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너 여기에 왜 온 거야?”
“일하러.”
“어?”
우리가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짓자 나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편의점 야간 일 내가 하고 있었던 거잖아. 그런데 뭐 내가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놀라고 그래?”
“아니. 내가 이제 할 거잖아. 너 여행 다니고 이제 좀 쉬라고. 너 그 동안 많이 고생했다고. 그랬잖아.”
“아니.”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체질이 어디에서 놀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어차피 하던 일인데 뭐 언니에게 맡기고 내가 쉴 것이 뭐가 있어? 안 그래? 그냥 시간이 더 많이 나는 사람이 일을 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나 편의점 일 재미있어.”
“뭐가 재밌어.”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나라. 지금 네가 되게 복잡하고 그런 건 알겠는데. 억지로 너 괴롭히려고 하지 마. 너 지금 되게 한심해.”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 게 아니야. 나 정말로 편의점 일이 재미있어서. 그냥 좋아서 그러는 것 뿐이야.”
나라의 대답에 우리는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입을 쭉 내밀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엄마랑 아빠에게 말하고 와.”
“언니.”
“너 또 나만 나쁜 년 만들려고 하는 거지? 하나만 있는 동생 막 일시키고 힘들게 하는 그런 언니 말이야.”
“그런 거 아니야.”
“아니까. 엄마랑 아빠에게 말 해.”
나라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네가 마음에 안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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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냥 쉬지 그래?”
“아니.”
부친의 말에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빠도 아는 것처럼 나 막 그렇게 쉬는 체질이 못 되는 걸요. 나 그렇게 쉬고 그런 거 어울리지 않아.”
“그래도 나는 네가 좀 쉬었으면 좋겠어. 네가 그렇게 오래 고생을 하고 그랬는데 왜 이렇게 일을 못 해서 안달이야?”
“언니가 일을 하는 거 불안하지 않아요?”
나라의 말에 부친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라가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고 미안했다.
“나랑 네 엄마가 제대로 돈벌이를 못해서 너희를 엄청 고생을 시키네. 우리 둘이 더 잘 해야 하는데.”
“그런 거 아니야. 나는 그냥 편의점 일이 즐거워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고. 그리고 어차피 지금까지 내가 하던 일인데 갑자기 안 한다고 하는 것도 너무 우스운 거고. 안 그래요?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나라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원래처럼 이제 야간 내가 할게요.”
“위험해.”
“아빠는 나이도 많으면서.”
나라의 지적에 부친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모친이 그의 손을 붙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나라 네가 더 마음에 든다. 얼마나 야무지게 일을 하는지. 일단 오늘은 우리가 있으니 내일부터 해.”
“응. 나 잘게요.”
“그래. 들어가.”
나라가 방을 나서자 모친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
“쟤 무슨 고민이 있어 보이지 않아요?”
“고민?”
“한 번도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애잖아. 그런데 지금 저러는 거 보니까 되게 이상하다고.”
“우리에게 물을까?”
“일단 두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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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가시는 것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출판사 직원의 말에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다가 직원이 미간을 모으는 것을 보고 라이터를 집어 넣었다. 그런 태현에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피우셔도 괜찮은데?”
“지난 번에 담배 안 핀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네? 그랬죠.”
“그런데 어떻게 피웁니까?”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뭐. 일 이야기를 할 때는 늘 뭔가를 물고 있는 것이 버릇이 되었으니까. 일단 지금은 물고만 있죠.”
“감사해요.”
직원은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의 태현과 다르기는 했지만 뭐 나쁜 것은 아니었으니 다행이었다.
“일단 어떤 이야기가 진행이 될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인물들이 너무 답답하게 행동을 하는 거 같아요.”
“그렇죠? 제가 봐도 남자 주인공이 되게 미련합니다. 여자 주인공을 좋아하면서 닿지 않으니까요.”
“왜 이렇게 자꾸 포기를 하죠?”
“네?”
“포기를 하잖아요.”
직원의 말에 태현은 자신의 소설을 내려다 보았다.
“아마 여주인공이 이런 상황에 대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요.”
직원은 입을 내밀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거 되게 비겁한 일인 것 같아요. 아니 자기가 마음이 있으면 그냥 막 들이대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하면 여자가 부담스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소설 속 여주인공도 남자에게 마음이 있잖아요.”
태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마음이 있는 겁니까?”
“아니 작가님은 작가님 소설이면서도 그런 걸 물으세요? 정말로 이거 실제로 있었던 일을 쓰시는 거예요?”
“아니요. 제가 글을 쓰는 스타일 아시지 않습니까? 그냥 인물들이 있으면 그 녀석들이 놀게 만드는 거죠.”
“그런가요? 아무튼 여자 주인공도 좋아해요. 남자 주인공을. 그런데 남자 주인공이 자꾸만 변죽만 올리고 마니까. 자신에 대해서 정말 좋아하는 건가? 라는 확신이 들지 않고 그렇게 되는 거죠.”
“확신이라.”
“제가 여자라면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밀어주기를 바랄 것 같아요.”
직원의 말에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나름 확신을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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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겠어?”
“괜찮아요.”
