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어머니
“니 많이 놀랐지?”
“아니요.”
한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괜히 저 때문에 나선 거 아니에요?”
“내가 나서지 그럼 누가 나서노? 하여간 그 망할 여편네가 이 동네는 왜 다시 돌아와서 어디 감히.”
실라는 한숨을 토해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 거재?”
“네.”
“그럼 다행이다.”
실라의 반응에 한나는 싱긋 웃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세요?”
“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니 보자고 해도 그냥 피하고 그래라. 뭘 그걸 다 대하고 있어? 그러지 마.”
“그래도 오복규 씨 관계가 된 사람이니까요.”
“그렇긴 하지만서도.”
실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복규에게는 내가 말할게.”
“하지 마세요.”
“와?”
“그냥요.”
한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괜히 오복규 씨가 신경을 쓰고 그런 거 싫어요. 그 사람이 스트레스 받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실라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리 착해서 우야노.”
“저 하나도 안 착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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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거울을 보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침을 꿀꺽 삼키고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한나 니가 우얀 일이고?’
“엄마는 좀 괜찮아요?”
한나의 물음에 복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이모.”
‘괘안타. 니 엄마 괘안아.’
“아버지 그렇게 되시고 나서 한 번도 못 가서 너무 미안해요. 내가 아직은 엄마를 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래서 거기에 갈 수가 없어. 자격이 생기면 갈게요. 내가 조금만 더 자격이 있으면.”
‘암시렁도 안 혀. 그러니 아무런 걱정 안 해도 된다. 이 이모가 니 엄마랑 있는데 무슨 걱정이고?’
“고마워.”
‘무슨 일 있나?’
“아니요.”
한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내가 되게 나쁜 딸이구나. 막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든 이런 마음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너 하나도 안 나빠.’
엄마의 목소리에 한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엄마.”
‘니 잘못 하나 없다. 너 땜에 니 아버지 죽은 거 아잉게 괜히 이상한 마음 품지도 말고. 안 와도 돼.’
“미안해요.”
‘아녀. 끊어라.’
“네. 들어가세요.”
한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하염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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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어머니>”
“와 그리 놀라노?”
실라는 복규를 보며 싱긋 웃었다.
“내가 니 집에 와서 반찬 넣어주고 있는 거 몰랐던 것도 아이고. 이리 놀랄 이유 하나 없지 않나?”
“그래도 제가 있는 시간에는 오시지 않았으니까요. 이 시간에 제 집에 오는 건 또 처음이 아닌가요?”
“그란가?”
실라는 씩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반찬은 입에 맞나?”
“네.”
“그래 집에 들어올 생각은 없고?”
복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실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니 걱정이 된다.”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이리 말라서.”
실라는 복규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미안타.”
“어머니가 왜요?”
“내가 니 아버지에게 시집만 오지 않았으면 니가 이리 아버지랑 사이가 서묵하고 그러지는 않을 거 아이가? 내가 여 시집을 와서 니한테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괜히 너희 부자 사이 망치고 그런 것 같다.”
“아닙니다.”
복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때문 아니에요. 그리고 이제 저도 한두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아니고 그 집에 그냥 있을 이유 없잖아요. 다들 독립을 해야 하는 나이니까. 그래서 독립을 한 거니 어머니 마음 쓰지 마세요.”
“내 때문에 고생이다.”
실라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고였다.
“니 엄마 보고 싶제?”
“어머니.”
“아니라 하지 마라.”
실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뭐 모를 거라고 생각을 하나? 니가 그 여자에게 조금 더 잘 해라. 그 여자가 자꾸 한나 찾아오는 모양이더라.”
“뭐라고요?”
“화 내지 말고.”
복규가 발끈하자 실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복규의 등을 가만히 토닥이더니 다시 반찬 정리를 시작했다.
“가랑 결혼할 기가?”
“아직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결혼해라.”
“네?”
“좋더라.”
실라의 말에 복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보기에 그렇게 니한테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니 그 지랄 맞은 성격 도대체 누가 받아줄 수 있겠노?”
“어머니.”
