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미안해.”
“아니야.”
은우는 나라를 마주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두 사람이 친구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이렇게 마주할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은우의 말에 나라는 겨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은우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이해가 안 된다.”
“어?”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거냐?”
“그러게.”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늘 그냥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을 했거든?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더라.”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어? 전부 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거지.”
“그런가?”
“무슨 일이야?”
“언니랑 다퉜어.”
따뜻한 커피 잔을 만지면서 나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언니가 제대로 된 소리를 하니까 막 화가 나더라. 분하고. 나도 그거 다 알고 있는데 못하고 있는 거라고. 막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이런 이야기가 막 목 끝까지 나오고. 막 그랬어.”
“그럼 그냥 인정하면 되는 거잖아.”
“아니.”
나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니까. 지금은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언니가 틀린 거야. 아무 것도 아니야.”
“정태현 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어?”
“너 잔인하다.”
“아니.”
“괜찮아.”
은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내가 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두 사람이 친구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거 아니니까. 그리고 우리 두 사람 서로에게 이 정도 고민 상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 안 그래?”
“고맙다.”
은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나라의 눈을 바라봤다. 평소보다 많이 약해진 모습의 나라가 안쓰러웠다.
“너 도대체 왜 이렇게 변했냐?”
“그래?”
“이나라. 네가 지금처럼 행동을 했더라면 나는 애초에 너에게 호감을 가지지도 않았을 거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내가 좋아한 이나라라는 사람은 지금 네가 아니거든. 지금 이나라는 왜 이렇게 소심하고 바보처럼 행동하는 거냐? 왜 이렇게 답답하게 행동을 하려는 건데? 이해가 안 되잖아.”
“겁이 나서.”
나라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내가 뭐든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렇게 뭐든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더라고. 나도 되게 많이 부족하고. 한심하고. 사소한 것에도 화를 내는 사람이더라.”
“그거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야?”
“어?”
“너무 좋아하니까. 정태현 씨를 진심으로 좋아하니까. 그 사람이 네 마음에 대해서 애매하게 행도하는 것이 화가 나는 것이 아니냐고. 그런 것이 아니고서야 네가 그렇게 화를 낼 이유가 없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은우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연히 그에게 아무런 기회가 없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에게 아무런 기회가 없으니 답답하고 속 상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나라 너 정말로 그 사람 좋아하는 모양이네.”
“아니야.”
나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너 지금 그 사람 좋아하고 있어. 정말로 좋아하고 있어서 그러는 거라고. 왜 이렇게 답답하게 행동을 하는 거냐. 이나라. 너를 좋아하는 남자로. 그리고 너를 정말로 오래 봐왔던 친구로 너에게 하는 말인데. 너 지금 정태현 그 사람 좋아하는 거야. 좋아하니까. 내가 보기에는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는 거고. 서운하게 생각을 하는 거라고. 네가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마음도 없다면 그 사람에게 실망을 할 이유 같은 것도 하나 없잖아. 안 그래?”
“좋아해서?”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은우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겁이 났다. 그에게 함부로 다가설 수는 없었다.
“우리 어울리지 않아.”
“그런 거 누가 정하는데?”
“어?”
“나 정말로 싫다.”
은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검지로 나라의 머리를 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사람에게 가.”
“태은우.”
“너는 네가 불쌍하지도 않냐?”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네가 불쌍해.”
“태은우. 너 정말.”
“너 한 번도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본 적이 없잖아. 늘 누가 하라는 거 다 하고 그렇게 살았잖아. 이제는 한 번. 한 번이라도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안 되는 거야? 그게 그렇게 어려워?”
“나.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거짓말.”
은우의 말이 나라의 가슴을 쿵하고 때렸다.
“나는 네가 한 번도 행복한 거 본 적이 없다.”
“나 늘 행복했어.”
“너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는 거냐고.”
은우는 자신의 마리를 마구 허클며 나라의 눈을 보고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숙였다.
“너 아니잖아. 너 그런 거 아니잖아. 늘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다 하고 있었고. 언니에게 양보만 하고 있었잖아. 그랬으면서 도대체 뭐가 다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는 건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을 하는 건데?”
“내가 선택한 거야.”
나라의 당당한 대답에 은우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 네가 바보라는 거지.”
“태은우. 너 오늘 말이 좀 심하다.”
“너 지금 여기에 왜 나온 건데?”
“어?”
“나는 네가 행복해지기 바라.”
은우는 나라의 손을 잡았다. 나라는 그 손을 피하려고 했지만 은우는 힘을 꽉 주고 나라를 놔주지 않았다.
“뭐 하자는 건데?”
“너 내가 손 잡는 거 싫지?”
“누가 잡아도 싫어.”
“정태현 씨가 잡아주면 좋겠지.”
“아니야.”
나라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지만 은우도 단호했다. 결국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은우의 눈을 바라봤다.
“뭘 하라는 건데?”
“나랑은 안 뛰지?”
“응.”
“그럼 정태현 씨. 그 사람 손을 한 번이라도 잡아봐. 그러고 나면 네 심장이 뒨다는 거 알게 될 거니까.”
“아닐 거야.”
“그러니까.”
은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 한 번 해보는 거 나쁜 거 아니잖아.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게 더 우스운 거잖아.”
은우는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손 잡아. 일단 잡아보고. 그러고 이야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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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그런 거라니?”
“몰라.”
“이우리.”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분 여행간 사이. 나라랑 어떤 남자랑 잠시 뭐가 있었어요. 내가 보기에 그거. 분명히 그 남자 좋아해. 그래놓고 지금 아닌 척. 그렇게 빼기만 하고. 자기 마음 하나도 제대로 모르잖아요.”
“남자?”
부부는 놀라서 서로를 바라봤다.
“그게 정말이야?”
“나도 놀랐어.”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그 맹추가.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자기가 그 사람을 좋아하면서 좋아하는 것도 모르더라고요. 얼마나 답답한 줄 알아? 자기 마음 정도는 쉽게 알아야 하는 거잖아.”
“우리 잘못이네.”
“아빠 탓 아니야.”
부친의 대답에 우리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멍하니 벽을 바라봤다.
“그래도 때리면 안 되었던 건데.”
“그러니까.”
“너무 답답하잖아요.”
“그래도 네가 언니로 잘 타일러야지.”
“언니는 무슨.”
우리는 코웃음을 치고 입을 내밀었다.
“엄마랑 아빠도 알잖아. 늘 나한테 좋은 언니처럼 행동을 했던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나라였다는 거.”
우리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쟤도 고민 정말 많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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