내며 한나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한나를 꼭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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