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정말로 이나라 씨가 좋아서 그러는 거냐? 아니면 그냥 이나라 씨랑 장난을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
“정말로 좋지.”
태현의 대답에 우석은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럼 너. 편의점에서 이런 식으로 장난하는 거 하지 마.”
“어?”
“너 지금 되게 우스워.”
“그런가?”
태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다 잘 하고 싶은데. 내가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이나라 씨에게 혹시 무슨 피해라도 가지 않을까? 그게 궁금하기도 하고. 뭔가 되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그러니까 매일 이런 식으로 찾아서 사람을 더 괴롭히고 그러지 말란 이야기야. 네 마음에 대해서 확실히 이야기를 하고 고백하라고.”
“확실히.”
“그래. 확실히.”
--------------------------
“어서오세요.”
“오늘은 내쫓지는 않네요?”
“손님인데요. 뭐.”
나라의 대답에 태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달콤한 감자칩은?”
“없어요.”
“뭐. 그렇겠죠.”
“아. 어제 돈 안 내고 갔죠?”
“그런가요?”
“무슨 손님이 그것도 편의점 손님이 외상을 하고 그래요? 나름 돈도 잘 벌고 그러는 것 같던데요?”
“저 돈 하나도 못 벌어요.”
태현의 너스레에 나라는 입을 쭉 내밀었다.
“아무튼 어제 외상한 거. 돈 주세요.”
“얼마죠?”
“그런데. 그런 거는 뭐 죄송하다. 미안하다. 뭐 실수였다. 그런 말을 우선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실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태현의 사과에 나라는 입을 쭉 내밀고 미간을 모았다. 태현은 음료수 두 개를 꺼내와서 나라에게 건넸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이나라 씨.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일하는 거 안 보여요?”
“일 끝나고요.”
“바쁠 거 같은데요?”
“그러지 말고.”
태현이 나라의 손을 잡는 순간 뭔가 찌르르 올랐다. 두 사람은 놀라서 황급히 손을 놓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겨울이라서 정전기가 막 나네요.”
“그, 그러게요.”
“아무튼 끝나고 이야기 해요.”
“기다리겠습니다.”
“내가 먼저 연락할게요.”
“네.”
태현이 나가고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나라. 너 정말로 이래도 되는 거야? 정말로. 이렇게 그냥 다 괜찮은 거야? 한 번 용기를 내도 되는 건가.”
---------------------------
“네가 왜 나를 보자고 그래?”
“태현이 다시 만나고 싶어.”
지현의 말에 우석은 미간을 모았다.
“김지현.”
“네가 태현이 친구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우석은 차가운 눈으로 지현을 응시했다.
“너 지금 되게 뻔뻔한 거 알아? 네가 도대체 무슨 자격이 있어서 그 녀석에게 다시 나타나는 건데?”
“알아. 나도 내가 되게 한심하다는 거. 그런데 지금 나 도리가 없어. 그 사람. 다시 붙잡고 싶거든.”
“소설이 안 써지니?”
“안우석.”
지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언제 너에게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있어? 우리 두 사람 잘 되면 너도 더 좋고 그런 거 아니야?”
“뭐가 좋은데?”
“태현이 아직 나 좋아해.”
“아니.”
우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현의 얼굴을 보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살짝 몸을 뒤로 기댔다.
“김지현. 너 지금 되게 이상한 소리 하고 있다. 네가 정태현 그 자식에게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다고 믿고 있는 모양인데 말이야. 너 그 녀석에게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런 사람도 아니라고.”
“아직도 나에게 미련이 있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옆에서 보면 그 눈빛. 그거 모르는 거 아니잖아.”
“미련이야 있겠지.”
우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꼭 다물었다. 그러다 이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지현의 눈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게 뭐? 이미 다 끝이 난 일이고. 그 녀석 자기 마음 다 잡으려고 하는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려고 하는 건데?”
“아직 남았어. 나는.”
“너 되게 우습다.”
“알아.”
지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내가 되게 한심한 년인 거 알고 있고. 자존심도 더럽게 없는 년인 거 알고 있는데.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잖아. 정태현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니?”
“미친 년.”
“마음대로 욕해.”
우석이 주먹을 말아 쥐자 지현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후 우석의 눈을 노려봤다.
“너 태현이에게 떨어져.”
“뭐라고?”
“집에서도 끈 다 떨어진 주제에. 친구랍시고 지금 태현이에게 빌붙어서 사는 거잖아. 아니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너만 아니었으면 정태현 더 잘 나갔어.”
“김지현.”
“아무튼 도와줘.”
지현은 선글라스를 쓰면서 싱긋 웃었다.
“너도 태현이에게 보답은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정태현. 지금 그 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니지. 연애 소설?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 정태현이 그런 수준 낮은 글을 쓸 사람이기나 하니?”
“그게 뭐 어때서?”
“그래서 네가 좋은 친구는 아니라는 거야.”
지현은 이리저리 목을 풀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우석은 그런 지현을 노려보다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무튼 나는 도울 수 없어.”
“나 못 잊고 여태 혼자 있잖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뭐라고?”
지현은 살짝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정태현 그 인간이 한심하다고 하더라도 여태 너 하나만 생각하고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을 한 건 아니지?”
“하지만 그 동안.”
“만난 사람이 없었던 거지.”
우석은 슨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심호흡을 한 후 다시 지현을 응시했다.
“그 동안 내가 네가 무슨 짓을 하던 가만히 있었던 것은 네가 그래도 나쁜 년이 아닐 거라고 생각을 해서였거든.”
“나 안 나빠.”
“그런데 지금은 변주명이 아깝다.”
지현의 얼굴이 순간 구겨졌다.
