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장. 위로
“라디오 반응이 좋아.”
“정말로요?”
“그래.”
국장의 칭찬에 한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직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요.”
“일주일이면 답 다 나온 거야. 채송아보다도 네가 더 잘 한다고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 잘 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한나는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국장실을 나섰다. 송아의 얼굴이 구겨진 것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기분 좋니?”
“네?”
자리에 앉으니 송아의 가시 돋힌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지금 선배 엿 먹이고 행복하냐고?”
“선배님.”
송아의 날이 선 목소리에 한나는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송아가 대놓고 이야기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그녀였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저는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한 건데요?”
“너 되게 뻔뻔하네.”
송아는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타임 들어가겠다고 네가 설친 거잖아.”
“네?”
“나는 청취율도 안 나오는 거 보내고. 네가 그런 거잖아.”
“선배님.”
“국장하고 무슨 사이니?”
“그게 무슨?”
“잤니?”
한나의 몸이 떨렸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국장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 송아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국장님께까지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지나쳐? 왜 같이 자는 사람에게 그런 소리를 하니까 괜히 기분이 나쁘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니? 어디까지 갔니?”
“선배님. 저랑 국장님 절대로 그런 사이 아닙니다.”
한나는 애써 화를 참으며 차근차근 대답했다. 여기에서 같이 화를 낸다면 결국 같은 사람이란 이야기였다.
“오히려 선배님께서 제가 하기로 한 시간에 들어가시기로 하면서 제 프로그램 가져가신 거였잖아요. 안 그런가요?”
“내가 언제 네 시간을 가져가?”
“잘 하시던 라디오 내려놓은 것은 선배님이세요. 그래놓고 대타로 들어간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건데요?”
“너 되게 뻔뻔하다.”
“그만들 두세요. 왜 그러세요?”
요즘 들어서 한나와 친하게 지내는 후배 아나운서가 두 사람을 말리려고 들었지만 송아는 오히려 그녀에게 눈을 크게 떴다.
“너야 말로 지금 태도 똑바로 해.”
“제가 도대체 뭘 어떻게 했는데 그러세요?”
“너야 말로 김한나 밀어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제가 도대체 언제 그랬다고요? 선배님이야 말로 한나 선배 좀 그만 미워하시면 안 되는 건가요?”
“내가 뭐?”
“두 사람 다 그만.”
한나는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만일 선배님이 지금 시간으로 다시 들어오고 싶다면 제가 또 빠지겠습니다. 대신 그 빈 자리 제가 채울 거예요.”
“너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거니? 도대체 왜 내가 비우는 자리마다 나를 따라다니면서 엿을 먹이는 건데?”
“선배님이야 말로 버린 자리에까지 왜 그렇게 연연하시는 건데요? 어차피 안 하기로 한 거 그냥 제가 하면 안 되는 건가요? 하기 싫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 자리까지 제가 하면 안 되는 건가요?”
“뭐라고? 지금 무슨?”
“저는 방송 하고 싶어요.”
한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머리를 뒤로 넘겼다. 더 이상 순하게. 그리고 바보처럼 살 수 없었다.
“저 욕하는 거 들었습니다.”
“내가 언제 네 욕을 한다고 그래?”
“지금 제 이미지 선배가 만드신 거죠.”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언제 그랬어?”
송아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동료들의 차가운 눈에 고개를 저었다.
“나 그러지 않았어. 다들 나에게 왜 그래? 내가 김한나가 뭐가 부러워서 그럴 거라는 거야? 안 그래? 그렇잖아.”
“그러게요. 저에게 부러울 것이 하나 없으셔야 하는 분인데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렇게도 선배님에게 부족했던 건가요? 그 동영상도 선배가 부탁을 한 거라면서요?”
“뭐라고? 그게 무슨?”
송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한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귀찮았다.
“저는 선배님에게 아무런 마음도 없어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거 그러니까 제발 저 좀 괴롭히지 마세요. 어차피 선배님이 해야 하는 일은 선배님이 할 수밖에 없고 제가 해야 하는 일은 그런 거니까요.”
“김한나 너 미친 거야?”
송아가 손을 올리고 한나의 고개가 돌아갔다. 짝 하는 소리가 아나운서 실 가득 퍼졌지만 한나는 덤덤했다.
“이제 다 끝이 나신 건가요?”
