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라 너 갑자기 왜 온 거야?”
“언니.”
우리는 놀란 눈으로 나라를 맞이했다.
“정태현 씨는?”
“언니 입에서 그 사람 이름이 왜 나와?”
“어?”
“언니구나.”
“이나라.”
“그렇지.”
나라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아니고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말을 해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언니 도대체 왜 그런 거라니? 도대체 그 사람이 나에게 뭐라고 나에게 그렇게 가라고 말을 한 거야.”
“너 그 사람 필요하잖아. 아니었어? 네가 정태현 씨 좋아하고 있다는 거 내가 더 잘 알고 있는데.”
“좋아하지 않아.”
나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이 내게 뭘 한 줄 알아?”
“뭘 했는데?”
“나를 가지고 소설을 썼어.”
“그게 뭐?”
“뭐라고?”
우리의 반응에 나라는 미간을 모았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수가 있어?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어떻게 내 이름을 가지고 소설을 써?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냐고. 그거 나를 놀리는 거잖아. 내가 얼마나 만만하게 보이면. 그 사람이 나를 가지고 그런 장난을 할 수가 있다는 거야?”
“그 사람 직업 소설가야.”
우리는 덤덤하게 대답하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이 소설을 쓴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 아니야? 네가 그렇게 예민하게 굴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리고 정태현 씨를 너도 좋아하고 있잖아. 그런 거면서 왜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척. 그런 거 아닌 척 행동을 하는 건데. 네 마음에 솔직해야지.”
“언니 누구 편이니?”
나라의 물음에 우리는 가만히 나라의 눈을 바라봤다.
“누구 편이 어디에 있어?”
“있어.”
“이나라.”
“실망이다.”
나라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더라도 언니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를 위해서 그래야 하는 거잖아.”
“아니.”
우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라를 가만히 보더니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너 왜 이렇게 미련하게 구는 거니?”
“뭐라고?”
“왜 이렇게 답답하게 행동을 하는 거냐고. 말도 안 되는 거잖아. 너도 그 사람 좋아하고 있으면서 왜 자꾸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건데? 그렇게 자꾸만 정태현 씨가 싫은 이유를 찾고 있으면서. 그러면서 지금 그 사람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안 그래? 네가 정말로 그 사람ㅇ르 좋아한다면. 그 사람이 중요하다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좋아하지 않아.”
“이나라.”
우리는 이마에 손을 얹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네가 왜 이러는 건지는 알겠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너를 위해서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도대체 뭐가 나를 위하는 건데?”
“일단 그 소설 다 읽어봐.”
“언니.”
“다 읽으라고.”
우리의 차가운 말에 나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최소한 그 사람이 왜 좋은지 싫은지. 최소한 그 사람이 쓴 소설은 다 읽고 나서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아니야? 그게 예의잖아. 정태현 씨가 너에게 그 모든 것을 다 고백한 이유를 알아야지.”
“그냥 자기 마음 편하려고 한 거야. 그런 일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 같은 거 부여하고 싶지 않아.”
“그런 거라면 너에게 그 소설 주지 않았을 거야.”
나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라를 가만히 응시했다.
“너도 알고 있잖아. 그 사람이 너에게 준 것이 그냥 소설이 다가 아니기를 바라서 그러는 거잖아.”
“하지만 이미 그 사람이 나에게 하려는 건 단순히 소설이라는 걸 알아버린 거잖아. 아니야? 내 말이 맞잖아.”
“아닐 거야.”
“아니. 맞아.”
나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태현은 자신을 그저 소설 속의 인물처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자신은 그저 그의 소설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나도 사람이고 싶어. 그냥 평범한 사람. 그냥 평범하게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 전부란 말이야.”
“그러니까 더더욱 그 사람하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정태현 씨에게 그런 게 싫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어?”
“그러면 뭐가 달라져?”
“이나라.”
“달라질 거 없어.”
나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의 변명을 할 거고. 나는 그 사람의 변명을 듣지 않을 거야. 우리는 서로 아플 거고. 다시 또 서로를 괴롭게 할 거야. 그런 거 웃기잖아. 안 그래? 나는 더 이상 지치고 싶지 않아.”
