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도대체 왜 나타난 거냐고.”
태현은 얼굴을 구기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래도 이제 조금은 잊어가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지현을 마주하고 나니 자신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니 잊기는커녕 마음에 고스란히 그녀의 자리가 남아있었다. 그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도대체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하는 거냐?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할 수가 있는 건데? 내가 도대체.”
분명히 주명이 등단한 소재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있던 소재였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 닮아있었던 소재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노트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김지현. 도대체 왜 나타난 거냐. 도대체 나한테 왜 나타나서 이렇게 사람을 흔드는 거냐. 도대체 왜.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한숨을 토한 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괴로웠다.
“살고 싶다.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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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상태가 도대체 왜 이러냐?”
“뭐가?”
“상태가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서.”
“그래?”
우석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다.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을 했었거든.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이 정말로 잘 하는 일일까? 내가 하는 일이 무조건 좋은 것일까? 그냥 뭐 이런저런 생각들이 자꾸만 들어서.”
“그게 무슨 말이야?”
우석은 입을 내밀고 태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태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야. 아무리 네가 나를 못 믿더라도 그래도 내가 네 친구 아니냐? 하소연 할 거 있으면 그냥 나에게 해. 내가 네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수 있으니까. 아무리 네가 나를 불신한다고 하더라도 나 그 정도 능력은 있는 사람이다?”
“알고 있어.”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석을 믿지 못해서 그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지금 자신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그런 거였다.
“나는 일하러 가련다.”
“그 일 계속 하는 거야?”
“응?”
“아니 아무리 2주만 하는 거라고 하더라도 말이 안 되는 거잖아. 네가 뭐가 아쉬워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계속 해? 그냥 그 사람 만나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굳이 막 그렇게 희생하고 그래야 하나?”
“희생은 무슨. 돈 벌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신기하다고,.나는 세상 사람들 다 비슷하게 산다고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지금 보니까 세상 사람들 사는 게 다 다르더라. 내가 그걸 인생 36년이나 살고 나서 안 거야. 되게 한심하지 않냐? 그 동안 인생 헛 산 거지.”
“헛 살기는.”
우석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심심하면 들릴게.”
“됐다. 오지 마라.”
“왜?”
“너 와서 매상 올려주는 거 나에게는 하나도 도움도 안 되거든. 그냥 내 일만 더 늘어나는 거지.”
“이래서 알바는 안 되는 거예요.”
우석의 장난스러운 핀잔에 태현은 씩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은 말을 우석과 나누고 나니 정말로 별 것이 아닌 것처럼. 그저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내가 네가 편하기는 한 모양이다.”
“어?”
“너에게 토해내니까 좋거든.”
“그렇지?”
태현은 심호흡을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우석아.”
“응?”
“나 쓰레기 아니지.”
“너 쓰레기지.”
“아니.”
태현은 고개를 흔들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우석은 진지한 눈으로 태현을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네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는 소설가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 내가 읽어본 그 어떤 소설도 너처럼 재미있지 않아. 너처럼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다고.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마.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생각. 그거 틀린 거 아니니까. 내가 하는 말 알아?”
“응. 알아.”
태현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석이 이런 식으로 그의 칭찬을 한 적이 없기에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낯선 느낌이 무조건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그냥 그런 느낌.
“누군가 내 편이라는 거 되게 좋다.”
“그래?”
“응. 그게 설사 너라고 해도.”
“하여간 이 새끼는.”
우석의 짜증에 태현은 씩 웃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라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져서 마음이 편해졌다.
“간다.”
“가라.”
우석은 태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있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
“저기요.”
“네?”
“퇴근하고 나를 좀 볼래요?”
나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싫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태현의 간절한 표정에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게.”
“바쁘면 괜찮아요.”
“바쁘지 않아요.”
태현의 말에 나라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붙들었다. 그리고 아차 싶었지만 태현의 표정이 밝아지자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하는 사람을 외면할 이유는 없었다.
“끝날 때 쯤 올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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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랑 같이 전시회 가기로 해놓고 뭐 하는 거냐? 아니 이럴 거면 어제라도 이야기를 해주던가. 이게 도대체 뭐냐고?”
“나도 오늘 출근하고 들었어.”
“어?”
“그냥 갑자기 보자고 하더라고.”
“그런데 어디에 있어?”
“왜 네가 화를 내냐?”
열을 내는 은우를 보며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은우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화를 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네가 나랑 같이 전시회 가기로 해놓고서는 갑자기 그 사람하고 있는다고 하니까. 나랑 분명히 먼저 약속을 한 건데 네가 그러니까. 내가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잖아.”
“그런 거 아니야.”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됐다고 말을 할게.”
“아니야.”
“왜 그러는데?”
“어차피 그 사람하고 약속을 잡은 거잖아 괜히 네가 또 안 나간다고 하면 내가 미안한 거고. 그런 거 싫어.”
“나는 너랑 약속을 한 거잖아. 내가 생각이 짧았어. 그 사람을 보러 가면 안 되는 거야. 그건 아니야.”
“아니.”
은유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 사람이 굳이 너를 그렇게 보겠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리고 네 마음만 그런 게 아니라면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어?”
“내 마음이 왜?”
“아니야.”
은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라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같은 남자가 보기에 그 남자 행동 그다지 정상은 아니라고. 도대체 너랑 무슨 사이인데 너에게 그런 식으로 보자고 하는 거야. 아무리 봐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 없어.”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르지.”
나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씩 웃었다.
“그래도 나랑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게 뭐 잘못은 아니잖아?”
“그렇지.”
“내가 다음 번에 제대로 보답할게.”
“알았어.”
은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쏴야 한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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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현 뭐냐?”
모니터를 노려보던 태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글을 써야 하는데 자꾸만 나라의 얼굴이 보였다.
“도대체 그 여자 얼굴이 왜 보이는 거냐고. 그냥 내 뮤즈인데. 그냥 그런 건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모델로 글을 쓴다는 것이 다른 점이 아니었다. 그저 여태까지는 소설을 쓰면 자연스럽게 소설 속의 주인공들만 떠올랐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나라. 도대체 당신 뭐야?”
태현은 묘하게 뛰는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정말 오랜만에 심장이 뛰었다. 태현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정태현 뭐 하자는 거냐고.”
열 살이나 어린 여자였다. 그리고 그저 뮤즈였다. 아마 그 여자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소설 속의 주이공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당연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이나라를 닮은 여자는 완벽했으니까.
“그래.”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소설. 소설이라서 그래. 푸하하. 소설.”
억지로 웃어보려고 했지만 마음 한 편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런 억지 웃음 자체가 지어지지 않았다.
“정태현. 너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태현은 한숨을 푹 내시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대충 축이고는 인쇄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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