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겠네.”
별써 며칠 동안 글은 한 자도 쓰지 못했다. 무슨 글을 쓰려고 하도 막히고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태현 도대체 왜 이러냐?”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슨 글을 쓰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만 나라의 얼굴이 보였다.
“정말 싫다.”
자신이 미웠는데 도리가 없었다.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하게 생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냥 이나라.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었다. 이나라를 봐야지만 글이 써지는 거였다.
“젠장.”
태현은 욕을 하고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정태현 뭐 하냐? 나 데리러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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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운전수냐?”
“닥치고 운전해.”
“미친.”
우석은 입을 쭉 내밀고 태현을 노려봤다.
“아니. 거기에서 그냥 콜택시를 부르고 오면 되는 거지. 친구를 거기까지 부르는 이유가 뭐냐?”
“미친. 철원에서 서울까지 도대체 돈이 얼마인데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하는 거냐? 너는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거냐?”
“농담이 아니거든? 돈도 많은 새끼가.”
“너보다 적어.”
“내가 더 적어.”
우석은 입을 쭉 내밀고 정면을 응시했다.
“카페 망하기 일보 직전이더라.”
“거 봐라. 내가 그거 사지 말라고 했잖아. 아마 그 사람은 얼씨구나하고 너에게 팔았을 거야. 웬 호구 하나가 자기 구원해주는 거라고 말이야. 바보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 카페를 사는 거야.”
“그래도 신세를 많이 진 거잖아.”
“신세?”
“우리 두 사람 거기에서 진짜 많이 놀았어. 그러니까 약간의 도움 정도는 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너 지금 그거 약간의 도움 아니다.”
태현은 창문에 머리를 기대며 낮게 중얼거렸다. 우석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너는 잘 지냈냐?”
“이제야 묻냐?”
“그러게.”
“잘 지냈다.”
우석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라가 서울에 없다는 사실은 태현이 직접 확인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서울에는 왜 가는 거야?”
“글이 안 써져서.”
“잘 써질 것 같다고 해서 간 거잖아.”
“그러게.”
“이유는?”
“몰라.”
“정말 몰라?”
“몰라.”
태현은 눈을 감고 입을 다물었다. 우석은 그런 태현의 머리에 주먹을 날리려다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래도 내가 너에게 은혜를 입은 것이 많아서 지금 돕는 거야. 그러니까 좋은 글 써. 나는 네 글 좋으니까.”
“그럼 네가 책 내주던가.”
“지랄.”
“아니면 닥치던가.”
“이런 것도 친구라고.”
우석의 짜증에 태현은 그제야 겨우 미소를 지었다. 우석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조금이나마 다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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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요즘 왜 안 보여?”
“몰랐어?”
“어?”
“걔 여행 갔어.”
“여행?”
우리의 말에 은우는 미간을 모았다.
“아니 왜 나에게 이야기도 안 하고?”
“그걸 왜 나에게 그래.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생긴 일은 두 사람이 해결하세요. 왜 나에게 그런 것을 묻고 난리야. 나는 아무 것도 모르거든.”
“아니.”
“너희 싸웠니?”
“아니야.”
은우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나라의 일을 굳이 우리에게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싸우고 그럴 게 뭐가 있어?”
“너 이나라 좋아하잖아.”
“아니거든.”
“아니기는.”
우리는 입을 쭉 내밀고 은우의 얼굴을 살폈다.
“너 나한테 걸렸잖아. 그래놓고 뭐라는 거니? 너 혹시 나라에게 고백이라도 하고. 뭐 그런 거야?”
“아니야.”
“너 고백했구나?”
“아니라고.”
은우는 이를 악 물고 대답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로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나마 하나밖에 없다는 친구까지 그러면 어떻게 하냐? 안 그래도 이나라 지금 머리 깨져서 죽을 거 같은데.”
“머리가 왜?”
“걔 정태현 씨 좋아해.”
“뭐?”
“너도 아는 거 아니야?”
“그건.”
은우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린 거였다. 두 사람이 절대로 가까이 할 수 없도록. 하지만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거지. 그렇게 눈에 다 보이게 행동을 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모르는 거 같지만.”
“그래서 이우리 너는 찬성이야?”
“찬성이고 반대고 그런 게 어디에 있어? 내가 도대체 무슨 자격이 있어서 두 사람에게 그런다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네가 언니잖아. 언니가 되어서 그렇게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그게 말이나 된다는 거야?”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어?”
“나는 아무 상관없다.”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채워넣었다.
“나이 같은 거. 사실 아무 것도 중요한 거 아니야. 자기 마음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피하고 그러기만 하는 거라고. 자기 마음이 진짜 어떤 건지 알면 그런 거 중요하지 않아.”
“이우리. 네가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너 나라에게 하나밖에 없는 언니인데. 네가 이나라 그거 지켜야 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나라가 한심하게 생각을 하더라도. 그러면 안 된다고 해야 하는 거잖아.”
“뭐가 한심한 건데?”
