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네요?”
“네?”
태현은 우리의 지적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기분이 안 좋을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냥 야간에 일을 하는 것이 그다지 편하지 않아서 그런 거죠.”
“그런 거면.”
“아니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태현은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누가 뭐라고 했나요? 알았어요. 그럼 내일 봐요.”
“네. 들어가요.”
태현은 기지개를 켜며 한숨을 토해냈다.
“정태현 왜 이러냐? 유치하게.”
------
“일 많지 않았어요?”
“왜 우리 씨가 옵니까?”
“네?”
우리는 살짝 멍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랑 다르게 나라인 척 하면서 들어왔는데 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맞이헀다.
“무슨 말이에요? 나 그런 장난 완전 재미없거든요. 도대체 왜 멀쩡한 사람을 가지고 언니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거 무슨 장난이에요.”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나라 씨가 오기 불편하다고 해요?”
“아니.”
“그럼 뭐예요?”
“어떻게 알아봐요?”
“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알아보는 거냐고요.”
우리의 물음에 태현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아보느냐니? 당연히 나라가 아니니까 우리라고 하는 거였다.
“그러니까 지금 이나라 씨 아닙니까?”
“맞아요.”
“그런데 왜요?”
“아니. 나를 어떻게 구별을 하냐고요. 우리 두 사람 일란성 쌍둥이라서 엄마도 제대로 실수를 하실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아버지도 늘 못 알아보는데. 도대체 어떻게 나를 알아보는 거죠?”
“그냥 다릅니다.”
“네?”
“두 사람이 생긴 게 그냥 다르다고요.”
태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사람이 다르게 생겨서 다르다고 이야기를 하는 건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합니까?”
“우리가 다르게 생겼다고요?”
“네.”
“어떻게요?”
“이나라 씨는 입술 옆에 점이 하나 있고요. 코를 살짝 찡긋하고요. 왼쪽 눈에만 쌍꺼풀이 있고요. 약간 이우리 씨보다 동그란 느낌입니다.”
우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멍하니 태현을 바라보다가 짧게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태현 씨 나 좋아해요?”
“네?”
“아니면 나라를 좋아하는 거죠?”
“아니.”
“나라를 좋아하는 거구나.”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은우도 그렇고 도대체 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나라만 좋아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서운하기는 했지만 화를 내거나 그럴 것도 아니었다.
“나라가 저랑 많이 다른 모양이에요.”
“아니 그러니까.”
“그냥 신기해서 그래요.”
우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아니라고 하지 말아요.”
“아닙니다.”
“거짓말.”
“도대체 무슨 거짓말이요?”
“나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 두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완벽하게 찾아낸다고요? 말도 안 되는 거죠.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런 것들을 알아차릴 수가 없어요. 다른 건 몰라도 내가 그 정도는 알고 있다고요. 뭐 되게 질투가 나기는 하지만. 애초에 두 사람 이렇게 저렇게 부딪친 것은 사실이니까. 신기하네요.”
“그러니까.”
“좋아하죠?”
우리의 물음에 태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가볍게 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라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게 걱정이 되는 거라면 아무런 것도 신경은 안 쓰셔도 될 거예요. 그냥 나라만 좋아하면 되는 거라고요. 걔가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해서 남자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막 나쁘게 놀지 않은 애라는 거. 그거 하나 정도는 제가 확실히 말할 수 있거든요?”
“그런 거 아닙니다.”
태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자꾸만 나라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그녀를 무시하는 행위 같았다.
“그냥 호감이 가는 겁니다. 그 정도가 전부이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서운한 거죠?”
“네?”
“나라가 아니라서.”
“아닙니다.”
태현의 대답에 우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 되게 주제 넘는 일일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저는 우리 나라가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거든요. 그리고 정태현 씨는 왠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렇습니까?”
“지금 애써 덤덤한 척 하는 거죠.”
우리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들어가요. 아마 우리는 한 시간 지나고 출근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고생해요.”
“네.”
-----
“다시는 카페 안 올 것처럼 하더니 왜 오냐?”
“안우석.”
“왜?”
“열 살 어린 여자 좋아하면 변태인 거냐?”
태현의 말에 우석은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이내 입을 쩍 벌리고 검지로 그를 가리켰다.
“지금 진심이냐?”
“그럼 내가 이런 걸 가지고 너에게 농담을 할 거 같냐?”
“이거 완전 미친 거 아니야?”
“안우석. 그렇지? 네가 보더라도 열 살이나 어린 여자를 이성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 우스운 거겠지.”
“아니. 로맨스를 쓴다는 새끼가 지금 고작 나이 차이 가지고 그렇게 망설이고 있었던 거냐? 도대체 바보도 아니고 왜 그런 걸 가지고 망설이는 거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 그런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지 도대체 뭘 그렇게 고민을 하고 망설이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말도 못 하고 그랬던 게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서 그랬던 거냐?”
“안 놀래?”
“뭘 놀래?”
우석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뭐 은행이라도 털었다. 무 그런 이야기를 하면 놀랄 수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걸 가지고 놀랄 이유는 없잖아. 안 그래?”
“그래도.”
“너는 그게 걱정이 되는 거냐?”
“어?”
