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내 마음.”
멍하니 모니터를 보던 태현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유치한 짓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려고 하더라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미치겠다.”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단 한 번도 살면서 이렇게 무언가 막힌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늘 모든 것은 쉬웠다. 우연히 등단을 하게 되고 글을 썼는데 사랑도 받았다. 물론 문단에서는 쓰레기라는 평을 듣기는 했지만 자신이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걸로 그만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고민을 토로할 사람도 없었다.
“정태현 인생 정말 잘 살았다. 이렇게 혼자서 살 거면. 그 동안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산 거냐.”
태현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혼자서 아무리 고민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나라 그 여자에게 좋아한 것이. 그냥 그 순간 분위기에 휩쓸려서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여자가 좋아서. 이나라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서. 지금 내가 그랬다는 거잖아.”
아니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우석의 말처럼 글을 쓰면서 지금 그는 소설 속의 여주인공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나라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정태현 너도 늙었냐?”
책상에 머리를 커다란 소리가 날 정도로 박으면서 엎드렸다. 이렇게 외부에서 충격을 주면 조금이라도 달래질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전혀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나라의 입술 촉감만이 더욱 생생했다.
“싫다.”
서른여섯. 이제 다른 것은 몰라도. 세상에 대해서 알지는 못하더라도 자기 속마음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는 나이가 된 거라고 생각을 했다. 걱정할 것도 하나 없다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여전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나이였다. 겁이 나고 망설일 수밖에 없는 그런 나이였다.
“도대체 나는 뭐지?”
내 마음을 잘 바라보면 되는 거다. 참 당연한 이야기지만 평소에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생각도 하지 못했던 거였다. 두려웠다.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일이. 이 나이를 먹고도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는 사실에 더욱 답답했다. 결국 그것을 이제야 마주해야만 하는 거였다.
“정태현. 서른여섯 살. 너는 도대체 뭐 했냐. 그리고 도대체 이나라. 그 사람에게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 거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나라라는 사람. 그 사람은 분명히 그에게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큰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이렇게 뮤즈에게 커다란 영향을 받은 적이 없었다. 늘 누군가로 인해서 소설을 쓰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꾸만 이나라라는 사람에 눈에 밟히고. 그 사람에 대해서 자꾸만 알고 싶어졌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왜 이러는 건지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의식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그런 유치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이나라라는 존재가 그에게 크게 다가왔다. 그냥 그렇게 크게 느껴졌다.
“좋아하는 건가?”
입밖에 내뱉고도 어색한 말이었다. 태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절대로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렇게 이야기를 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커져버렸다.
“아니.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고.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여자를. 그런 사람을 좋아하면 안 되는 거잖아.”
이런 식으로 아니라고. 안 되는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이미 진심으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거라는 것이 변하지 않았다. 그가 이미 이나라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말을 하는 거니까.
“정말 싫다. 도대체 왜 좋아하게 된 거지?”
다시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지만. 그랬지만 결국 다른 누군가에게 관심이 가게 된 모양이었다.
“내가 그러니까 이나라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지.”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나라의 얼굴만 생각해도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거였다.
“이 나이에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가능한 건가?”
태현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혹시 부정맥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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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사람을 왜 내보내?”
“내가 처음부터 싫다고 했잖아. 그리고 이제 엄마랑 아빠 돌아오시면 많이 놀라실 거야. 낯선 사람이 있으니까.”
“나는 못 해.”
우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너랑 정태현 씨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두 살마 사이에 일어난 일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는 거. 그거 되게 유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니? 도대체 네가 뭘 바라는 건지. 이나라 너는 알고 있어. 그냥 지금 그 사람을 피한다고 모든 일이 그냥 끝이 난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뭔데?”
“불편해.”
