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미쳤어.”
태현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라가 도대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정태현. 성욕에 절어있는 미친 노인네도 아니고 도대체 그런 짓을 왜 한 거야? 도대체 뭘 바라고 그런 거냐고.”
나라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나가봤지만 이미 나라는 저 멀리 사라진 후였다. 아니 그녀를 붙잡지 못한 것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몰랐다. 나라를 붙든다고 해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나 왜 그런 거냐?”
태현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오해하면 안 되는데.”
태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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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야?”
나라는 어색한 표정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도대체 태현이 자신에게 왜 그런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사귀는 사이도 아니면서 나에게 왜 그런 거냐고. 내가 그렇게 쉬워 보이는 건가?”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이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니고서야 태현이 자신에게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이나라 너 도대체 왜 그러냐?”
나라는 무릎을 안고 한숨을 토해냈다.
“얼마나 쉬워보이면 그런 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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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표정이 왜 그래?”
“어?”
“완전 굳어 있다.”
“그래?”
우석의 반 농담이 섞인 물음에 태현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석은 볼을 부풀리며 가만히 태현의 얼굴을 살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무슨 일이 있을 것이 있어?”
“그렇지.”
우석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참 한심하게 사는데 말이야. 정태현 너도 딱히 그렇게 제대로 사는 건 아닌 것 같다.”
“뭐 그런 말이 있냐?”
“왜? 화가 나?”
“그래. 화가 난다.”
태현의 짜증 섞인 대답에 우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 이번에 카페 한 번 해보려고.”
“카페?”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우석을 바라봤다.
“너는 그거 쉬워보이냐?”
“아니.”
“그런데?”
“어려워 보이니까 해보려고 하는 거야.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제대로 살아야 할 거 아니야. 뭐 갑자기 회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잘 할 거라는 생각도 못 하겠고.”
“그냥 회사나 들어가세요.”
태현은 기지개를 켜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니 남들이 가지고 싶은 그 자리에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 도대체 왜 그 자리에 가지 않으려는 건데?”
“내 것이 아니니까.”
“지랄.”
“너는 그 성질머리 좀 고쳐야 할 거다. 무슨 말만 하면 지랄이 뭐냐? 지랄이. 그리고 너도 내가 무조건 회사를 물려받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었으면서. 갑자기 왜 그런 반응인 거냐?”
“내가 말한 건 회사에서 차근차근 배우고 나서 하라고 한 거였지. 그렇게 갑자기 가게를 차리라는 건 아니었거든.”
“아무튼.”
우석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너 말 돌리려고 하는 거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바보냐?”
우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끄러미 태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야?”
“아무 일도 아니야.”
“정태현.”
“정말로 아무 일도 아니야.”
“내가 너랑 하루이틀 친구도 아닌데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 친구인 내가 보기에 지금 너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는 건데. 뭔가 고민을 하고 있는 거면서 지금 아무 것도 아닌 척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거라고?”
“그래.”
태현은 짧게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석을 속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무조건 진실만을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너 정말 실망이다.”
“도대체 무슨 실망?”
“우리가 친구이기는 한 거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나는 너한테 내 이야기 다 했어.”
“서른여섯이나 먹은 새끼가 유치하게.”
태현의 말에 우석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는 말은 그런 게 아니라.”
“그렇지. 잘 나가는 소설가 선생께서 나를 볼 때는 엄청나게 한심하고 답답한 놈이겠지. 집에 돈 좀 있다고 그냥 놀기만 하고 말이야. 그러는 너는 뭐가 다른 줄 아냐? 너도 결국 네가 직접 겪은 일들이 아니라 그냥 너만의 세상 속에서 글을 쓰는 거잖아. 창의력. 개나 주라고 그래. 너 정말 이기적인 거 알고 있냐? 네가 보기에는 내가 네 친구가 아니라 그냥 엄청나게 만만한 놈이지?”
“그런 게 아니야.”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우석이 유난히 민감해하는 부분을 건드린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그냥 너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야. 나도 나름 스트레스도 많고. 머리도 아프고 그렇다고. 내가 하는 말 모르겠어?”
“알아. 알고 있어.”
우석은 심호흡을 하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꺼져줄게.”
“야.”
“일해라. 너는.”
우석은 그대로 편의점을 나가버렸다.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저 유치한 새끼가. 아우. 정말로 미치겠네.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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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아직도 안 자?”
“어?”
컴퓨터를 하던 우리가 나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일 아침에 출근해야 하잖아?”
“해야지.”
“무슨 고민 있냐?”
“어?”
“얼굴이 뚱하다.”
“아니야.”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을 것이 뭐가 있어. 그냥 매일 같은 일만 있는 건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정태현 씨는 뭐래?”
“어?”
“왜 너를 보자고 한 거래?”
“그냥.”
나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 사람이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이나 있어? 나랑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그냥 이야기 좀 하자고 한 거야.”
“아니 그냥 이야기를 하는 거면 자기 퇴근 시간에 너랑 잠시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거지 이러는 이유가 뭐래?”
“그러게.”
나라는 기지개를 켜며 일부러 크게 하품을 했다.
“언니. 나 졸리다. 먼저 잘게.”
“그래. 들어가.”
우리는 닫힌 나라의 방문을 보며 미간을 모았다.
“저거 지금 뭘 숨기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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