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네게가는길[완]

[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4장 - 2]

권정선재 2014. 12. 1. 07:00

 

어제 별 일 없었죠?”

아니요.”

? 시재가 안 맞거나.”

그런 거 말고요.”

 

나라는 가만히 태현의 얼굴을 살폈다.

 

그럼 뭐요?”

우리 두 사람 사이 어색하지 않아요?”

아니요.”

 

나라는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태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유니폼을 벗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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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편의점을 나선 태현이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도대체 왜 나라를 보는데 이렇게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정태현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도대체.”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속상했다. 지금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더욱 답답했다.

 

이나라는 그냥 내 뮤즈라고. 뮤즈.”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입에 담배를 물었다.

 

정태현?”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태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내 얼굴이 굳었다. 눈앞에 지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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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논문 준비는 잘 되고 있어?”

대충.”

대충이 아니라.”

잘 되고 있어.”

 

은우의 물음에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잘 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교수님이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지금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은 잘 쓰고 있었다.

 

그러는 너는 졸업 준비 잘 하고 있어?”

나는 기행문 내면 되잖아.”

. 그렇지.”

네가 미련해서 그렇다니까. 애들하고 사이가 좀 안 좋으면 어때? 그냥 모른 척 하고 가면 되는 거지.”

됐어.”

 

물건을 채우면서 나라는 고개를 저었다. 과자가 바닥에 떨어지자 은우는 재빨리 그것을 주워 건넸다.

 

고마워.”

아니면 올해 애들 가는데 같이 가지 그랬어? 아무리 그래도 네가 선배이고. 딱히 문제가 될 것 없는 것 같은데.”

그것도 되게 우습지 않아?”

?”

 

아니 제대로 과 생활 한 것도 없는데. 선배라고 갑자기 그런 식으로 나타난다는 거 너무 우스운 거잖아. 그리고 나는 괜찮아. 아니 대학 생활을 하면서 논문도 한 번은 써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나라의 대답에 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곁에서 그가 보는 나라는 자꾸만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너 내 옆에 그렇게 서있지 마.”

?”

오늘 너 11시 수업이잖아. 가서 공부 해. 20분 밖에 안 남았다.”

“5분이면 가.”

얼른 가라니까.”

알았다.”

 

은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흔들고 편의점을 나섰다.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고 다시 물건 정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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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

 

지현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태현에게 다가왔다. 이전과 완벽하게 같은 모습. 아니 어쩌면 더 아름다워진 그녀의 모습에 태현의 얼굴이 굳었다. 지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지냈어?”

.”

 

태현은 어색하게 그 손을 잡았다.

 

이렇게 만나니까 되게 반갑다. 신기하네.”

반가워?”

?”

너는 반갑구나.”

 

태현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뒤로 거두고 물끄러미 지현의 눈을 바라봤다.

 

그래 너는 잘 살고 있어?”

너 안 바쁘면 우리 같이 커피라도 마시지 않을래? 아직 점심 먹을 시간은 아닌 것 같고. 어때?”

그래.”

 

태현은 아랫입술을 혀로 훑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커피 마시자.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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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요즘에도 소설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내가 쓰는 장르랑 다른 거라서 보지는 못 했네.”

그래?”

 

태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네 글 못 읽었어.”

하긴. 소설 쓰고 그러면 다른 사람 글 읽고 그럴 여유는 별로 없잖아. . 네가 못 읽었다고 해도 서운하거나 그러지는 않아. 나도 너한테 마냥 다 잘 했다고 이야기는 못 하니까. 그래도 조금 아쉽기는 하다.”

뭐가?”

네 소설. 되게 좋으니까.”

 

지현은 씩 웃으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태현은 짧게 한숨을 토해내고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러자 지현은 미간을 모았다.

 

담배는 좀.”

여기 흡연 구역이야.”

내가 싫어서 그래.”

알았어.”

 

태현은 짧게 심호흡을 하고 담배를 집어넣었다.

 

너 아직도 나 아직 미워하는구나?”

?”

알아. 네가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는 거. 내가 별로 사랑을 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그런데 네가 그렇게 나를 미워하면 너랑 나랑 앞으로 어떻게 볼 수 있겠니? 그래도 우리 이렇게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다시 만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 되게 좋았었잖아.”

 

지현의 말에 태현은 살짝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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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정태현. 뭐해?”

너 기다리고 있었지.”

왜 추운데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너랑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

 

지현은 손에 입김을 불어서 가만히 태현의 손을 잡았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태현의 손에 지현은 절로 미간이 모아졌다.

 

정말 싫다.”

?”

아니 철마다 감기 걸리면서 이렇게 추운데 그냥 밖에 있으면 어떻게 해? 너 이러다가 감기 걸리면 내가 더 속상해. 나 때문에 그런 거잖아. 너 감기 안 걸리고 이 겨울 잘 났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네가 조금 더 일찍 오면 되는 거지.”

알겠습니다.”

 

태현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현은 태현에게 어깨를 기대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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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설 정말 재미있겠다.”

그렇지?”

나는 정태현 네가 정말 부럽다. 나도 소설 쓰겠다고 이야기는 하는데 너처럼 그렇게 신선한 소재 가지고 그런 건 못 하니까. 너는 무슨 머릿속에 신이 내린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래?”

또 비행기 태운다.”

 

비행기 태우는 게 아닙니다.”

