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퇴근 안 해요?”
“네.”
“왜요?”
“그냥 있고 싶어서요.”
태현의 능글거리는 대답에 나라는 입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저기요. 정태현 씨. 저는 지금 그쪽하고 장난을 한다거나 그럴 기분이 절대로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조금은 자제를 해주는 것이 어때요? 나는 그쪽하고 그냥 마음 편하게 있고 싶지 않거든요.”
“왜요?”
“네?”
“왜 그래야 하는 건데요?”
“아니. 그럼 우리가 왜 친해져야 하는 거죠.”
“같이 일을 하니까요.”
“아니요.”
태현의 능글맞은 태도에 나라는 단호히 제동을 걸고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태현은 입을 살짝 내밀었다.
“내가 그렇게 싫습니까?”
“누가 그렇대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그런 게 아니면 굳이 나를 밀어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서 하는 거죠. 그냥 친하게 지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우리 두 사람 그러기에는 너무 인연이 꼬이지 않았어요?”
“인연이요?”
태현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런 거 믿어요?”
“네?”
“나는 첫 인상을 안 믿어요.”
“아니.”
“첫 인상이라는 거. 막 긴장하고. 그거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거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에 어떤 인상으로 만나게 된 것인지. 그런 거 별로 안 따지면 안 되는 건가요? 그쪽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이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나라는 당혹스러웠다. 태현의 능글거림에 도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남자는 지금 자신을 완벽하게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니. 자신이 평소와 달랐다. 태현 앞에서는 너무 이상했다.
“그냥 퇴근 해요.”
“왜요?”
“아니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일을 하려고 하냐고요? 그거 되게 비효율적인 거라는 거 모르는 거예요? 추가 수당이 없을 때는 바로 퇴근하는 거. 그게 노동자의 당연한 본분이라고요.”
“노동자의 본분이라.”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재킷을 들고 손을 흔들었다.
“내일 봐요.”
“네 가세요.”
태현이 편의점을 나가고 나서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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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연재를 한다고?”
“응.”
“절대로 안 한다며?”
“그냥 하고 싶어졌어.”
우석의 물음에 태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에게 글을 매일 써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 기분이 들어서 아주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무조건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닐지 몰랐다. 게다가 매일 글을 조금이라도 써내려간다면 마감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버릇도 쉽게 고칠 수 있을 거였다.
“출판사에서도 내게 바란 게 그거고. 나도 새로운 출판사 찾고 그런 거 되게 귀찮고. 뭐 그래서.”
“너에 대한 대우가 별로라고 진작 그만 두고 싶어 했으면서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이해가 안 된다.”
“그러게.”
태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지금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뭐?”
“그냥 다 좋아.”
“뭐가?”
“하루하루가.”
“너 되게 이상하다.”
우석은 물끄러미 태현의 얼굴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랜 시간 태현을 봐왔지만 지금처럼 행동하는 그를 본 적이 없기에 낯설었다. 태현은 별 것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 동안 도대체 얼마나 미친놈처럼 지낸 거냐? 오랜 친구에게 그런 취급을 받을 정도면?”
“절대로 다른 사람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그런 쓰레기?”
“너 정말.”
“아니 사실이잖아.”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친한 친구까지 이렇게 말을 할 정도라면 자신은 정말로 인생을 잘못 산 것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취급까지 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달라지려고.”
“너 달라지면 사람이 죽는 거다.”
“그럼 죽지 뭐.”
“정태현.”
“알아.”
우석이 발끈하자 태현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별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너도 알고 있잖아. 내가 늘 소설을 쓸 때마다 뮤즈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거. 내가 지금 그 뮤즈를 찾은 거고. 그 뮤즈랑 이야기를 하고 같이 일을 하는 거. 그냥 이 정도라니까? 이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도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
“그런데 달라.”
“어?”
“지금은 그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우석은 얼음을 와드득와드득 씹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평소에 너는 그런 식으로 뮤즈를 말하지 않잖아?”
“왜? 나는 늘 사람을 보고 소설을 쓰는데.”
“아니.”
우석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모았다.
“그 동안 너는 소설 속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단 말이야. 누구로 인해서 그 소설 속의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 인물에 대해서만 이야기르 했다고. 이렇게 실제 모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일 극히 드물어. 아니 처음이야.”
“내가 그랬어?”
“설마 그 여자 좋아하냐?”
“어?”
“그럴 리가 없지.”
우석은 이내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현이 떠나고 나서 네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할 리가 없으니까.”
“지현이 이야기는 왜 하냐?”
“어?”
“젠장.”
태현의 얼굴이 구겨지자 우석은 입을 꾹 다물었다.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너를 되게 좋아하기는 하는데 가끔 그렇게 쓸 데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건 좀 심하다고 하지 않았냐?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람을 한 번씩 푹 하고 쑤시는 거냐? 너로 인해서 스트레스 받는 내가 웃기냐?”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그럼 뭔데?”
“미안하다.”
우석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모았다.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었다.
“가려고?”
“여기에서 뭐 더 하라고?”
“너 그런 식으로 가면 내가 뭐가 되냐?”
“아니다. 내가 속이 좁아서 그런 거다. 그냥 아직도 지현이 이야기만 하면 답답하고 그래서 그런 거야. 네 탓이 아니야. 아직도 털어내야 하는 사람을 털어내지 못한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그냥 신경 쓰지 마라.”
“같이 갈까?”
“아니.”
우석의 제안에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석과 같이 가면 더 기분이 묘해질 것 같았다.
“그럼 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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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되게 이상한 거 알지?”
“뭐가?”
“나에게 되게 친한 척을 하고 그런다?”
“어차피 같이 일을 할 거라면 그렇게 해도 되는 거 아니야? 굳이 원수를 지고 일을 할 이유는 없잖아.”
“아니.”
은우의 대답에 나라는 미간을 모았다.
“너는 누구 편이냐?”
“어?”
“아니, 유치하게 이런 걸로 편을 가르는 것도 이상하기는 한데. 그래도 너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지. 나는 네 친구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솔직히 네가 이해가 안 된다.”
은우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 지금 그 사람 너무 신경을 쓰고 있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말 그대로야.”
은우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라의 눈을 바라봤다.
“그 사람에 대해서 너무 생각하지 말라고. 네가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런저런 생각이 더 많이 들 테니까. 내가 보기에 그 사람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너랑 같이 일을 하는 사람. 그게 전부라고. 네가 자꾸만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고 있단 말이야. 내 말 알아 들어?”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해?”
“적어도 나랑 있을 때는 안 보이잖아.”
“아니.”
나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은우가 살짝 미간을 모으면서 입을 내미는 순간 나라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지금도 저기에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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