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석.”
“일어난 거냐?”
우석은 걱정이 가득 섞인 표정으로 태현을 바라봤다. 태현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미친.”
“뭐 이 새끼야?”
“내가 뭐라고 그런 표정을 짓냐?”
“친구. 이 새끼야.”
“지랄.”
태현은 낮게 욕설을 내뱉고 고개를 저었다.
“병신. 병신 이런 병신이 없는데. 도대체 나는 네가 왜 친구라고 이렇게 마음이 가고 그러는 거냐?”
“그런 병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나을 생각이나 해라. 바보도 아니고 지금 뭐 하자는 거냐?”
“그러게.”
“위 나이 그렇게 어리지 않아. 이제 건강 같은 거 스스로 챙겨야 하는 나이라고. 다른 사람이 챙겨주거나 그럴 수 있는 나이 아니다. 나도 지금 골골 거리는데 너를 내가 챙기고 그래야 하는 거냐?”
“그렇지?”
우석은 한숨을 토해내며 태현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조심스럽게 우석의 손을 잡았다.
“고맙다.”
“징그러.”
“진심이야.”
“알고 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자신에게 있어서 우석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참 놀라웠다.
“나는 너 그냥 내가 너랑 놀아주는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나는 그냥 늘 이 자리에 있었는데. 안우석. 네가 내 친구가 되어주고 있는 거였어. 그래서 되는 거였어.”
“오글거리기는.”
우석은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막상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소설가 친구가 그래도 오글거리는 대사를 하니까 영 기분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종종 하지 그랬냐.”
“앞으로 또 죽기 전에는 안 할 거다.”
“내가 뒤에서 밀어야 겠네.”
“신고할 거다.”
“마음대로.”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태현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갈게. 편의점.”
“고맙다.”
“어차피 일주일 남았잖아.”
“뭐.”
“그거 별 거 아니야. 내가 할게. 내가.”
“정말 고마워.”
“고맙다는 말 좀 그만 해라.”
우석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내가 그 정도도 못 해줄 사람처럼 보인다고. 내가 지금 정태현에게 그런 사람인 거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러면 그냥 입 꾹 다물고 있어.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네가 뭐라고 하더라도. 넌 내 친구고.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 뭐. 네가 어떻게 생각을 하건. 나에게 친구가 너 하나 밖에 없다는 거.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알지.”
“그리고 너도.”
“그런가?”
“빼기는.”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우리 힘들 때는 서로에게 의지해도 되는 거야. 오케이? 혼자서 그렇게 잘난 척 하지 말자고요.”
“알겠어.”
우석은 태현의 손을 다시 꼭 잡았다.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여전히 머리가 복잡한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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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게 된 거야?”
“뭐가?”
“이나라.”
“아무 일도 아니야.”
나라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우리 두 사람 무슨 사이였던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사이도 아닌 사람인데 뭐. 언니. 내가 야간 하기로 한 거.”
“두 사람 다 있었네요?”
“안우석 씨.”
“왜요?”
우석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오면 안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태현이 대신입니다.”
우석은 기지개를 켜면서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하며 유니폼을 걸쳤다. 그리고 당당히 카운터에 들어갔다.
“두 사람 뭐해요? 안 가고.”
“그러니까.”
“어차피 사흘 남았잖아요.”
우석의 말에 나라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것도 우스웠다.
“그럼 고생하세요.”
“이나라!”
나라는 그대로 편의점을 나가버렸다. 우리는 잠시 우석과 나라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짧게 숙이고 따라 나갔다.
“같이 가.”
“뭐. 아예 싫어한 건 아닌가 보네.”
나라의 반응을 보고 우석은 입을 쭉 내밀었다.
“아니 자기도 마음이 있으면 그냥 고민도 하지 않고 그냥 잡으면 안 되는 건가? 나이도 많지 않은 사람이 왜 저렇게 고민하고 저렇게 혼자 힘들어하고 있는 거야. 나라면 안 저럴 텐데 말이지.”
우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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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 거기에 서.”
“왜?”
“이나라.”
우리는 결국 나라의 손을 꼭 잡고 그녀를 돌려세웠다.
“너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어제 그 곳에 나가지 않은 건 바로 너야. 정태현 씨가 도대체 무슨 마음을 가지고 너에게 그러는 건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가지 않은 것이 바로 너란 말이야. 그런 거면서 지금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왜 네가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행동을 하는 건데.”