“사실이다.”
복규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서 멍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제가 잘못 산 건가요?”
“와?”
“그런데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요?”
“다들 그리 고생하고 산다.”
실라는 덤덤히 대답하며 오디즙을 물에 타서 복규에게 건넸다.
“시원하게 마시라.”
“어머니.”
“와?”
“감사합니다.”
실라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복규가 다 마신 잔을 들고 가서 바로 싱크대에서 씻어 뒤집었다.
“니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못 되게 굴지 말고. 그 양반이 되게 사나워 보이기는 해도 착한 사람이다.”
“알고 있습니다.”
“알면 더 잘 해라.”
복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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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잠이 들었던 건지? 창가에 마지막 노을이 붉게 지고 있었다. 그 붉은 노을에 한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뭐 하나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그녀가 겪는 모든 것들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것 정도였다. 그녀가 무언가를 노력해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었다. 한나는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한참 울이서 목이 아팠다. 벨이 울리고 전화를 받았다.
“오복규 씨.”
‘목소리가 왜 그래요?’
“아, 잤어요.”
“피곤해요?”
‘아니요. 지금 일어났어.’
“내가 깨운 건 아니죠?”
‘아니에요.“
한나는 이리저리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마침 벨이 울렸다.
“잠시만요.”
한나가 전화를 끊고 현관이 나가 문을 열었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복규가 그녀를 확 끌어안았다.
“미안합니다.”
“오복규 씨.”
“어머니 만났다고요.”
“그건.”
“아프게 했을 거 압니다.”
복규는 가만히 한나의 등을 토닥였다.
“그 사람이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러는 거 되게 잘 하는 사람입니다.”
“괜찮아요. 아무리 그래도 오복규 씨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으니까. 미워하지는 않아요.”
“고맙습니다.”
복규는 몸을 살짝 떨어뜨리고 한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따뜻하고 뜨겁게.
“우리 어디 나갈까요?”
“어디요?”
“데이트.”
“음. 좋아요. 잠시만요.”
한나는 생긋 웃으며 방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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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김한나 아니야?”
“그러게.”
밥을 먹던 한나의 얼굴이 굳었다.
“저거 뻔뻔하네.”
“그런 막말을 하고.”
“요즘 방송도 다시 하더라.”
“역겨워.”
한나는 꾸역꾸역 입에 밥을 밀어넣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하나도 듣고 싶지 않았다. 복규는 얼굴이 굳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복규 씨 하지 마요.”
“미안합니다.”
“오복규 씨.”
한나는 복규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리 영화 보러 가자. 시간 다 되었잖아.”
“하지만.”
“괜찮아요.”
한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을 욕하던 사내들의 테이블에 다가갔다. 사내들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사내들은 놀란 모양이었다.
“김한나라고 합니다. 저 아시죠?”
“그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한나는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제 프로그램을 챙겨봐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되게 묘하네요. 그래도 봐주신다는 것은 감사한 거니까요.”
“그게.”
“제가 계산하고 갈게요. 많이 드세요.”
한나는 일부러 씩씩하게 웃으면서 카운터로 가서 카드를 내밀었다. 속상했지만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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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까?”
“그럼요.”
한나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런 사람이 많습니까?”
“없지는 않죠?”
“그럼요.”
한나는 씩씩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 사람들이 나에게 저런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도 김한나 씨에게 이런 식으로 퍼붓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저 사람들 잘못도 아니죠.”
한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복규의 손을 잡았다. 복규는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사람이 아프면 그냥 아프다고 이야기를 해도 되는 겁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 피하기만 할 이유 하나도 없다 이 말입니다. 왜 사람이 힘들면서 입을 꾹 다무는 겁니까?”
“버릇이에요.”
“김한나 씨. 그런 버릇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게요. 되게 나쁜 버릇인 건 알지만 안 바뀌네요.”
한나는 복규의 손을 꽉 잡았다. 그녀의 가느다란 떨림에 복규는 한숨을 토하면서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영화보고 기분 좀 풀어요.”