“뭐, 뭐라고?”
“저를 질투하시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행동은 선배님에게 하나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김한나.”
“제 힘으로 왔어요.”
한나는 힘을 주어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선배가 보시기에는 그냥 운이 좋은 애로 보이시겠죠. 하지만 아니에요. 저는 성주에 가서도 무조건 뛰어다녔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거죠? 제가 정말 좋아했던 분이라서 지금 이러는 거 더 화가 나고 속상하네요.”
“김한나 너 정말.”
“할 말 더 있으세요?”
한나의 차가운 물음에 송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한나는 한숨을 토해내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아나운서 동료들을 바라봤다.
“오늘 일 그냥 여기에서 덮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우리 한 식구니까요. 그럼 저는 밥 좀 먹고 올게요. 가자.”
“네? 네.”
후배 아나운서는 한나와 같이 아나운서 실을 나섰다. 송아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한나의 뒤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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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일 좀 쉬라니까.”
“내가 우예 쉬노?”
“그러다 죽는다. 안 카나?”
“어차피 죽을 노인네다.”
태민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할매. 내 귀엽다매. 손주 같다매.”
“그랬제.”
“그라니 손주 말 좀 들어라. 알겠제?”
“일단 생각 좀 해보고.”
“할매.”
“알았다.”
할머니의 투정에 태민은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처방은 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다들 약을 원했지만 그런 것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나가고 복규가 들어왔다.
“왔어요?‘
“이제 사투리 그럭저럭 하네요?”
“나름 들리는 것이 있어서요.”
태민은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딱딱하게 서울말로 하는 것보다는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뭐 환자들도 좋아하니 그걸로 된 거죠.”
“잘 지내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허리는요?”
“좀 괜찮습니다.”
“일 안 하면 낫겠죠.”
“그래도 일을 해야죠.”
복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남기로 했습니다.”
“네?”
“거기에 가서 할 일이 없어서요.”
“하지만.”
“김한나 씨랑 이야기를 한 겁니다.”
복규의 대답에 잠시 머뭇거리던 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장거리 연애가 그다지 쉽지는 않을 걸요. 특히나 한나 누나는 에쁜 사람이니까 더더욱 그럴 거고요.”
“그건 김한나 씨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도 이 지역에서는 나람 먹히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말입니다.”
“아우 대단해요.”
태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너무 무리하지 마요. 지난 번 말씀을 드린 것처럼 지금 당장은 낫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차도가 보이는 것 같지만 곧 다시 무리가 되고 그럴 테니까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거 아시죠?”
“알겠습니다.”
복규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틱틱거리고 잔소리도 많지만 자신을 챙겨주는 태민에 고마운 마음이 드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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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모르겠다.”
아침 라디오를 하는 덕분에 퇴근 시간도 일러져서 이것저것 공부하려고 했지만 머리만 더 아픈 한나였다.
“정말 싫다.”
아무 내용도 들어오지 않고 우울해서 책을 얼굴에 덮고 누웠다. 그리고 손으로 더듬거려서 전화기를 품에 가져왔다.
“전화 와라. 와라.”
그리고 거짓말처럼 벨이 울렸다. 설레는 마음에 액정을 확인한 한나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망할 스팸.”
한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무슨 남자가 먼저 전화도 안 하고.”
한나는 엎드려서 입을 내밀었다. 그리고 액정을 톡톡 두드려서 켰다가, 다시 두드려서 끄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복규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스피커 버튼을 누르고 입을 내밀었다.
‘한나 씨.’
“무슨 남자가 그래요?”
‘네?’
한나의 투정에 복규가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왜 그럽니까?’
“아니 무슨 남자가 여자가 먼저 연락을 하기 전까지 연락도 한 번 안 하고. 나 정말로 좋아하는 거 맞아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지난 번에도 말을 한 것처럼 괜히 김한나 씨가 바쁜데 내가 방해나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그렇습니다. 김한나 씨는 자기 할 일 다 하고 나에게 전화를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서운하다고요.”
‘뭐가요?’
“전부 다요.”
‘거기로 갈까요?’
“아니요.”
한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복규의 목소리를 들으니 서운한 마음도 모두 다 눈이 녹듯 사라졌다.
“기분 좋다. 그냥 오복규 씨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오늘 회사에서 또 한 번 제대로 엎었거든요.”