“그 사람 이야기는 하지도 마. 내가 그 사람하고 같이 지내면서 얼마나 많이 힘들고 지쳤는지. 네가 알기나 해?”
“그런 걸 도대체 내가 왜 알아야 하는 건데? 내가 지금 알아야 하는 건 오직 한 가지야. 네가 그 사람을 택하고 태현이 녀석을 버렸다는 거. 그 사실은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지현은 선글라스를 벗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나라고 태현이를 떠나고 싶었을 줄 알아? 나도 정태현 떠나고 싶지 않았어. 그 사람을 꽉 잡고 싶었다고. 그런데 미래도 하나 보이지 않는 사람하고 내가 도대체 뭘 해야 한다는 건데?”
“그러는 변주명은 달랐어? 다를 거 하나 없었어. 네가 그 사람을 택한 거고.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그러니 이제 돌리겠다는 거야.”
지현의 말에 우석은 코웃음을 치고 목을 가다듬었다.
“너무 늦었어.”
“누구야?”
“뭐가?”
“정태현이 좋아한다는 여자.”
“네가 알아서 뭐 하게?”
“궁금하잖아.”
“궁금해 하지도 마.”
우석의 차가운 대답에 지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우석은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신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보지 말자. 너 보면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되게 역겹고. 불편하고 그렇다.”
“안우석.”
“아마 그 녀석도 마찬가지일 거다.”
지현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우석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따름이었다. 멀어지는 우석을 보며 지현은 아랫입술을 비틀었다.
“저 녀석 도대체 뭐야? 뭐냐고?”
-------------------
“왔어?”
“괜찮아?”
“뭐가?”
우리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나라는 괜히 툴툴거렸다. 그런 나라의 반응에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내 동생 괜찮은 모양이네. 나에게 막 쏘아붙이지 않고 그냥 덤덤하게 반응을 하는 거 보면.”
“그냥. 언니 말이 다 틀린 건 아닌 거 같아서.”
“철도 들었고.”
“뭐래.”
나라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언니 나 아직 어린 거 맞지?”
“그래. 우리 아직 어린 거 맞아.”
“그럼 아직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해도 되는 거지?”
“응. 해도 괜찮아.”
우리는 잠시 나라를 바라보다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품에 꼭 안고 어깨를 토닥였다. 나라는 아랫입술을 꼭 물고 고개를 숙였다.
“좋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너를 정말로 오래 본 사람이잖아. 그리고 우리 원래 하나였으니까. 내가 너에게 이야기를 하는 건데. 네가 내리는 모든 선택 중 틀린 선택은 단 한 번도 없었어.”
“그렇지?”
“응.”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에게 다 걸어도 되는 거지?”
“그래. 이 바보야.”
나라의 미소에 우리는 가볍게 검지로 머리를 밀었다.
“너를 믿어. 그게 정답이니까.”
------------------------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요.”
태현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운 날씨에 입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코끝이 붉었음에도 태현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일찍 왔네요?”
“내가 끝나면 연락한다고 했잖아요.”
“어디도 갈 수 없었어요.”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나라 씨가 무슨 말을 할까? 그리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고민을 하고. 그러다 보니까 그냥 이렇게 되었네요.”
“그럼 어디 따뜻한 곳에라도 있죠.”
“내 걱정 하는 거예요?”
“아니.”
“반갑네.”
태현의 말에 나라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태현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야 이게?”
“네?”
“이나라 씨 되게 똑똑한 척 다 하고 나서는. 지금 너무 감정을 못 숨기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나 좋아하는 거 티나는데?”
“아니거든요.”
“아닙니까?”
“그러니까.”
태현은 입을 꼭 다물고 나라의 눈을 바라봤다.
“이나라 씨. 당신이 나에게 얼마나 놀라고 상처를 받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가지고 글을 쓴다는 사실에 얼마나 놀랐는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이나라라는 사람을 소설 속 주인공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냥 이나라라는 사람이 좋아서. 그냥 이나라니까. 그래서 당신을 좋아하는 거라고요. 괜히 이상한 생각을 하고. 내가 당신에 대해서 다른 부분을 보지 않을까? 그런 것은 전혀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냥 이상했어요.”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네에 앉아서 가만히 발을 동동거리다가 가볍게 그네를 탔다.
“한 번도 누가 나를 좋아한 적이 없거든요.”
“거짓말.”
“정말로요.”
나라는 씩 웃으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늘 언니가 있었어요. 나랑 똑같이 생긴. 그런데 언니는 되게 활발하고. 사람들이 다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나는 아니니까. 그래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있었네요.”
“당신이 뭐라고 하건. 당신이 좋습니다.”
“정말이죠?”
“네.”
나라는 그제야 태현을 올려다봤다. 간절한 그의 표정.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살짝 내밀었고. 두근거렸다. 손톱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지만 망설일 수는 없었다.
“나도 좋아요.”
“네?”
“나도 그쪽이 좋다고요.”
나라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금방이라도 얼굴이 터질 것처럼 화끈거렸다. 심장은 더욱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은?”
“무슨 말을 자꾸 시켜요.”
“제대로 못 들어서 그러죠.”
“늙어서 그런가? 귀도 멀었나?”
“이나라 씨.”
“좋아한다고요!”
나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외치듯 말했다. 그리고 태현을 향해서 뭐라고 하려는 순간 그대로 태현의 입술이 다가왔다. 싸늘한 바람. 그리고 뜨거운 입술. 나라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인생으로.
'☆ 소설 창고 > 네게가는길[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16장 - 2] (0) | 2014.12.25 |
---|---|
[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16장 - 1] (0) | 2014.12.24 |
[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15장 - 1] (0) | 2014.12.22 |
[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14장 - 2] (0) | 2014.12.21 |
[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14장 - 1] (0) | 2014.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