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라가 여수에 간 건지 알려준 거야.”
“그냥.”
은우의 물음에 우리는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숨기고 그럴 이유 없잖아. 나라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냥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달라고 하는 거. 그 정도 알려주는 거 내가 생각을 하기에 별로 큰 문제는 아니거든.”
“하지만.”
“너 나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어?”
“나라 좋아하는 거잖아.”
“그거야.”
“그럼 그냥 지켜봐.”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은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보기에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나라 처음으로 자기 마음을 보는 거야.”
“자기 마음이라.”
“한 번도 누구 좋아한다고 말을 한 적이 없던 녀석이야. 그런 녀석이 지금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런 거라면. 적어도 한 번은 이나라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 그 녀석이 정말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도록. 그 시간 정도는 충분히 줘야 하는 거라고.”
“나는 싫어.”
은우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이 너무나도 유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서운하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자신은 나라가 좋았다. 나라를 이런 식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태현이 나타나기 전에 용기를 낼 수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억울했다.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오랜 시간 이나라 곁에서 머물렀는데. 내가 그 오랜 시간 있었는데 이건 아닌 거잖아.”
“그러는 너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켜먄 본 거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다 알고 있으면서.”
“어?”
“너는 겁쟁이야.”
우리는 가볍게 검지로 은우의 머리를 밀었다.
“내가 보기에. 너 지금 그 녀석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냥 다른 사람이 네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장난감 가지고 간다니까 투정을 부리는 거라고. 네가 정말로 나라를 좋아한다면 그런 거 하나 고민하지 않고 그냥 바로 마음을 표현했어야 하는 거잖아.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어. 그래놓고 지금 나라를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거지. 그거 너 위선이고 거짓이야.”
“거짓이라.”
은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우리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자신은 그저 위선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모르지.”
“이나라가 또 거절하면.”
“그래도 너랑 상관이 없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또 거절하더라도 그건 너랑 아무런 상관도 없을 테니까.”
은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결국 나라의 마음에 자신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을 받는 거였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이 하나 없다는 거구나. 내가 노력을 하더라도. 그래도 말이야.”
“너 노력한 적이 없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너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던 거야. 나라가 너에게 먼저 오기를 바라고. 하지만 너는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어. 네가 만일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했더라면 그냥 그런 식으로 바라보기만 하지는 않았을 거야. 나라에게 손을 내밀었겠지.”
“손이라.”
은우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네.”
“나라에게 기회 좀 주자.”
우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내 동생이 처음으로 어떤 일에 대해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는 것 같아. 그 녀석 반응 궁금하지 않니?”
“궁금해.”
“네가 아니더라도.”
“행복할 수 있겟지.”
은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의 마음이 어떤 건지 자신도 궁금했다. 정말로 어떤 마음인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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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왜 왔어요? 여수 좋죠? 여수.”
“이나라 씨 때문에 왔습니다.”
“네?”
“다른 이유로 올 이유가 있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당신 보러 왔다고요.”
나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태현의 말이 고맙기는 했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미안하고 부담스러웠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여기에 오는 건데요? 내가 도대체 당신에게 뭘 해주기를 바라는 건데요? 내가 도대체 뭘 하기를 바라는 거죠?”
“그런 거 아닙니다.”
태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이나라 씨는 왜 그렇게 모르는 척을 하는 겁니까? 내가 여기에 왔는지 정말 모르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쪽 보러 왔습니다.”
태현의 고백에 나라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바닷바람이 춥습니다.”
“괜찮아요.”
“어디 들어갈래요?”
“아니요.”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 만일 태현과 어디에 들어가버리면 그냥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너무 놀라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냥 나를 왜 보러 온 건지. 그것 좀 이야기를 해줘요. 아니 말도 안 되잖아요. 내가 뭐라고 나를 보러 와요?”
“왜 내가 이나라 씨를 보러 오면 안 되는 겁니까? 내가 이나라 씨를 좋아하는데. 이거면 충분한 거 아닙니까?”
“나를 좋아한다고요?”
나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태현 씨랑 내가 사는 세상 많이 다르잖아요. 그렇게 다른데 우리 두 사람이 어떻게 좋아할 수가 있어요? 우리 두 사람 뭐 좋아할 건덕지 같은 것도 없는 사이에요. 그냥 우연히 마주한 사이라고요. 그런데 좋아할 수 있다고요?”