부모님의 걱정에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야간 일 하는 거 늘 내가 했었는데 이제 와서 뭐 힘들고 그런 게 어디에 있어요? 그냥 다 마음 놓고 들어가세요.”
“딸 놓고 가는 마음이 어떻게 편해?”
“아빠. 또 오버한다.”
나라는 생긋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자신의 팔을 툭툭 두드렸다.
“아빠 딸 완전 강철 팔이라고 다들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나는 밤이 조용해서 더 좋아. 얼른 들어가셔요.”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네.”
나라는 멀리 내다 보며 부모님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기지개를 켰다. 이제 다시 편의점 일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종소리가 나고.
“어서 오세. 어서 오세요.”
태현이었다. 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카운터로 다가왔다.
“잘 지냈습니까?”
“필요하신 물건 있나요?”
“이나라 씨.”
“필요하신 물건이 있습니까?”
나라의 차가운 대답에 태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답답했지만 지금 나라의 행동이 왜 그런 것인지 알고 있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이나라 씨. 나랑 이야기 좀 합시다. 우리 두 사람 그냥 이러는 거 너무 우스운 거 아닙니까? 아니 적어도 나에게 무슨 변명이라도. 무슨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기회요?”
나라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그런 것을 드릴 사람이나 된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저는 아무 것도 아닌데요. 저는 그쪽에게 아무런 것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이봐요.”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지금 이나라 씨가 나에게 실망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실망했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적어도 저에게 기회를 한 번은. 제발 기회 한 번은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왜 그래야 하는 거죠?”
나라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건을 구매하시지 않을 거라면 돌아가주세요. 지금 물건 구매하셔야 하는 손님들이 우선이거든요.”
“그냥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마음대로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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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장사는 잘 되냐?”
“보면 모르냐?”
태현의 물음에 우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슨 카페가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거냐? 나는 손님이 많고 그래서 돈이 좀 되는 줄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많이 오더라도 카페라는 것 자체가 돈이 안 되는 거더라.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이거 돈이 안 되요. 돈이. 정말 미치겠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팔아.”
“정태현.”
태현의 심드렁한 대답에 우석은 미간을 모았다.
“너는 지금 그걸 충고라고 하는 거냐?”
“그럼 뭐라고 하냐? 지금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거 팔라고 하는 거. 그게 전부인데 말이야.”
“아니 지금 이걸 팔아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고? 카페 판다고 해서 마땅히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이거 가지고 있으면?”
“그냥 있는 거지 뭐.”
우석은 기지개를 켜며 한숨을 토해냈다.
“안 그래도 우리 꼰대 이거 왜 샀냐고 엄청나게 구박인데. 너까지 그렇게 하면 나는 정말 힘이 안 난다. 안 그래도 나 지금 되게 불안하다니까?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거 팔아야 하는 건지.”
“팔아야지.”
“닥쳐라.”
우석이 노려보자 태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일이 안 풀리는 모양이다?”
“왜?”
“너 네 기분이 안 좋으면 늘 나한테 와서 뭐라고 하잖아. 네 기분이 좋으면 나에게 뭐라고 안 하고.”
“그런 게 어디에 있어? 그냥 친구가 걱정이 되어서 그렇지.”
“지랄.”
태현은 킬킬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우석은 그런 태현의 머리를 가볍게 밀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누구 호구 없나?”
“미친.”
“네가 살래?”
“지랄도 병이다.”
“지금이라도 원금 회수 하면 우리 꼰대가 인정할 걸? 우리 꼰대 은근히 또 그런데 있어서는 여유로운 사람이니까 말이야.”
“헛소리 하지 마세요. 뭐라는 거야. 내가 아무리 네 친구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다 망해가는 카페는 인수 안 한다.”
“그 정도는 아니야.”
우석은 입을 쭉 내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이나라 씨는?”
“늘 그렇지.”
“안 답답하냐?”
“답답하지.”
태현의 미소에 우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네가 이해가 안 된다. 아니 그렇게 사람이 좋으면 그냥 조금 더 당당하게 하던가. 그게 아니면 그냥 포기를 하던가. 지금 도대체 뭐 하자는 거냐고? 이거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좋아해.”
태현은 혀로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사람을 내가 이 정도로 좋아하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내가 되게 좋아하는 거더라고.”
“그런 거라면 조금 더 몰아붙여도 되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한심하게 여기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건데?”
“그 사람에게도 시간을 줘야지.”
태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우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너 지금 되게 한심한 거 아냐?”
“어.”
태현의 대답에 우석은 입을 쭉 내밀더니 그의 커피 잔을 빼앗았다.
“아 왜?”
“얼른 가.”
“어디를?”
“편의점.”
“됐어.”
태현이 손을 내밀자 우석은 허리 뒤로 잔을 숨겼다.
“얼른 가서 이나라 씨 잡으라고. 아니. 도대체 왜 그 간단한 걸 안 하려고 하는 거냐? 너 이나라 씨를 좋아하고 있고. 이나라 씨도 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망설이는 거냐?”
“그 사람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호감 이상으로 내가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거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가갈 수 없는 거야.”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나쁜 놈이거든.”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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