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고생이 많았지.”
“엄마. 뭐야.”
편의점으로 부모님이 들어오자 나라가 입을 쭉 내밀고 밖으로 나와서 두 사람을 꼭 안았다. 그리고 투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무슨 부모라는 사람들이 자식들한테 편의점 그냥 떠맡기고 그렇게 놀러를 다 가고 그러냐?”
“엄마가 그래서 서운했어? 그래도 우리 두 딸을 믿어서 그랬던 거지. 그리고 이번에 엄청나게 싼 상품이 나와서.”
“알았어요.”
나라는 유니폼을 벗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이제 두 사람이 알아서 해요.”
“어? 이제 다녀왔어.”
“아빠.”
“뭐.”
“여보.”
남편이 옷을 받아들자 엄마는 입을 쭉 내밀었다. 나라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 엄마는 엄마 딸보다 엄마 남편이 더 중요하지?”
“당연하지. 딸은 둘이나 있는데 서방은 하나인데. 우하하하하.”
“그런 농담 썰렁하다니까.”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나는 이제 퇴근해요. 두 사람이 여기에서 오붓하게 시간 보내시던지. 나는 들어가볼게요. 가방 내가 가지고 가요?”
“아니야. 나도 우리 보러 가야지. 당신은 내일 아침까지 고생 좀 해요. 아니다. 내가 바로 나올게.”
“아니야. 우리 자기. 편히 쉬어요.”
“아무튼 닭살이야.”
나라는 팔을 비비면서 편의점을 나섰다. 유난히 겨울 바람이 매섭게 그녀에게 다가왔다. 나라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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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렸어?”
“아니.”
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았어. 그나저나 우리 어디로 옮길까? 너 지금 되게 추워보여. 혹시 너 감기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괜찮아.”
은우가 자신에게 손을 가져오려고 하자 나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은우는 그런 나라의 태도에 입을 꾹 다물었다.
“왜 보자고 한 거야?”
“대답을 해야지.”
“이나라.”
“네가 한 말. 그 말에 대해서.”
나라는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되게 많이 생각을 했어.”
“정말이야?”
“응.”
“그런데 지금 네 표정을 보니까 왜 하나도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는 거야? 그냥. 원래 그런 생각을 한 사람 같아.”
“늘 그렇게 느꼈던 거니까.”
나라는 입을 꾹 다물고 은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라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연 순간 은우가 끼어들었다.
“그냥 말하지 마.”
“태은우.”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는 내가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냥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고. 그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야. 그냥 내가 멋대로 생각을 할 수 있게. 그냥. 그렇게 좀 도와주라.”
“싫어.”
나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지금 말을 하지 않으면. 너는 여전히 미련을 가지고 있을 거야. 네 친구로 나 그런 거 보지 못해.”
“그렇게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을 하는 거라면. 그냥 나를 받아주면 안 되는 거야? 우리 두 사람 잘 어울리잖아. 그 동안 우리 두 사람 되게 사이도 좋고. 우리 두 사람 나쁜 사이는 아니었잖아.”
“친구였지.”
나라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동안, 그 모든 순간 은우가 무슨 생각을 할지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미안해.”
“네가 뭐가 미안한 건데?”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내가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래서 친구라는 년이. 네 마음 하나도 모르고. 어쩌면 이렇게 둔할 수가 있니? 너는 내 옆에서 그 동안 도대체 어떻게 지낸 거라니?”
“그런 말 하지는 마. 도대체 내가 뭐라고 하기륿 바라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데? 네가 그러면 내가 되게 아플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거야? 네가 그러면 내가 힘들 거라는 거 모르는 거야?”
“응.”
나라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은우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 심호흡을 했다. 나라는 앞머리를 뒤로 넘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다시 보지 말자.”
“이나라.”
“우리 다시 보는 거 되게 우스운 일이야.”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나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고. 나는 너에게 아무런 마음도 품지 않고 있고. 너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우리 두 사람이 다시 어울리지 않는 것. 그게 가장 어울리는 일이란 말이야.”
“그런 거 아니야.”
은우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나라를 보낼 수 없었다. 연인이 될 수 없더라도 친구는 될 수 있었다.
“내가 왜 그 동안 너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친구라도 네 옆에 그냥 머무는 것이 좋아서 그랬다고.”
“그런 거 바라지 않아.”
“이나라.”
“네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을 때는 그냥 친구라고 하고 있어도 되는 거였지. 그런데 이제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 두 사람 그냥 친구라고 하기에 너무 멀리 온 거 아니니?”
“네가 아무런 마음도 품고 있지 않은데. 네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 건데? 나는 이전하고 다를 거 하나 없어. 그냥 네 옆에서 맴돌고. 그냥 그런 것만 하고 말 거라고.”
“그런 게 싫어.”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은우의 눈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도 너무나도 불편했다.
“나는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어떻게 가능해?”
“그러니까 우리 보면 안 되는 거야.”
“나 죽을 지도 몰라.”
“이 정도로 죽지 않아.”
나라는 단호히 대답했다. 그리고 은우의 얼굴을 보더니 밝게 웃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거야.”
“뭐가 좋았다는 건데?”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그냥 네 마음. 그거 그냥 받았을 거야.”
“그런 거 원하지 않아. 나는 절대로 내 마음을 너에게 고백하지 않았을 거야. 그건 너에 대한 배신이니까.”
“배신.”