 

지현은 씩 웃으면서 태현의 노트를 살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보고 지현은 입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럽다.”

그만 부러워 하세요.”

 

태현은 지현의 허리를 안고 어깨에 턱을 얹었다.

 

김지현.”

?”

사랑해.”

나도 사랑해.”

 

지현은 고개를 돌려서 태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우리 귀요미. 사랑합니다.”

나도 사랑합니다. 김지현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태현은 그대로 지현을 침대에 넘어드렸다. 지현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후드를 벗었다. 태현은 지현에게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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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갔지?”

 

지현이 가고 난 이후 태현은 자신의 아이디어 노트를 찾았다. 하지만 지현이 책상 위에 올려둔 노트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책상 뒤로 떨어졌나?”

 

태현은 입을 쭉 내밀었지만 방 그 어디에서도 그이 노트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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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주명. 네 소설 그거 뭐야?”

뭐가?”

 

등단한 주명은 덤덤한 표정으로 태현을 바라봤다.

 

소설 재미있지?”

그 아이디어 어디에서 얻었어?”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금 소설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데?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어. 그리고 오랜 시간 고민을 한 끝에 겨우 등단한 친구에게 너는 지금 한다는 말이 뭐냐?”

표절이야.”

?”

 

주명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태현. 내가 질투가 나고 되게 부러운 건 알겠는데 말이야. 그래도 아무런 증거도 없이 표절이다. 뭐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거지. 그거 되게 지저분하고 막 그런 거 아니냐?”

어떻게 표절이 아니야? 내 아이디어 노트에 네가 쓴 그 작품 내용이 다 담겨 있었는데. 그냥 아이디어가 같은 게 아니라 세부적인 설정부터 하나하나 다른 것이 없는데. 그게 어떻게 표절이 아니야?”

뭐래?”

 

주명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주명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래? 그럼 가지고 와.”

?”

네 아이디어 노트라는 거.”

 

주명은 싸늘한 눈으로 태현을 응시했다.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주명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없어졌어.”

뭐라고?”

누가 가져갔다고.”

그래서 지금 내가 가져갔다고 하는 거야?”

 

태현은 고개를 들다가 주명의 뒤에 서있는 지현을 발견했다. 지현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주명이 지현의 손을 꼭 잡았다.

 

더 할 이야기 없으면 나는 그냥 갈게. 나는 네가 하는 그런 별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들어줄 생각이 없어서 말이야.”

변주명. 너 정말.”

억울하면. 증거를 주던가.”

 

태현은 주명의 어깨를 붙들고 그를 돌려세웠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 해서 주명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비겁한 새끼.”

이게 미쳤나?”

 

주명은 그대로 태현에게 주먹을 날렸다. 여기저기 얼마나 두들겨 맞았을까? 바닥에 쓰러지고 나서야 태현은 더 이상 주먹질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누구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주명이 멀어지고 사람들도 모두 멀어졌다. 지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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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

 

태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아직도 내가 그 노트를 주명 씨에게 가져다 준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두 사람 아이디어가 비슷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절대로 표절이 아니야. 주명 씨도 자기 나름의 아이디어 노트를 가지고 있었어. 그러니까 그렇게 혼자서 바보처럼 고민하고 왕따가 된 것처럼 행동하지 마.”

내 잘못이라고?”

그런 게 아니라.”

지금 그런 말이잖아.”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어쩌면 그의 잘못일지도 몰랐다. 모든 것을 너무나도 쉽게 믿은 잘못.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지현이 다시 한 번 그의 상처를 아프게 할 줄은 몰랐다.

 

실망이다.”

태현아.”

너는 적어도 나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너랑 나랑 사귀던 그 시절 네가 나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잖아.”

그 부분은 내 잘못이야.”

그럼 지금 뭘 하자는 건데?”

뭘 하자는 것이 아니라.”

됐어.”

 

태현은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지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나를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그냥. 그냥 네 변명. 그런 거나 하고 싶었던 거구나.”

내 변명을 하자는 게 아니잖아. 네가 나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으니까. 주명 씨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으니까.”

그만 하라고.”

 

태현은 이를 악 물고 겨우 대답했다.

 

네 말 무슨 말인지 대충 알아들었으니까.”

정태현.”

그러니까. 너는 그 순간에서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서도 내 편이 아니라. 변주명 그 새끼 편이라는 거잖아.”

 

지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미련에 사로 잡혀서 살았던 건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동안 괴로워한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내 시간에 보상을 하고 싶다.”

왜 그렇게 삐딱하게 굴어.”

내가 이상한 거야?”

그런 말이 아니라.”

그럼 지금 뭐 하자는 건데?”

 

태현의 차가운 물음에 지현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태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지현의 눈을 바라봤다.

 

그 새끼 변명이라도 해주려고 한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뭔데?”

그냥 네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나랑. 나랑 주명 씨 사이에 대해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그 순간에 사귀고 그랬던 거 아니었어. 그냥 네가 너무 민감하게 구니까. 다시 너를 찾아가니까. 너 그냥 이사가버리고 내 전화도 받지 않았잖아. 그런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그러니까 내 잘못이다?”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원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지현을 바라보며 숨을 내쉬었다.

 

다시 보지 말자.”

 

태현은 그대로 카페를 벗어났다. 지현은 안쓰러운 눈으로 태현을 바라봤지만 더 이상 그를 붙들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