“당연하죠. 나 우울한 거 그렇게 오래 안 가져가요.”
한나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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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오늘 놀랐죠?”
“아니요.”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길 한나는 복규의 허벅지에 손을 얹었다.
“고마워요.”
“뭐가요?”
“내 편이 되어줘서.”
“당연한 거 아닙니ᄁᆞ?”
“그런가?”
“아무리 그래도 내가 당신하고 사귀는 사이인데 이 정도 편은 들어야죠. 이건 뭐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내 편을 들어주기 마냥 쉽지 않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 고마워요.”
복규는 그런 한나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김한나 씨.”
“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에게 말해요. 내가 무조건 당신의 편이 되어줄 테니까요. 겁을 내거나 그럴 이유 하나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당신의 편이 될 겁니다. 그러니 나에게 다 말해요.”
“고마워요.”
복규는 한나의 손에 깍지를 꼈다. 그 든든함에 한나는 포근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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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갔다가 갈래요?”
“네?”
“들어갔다가 가요.”
복규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한나는 문을 열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집에 들어가니 한나는 레몬을 썬 것을 띄운 탄산수를 건넸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복규는 먼저 한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따뜻한 키스. 단추를 풀고 한나는 잠시 몸을 빼낸 후 에어컨을 켜고 두꺼운 커튼을 쳤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복규를 바라봤다. 복규는 상의를 벗은 후 한나를 응시했다. 모든 것을 다 삼킬 것처럼 깊은 키스. 서로의 숨결이 섞이고 타액이 섞이고 한나늰 복규의 바지춤을 더듬거렸다. 복규는 그대로 한나를 카우치에 넘어뜨리고 블라우스를 벗겼다. 젖가슴을 부드럽게 애무하며 속옷에서 해방시켰다. 탐스러운 유두는 꼿꼿했고 복규는 한나의 유두를 가볍게 꼬집었다. 한나의 입에서 탄성이 터지고 허리가 뒤로 살짝 움직이는 순간 복규는 그녀의 매끄러운 등을 타고 흘렀다. 두 사람은 다급히 서로의 바지와 남은 옷가지를 모두 벗었다. 나체로 된 한나의 몸을 복규는 천천히 핥아 내려갔다. 한나 특유의 체취. 복규는 손을 내밀어 한나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깍지를 끼고 복규는 천천히 한나의 다리 사이로 향했다. 고개를 묻고 혀로 조심스럽게 그곳을 자극했다. 한나의 입에서 탄성이 터지고 꽉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복규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위로 와서 한나에게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 한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복규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안으로 들어섰다. 뜨겁고 좁은 안에 두 사람은 쾌감을 느꼈다. 서로의 육체를 느끼며 천천히 몸이 움직였다. 뜨겁고 아찔하게. 서로의 교성이 점점 더 커지고 서로의 향에 서서히 젖어들었다. 서로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한나는 복규의 위에 올라섰다. 서로를 느끼며 더 뜨겁게. 한나는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그대로 비명을 질렀다. 복규 역시 끙 하는 소리를 내면서 무너지는 한나를 꼭 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그런 연인들의 수줍음처럼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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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어요?”
“몇 시에요?”
“네 시요.”
“뭐야?”
한나는 울상을 지으며 베개로 얼굴을 가렸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요?”
“하우스에 가야 하거든요.”
‘같이 가요?“
“아니요.”
복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녀올게요.”
“올 거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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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어제 어디 갔나?”
“뭐가?”
“집에 안 들어왔던데.”
복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득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한나 씨랑 있었나?”
“조용히 좀 해라.”
“이기 뭔 일이고?”
득수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 안 사귄다고 하지 않았나?”
“이제 사귄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고 하디마. 오복규 니가 이랄 줄은 내 진짜로 몰랐다.”
“내가 뭐?”
“하여간 순진한 척은 다 하고.”
“일이나 해라.”
“내가 지금 일이 되겠나?”
득수는 씩 웃으면서 눈치를 살폈다.
“그래서 좋았나?”
“햄.”
“와?”
“닥치고 일이나 해라.”
