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이 원고는 어렵겠는데요?”
“그런가요?”
“네. 어딘가에서 본 것 같고.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고요.”
분명히 담당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태현의 가슴에는 쿡쿡 박히는 말들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담당자의 이야기는 그가 더 이상 새로운 글을 쓰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좀 쉬는 거 어떠세요?”
“네?”
“아니. 그 동안 작가님 너무 열심히 달리기만 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글도 조금 덜 써지고요.”
“아닙니다.”
태현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장르 소설이었다. 이쪽에서는 조금만 늦더라도 금방 잊힐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꾸준히 노크를 하는 거였다.
“그 동안 제 작품 안 팔린 거 아니잖아요.”
“그래도 작가님.”
“제대로 된 거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럼 연재는 어떠세요?”
“네?”
“연재를 해보시라고요.”
태현은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자신의 글을 그날그날 써서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다는 것 썩 유쾌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제가 다른 장르 소설 작가들에 비해서 잘 팔리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런데 요즘 저희가 작가님이 생각하는 거랑 조금 다른 시장으로 가고 있어서 말씀 드리는 거예요.”
“그래도 이건.”
“그럼 저희는 더 이상 일할 수 없습니다.”
담당자의 단호함에 태현은 멍해졌다. 그 동안 무조건 그의 편이던 사람이 이리도 달라질 수도 있었다.
“제 책이 안 팔리기는 안 팔리는 거군요.”
“작가님 그런 게 아니라.”
“알겠습니다.”
태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자존심을 구겨가면서 여기에 있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지금도 다른 출판사에서는 그에게 책을 내달라고 부탁을 하는 곳이 있으니 그리로 가면 되는 거였다.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문이 그대로 그의 면전에서 닫혔다.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전에는 그에게 원고를 달라고 그리 부탁을 하던 출판사가 이리 달라질 수가 있나? 싶었다. 태현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입에 담배를 물었다.
“정태현 인생 왜 이렇게 된 거야?”
한 대를 다 피우고 나서도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담배를 사러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가서 대충 지폐를 던지고 섰다.
“1미리 하나 주세요.”
“어떤 거 1미리요?”
“아니 다들 피는 그런.”
태현이 확 짜증을 내며 고개를 드는 순간 그녀가 다시 보였다.
“아까 그.”
“그 미친놈?”
“네?”
“담배 좀 피운다고 뭐라고 했다고 지금 내가 일하는 곳까지 쫓아와서 나 협박하려는 거예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태현은 당혹스러웠다. 이 여자가 지금 도대체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 게 아니면 지금 여기에서 뭐 하는 건데요?”
“그냥 길 가다가 담배 사러 왔습니다. 담배.”
“그쪽한테는 안 팔아요.”
“뭐라고요?”
“여기 제가 하는 가게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물건을 팔지 않을 권리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그냥 가세요.”
“이봐요.”
“어서오세요.”
다른 손님이 들어오자 유독 밝게 행동하는 그녀의 명찰을 유심하 바라봤다. 이우리? 이우리.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다시 뵙죠.”
“누굴 다시 봐요.”
태현은 돈을 다시 주머니에 대충 집어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우리. 이우리라.”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미친놈 아니야.”
“누가 미친놈이야?”
“아. 왔어?”
은우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편의점에 들어섰다.
“혼자서 왜 그렇게 열을 내고 그래? 오늘 편의점에서 진상손님 오고. 뭐 귀찮고 그랬던 거야?”
“아니.”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담배 좀 끄라고 했더니 우리 편의점까지 따라온 거 있지?”
“너 그런 거 하지 말라니까.”
“뭘?”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거든? 너 그러다가 무슨 해코지라도 당하고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누가 천하의 이나라를 건드리겠니? 이나라 건드리면 그 날로 그냥 콱. 끝이라는 거 다들 알고 있을 텐데.”
“하여간.”
“얼른 내놔.”
“맡겨놨네?”
“어.”
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학원에서 필기한 노트를 복사한 것을 건넸다. 나라는 요구르트 하나를 내밀며 눈을 찡긋했다.
“고맙다. 친구.”
“친구는 무슨. 내가 네 친구기는 하냐?”
“그럼 뭐냐?”
“내가 네 종이지. 종.”
“아유. 엄살은.”
나라는 입을 쭉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은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밝은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우리 태은우. 잘 했다. 잘 했어.”
“너 돈 아끼려고 하는 짠순이인 거 아니까. 내가 복사물 주는 거야. 나는 뭐 돈이 남아돌아서 학원을 다니는 줄 아냐? 그리고 너 이것만 봐서는 토익 성적 안 나올 걸? 강의를 좀 듣고 그래야.”
“팟캐스트 들어.”
“야. 그걸로.”
“됐습니다.”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안 그래도 없는 돈 그런 곳에까지 쓰고 싶지 않았다. 토익도 그나마 대학교에서 졸업을 하기 위해서 인증 목적으로 필요해서 하는 거였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너는 그래도 어머니랑 아버지랑 너 하나라서 걱정 없으시잖아. 두 분 다 회사 잘 다니시고.”
“너도 지금 가게 하잖아.”
“내 가게도 아니고요. 장사도 잘 안 됩니다.”
“야. 두 배는 남지 않냐?”
“인건비. 가맹비. 남는 거 하나 없어요.”
나라의 너스레에 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도시락 하나를 집어 들고 카드를 내밀었다.
“이 새끼가. 야. 카드 내밀면 수수료 내고. 통신료 내고 나면. 남는 거 하나도 없다고 몇 번을 말 하냐?”
“증정품 안 가져갈게.”
“그거 어차피 못 팔거든.”
나라는 바코드를 찍고 카드를 긁고 나서 증정품과 함께 폐기 김밥 몇 개를 은우의 손에 들려주었다.