“나이가 뭐?”
우석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이야기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네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도 상관이 없거든.”
“미친.”
“그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야.”
우석의 말에 태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니다. 참 고마운 말이면서 멍하기도 했다.
“그냥 가서 고백해.”
“그러다 다 망치면.”
“우리 이제 젊지 않다.”
우석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더 이상 그런 거 가지고 고민하고 그럴 여유 없다는 이야기야. 이제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냥 좋아한다고 말을 해야 하는 나이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망설인다고? 너 그거 완전 한심한 거 아냐?”
“한심하다.”
태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런 걸 가지고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우스웠다. 전이라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고민을 하거나 그러지 앟았을 거였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두려웠다. 더군다나 지금 자시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더욱 두려웠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나도 오랜 시간 연애를 하지 않아서. 그래서. 내가 그냥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 나는 정말 그런 걸 모르겠어. 내가 정말로 누군가를 만나서 가슴이 뛰는 걸까? 아니면 그저 내가 내 소설 속의 주인공을 보고. 누군가가 그냥 그런 사람일 거라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걸까?”
“정태현. 정신 차려라.”
우석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태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를 정말로 오래 봤잖아. 그리고 요즘에는 내가 내 식구보다도 너를 더 오래 보고 있거든. 그래서 내가 너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너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런 거 망설이지 마. 그리고 너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그렇게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어.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 애초에 네가 다른 여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도 처음이라고. 그러니까 너 지금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그러니까 더 이상 겁을 내지 말고 네 마음을 들여다 보란 말이야.”
“내 마음.”
태현은 아랫입술을 꼭 물었다. 겁이 났다. 우석의 말이 맞았다. 나라도 결국 지현과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게.”
“정태현.”
“그럴 수도 있네.”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우석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태현의 앞에 섰다.
“정태현 제발 정신 차려라.”
“나 이번에 망가지면 정말로 끝일 거야.”
“망가지지 않아.”
“네가 어떻게 알아?”
“너는 내가 알아.”
우석의 말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묘한 힘이 느껴졌다. 태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망가지지 않는 걸까?”
“정말로 망가지지 않아.”
“정말로 망가지지 않는 걸까?”
“내가 보증해.”
우석의 말에 태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에는 뭐라도 믿고 싶었다. 무어라도 믿어야만 하는 거였다.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무슨 부탁?”
“오늘 편의점 알바 네가 대신 해줘라.”
“어?”
우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굳어 있다가 마지 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이 새끼. 내가 너 제대로 고백하라고 오케이 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일단 그 여자 마주해.”
“차이면?”
“차이는 거지.”
태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한 번은 차여도 괜찮은 거겠지?”
“차일 생각부터 하지 말고. 네가 나에게 늘 말하지 않았냐? 부정적인 것을 생각을 하면 부정적이게 된다고. 그러니까 최대한 긍정적인 것부터 생각을 해. 아니. 긍정적인 것만 생각을 해. 알았지?”
“그래.”
태현은 가볍게 우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살다살다 안우석 너에게 이런 식의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이거 완전 신기하네. 나는 네가 이런 재능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한 적이 없어서 나 지금 되게 신기하다.”
“지랄.”
우석은 이렇게 대답을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네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을 해.”
“내 마음.”
“그게 정답이야.”
태현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마음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 그 정도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
‘이나라 씨.’
태현이 보낸 메시지에 나라는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건 보내는 거야.”
‘조금 이따가 도시 입구 시계탑에서 보죠.’
시계탑?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갑자기 태현이 왜 이러는 건지 궁금했다. 태현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입술에 묘한 느낌이 묻어났다. 뭔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 느낌에 나라는 고개를 저었다.
“뭐라는 거야.”
‘할 말이 있습니다. 기다릴게요.’
‘알았어요.’
아무런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저쪽에서 자신이 읽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가지 않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도대체 나를 왜 보자고 하는 거야.”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고 거울을 바라봤다. 약간 마른 얼굴. 요즘 들어 갑자기 신경을 쓰는 것이 많아서 그런지 살짝 거칠했다.
“오늘 정말 상태 최악인데.”
“이나라 뭐 해?”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 너 보러 왔지. 그런데 왜 그렇게 거울을 보고 그래? 평소에는 거울 좀 보라고 해도 안 보면서.”
“내가 언제 그랬냐?‘
“너 늘 그랬거든.”
나라는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흔들고는 가볍게 머리를 묶었다.
“정태현 씨가 잠시 보자고 하더라고.”
“그런데?”
“어?”
“그런데 거기를 왜 가?”
“은우야.”
“가지 마.”
은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나라의 눈을 바라봤다. 나라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은우는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냥 가지 말라고. 제발. 이나라. 제발 가지 마. 내가 너 눈치 무지하게 없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 최소한 눈치는 좀 가져. 가지 마라. 거기. 가지 마.”
'☆ 소설 창고 > 네게가는길[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8장 - 2] (0) | 2014.12.09 |
---|---|
[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8장 - 1] (0) | 2014.12.08 |
[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7장 - 1] (0) | 2014.12.06 |
[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6장 - 2] (0) | 2014.12.05 |
[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6장 - 1] (0) | 2014.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