“기회는 줘야지.”
“도대체 무슨 기회?”
나라는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아. 나는 그저 나랑 사람으로 연애를 할 그런 사람이 필요해.”
“이나라.”
“그 사람은 아니야.”
나라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 한숨을 토해냈다. 머리가 아파왔다. 우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괜한 자존심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이야.”
“그래. 그 사람도 그런 거야.”
“언니.”
“진심으로 이야기를 해봐.”
“아니.”
나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설득을 당하고 말 거야.”
“그 사람에게 설득당한다는 거. 그거 네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 아니야? 그래서 그렇게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
나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았다. 하지만 그야 좋아한다고 할 수도 없는 마음이었고 불편했다.
“나도 지금 내가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어.”
“나는 보여.”
“언니가 어떻게 보이냐?”
“네가 너무 보이게 행동하니까.”
우리는 나라의 손을 꼭 잡았다.
“이나라. 내가 언제 이런 식의 잔소리 한 적이 있어? 없잖아. 너 지금 그 사람 좋아해. 정태현 씨를 좋아하고 있다고. 네가 왜 자꾸 네 마음을 숨기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네가 네 마음에 대해서는 솔직했으면 좋겠어. 지금 네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는 거 오직 너 하나야.”
“이게 내 마음이야.”
나라는 소설 뭉치를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결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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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러다가 죽어.”
“안 죽어.”
우석의 걱정스러운 말에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겨우 이 정도로 죽을 걸로 보이냐?”
“어.”
“하긴 힘들기는 힘드네.”
우석은 태현의 집으로 들어와서 가만히 이것저것을 살폈다. 그 깔끔하던 태현의 집이 엉망이었다.
“늘 나보고 거지처럼 산다고 구박을 하더니. 이제는 내가 조금 깔끔하게 살려고 하니까 네가 지랄이냐?”
“너보고 구박을 했는데 이게 편하네.”
“미친.”
우석이 정리하려고 하자 태현은 우석의 팔을 붙들었다.
“괜찮아. 어차피 더러워질 거야.”
“헛소리 하지 말고. 좀 씻어라. 냄새 나.”
“나 냄새 나냐?”
“그래.”
태현은 자신의 몸을 킁킁거리더니 이내 웃으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우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련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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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태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지 않아.”
“네가 이런다고 해서 달라질 거 하나 없잖아. 결국 너만 바보가 되고. 너만 아픈 거면서 왜 이러는 건데?”
“그냥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래. 이나라 씨 안 그래도 나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 더 힘들게 하고 그런 거. 너무 우스운 거잖아. 안 그래?”
“나는 네가 이해가 안 된다.”
“뭐가?”
“내가 알고 있는 정태현. 이렇게 기가 팍 죽어서. 자기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도 못하는 사람 절대로 아니야. 적어도 네가 지금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그 소설이 정말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지는 이야기를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냥 바보처럼. 아 그렇습니다. 하고 이렇게 포기하고 마는 거야? 그런 거 정태현이라는 사람의 이미지랑 너무 안 어울려. 정말 다르다고.”
“이제 우리도 어리지 않아.”
태현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저었다.
“이전에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우리는 나이를 먹었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도대체 뭐 얼마나 먹었다고?”
“아주 많이.”
“젠장.”
우석의 낮은 욕설에 태현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너 때문에 살겠다.”
“지랄.”
“진짜야 새끼야.”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뒤로 몸을 기댔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
“너 글 써.”
“써져야 쓰지.”
“네 직업이 소설가야. 세상에 돈 벌러 다니는 사람들은 전부 다 그게 즐거워서 그거 하고 다니겠냐? 그거 재미없어. 더럽게 재미 없다고. 그래도 다들 그게 자기 일이니까 그거 하고 다니는 거야.”
“그러는 너는?”
“카페 열심히 나간다.”
우석의 대답에 태현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러고 보니 우석의 카페도 한 번 제대로 가보지 않았다.
“낮에 들릴게.”
“기다린다.”
“기다리지는 말고.”
“미친 놈.”
우석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같이 있어줘?”
“꺼져라.”
“말이나 못하면.”