‘그러다 친구 없겠습니다.’
“원래 없어요.”
‘내가 유일한 친구입니까?’
“네.”
‘그거 기분 좋네요.’
“성격이 완전 삐뚤어진 여자를 좋아하는 게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요? 나는 되게 미안하고 그런데요.”
‘그래도요. 내가 정말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김한나 씨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습니다.’
한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전에 다시 연락할게요.”
‘열 시 내가 먼저 할게요.’
“기다릴게요.”
‘알겠습니다.’
한나는 전화를 끊고 품에 전화기를 꼭 안았다. 전화기에서 마치 복규의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기분이 들어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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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왜 보자고 한 거야?”
“돈입니다.”
은숙은 복규가 내미는 돈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왜?”
“제가 드린다고 했잖아요.”
“아들.”
“어차피 어머니랑 같이 살지 않을 겁니다. 저에게는 지금 어머니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걸로 새롭게 생활을 하세요.”
“이 돈 못 받아.”
“왜요?”
“네 아버지가 줬어.”
“그래도 받으세요.”
복규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그 돈. 모자라실 겁니다. 어디에 가서 장사라도 하고 그러시려먼 이 정도 돈이 필요할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아들 돈을 어떻게 받아?”
“제발 이 돈 받고 가주세요.”
복규의 목소리에 울음이 살짝 섞였다.
“제발 제가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어머니가 되시면 안 되는 겁니까? 꼭 이렇게 사셔야 하는 겁니까?”
“아들.”
“저는 정말로 어머니를 존경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손벌리고 사시지 마시고 제대로 살아보세요. 그런 거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분 아닙니까? 저는 믿습니다.”
“그래.”
은숙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아들과 헤어진 남편에게 손을 벌린다는 것이 너무 우스운 일이었다.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듣기 싫어요.”
“들어.”
은숙의 단호함에 복규는 그녀를 바라봤다. 은숙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혀로 입술을 축였다.
“잘 살고 싶었어. 그런데 여기는 정말 아니더라. 시골이고. 내가 절대로 살 수가 없는 곳이었어. 게다가 네 아버지 그다지 다정한 성격도 아니잖아. 그래서 다정한 사람이 그리웠고 그래서 떠났어. 어린 너를 두고 가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지만 나도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으니까. 내가 더 행복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 그런데 거기에서도 헛헛한 마음이 계속 드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해아 하는 건가? 그렇게 오랜 고민을 하고 나니 그래도 내 가족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그 순간에 내가 돌아오기는 너무 늦은 거잖아. 안 그러니? 그러기에는 너무 늦어서 그냥 참고 살았어. 그리고 이 나이가 되어서 겨우 떠나려고 하는데 그나마도 버림을 받았네? 제대로 된 사랑을 한 적도 없어. 그 남자는 우울해하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동정이라도 하라는 겁니까?”
“아니.”
복규의 물음에 은숙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동정이나 그러한 것. 전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은 싫었다.
“되게 뻔뻔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제 너도 어른이니까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라는 거야.”
“어머니.”
“알아.”
은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
“이해는 합니다. 머리로는.”
복규는 힘없이 말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들로는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은 용서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니까요. 죄송합니다.”
“아니야.”
은숙은 통장을 가방에 넣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남은 커피를 마시고 애써 미소를 지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먼저 가볼게.”
“모셔다 드릴게요.”
“아니야.”
은숙은 고개를 저었다. 복규의 이런 행동이 어떤 것인지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미워하지만 말아줘.”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조심히 가세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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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어머니 만났습니다.”
“그러나?”
실라는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드나?”
“그냥 잘 지내십니다.”
“그래?”
“오늘 돈 드렸습니다.”
걸레질을 하던 실라가 잠시 멈추더니 미소를 지었다.
“잘 했다.”
“다시는 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봐야 다시 돌아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랬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할 것 같아서. 그 사람 만난 것이 덜 죄송할 것 같아서.”
“그게 왜 미안하노?”
실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니 엄마다.”
“그래도요.”
“내는 하나도 안 원망스럽다.”
“감사해요.”
복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동안 이런 실라를 두고 밖으로만 돈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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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는 저랑 만나지 말자고 했습니다.”
‘괜찮겠어요?’
“네.”
한나에게 이야기를 하니 이 모든 일이 현실로 느껴졌다. 조금이나마 잡히는 이 감각. 하지만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죽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뭐라고 하세요?’