“이게 뭐냐?”
“다 가지고 가서 먹으라고.”
“됐어.”
“됐기는. 너 용돈 받아서 살면서. 어머니 아버지한테 조금이라도 덜 부담을 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잔소리는.”
“잔소리가 아니라.”
“아무튼 고맙다.”
“나도 고마워서 해주는 거야.”
은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우리는 어디있어?”
“집에 있겠지? 왜?”
“아니. 두 사람 맞교대면. 이제 너 퇴근하고 우리가 출근하고. 뭐 그래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 싶어서.”
“네가 이우리 성격을 모르니? 어쩌면 나랑 쌍둥이라고 하면서 뭐가 그렇게 게으른 건지 모르겠어.”
“너 또 내 욕했지?”
“언니. 왔어.”
우리는 성큼성큼 다가와서 은우와 나라의 귀를 한껏 잡아당겼다.
“아. 이우리. 놔.”
“언니. 놔.”
“이것들이. 하여간 어릴 적부터 둘이서 나만 따 시키고. 야. 태은우. 너는 정말로 그러면 안 되는 거다.”
“내가 뭐?”
“너 초등학교 5학년 때 오줌 싸서 내가 너한테 내 체육복도 빌려주고 그랬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지.”
“그, 그게 언제적 소리냐?”
은우가 얼굴을 붉히자 나라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리고 유니폼을 벗어두고 카운터에서 나왔다.
“아무튼 언니 오늘은 제대로 왔네?”
“너 내일 토익이라며.”
“내일 모레.”
“뭐? 아이. 그럼 드라마 다 보고 나오는 건데. 나는 너 내일 토익 보는 줄 알고 괜히 지금 왔잖아. 아니. 내일 모레면. 내일 모레라고 이야기를 하지. 너는 왜 사람을 이렇게 바보로 만드냐?”
“언니가 그런 거지. 아무튼 나는 퇴근합니다.”
“그래.”
====
“우리는 뭐 아침 일곱 시 다 되어서 너랑 바꿔주러 오면서 토익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냐? 너 이래서 토익 볼 수 있겠어?”
“응. 볼 수 있어.”
“내일 내가 대신 할까?”
“너도 토익 보러 가기로 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나라는 자신의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씩 웃었다.
“어차피 토익 시험. 그거 정신력이야. 정신력. 나 수능 대박 난 거 너도 알고 있잖아. 내가 원래 실전에 강한 타입이다. 알지?”
“아. 예. 알고 있습니다. 실전에 강한 타입이시라는 거. 그런데 그 실전 너무 강해도 별로 쓸모도 없다.”
“나는 550점만 넘으면 돼. 네가 그랬잖아. 그건 그냥 공부 대충 해도 다들 나오는 성적이라고.”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데 뭐가 걱정이야?”
“그래도 너 알바를 구하거나 문을 닫거나. 그러는 게 더 나을 거 같다. 아니면 우리에게 좀 부탁을 하던가.”
“이우리한테?”
나라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태은우. 너는 그렇게 우리를 겪고도 모르니? 이우리가 순순히 내가 부탁한 일을 해줄 것 같아?”
“안 그래도.”
“됐어. 그냥 내가 조금 힘들고 말래.”
나라는 이리저리 기지개를 켜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거 귀찮잖아.”
“아무튼 나는 모르겠다.”
“그래. 네가 알아달라고 한 적 하나도 없다. 그럼 들어가. 은우야. 오늘 정말로 고마웠어. 진짜 고마워.”
“응. 들어가.”
은우는 나라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나라. 너는 왜 이렇게 둔하냐.”
은우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어때?”
“겨우 이거 보여주려고 지금 보자고 한 거냐?”
“뭐?”
“네 소설하고 똑같잖아.”
우석의 심드렁한 반응에 태현은 멍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까칠한 아가씨가 인턴인데 재벌 2세랑 로맨스를 한다. 뭐. 대충 그런 거 쓰는 거 아니야?”
“아니.”
“아니야?”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우석이 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들으니 되게 충격이었다.
“뭐. 네가 쓰는 로맨스라는 게 크게 변주가 있을 수 없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너 너무 편하게 쓰는 거 아니냐? 비슷하게만. 뭔가 조금 심심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아무튼 뭐 그런 생각이 든다.”
“너는 내 친구 아니냐?”
“뭐가?”
“친구면 내 편을 들어야지.”
“친구라고 무조건 네 편을 들라는 것도 우습지 않아?”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석의 말이 옳았다. 친구라는 이유로 무조건 그의 편을 들 이유도 없었다.
“나 그럼 간다.”
“너 지금 뭐 서운하거나 그런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니야.”
“나중에 나한테 뭐라고 하기 없기.”
“알겠다.”
태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카페를 나섰다. 그리고 담배를 하나 피려고 하는데 그나마 글을 쓴다고 다 피워버린 후였다.
“젠장. 아까 거기를 또 가야 하나?”
분명히 자신을 보면 난리를 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시간을 보아하니 아직 편의점에 있을 리는 없었다.
“설마 없겠지?”
편의점에 들어간 태현의 얼굴이 굳었다. 이우리. 그 명찰을 단 그녀가 아직까지도 편의점에 있었다.
“저, 저기. 어.”
“네?”
우리는 고개를 갸웃하고 태현을 바라봤다.
“저기 그러니까.”
“아. 알바 구하러 오셨구나.”
“네?”
“편의점. 여기 완전 편해요. 저희가 야간 시급도 딱 챙겨드리거든요. 2주. 2주만 도와주시면 되는 거라서 사람이 안 와서 되게 걱정이었는데. 전에 다른 곳에서 편의점 알바 하신 경험은 있죠?”
“네? 네.”
태현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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