“사내 새끼가 같이 있어준다고 하는데 좋다고 할 새끼가 어디에 있냐? 와줘서 고마워. 조심해서 가.”
“그래.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고.”
“응.”
우석이 현관에 나가고 태현도 그를 따라 나가서 배웅을 한 후 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엄청난 쓸쓸함이 그를 덮쳤다. 지금 이 순간에 느껴지는 무기력함.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정태현 도대체 뭐 하자는 거냐.”
한심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제대로 잡지도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멍청했다. 하지만 더 이상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혼자만의 착각에 빠진 채로 사는 것이 더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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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 씨 연락처 좀 알려주시죠.”
“뭐예요?”
카운터를 보던 우리가 입을 쭉 내밀었다.
“다짜고짜 동생 연락처나 내놓으라고 하다니.”
“그 녀석이 안쓰러워서 안 되겠습니다.”
“나는 반대에요.”
우리의 대답에 우석은 미간을 모았다.
“아니 왜 반대입니까? 분명히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렇다고 이야기를 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나라가 직접 나서지 않고. 제가 뒤에서 이러는 거 너무 웃긴 일이라고요. 이건 나라 일이에요.”
“그러니까 그쪽이.”
“언니.”
문이 열리고 편의점에 나라가 들어왔다. 나라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우석을 보더니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여긴 어쩐 일로.”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네?”
“그리 긴 이야기 아닐 겁니다.”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나가계세요. 금방 갈게요.”
“네.”
우석이 나가고 따라 나가려는 나라를 우리가 붙들었다.
“너 도대체 저 사람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보나마나 정태현 씨 이야기를 하려고 할 텐데. 왜 그래?”
“들어봐야지.”
“그 이야기 하는 거 불편하다며?”
“그래도.”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 그래도 자기 친구를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내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얼굴 한 번 보여 달라고 하는데. 그걸 그렇게 싫다고 할 이유 하나도 없는 거고. 이야기만 좀 할게.”
“모르겠다. 나도.”
우리는 혀를 차며 나라를 붙들던 손을 놓았다.
“나는 그냥 네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나도 힘들지 않아.”
“너 지금 되게 지쳐 보여.”
“그래?”
나라는 가만히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우리의 말처럼 약간은 거칠한 누군가가 거기에 있었다. 나라는 혀로 입술을 한 번 축이고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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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온 거예요?”
“알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우석은 차 문을 열었고 나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차에 탔다. 약간은 답답한 냄새가 났지만 그보다 더 답답한 것은 마음이었다.
“태현 씨는 어떻게 있어요?”
“미치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렇군요.”
“그게 다입니까?”
“네?”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입니까?”
“그럼 제가 뭐라고 더 해야 하는 거죠?”
나라의 덤덤한 대답에 우석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살짝 원망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그 녀석이 이나라 씨에게 무슨 잘못을 그렇게 크게 한 겁니까? 그 녀석 소설 쓰는 거 알고 있었잖아요.”
“정태현 씨가 소설을 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를 모델로 해서 쓰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나도 그 녀석 소설에서 몇 번이나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뭐 특별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런 일에 대해서 유난히 민감하게 할 이유 없는 거 아닙니까?”
“그냥 싫어요.”
나라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정태현 씨가 좋거든요. 그런데 정태현 씨가 나를 상대로 그런 글을 썼다고 하니까. 나를 좋아해주는 건. 내가 이나라라서가 아니라 정태현 씨의 소설 속의 어떤 인물이라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거 절대로 아닙니다.”
우석은 한숨을 내쉬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보증합니다.”
“그냥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람. 그 정도로만 해두죠. 제가 그 사람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 붙잡아주기 바라고 있군요.”
“아니에요.”
“그런데 그 녀석이 잡지 않는 거군요. 이나라 씨가 간절히 붙잡아주기를 이렇게 소망하고 있는데 말이죠.”
나라는 우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우석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대로 차에서 내렸다. 우석은 그녀를 따라 내리려고 하다가 혀로 입술을 축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제 모든 일은 두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우석은 나라가 편의점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차를 움직였다. 이제 앞으로의 일은 태현에게 달려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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