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요?”
“그쪽 언니라는 사람이 안 오네요?”
“네?”
나라는 황급히 우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보나마나 뻗어있는 것이 분명했다. 평소에는 그녀가 일하는 시간이니까.
“일단 들어가요.”
“들어가라고요?”
“뭐. 언니가 그쪽을 고용한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언니랑 제대로 이야기를 해본 건 아니잖아요.”
“무슨 자매가 그래요?”
“뭐라고요?”
“아니 무슨 자매가 사람 하나를 고용하면서 그렇게 말이 안 맞냐고요. 나는 그런데 분명히 고용을 당했으니까. 그냥 여기에서 일을 하면 되는 건데. 내 명함을 여기에 두고 갈게요. 그리고 오늘 밤에 올게요.”
“일단 가요.”
나라는 명함을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태현.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르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
“무슨 시험 끝나고 도망을 가 듯 갔냐?”
“태은우. 나 어떻게 하냐?”
“왜?”
“그 미친놈 우리 편의점에서 알바해.”
“뭐?”
“그 미친놈.”
“그래서 남자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그렇다니까?”
저녁에 편의점에 들른 은우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이나라. 아무리 내 언니라고 해도 이거 정말 너무한 거 아니니? 이거 정말 제대로 사고를 친 거잖아.”
“사고 아니거든.”
“언니 왜 벌써 와?”
“들어가.”
일곱 시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지개를 켜면서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카운터에 들어갔다.
“너 공부도 해야 하고 나도 힘들잖아. 그래서 그 남자 아르바이트 구했으니까 우리 시간도 좀 조정을 해야지. 인간적으로 너 너무 무리하는 거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그러니까 그냥 조금은 편하게 생각을 합시다. 너 당장 공부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알고 있으니까. 그 남자가 밤 열 시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 하기로 했거든? 네가 여덟 시부터 네 시까지. 그리고 네가 네 시부터 밤 열 시까지 할게.”
“어쩐 일이야?”
“너 졸업 논문 제대로 내라고 하는 거다. 아니 졸업 논문을 못 내서 졸업을 못 하는 게 말이 되니?”
그저 졸업 유예 상태인 자신을 보기에 스스로도 꽤나 한심하게 느껴지는 나라였다. 당장 급한 불이 우선이었다. 더 이상 학부생 신분으로 삶을 유예하는 것도 너무나도 우스운 도망자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남자를 갑작스럽게 편의점에 들이는 것 역시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언니는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 줄 알고?”
“뭐가?”
“도둑이면 어떻게 하려고?”
“신고를 하면 되는 거지.”
“뭐?”
“간단한 거잖아.”
우리는 입을 내밀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을 하는 거야.”
“언니.”
“그리고 일 나름 잘 하지 않았어?”
나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모든 일을 쉽게 생각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니는 세상이 그렇게 쉽니?”
“뭐라고?”
“아니.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
“이나라.”
“언니가 책임 지고 내보내.”
“내가 왜?”
“뭐?”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나라를 응시했다.
“아니 지금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나라 너잖아. 그러면 나라 네가 그 사람을 내보내야 하는 거지.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건데?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지금 이건 언니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게 아니잖아. 언니가 저지른 일이니까. 언니가 수습을 하라고 하는 거잖아.”
“싫어.”
“나 싫다고 했어.”
“이우리.”
결국 은우도 끼어들었지만 우리는 덤덤하게 그를 바라보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가 뭐? 내가 뭐 잘못이라도 했니? 우리 두 사람이서 편의점 운영하기 힘들어서 사람 구한 게 전부야. 그런데 내가 무슨 죽을 죄라도 지은 것처럼. 두 사람 다 나에게 왜 이러는 건데?”
“엄마랑 아빠랑. 2주만 있으면 돌아오신다고. 그렇게 금방 오시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니?”
“그 2주도 힘들어.”
“언니.”
“아무튼 내보내려면 네가 내보내.”
나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그냥 있으면 안 돼?”
“어?”
“솔직히 나는 너랑 우리랑 둘이서만 일을 하는 거 걱정도 많이 되고 그랬단 말이야. 편의점 야간에 미친놈들이 얼마나 많이 와? 그런데 남자가 그 시간에 일을 한다면 조금은 안심이 되지 않을까?”
“그래도.”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은우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새로운 사람을 고용하는 것도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 더더군다나 그 남자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싫어.”
“왜 싫은 건데?”
“어?”
“너랑 얽혀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그럼 그냥 둬.”
“태은우.”
“옆에서 너를 지켜보던 친구로 하는 말이야. 너 지금 되게 많이 지쳤어. 어차피 곧 부모님이 오신다고 하지만. 너 지금 얼굴 완전 창백한 거 알아? 내가 알던 이나라는 이미 사라진 것 같아. 그냥 다 지치기만 한. 그런 이나라만 있는 것 같다고. 나는 내 친구가 그런 거 정말 싫다. 알아?”
은우의 부드러운 당부에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스스로도 지치고 있다는 것을 간절히 느끼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지친다고 하더라도 아무나 덥석 믿고 그런 것은 싫었다.
“그럼 내가 교대 시간에 같이 와줄까?”
“아니. 됐어.”
“왜?”
“너한테 피해만 가고.”
“아니야. 그런 거.”