“하여간 응큼시러버라.”
복규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득수에게 걸린 것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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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어요?”
“네. 오복규씨는 늘 그렇게 일찍 나가요?”
“아무래도요?”
아침에 작업한 참외를 들고 오는 복규를 보며 한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가 절대로 따라가지 못할 부지런함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일을 하지?”
“못할 것은 또 뭐예요?”
“그래도요. 대단하네.”
한나는 입을 내밀고 자리에 일어났다.
“그런데 왜 왔어요?”
“오라면서요?”
“그래도요. 나 어차피 출근해야 하는데.”
“내가 데려다 줄게요.”
“안 그래도 되거든요. 요 앞에서 버스 타면 바로 방송국에 가는데 뭐 하려고 그렇게 고생을 해요?”
“그래도 명색이 내가 남자친구라는 사람인데 이 정도 일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려운 것도 아닌데.”
“안 어려운가?”
“그럼요.”
복규는 씩 웃으면서 부엌에 섰다.
“일단 아침부터 들어요.”
“오복규 씨가 해주는 거예요?”
“당연하죠.”
“대단한데?”
냉장고를 연 복규가 살짝 굳었다.
“반찬 어디에 있습니까?”
“아, 다 먹고 위에 빈 통 씻어놨어요.”
“그걸 다 먹었어요?”
“그럼요.”
복규는 어색한 표정으로 한나를 바라봤다. 반찬을 주기는 했지만 한나가 정말로 그것들을 먹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을 위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 사람은 달랐다.
“버린 거 아니죠?”
“그 맛있는 걸 왜 버려요?”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 있는 거 알아요?”
“네?”
“고마워요.”
복규는 성큼성큼 한나에게 와서 꽉 안았다.
“정말 고마워요.”
“오복규 씨.”
“어머니 반찬 다 먹어줘서 고마워요.”
복규의 눈물이 목덜미에 떨어지자 한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복규의 허리를 꽉 안았다. 그리고 가볍게 배에 얼굴을 부볐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래요? 어머니 반찬 정말 좋아요. 그거 버릴 이유 하나 없고. 앞으로도 계속 먹게 해주는 거죠?”
“당연하죠.”
복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계속 먹게 해줄게요. 당신이 이제 질린다. 그만. 그렇게 말을 할 때까지 해줄게요.”
“하나도 안 질려. 하나도.”
복규는 허리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눈물 맛 짭짤한 키스. 두 사람의 위로 투명한 아침 햇살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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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식사를 준비하던 실라의 몸이 굳었다.
“어?”
“밥 먹으러 왔어요.”
필강도 놀란 눈치였다.
“그러니까.”
“제 여자친구입니다.”
한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집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아침 좀 먹으려고요.”
“어머니. 어머니 반찬 다 먹었더라고요.”
“어?”
“제가 김한나 씨에게 어머니 반찬 주면서 프러포즈 했거든요. 사귀어달라고. 그런데 그거 맛있다고 다 먹었더라고요.”
“그래?”
“네.”
복규는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빼주었다. 한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필강은 멍한 표정이었다.
“아가씨는?”
“김한나라고 합니다.”
한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오복규 씨랑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참외?”
“아니요. 복규 방송.”
“아. 그 아가씨.”
필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네.”
“아침부터 불쑥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이런 식으로 인사드리고 하면 안 되는 건데. 다음에 제대로 오겠습니다.”
“뭘 그래? 나는 이미 두 번이나 봤었으면서.”
“자네는 두 번이나 봤어?”
“그렇게 됐네요.”
한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실라는 흐뭇한 표정으로 한나에게 밥을 차렸다.
“많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얼른 먹어요.”
“네.”
한나는 따뜻한 시선을 느끼며 식사를 시작했다. 다소 불편하기는 했지만 누군가와 이렇게 떠들면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다. 정말 가족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감이 잡히는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밥 먹으러 자주 와요.”
“네. 자주 올게요.”
실라는 한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복규도 번갈아 바라봤다. 한나에게 생선 살을 발라주는 복규를 보며 필강 역시 먹먹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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