“그러게.”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 분명히 내가 먼저 그 사람을 밀어내고 그런 거잖아. 안 그래? 그 사람은 나에게 꼭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 건데 내가 거기에 가지 않은 거니까. 내가 나쁜 사람이잖아.”
“그런 말이 아니라.”
“언니는 누구 편이니?”
“그런 게 어디에 있어?”
“내 편이어야지.”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은 다 아니더라도 언니는 내 편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 그래. 내가 가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 정태현 씨가 편의점에 오지 않은 거고 나 많이 놀랐어. 그리고 내가 놀랄 수도 있는 거잖아. 도대체 왜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행동을 하는 건데.”
“너 잘못했어.”
“뭐라고? 언니.”
“너 그 사람 좋아하잖아.”
“아니야.”
우리의 물음에 나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아니었다. 자신이 태현을 좋아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그냥 궁금한 거. 그 정도였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질 정도의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 사람도 나를 그런 마음으로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야. 그냥 몇 번 부딪치고 그러니까 그런 거라고.”
“왜 그렇게 미련하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건데?”
“네가 지금 왜 놀란 건지 몰라서 이러는 거야? 그 사람이 올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아서 당황한 거잖아. 너 지금 정태현 씨를 볼 거라고 기대를 했다가 그러지 않아서 놀라고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숙였다. 자존심에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 짧게 한숨을 토해냈다.
“너 지금 그 사람 좋아해.”
“아니야.”
“아니, 맞아.”
우리는 힘을 주어 말하며 나라의 손을 꼭 잡았다.
“내가 네 언니야.”
“언니가 도대체 뭘 안다고 그래?”
“너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어.”
“언니.”
“네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 거 나 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제 보니까 왜 그런 건지 알겠네. 그 동안 내가 나 힘들어서 너를 본 적이 없었거든? 그런데 이나라 너 되게 겁쟁이다.”
“도대체 언니가 무슨 자격으로 그래?”
“뭐?”
“언니 앞가림도 못 하면서.”
우리는 잠시 멍하니 나라를 보다가 손을 놓았다. 나라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우리는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내 말은 안 듣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우스워서?”
“언니. 그게 아니잖아.”
“그래. 나 우스워.”
우리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생각을 하기에도 한심하고 미련했다.
“잘 하는 것도 하나 없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 너처럼 그래도 무언가에 있어서 최선을 다 하는 사람도 아니고. 하지만 적어도 내가 너보다 나은 점은 있어. 나는 내 마음을 숨기지 않아. 내가 다른 사람을 숨기고 그럴 수는 있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숨기지 않는다는 말이야.”
나라는 대답을 하지 않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너 무조건 후회할 거야.”
“알아.”
“그럼 잡아야지.”
“싫어.”
“이나라.”
“이미 간 거야.”
나라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거야. 그냥 나 혼자서 편하자고 이러는 거잖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내가 그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놀거나 그러고 싶지는 않아. 그건 아니야.”
“너 정말.”
“이건 내 결정이야.”
나라가 힘을 주어 말하자 우리는 한숨을 토해냈다. 나라가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가 할 건 없었다.
“그래.”
“언니. 먼저 들어갈래?”
“어?”
“나 잠시 생각을 할 것이 있어서.”
우리는 잠시 나라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라면 지금 이 순간 생각할 것이 당연히 많을 거였다.
“알았어. 너무 늦지 말고.”
“응.”
우리는 잠시 더 나라를 바라보다 뒤돌았다.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서 있다가 놀이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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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 뭐 하는 거냐?”
그네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머리가 아팠다.
“내가 밀어낸 거잖아.”
분명히 자신이 밀어낸 거였다. 그런 거면서도 지금 피해자인 척 행동을 하고 있는 거였다. 말도 안 되게 우스운 거였다. 그런데 지금 그를 보지 못해서 너무나도 서운했다. 그가 한 번만 더 다가왔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미련도 생겼다. 자신이 밀어낸 거면서도. 그런 거면서도 이랬다.
“나는 정말로 한심하구나.”
우리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지금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거였다. 태현에 대해서 호감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 마음이 어떤 것일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는 것으로. 망설여진다는 이유만으로 가지 않은 거였다. 그런 주제에 지금 그가 한 번 도 그녀를 찾아오기를 바라는 미련한 말만 하는 거였다.
“내가 먼저 찾아갈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추운 겨울. 나라는 그렇게 한참이나 놀이터에서 멍하니 그네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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