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담배를 피워도 속이 편해지지 않았다.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미 다 지워버린 이름이라고.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 이름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전히 자신에게 너무나도 큰 이름이었고.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름이었다.
“너무 싫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거였다. 무조건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던 사람이 자꾸만 그의 가슴을 쿡쿡 질렀다.
“김지현. 너는 도대체 뭐냐?”
담배 한 대를 아주 짧을 때까지 태운 이후 다시 한 대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려는 순간 나라가 보였다.
“저 여자가 여기에 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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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뭐 합니까?”
“그러는 그쪽은 여기에서 뭐 해요?”
나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막 이렇게 친한 척 하고 그럴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내가 지금 뭔가 오해를 하는 건가요?”
“왜 우리가 친한 척 하면 안 되는 사이입니까? 우리 이제 구면이니까. 여기에 앉아도 되는 거죠?”
“네? 네.”
태현의 기세에 은우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씩 웃으면서 은우의 옆에 앉았다.
“이거 완전 반갑네.”
“나는 지금 하나도 안 반갑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어때요? 그쪽하고 나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거든요?”
“이거 완전 서운하네.”
태현은 입을 쭉 내밀었다. 나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지금 저 제 친구랑 같이 밥을 먹는 게 안 보이나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막 앉을 수가 있어요?”
“내가 앉으면 안 되는 자리였습니까?”
“네? 그건 아닌데.”
“된 거죠?”
“나 참.”
은우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나라를 바라봤다. 나라는 입을 쭉 내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그쪽 나를 쫓아다니는 거 맞는 거죠? 아니. 나를 쫓아다니는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자주 마주할 수가 있어요?”
“혹시 이나라 씨 무슨 병이라도 있습니까?”
“네?”
“무슨 세상 남자가 다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아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겁니까?”
“아니 누가 그렇대요? 나는 정태현 씨가 자꾸 나랑 마주하고 그러니까. 그래서 하는 말이죠. 사람 괜히 이상하게 만들고 있어요.”
“그래요?”
태현은 씩 웃으면서 손을 들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시킨 이후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소설을 쓰거든요.”
“네?”
“그런데 요 근래 몇 편은 매너리즘에 빠진 것인지 별로 새로운 글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거라고요.”
음식이 나오고 태현은 앞 접시를 추가로 주문했다.
“그러니까 나를 그렇게 이상하게 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나라 씨에게 관심이 있어서 2주만 아르바이트 한다는 것에 응한 거 아니라고요. 그냥 그 정도 기간이면 나에게 충분한 자극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실제로도 충분히 자극이 되고 있고. 뭐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를 그쪽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정도 자극도 충분한 사람이거든요.”
종업원이 앞 접시를 가져다주고 태현은 음식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나라와 은우에게 건넸다. 그리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나이가 먹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이렇게 마른 거 보면 걱정스럽다니까?”
“마르지 않았습니다.”
“뭐.”
은우의 대답에 태현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러니까 이상하게 생각을 하지 말라고요. 나는 그냥 잘 챙겨주고 싶은 게 전부니까. 그리고 내가 살짝 능글거리는 거. 이거 뭐 작업을 걸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성격이 그래요. 나는 천성이 우울하고 그런 걸 못 견디거든요. 그리고 조용한 거 되게 싫어하고 그래요. 누가 하나 떠들었으면 하는 성격이거든요.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 같아. 그런 거 하나 아니라는 거 알면서도 늘 되게 불안하고 그런 거 있죠? 오히려 나는 친해지면 말을 더 안 하는 타입이니까. 혹시라도 우리 친해지게 되면 더 놀라게 될 겁니다.”
“아. 네.”
나라는 한숨을 내쉬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태현은 흐뭇한 표정을 표정을 지으며 나라를 바라봤다.
“언니랑 다른 거 알아요?”
“제가 언니랑 다르다고요? 쌍둥이가 무슨.”
“완전 달라요.”
태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에 있는 은우도 아직 저랑 언니 제대로 구분 못 하거든요. 그런데 무슨 그쪽이 나를 구분해요?”
“나도 구분해.”
“그리고 저도 구분합니다.”
발끈한 은우를 보며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나라 씨는 조금 더 밝다고 할까? 아무튼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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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잘 먹었습니다.”
“아니야.”
태현은 가볍게 은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가 친구보다 한참 나이가 많으니까. 말은 가볍게 놓을게? 뭐 그렇다고 기분 나쁜 거 아니죠?”
“아닙니다.”
은우는 태현이 자신보다 10살이나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어느 정도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그러실 수도 있는 거죠. 아니. 그래야 하는 거죠. 형이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시니까요. 당연한 겁니다.”
“너 지금 나 먹이는 거 같다.”
태현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나는 갑니다. 내일 아침에 봐요.”
“네. 가세요.”
태현이 멀어지고 나라는 한숨을 토해냈다.
“저 사람 도대체 뭐라니?”
“어?”
“도대체 왜 이렇게 나랑 친한 척을 하는 거냐고.”
나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자꾸만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사람. 그래서 불편하고 또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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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안개의 숲을 천천히 걸어갔다. 다른 누군가가 나를 구원하기를 바라는 순간 깨달았다. 이 상황에서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였다.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그제야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한없는 우울에 젖어드는가? 그 누구도 그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가? 저 멀리 그대를 향해서 손을 내미는 빛을 향해서 걸어가라. 그렇다면 그대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너무 딱딱하지 않나요?”
“그렇습니까?”
