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8장 - 2]

 

“그냥 가지 말라고. 제발. 이나라. 제발 가지 마. 내가 너 눈치 무지하게 없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 최소한 눈치는 좀 가져. 가지 마라. 거기. 가지 마.”

“너 왜 이래?”

 

나라는 침을 꿀꺽 삼키고 은우를 바라봤다. 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하고 마주하건 말건 그게 도대체 너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

“몰라서 그러는 거야?”

“어?”

“답답하다.”

 

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너 때문에 내가 진짜 미칠 것 같아. 그거 모르는 거야. 내가 왜 이렇게 네 옆에서 맴 돌고 있는지 정말로 모르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나라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라의 눈을 바라봤다.

 

“네가 좋다고.”

“어?”

“네가 좋다고. 이나라.”

 

나라의 얼굴이 굳었다. 은우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서 나라를 바라봤다.

 

“그래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게 무슨?”

“너도 그 사람 좋아하지?”

“어?”

“보여.”

 

은우는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라고 했지만 지금 분명히 나라는 설레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 자신이 너무나도 싫어하는 그 사람에게. 평생을 곁을 맴돌기만 한 사람에게.

 

“네가 무슨 말을 하건. 너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 거 다 보인다고. 그래서 너를 보낼 수 없어.”

“그러니까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그래.”

“하. 말도 안 돼.”

 

나라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태은우. 농담하지 마.”

“농담이 아니야.”

“아니 도대체 어떻게?”

 

나라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절대로 연인이 될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시간 동안 우리가 도대체 뭘 어떻게 했는데? 이거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우리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 두 사람은 그 시간 친구였는데. 내가 너를 친구라고 생각을 했는데 너는 아니었던 거야?”

“그러니까.”

“정말 싫다.”

 

나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은우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면서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러니까 태은우 너는 그 동안 나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는 거잖아. 나를 그냥 친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럤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싫다. 정말 싫어.”

 

나라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고였다.

 

“태은우. 나는 진짜로 네가 내 친구라고 생각을 했어. 다른 사람들이 남자랑 여자는 친구가 될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너를 믿었다고. 그런데 이게 뭐야. 이건 아니잖아.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걸 너에게 말을 하는 건 우리 두 사람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이 아니야.”

“그럼 뭔데?”

“지금 내가 너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가지 않기를 바라는 거야. 내 마음이 이렇다고.”

“그게 고백이잖아.”

“그러니까.”

“정말 싫다.”

 

나라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은우와 자신은 오랜 친구라고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모두 놀리고. 어떻게 남자랑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느냐고 물을 적에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니었다. 남자랑 여자는 절대로 친구가 될 수가 없는 거였다. 절대로.

 

“네가 한 순간이라도 이런 마음이 있었더라면 나에게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 그런 거잖아.”

“그러니까.”

“그냥 나를 막으려고 하는 거네.”

 

나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너는 진심으로 나를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하고 내가 마주하기를 싫어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뭐가 아니라는 건데?”

 

은우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라고 하기는 했지만 아닌 것이 아니었다. 나라의 지적이 옳았다. 지금 자신은 그런 거였다.

 

“너 지금 되게 비겁한 거 알고 있어?”

“알고 있어.”

“알아?”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너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어?”

“너는 지금 이 상황에서 나에게 부탁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네가 도대체 무슨 염치로 나에게 부탁이라는 단어를 감히 꺼낼 수가 있는 건데?”

“네가 그 사람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건데? 적어도 나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는 거잖아. 나도 너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 그런 기회 정도는 공평하게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공평?”

 

나라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은우가 하는 말에 머리가 너무나도 아파왔다. 그러니까 은우는 지금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면서 정작 무어가를 하기 바라지 않고 결국 자신을 아프게 하는 거였다. 자신이 어떠한 선택도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거였다.

 

“나는 내 마음을 정했어.”

“이나라.”

“너 정말 이기적이다.”

 

나라는 입을 꼭 다물고 은우를 응시했다.

 

“너 너무 이기적이야. 도대체 너는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평생 너를 친구라고 생각을 한 사람에게.”

“미안해.”

“이건 미안하다는 말로 끝이 날 수 있는 게 아니야.”

“뭐라고?”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이나라.”

“부탁이야.”

“일단 생각 좀 정리해.”

 

나라가 무슨 말을 덧붙이려고 했지만 은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무조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우스웠다. 일단 이곳을 피하고 싶었다. 무조건 달아나야 옳았다.

 

“비켜.”

“이나라.”

“비키라고.”

 

나라는 은우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태은우. 적어도 네가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잖아. 그러면 비켜. 너 그 정도는 나에게 해야 해.”

 

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은우는 그대로 옆으로 비켰다. 나라는 은우의 얼굴을 한 번 더 보더니 그대로 편의점을 나갔다.

 

“젠장. 태은우 뭐냐.”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도 한심한 일이었다. 나라가 무슨 생각을 하건, 어떤 결정을 내리건 자신은 그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다.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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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이렇게 안 와?”

 

추위에 떨면서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정말 싫다.”

 

다시 한 번 전화라도 해볼까 생각을 했지만 그녀를 괜히 재촉하는 것 같아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도 역시 아직 마음에 대해서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그런 착각을 하는 건지. 하지만 보고 싶었다. 궁금했다. 일단 무슨 말을 할지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막 씹는 거 아니야.”

 

태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풀었다.

 

“정태현. 그래. 한 번 쪽 팔린 거지. 두 번 쪽팔린 거 아니잖아. 후우. 그래. 잘 할 수 있다. 무조건 잘 할 수 있어.”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숙였다.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나라는 나타날 거였다. 무조건 나타날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