“네.”
태현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나라 씨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는 당신이 처음부터 좋았습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좋았습니다.”
“거짓말.”
나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적어도 그녀가 사는 세상에서 이런 식의 사랑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거 말이죠.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라고요. 하나하나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이해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거라고요. 그런데 지금 우리 두 사람은 그런 거 하나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래놓고 지금 좋아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왜 그게 말이 안 되는 건데?”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 도대체 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그런 생각들을 해야 하는 건데? 그냥 우리 두 사람이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 그걸로 끝 아니야? 그냥 우리 두 사람이 좋아하면 그걸로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요.”
나라는 단호했다. 절대로 그렇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을 거였다. 그렇게 해서 아픈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더 이상 괴롭고 힘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충분히 지쳤다.
“당신이 뭐라고 하더라도 나는 아니에요.”
“당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고 있어.”
“네?”
태현의 말에 나라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이나라. 당신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있어.”
“말도 안 돼.”
나라는 입을 막고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그런 짓을 하는 거죠? 내가 그런 것을 부탁한 적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당신 마음대로 내 이름을. 내 캐릭터를 쓸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이거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정태현 씨가 보기에는 내가 그렇게 우습고 한심해 보이는 거예요? 그런 거냐고요.”
‘그런 거 아닙니다.“
태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나라를 무시하거나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그녀를 좋아할 따름이었다.
“늘 소설을 쓸 적에 모델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그 사람들은 그저 소설 속에서만 머물고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다릅니다. 이나라라는 사람이 자꾸만 눈에 보였다고요.”
“그것 참 고맙네요.”
나라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내가 무슨 절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도대체 왜 당신이 자기 마음대로 나를 가지고 소설을 쓴 것을 가지고 내가 고마워해ㅑ 하는 거죠?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말이죠. 도대체 여기까지 와서 나에게 그런 소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죠?”
“좋아합니다.”
“아니요.”
나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저 당신 소설 속에 있는 등장 인물을 좋아하는 거겠죠. 당신이 나를 좋아할 이유 같은 거 하나 없잖아요. 안 그래요? 우리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사이라고 당신이 나를 좋아하냐고요.”
“궁금합니다.”
“소설을 쓰다가 내 생각이 났나요?”
“이나라 씨.”
“됐어요.”
나라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태현과 이런 식의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괴로웠다.
“나 말이에요. 솔직히 그쪽 만나서 되게 반가웠어요. 혹시라도 우리 두 사람? 이런 생각을 하기는 했거든요. 그런데 이건 아니에요. 당신이 내가 아니라 그저 소설 속의 어떤 인물 때문에 그런 거라면 나 정말 너무나도 괴로워요. 나는 그저 당신에게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왜 이러는 겁니까?”
“당신은 나를 소설 속 인물로만 봤으니까.”
“이나라 씨.”
“정말 싫어.”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만 태현을 좋아한 것 같았다. 지금 태현은 자신과 전혀 다른 마음이었다.
“나 있잖아요. 정말로 정태현 씨에 대한 마음을 확 접을 거예요. 정태현 씨가 나를 그렇게 보는 것처럼.”
“그런 게 아닙니다. 도대체 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나 지금 정말로 이나라라는 사람이 좋아서. 그래서 여기에 온 거란 말입니다. 이나라 씨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온 거라고요.”
“돌아가요.”
“이나라 씨.”
“자존심 상해.”
나라는 눈물이 가득 담긴 눈으로 태현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정말로 정태현이라는 사람이 궁금했는데. 정태현이란 사람은 내가 궁금한 게 아니었어. 그냐. 이나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궁금했던 거야. 그냥 자기 마음대로 썼던 소설 속에 이나라라는 사람이 궁금했던 거야. 그런 거면서. 그랬던 거면서 지금 내가 궁금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아닙니다. 그런 거.”
“맞잖아요. 그런 거.”
“이나라 씨.”
태현은 심호흡을 하고 나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나라에게 자신의 소설 원고를 건넸다. 나라가 그것을 받으려고 하지 않자 억지로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짧게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나라는 한숨을 토해냈다.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또 이렇게 되고 말았다. 자신은 또 바보처럼 태현을 밀어내고 이렇게 혼자 아파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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