태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평소에 그가 쓰던 글의 스타일과 다르기는 했지만 바로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아니. 뭐.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쓰시는 것이 나쁜 건 아닌데요. 그래도 우리가 정태현 작가님에게 바라는 것들이 있잖아요. 롬내스. 그리고 서정 소설. 남자의 입장에 대해서 잘 써주시는 글. 이런 것들을 생각을 하는데 이런 글을 가지고 오시면 사실 저희 입장에서는 조금 당혹스러워요.”
“제가 등단한 사람인 건 아시죠?”
“알죠.”
편집장은 안경을 벗고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저희가 이 정도만 보고도 작가님하고 계약을 했지만 이번에는 작가님의 평소 스타일하고 다르니까 그러기 어려운 거 아시죠? 조금 더 써서 가지고 와주실 수 있나요? 그러면 더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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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써와라.”
테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물론 짧은 글만 읽은 채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닐 거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 동안 일을 한 것이 있는데 이리 단호하게 그를 자르는 것이 서운했다.
“정태현. 그래. 그 동안 잘 먹고 살았지. 이제 좀 고생하라는 이야기를 다들 하고 있는 모양이네.”
별 거 아니라고 생각을 하면 정말로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이었지만 한 번 마음으로 느끼니 커다란 일들이었다.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세상이 바라는 것 같아서 더욱 더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정태현 노력하자. 등단도 했는데 더 힘든 일이 도대체 뭐가 있다고. 노력하자. 제발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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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그 남자 어때?”
“누구?”
“알바.”
“그 사람?”
우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별 다른 생각이 없는데?”
“그래?”
“왜? 너는 그 사람 아직도 마음에 안 들어? 일 하는 거 보니까 그다지 나쁘지 않던 걸 뭐. 시재도 잘 맞추고. 청소도 완전 꼼꼼하게 하더라.”
“청소? 언니가 하는 거 아니었어?”
“미쳤니?”
나라의 말에 우리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오후에 편의점에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으면서 너는 지금 나보고 청소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니?”
“그러게.”
나라는 혀를 끌끌 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청소를 하거나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가 지금 언니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거네.”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뭐가?”
“나한테 불만이라도 있는 거야?”
나라는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굳이 우리랑 싸우고자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니야. 언니한테 뭐라고 하는 게. 그냥. 그냥 내가 힘들어서 그래.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
“지금 네가 하는 말은.”
“그만 하자고.
“너 지금 되게 예민하게 행동하고 있는 거 아냐고. 별 것 아닌 거야. 정말 별 거 아니라고. 그런데 왜 그렇게 이상하게 행동을 하는 거냐고. 너 그 남자에게 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 아니지?”
“그냥 꼬인 게 있어서 그래.”
나라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 남자를 알바로 고용하고 나서 너랑 나랑 다투는 것이 늘었어. 네가 정말로 싫다면. 내보낼게. 내가 미쳤다고 동생하고 싸움질까지 하면서 낯선 남자를 들여놓고. 그럴 이유 없는 거잖아.”
“아니야.”
우리의 말에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정말 별 거 아니었다. 아무렇지도 않을 수. 아니, 아무렇지도 않은 문제를 가지고 자신이 자꾸만 문제로 만드는 거였다.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지금 이상해서 그래. 내가 지금 막 마음이 꼬이고 그래서 그런 거니까.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너 지금 진짜로 이상해.”
“응.”
나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낯설게 행동하는 느낌이었다.
“나도 내가 되게 이상해.”
“이나라.”
“됐어.”
우리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언니한테 뭐라고 하는 거 아니야. 그냥 내가 너무 힘들어서. 이것저것 자꾸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런 일까지 생겨서 그런 거야. 누구 탓을 할 것도 아니고. 그냥 나 혼자서 알아서 하면 되는 거야.”
“그래.”
“그럼 나는 갈게.”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라가 너무 낯설었다. 그녀가 알고 있던 동생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나라가 너무 낯설었다.
“쟤 왜 저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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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는 겁니까?”
“네?”
“퇴근 하는 거예요?”
또 만났다. 또 만났다. 또 만나버렸다.
“정태현 씨.”
“에이.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그래도 이렇게 반갑네. 내일이나 되어서 볼 줄 알았는데, 내일이 되기 전에 볼 수 있어서. 지금 집에 가는 거예요? 그런 거면 내가 집에 데려다 줄까요?”
“아니요.”
나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꾸만 이런 식으로 태현하고 얽히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와 자꾸만 얽히게 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길 거였다. 아니, 괜히 불안하기만 했다.
“나에게 왜 이래요?”
“네?”
“우리가 친하나요?”
“이나라 씨.”
“우리 하나도 안 친해요.”
나라의 차가운 말에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우리 하나도 안 친하죠.”
“그런데 나에게 왜 이러는 거죠?”
“네?”
“나는 정태현 씨하고 내가 무슨 사이라고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도대체 왜 나만 보면 이렇게 반가운 척 하는 거예요. 정태현 씨가 그러면. 자꾸만 그러면 그거 무시하는 내가 되게 나쁜 사람인 것 같잖아요. 나는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데. 그런 적 없는데. 내가 되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잖아요. 나 그런 거 싫어요. 이런 생각은 하기 싫다고요.”
“본인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행동이 나라에게 어떤 생각을 하게 할지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려고 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나로 인해서 불편했다고 하면 미안합니다. 당신이 불편하기를 바란 거 아니었습니다. 그냥. 내 마음을 이야기한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왜요?”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뭐라고요?”
“모르겠어요.”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상황에 설명을 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것도 너무나도 이상하고 우스웠다. 하지만 나라가 원한다면 말할 수도 있는 거였다.
“그냥 반갑습니다.”
“네?”
“그냥 그쪽이 반갑다고요.”
태현은 어색한 표정으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었다.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던 나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어색하게 서로를 응시했다. 한참이나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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