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2주야. 2주. 아무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그런 기간이라고.”
“그렇겠지?”
“그럼.”
은우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이자 나라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2주였다. 고작 2주. 그 기간이라면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길래도 생길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을 거였다. 절대로.
====
“그래서 글이 더 잘 써진다고?”
“어.”
태현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말이야. 나는 그렇게 다양한지 몰랐다. 온갖 사람들이 편의점에 다 오는 것 같아.”
“그렇지. 편의점은 온갖 사람이 다 모이지.”
우석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눈으로 태현을 보며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작업이냐?”
“어?”
“여자 말이야.”
“아니야. 그런 거.”
“그런데 왜 일을 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태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우리 삶에 자극 같은 거 잘 없잖아. 안 그래? 매일 우리 같이 노닥거리는 것이 전부고 말이야.”
“너무 그러지 마라. 네가 클럽 같은 곳에 가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렇지. 나는 늘 즐기니까.”
“아 네.”
“그래서 계속 일할 거야?”
“2주.”
“2주?”
“그 정도면 그냥 딱 기분 전환하고 괜찮을 것 같아.”
태현은 씩 웃으면서 다시 몸을 뒤로 젖혔다. 그 정도 기간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오래 일하는 건 인간적으로 무리고. 딱 기분 좋은 자극. 그 정도만 있으면 될 것 같아.”
“그런데 2주 가지고 그런 것이 될까?”
“왜?”
“아예 그냥 편돌이로 가는 거 어때?”
“지랄은.”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잊어버리려고 해도 자꾸만 나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뭔지 알아?”
“뭔데?”
“거기 직원이 쌍둥이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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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나가라고 길길이 날뛸 줄 알았는데 안 그러네요?”
“지금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이니까 자극은 하지 말지 그래요? 일만 안 바쁘면 그랬을 테니까요.”
“알았어요.”
태현은 양손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뭘 하면 되죠?”
“그냥 열심히 바코드만 찍어요. 그것만으로도 야간에 시간 보내는 것이 그다지 나쁘지 않을 테니까.”
“청소는요?”
“네?”
“뭐 이것저것 해야 할 거 있잖아요.”
“됐어요.”
나라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다지 내키지 않는 사람을 쓰는 것도 불편했는데 다른 일을 시키는 것도 우스웠다.
“어차피 그쪽이 아니라도 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언니한테 나름 패널티를 줄 것도 있고요.”
“패널티요?”
“그쪽이 알 일은 아니고요.”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뭐 더 궁금한 거 있어요?”
“그쪽 이름은 뭐요?”
“네?”
“아니. 그쪽이랑 언니랑 명찰을 하나만 쓰고 있길래. 내가 그쪽 이름을 전혀 알 수가 없어서요.”
“제 이름은 알아서 뭐 하게요?”
나라는 황급히 가슴을 손으로 가렸다. 저 음흉한 자식이 자기 가슴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
“그러니까 내 가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는 거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변태 아니야.”
“변태가 아니죠.”
태현은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굳었다.
“아니. 사람이 명찰을 거기에 달아놓고 있으면. 당연히 내가 명찰로 눈이 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나보고 지금 변태라고 그러고. 그러면 안 되는 거죠. 내가 왜 변태에요? 도대체?”
“그럼 여자 가슴이나 보고. 그런 사람이 변태죠.”
“무슨 일이야?”
은우가 가게로 들어와서 나라의 곁에 섰다.
“두 사람 왜 그래?”
“저 사람 완전 변태야.”
“변태?”
은우의 얼굴이 순간 구겨졌다.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
“아니. 무슨 짓을 하기는.”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린 애들에게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이 심히 불쾌한 그였다.
“그냥 가슴에 붙어있는 명찰 좀 봤다고 저러는 겁니다. 명찰. 아니 자기 이름 묻는 게 잘못입니까?”
“아니. 왜 가슴을 보냐고요.”
“명찰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러죠.”
“아무튼. 내일 아침에 봐요. 짜증나.”
나라가 발을 동동 구르고 편의점을 나서자 태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 도대체 뭐야?”
태현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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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뭐가?”
“너 이상하다.”
은우는 가만히 나라의 얼굴을 살폈다.
“아니. 저 아저씨 말처럼 네 가슴에 명찰이 있어서 그냥 본 건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굴고 그러는 거냐?”
“아니.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는 사람이 남의 가슴을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아?”
“이상해도. 별 거 아니라고 하잖아. 네가 그렇게 반응을 하면 그거 정말로 이상한 일이 되는 거라고.”
“모르겠다.”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자꾸만 태현이 눈에 밟히고 그의 행동이 거슬리는 그녀였다.
“그냥 저 아저씨는 마음에 안 들어.”
“그럼 그냥 자르던가. 내가 말을 할까?”
“그런 게 아니라.”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싫은 게 아니라 조금 불편함. 어딘지 익숙한 불편함인데. 오히려 그것이 더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라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어차피 2주인데.”
“그렇지?”
“그나저나 친구. 너 약속 지켰다. 멋지네.”
“그럼. 내가 네 친구인데.”
은우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지만 나라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채로 양 팔을 벌리고 보도블록을 따라서 걸었다. 은우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라의 뒤를 쫓았다. 마치 어미 오리를 쫓아가는 새끼 오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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