“아니요.”
‘빨리 내려가야겠다.’
“그렇게 빠르게 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금요일 오후에 내려갈 거예요. 아침 라디오를 해서 퇴근 시간이 조금 빠른 편이거든요. 마중 나올 거죠?’
“대구로 갈까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럼요. 그리고 그 편이 KTX를 타고 오니까 조금 더 빠르게 만날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더 기분이 좋습니다.”
한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빠르게 만나고 싶다는 설렘. 너무나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빨리 가고 싶어요. 그럼 잘 자요. 오늘 힘든 일 했는데.”
‘미안해요.’
“뭐가 또 미안해요?”
‘밤에 통화하기로 해놓고 이렇게 끊으니까요.’
“아니에요. 들어가요.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요.’
한나는 전화를 끊고 고개를 끄덕였다. 복규가 조금이나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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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라디오 다시 제가 할게요.”
“뭐라고?”
출근한 한나의 얼굴이 굳었다. 송아는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국장에게 말을 이어갔다. 한나는 그녀의 곁에 섰다.
“선배님 지금 뭐 하시자는 거죠?”
“뭐가?”
“선배님.”
“어차피 그거 내 라디오였잖아.”
송아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내 시간을 도로 가지고 온다는데 너야 말로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원래 시간 돌아오는 게 싫은 거야?”
“그건.”
한나는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송아가 왜 자신에게 이러는 건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그 신간 싫다고 그만 두신 거잖아요. 그런데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건데요? 이해가 안 되는 걸요?”
“둘 다 그만해.”
국장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채송아 장난해?”
“국장님.”
“네가 그만 둔다고 한 거야.”
“하지만.”
“그런데 다시 들어간다고?”
국장은 소리가 나게 책상을 내리쳤다.
“지금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하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가? 나는 절대로 아니야.”
“하지만 그쪽이 청취율이 더 잘 나오는 쪽이라는 거 국장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지금 후임 DJ를 구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더라고요. 저는 그렇다면 그 시간 다시 가고 싶어요.”
“채송아.”
“국장님. 부탁드립니다.”
“안 돼.”
국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쇼를 하는 것을 그가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 사이의 일은 두 사람이 해결을 했으면 좋겠어. 여기에서 이러지 말고.”
“국장님은 왜 한나만 편드시는 거죠?”
“뭐라고?”
국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채송아. 네가 무슨 중학교 여자 아이도 아니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언제 그랬다는 건데?”
“늘 그러시잖아요.”
“선배님.”
“이거 놔.”
한나가 자신을 말리기 위해서 손을 잡자 송아는 거칠게 뿌리쳤다. 한나는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파면이 되어야 하는 아나운서를 지키고 어떻게 해서라도 남기려고 하신 것이 국장님이시잖아요.”
“그럼 너는 같은 식구를 그냥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게 더 우스운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나가야 하는 거죠. 우리 아나운서의 이름에 먹칠을 했잖아요.”
“지금 네 행동이 그래.”
“국장님.”
“유치하게 말이야.”
국장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 사이의 일은 두 사람이 다 끝을 내. 괜히 나에게 뭐라고 하고 있어.”
“국장님 되게 이상한 거 아세요?”
“뭐라고?”
“얘랑 자기라도 하셨나요?”
“선배.”
“채송아.”
“그러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거죠.”
송아의 말에 국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송아는 주먹을 세게 쥐고 국장을 노려봤다.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뭐라고?”
“선배인 저를 청취율이 더 나오지 않는 쪽으로 치워버리고 김한나에게 더 좋은 시간 주신 거 해명하셔야 할 겁니다.”
“아니 그건.”
“아니요.”
송아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냥 일방적으로 당한 겁니다.”
“뭐라는 거야?”
“그럼 가보겠습니다.”
송아는 그대로 국장실을 나가버렸다. 국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국장님 괜찮으세요?”
“저거 왜 저래?”
“저를 별로 안 좋아하시는 모양이에요.”
“그래도 그렇지.”
국장은 넥타이를 살짝 풀며 고개를 저었다.
“저거 미친 거야.”
“그냥 두세요. 요즘 반응 안 좋아서 속상해하는 것 같던데.”
한나는 자신도 놀랐으면서 애써 마음을 눌렀다. 송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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