나라의 어색한 미소에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나라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적이 없기에 낯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나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원래 은우 빼고는 남자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언니가 더 잘 알고 있잖아. 그냥 어색하고 그래. 그리고 말했었잖아. 첫 만남 자체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고 약간 실랑이처럼 만났었으니까. 그러니까 솔직히 나는 그 사람을 내보냈으면 좋겠어. 우리 두 사람이 잘 하고 있었잖아.”
“너는 모르지?”
“뭘?”
“나 편의점 문 잠그고 잤다.”
“언니.”
나라의 뜨악한 표정에 우리는 킬킬 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아니 사람이 열두 시간을 어떻게 일을 하니? 그건 사람이 아니고 기계야 기계.”
“겨우 2주야.”
“너는 아니잖아.”
“어?”
“나는 귀찮다고 편의점 일도 안 도와드리고 하기는 했지만 너는 아니었잖아. 늘 편의점에서 살다시피 일을 했었으면서. 너는 힘들지도 않니. 이거 네 일이 아니야. 우리 부모님 일이란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해?”
나라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허리에 손을 얹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나라 너야 말로 정신 좀 차려.”
“언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내가 보기에는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그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네가 이해가 되지는 않아. 물론 너 나름대로 되게 많은 고민을 한 이후에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에 지금 네 행동. 되게 많이 이상해.”
“한 번은 내 말대로 해주면 안 되는 거야?”
나라가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언제 언니에게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있니? 늘 언니가 하자는 거 다했잖아. 언니가 말하는 거. 그 동안 그대로 다 했었잖아. 그런데 언니는 지금 내가 어쩌다가 한 번 내 마음대로 하자는 것. 이것도 지금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게 막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내가 틀린 거라고 말이야.”
“그래서 말하는 거야.”
우리는 아랫입술을 물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속이 답답한 것은 나라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단 한 번도 네가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상해서 그러는 거라고. 네가 적어도 나를 언니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그 정도는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그 생각. 나는 내가 너에게 최소한의 의미는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을 보니까 나는 너에게 있어서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 사람이었네.”
“그런 말이 아니잖아.”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도 억울했다.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언니는 모두 다 나에게 이야기를 해?”
“뭐라고?”
“언니도 나에게 숨기는 거 많잖아.”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우리가 자매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서로 다 알아야 하는 거 아니잖아. 언니도 나에게 숨기는 것이 많을 것이고. 나도 언니에게 모든 것을 다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건 아니잖아.”
“너 그 남자 좋아하니?”
“뭐?”
나라는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우리의 눈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언니가 보기에 내가 그렇게 별 의미도 없는 일에 열정을 다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나도 나름 바쁜 사람이야. 연애 같은 거 할 여유 같은 거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런데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을 보면 말이야. 너 지금 되게 쓸모도 없는 일에 힘을 빼고 있는 것 같아.”
“그냥 낯선 사람이 싫다는 거야.”
우리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라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내가 내일 오전에 대신 나올게.”
“언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그 사람만 마주하지 않으면 된다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니야?”
“맞아.”
나라의 대답에 우리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지금 나라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그녀가 재촉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하나 없었다. 그냥 덤덤하게 그녀를 받아들이면. 그걸로 되는 거였다.
“그럼 아침하고 저녁에는 내가 할게.”
“언니.”
“일단 그러면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당장 그 부분만 해결이 되면 되는 거 아니야? 다른 건 몰라도 내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 그리고 오래 일을 하기로 한 것도 아니고. 딱 2주만 하기로 한 건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거. 내가 생각을 하기에는 되게 우스운 이리야. 말도 안 되는 거라고. 그리고 이나라. 너 비겁하게 엄마 아빠 핑계는 대지 말자. 네가 싫어서 그런 거면서.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 있는 거야. 그냥 네가 싫어서 그런 거잖아.”
우리의 지적에 나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더 이상은 양보하지 못해. 그러니까 너도 이 정도를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더 하던가. 어떻게 할래?”
“알았어.”
나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상을 바라는 것도 자신의 욕심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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