“우리는 친구니까.”
“친구.”
나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우와 자신은 정말 오랜 시간 친구였다. 절대로 서로를 이성으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은우가 배신을 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 되게 좋은 친구를 잃었다.”
“네가 그렇게 말을 하면 내가 뭐가 돼?”
“그러니까.”
나라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다시 볼 것처럼 안녕하자.”
“이나라.”
“그래야 나 울지 않을 거 같아.”
나라는 침을 꿀꺽 삼키고 눈을 감았다.
“태은우. 잘 가. 다음에 보자.”
“나라야.”
“응?”
나라의 간절함에 은우는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붙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 잘 가. 나라야.”
“조심해서 들어가고.”
“응.”
“연락하고.”
“응.”
“잘 자.”
“응.”
은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어깨가 거칠게 떨리는 것을 보고 난 나라는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멀어졌다. 그냥 멀어지는 것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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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네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정태현. 네가 도망을 가거나 그럴 이유 지금 하나도 없는 거잖아.”
“도망 아니야.”
“그럼 뭐냐고?”
우석은 짐을 싸는 태현의 손을 꽉 잡았다.
“너 이렇게 도망간다고 해서 네 마음이 편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너 지금 그거 착각이야. 너 지금 그렇게 도망을 가고 나면 더 아프고. 더 불편하기만 할 거라고. 내가 다 알고 있다고.”
“나도 알아.”
“그런데?”
“할 수밖에 없어.”
태현은 우석의 손을 뿌리치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데? 조금이라도 이나라.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게 정답이야.”
“너 그럼 소설도 못 써.”
“;왜? 나 소설가인데?”
“너 이나라. 그사람이 모델이잖아.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면. 결국 너 아프고 지치기만 할 거라고.”
“그렇지 않아.”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냥 그런 삼류 소설가가 아니라고.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그게 내 작품은 아니라고.”
“정태현.”
“안우석. 네가 정말로 내 친구라고 하면 내 편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도대체 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그렇게 사사건건 다 따지고 들려고 하는 건데?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따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힘들어. 나도.”
태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도망을 가기만 하는 자신이 싫었지만 이미 도리가 없었다. 나라의 얼굴을 자꾸만 보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몸이라도 멀어져야만 하는 거였다.
“배가 뜨지 않으면 오지 못할 곳에 가는 거. 그거 무슨 의미인데?”
“그냥 멀어지겠다는 거.”
“정태현. 너 정말 별로다. 내 친구. 정말 별로야. 이러지 않을 것처럼 인터뷰까지 다 하고 왜 그러는 건데?”
“책을 내야지.”
“뭐?”
“어떤 책이건 일단 낼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
“좋게 생각을 하겠지. 다들 정태현에 대해서 미워하지 않는데. 너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걱정이 되는 거야?”
“내 실력.”
“뭐?”
“정말로 내가 소설을 쓰는 건지. 아니면 내가 이나라 씨랑 하고 싶은 것을 쓰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내가 그런 싸구려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어서. 그러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태현의 대답에 우석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태현의 앞에 앉아서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정말 너 사람 미치게 하는 거 아냐?”
“내가 좀 매력적이라서?”
“정태현. 그런 말 안 통하거든.”
“아무튼 갈 거야. 멀리.”
“그런다고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우석의 물음에 태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우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태현의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무튼 나는 모르겠다. 내 친구라는 새끼가 하는 거니까. 나는 그냥 오케이하는 거. 그냥 그게 전부야. 다른 건 하나 모른다. 그러니까 나중에 무슨 문제 생기고 나서 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라.”
“알았어.”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누군가가 그의 편이 되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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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여행?”
“응.”
“이나라.”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 상황에서 여행이 말이나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야? 너 아직 졸업 논문도 통과가 안 되었잖아.”
“그렇지.”
“그런데 왜 그래?”
“여유를 좀 찾고 싶어서 그래.”
나라는 부모님의 눈을 보며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안 두 분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서 노력을 했거든요. 엄마랑 아빠가 시키는 일 다 했거든요. 이제는 조금이나마 자유롭고 싶어요. 여행이라는 거 별 거 아니지만 그러고 싶어요.”
“이나라. 이거 미친 거야.”
“이우리. 그만 둬.”
“아빠.”
아빠는 덤덤한 눈으로 나라를 응시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더니 아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가지고 와요.”
“여보.”
“부탁이야.”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가 안방으로 가서 통장을 하나 가지고 와서 나라에게 내밀었다. 나라가 그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게 뭐예요?”
“네가 그 동안 편의점에서 일한 돈. 돈도 제대로 안 주고 일을 시켰잖아. 딸이라는 이유로. 그 동안 나라 네가 얼마나 우리를 원망하고 그랬을지 다 알고 있어. 그런데 엄마가 그냥 너 부려먹은 거 아니야. 너에게 돈을 주면 그 돈을 못 모을까봐. 내가 이렇게 네 이름으로 모은 거야.”
“엄마.”
“그래. 다녀와라.”
아빠는 나라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한 번은 자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여행 같은 거 가야 해. 길게 가도 좋고. 길지 않아도 상관이 없고. 그냥 너를 위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거라고. 이 아빠가 하는 말 너도 알고 있는 거지? 너 할 수 있는 일을 무조건 해야 해.”
“네.”
나라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커다란 벽이 될 것 같은 사람들의 응원에 힘이 솟아나는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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