우리는 몸을 돌려서 은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은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태은우. 네가 지금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네 친구라기보다는 나라 언니야. 나는 그저 나라가 더 잘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전부라고. 그리고 지금 나라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네가 아니야. 나도 아니고. 나라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정태현. 그 사람이란 말이야.”
“하지만 그 사람 곁에서 나라가 행복할 수 있을지. 너는 그런 거 한 번도 생각을 한 적이 없잖아. 그래. 지금 당장 호감을 가질 수 있어. 그런데 그게 뭐?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진다는 건데?”
“지금 당장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 못할 수도 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어싱 더 중요한지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지금 태은우 너도 그런 거 하나 모른 채 그러지만. 곧 알 거라고.”
“나는 몰라.”
은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라와 그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괴로웠다.
“내가 도대체 왜 그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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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들어가줘?”
“아니.”
우석의 제안에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문제야.”
“진작 그랬으면 얼마나 좋냐? 네 마음을 그렇게 다 알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맴 돌고 피하기만 하는 건데.”
“아직도 몰라.”
“어?”
“아직 나 내 마음 모른다고.”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냥 한 가지 분명한 거. 내가 이나라 씨를 못 보고 있으니까 그냥 글이 안 써진다는 거. 그거 하나야.”
“그게 네가 이나라 씨를 좋아한다는 증거 아니냐? 단 한 번도 너 그런 적 없잖아. 너 소설 늘 잘 썼잖아.”
“그게 이상해.”
“뭐가?”
“그 동안 되게 가짜 같다?”
태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우석을 바라봤다.
“내가 그 동안 쓴 게 정말로 글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래. 나도 모르겠다.”
“이나라가 보고 싶어.”
“그럼 들어가.”
“겁이 나.”
태현은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숙였다. 나라를 보고 나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화를 내겠지?”
“나는 몰라.”
“짜증을 낼 거야.”
“그럴 수도.”
“그냥 돌아갈까?”
“정태현.”
우석은 태현의 손을 잡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너 지금 여기까지 왔어. 나에게 부탁을 해서. 지금 너 네 마음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몰라.”
“모르기는. 지금 철원서 여기까지 신호 위반하라고 하면서 온 거잖아. 그래놓고서 뭘 모른다고 하는 거야? 너 네 마음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이러는 거고. 가서 잡아. 무조건 잡아. 네가 잡아야 하는 거야. 네가 잡을 수 있는 거. 해야 하는 거 하라고.”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태현은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신은 나라에 비해서 가진 것이 너무 적었다.
“나처럼 늙은이가 그래도 되는 걸까?”
“당연하지.”
“정말?”
“네 마음에만 확신을 가지면 돼.”
우석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그러고 나서 생각을 하라고.”
“그래도 되는 거지?”
“그래. 임마.”
태현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다. 더 이상 망설이고 고민할 것이 없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것 그가 확인하고 싶은 것을 그냥 확인하면 되는 거였다.
“다녀올게.”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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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 씨.”
편의점 문이 열리고 태현이 들어섰다. 은우는 경계가 가득 담긴 눈으로 그런 태현을 노려봤다. 하지만 태현은 은우를 전혀 의식도 하지 않은 채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나라 씨 어디에 있습니까?”
“떠났어요.”
“네?”
“여행 갔다고요.”
“그게 무슨?”
“당신 떄문입니다.”
은우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요?”
“당신이 이나라 흔들어서 떠난 거라고요.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여기에 나타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태은우 그만 해.”
“뭘 그만 해?”
우리가 말렸지만 은우는 단호했다.
“그쪽이 나이가 지금 몇 개인지 아는 겁니까? 그런데 지금 도대체 나라에게 뭘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일단 나가죠.”
“싫습니다.”
“아이처럼 행동하지 마요. 여기 그냥 공텅 아닙니다. 이우리 씨가 일을 하는 곳이라고요. 여기에서 그런 식으로 민폐를 끼친다는 거. 결국 이나라 씨 귀에 들어가면 그쪽에게 좋을 것이 하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태현의 말에 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뭐라고 한 마디 더 하려고 하지만 손님이 들어오는 통에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손님이 나가서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그의 말처럼 결국 또 손님이 왔다.
“나가죠.”
“젠장.”
은우는 욕설을 내뱉고 나섰다. 태현도 그를 따라 가려고 하자 우리가 태현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나라 친구에요.”
“알고 있습니다.”
“싸우면 안 돼요.”
“네.”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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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 하자는 겁니까?”
“뭐가 말입니까?”
“나라 찾아서 뭐 하려고요?”
은우의 물음에 태현은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자신은 나라를 찾아서 뭘 하고 싶은 것일까? 알 수가 없었다.
“그쪽하고 지금 나라가 어울린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까? 그쪽 나라보다 열 살이나 많다고요. 사람이 책임이라는 것이 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쩌면 그렇게 무책임하게 안하무인인 겁니까?”
“그러는 그쪽은 무슨 자신감입니까?”
“네?”
“한 번이라도 이나라 씨에게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게 무슨?”
“나는 할 겁니다. 고백.”
태현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확신이 들었다. 자신은 나라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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