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네게가는길[완]

[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16장 - 2]

권정선재 2014. 12. 25. 07:00

 

피곤하죠?”

아니요.”

 

부모님에게 걸릴까 모퉁이를 돌아서 나타난 나라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태현은 황급히 나라의 손을 꼭 잡았다.

 

날도 추운데요.”

꽨찮아요. 밖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건데요.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래요?”

그래도 걱정이 되니까 그러죠. 특히나 야간에 일을 하면 미친 놈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일을 해봐서 알지 않습니까?”

아이고. 고작 그 정도 일을 해보고서 뭘 안다고 그래요? 그 정도 일해서 아무 것도 알 수 없으면서.”

누가 그래요?”

됐어요. 그래도 이렇게 앉으니까 좋다. 편하네요. 아무리 내 편의점이라고 하더라도 일을 할 적에는 막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좋다. 아침부터 정태현 씨를 보니까 그래도 좋네요.”

나는 아닌데?”

?”

 

태현의 장난스러운 말에 나라는 입을 쭉 내밀었다. 태현은 씩 웃고 부드러운 음악을 틀고 사탕 껍질을 벗겨서 나라에게 건넸다.

 

먹어요.”

안 먹어요.”

우리 어디로 갈까요?”

내 말 듣기는 하는 거예요?”

. 안 먹는다고. 그래서 우리 어디에 가요?”

 

태현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나라는 눈을 감고 머리를 기댔다. 태현은 혀로 입술을 살짝 축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알아서 갑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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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다시는 너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을 텐데?”

너무하네.”

 

우석의 대답에 지현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나름 친하게 지내지 않았었나? 중간에 태현이도 있었고. 그랬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다르네. 나는 너 좋아한 적 한 번도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그래?”

 

지현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다리를 꼬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네 카페 좋다.”

김지현.”

주명 씨 팬사인회 같은 것도 여기에서 열 수 있으려나? 나름 규모 자체는 작은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곳은 하루 빌리려고 하면 돈을 얼마나 줘야 하는 거니? 그래도 우리는 아는 사이니까 좀 빠지지?”

뭐 하자는 거야?”

 

우석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너랑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거야? 이런 식으로 나 찾아오지 마라고. 네가 이런 식으로 나 찾아오는 거 하나도 반갑지 않다고. 내가 하는 말 몰라?”

알아.”

 

지현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뭐?”

뭐라고?”

내가 그냥 태현이랑 다시 잘 되고 싶다고. 그게 뭐 너에게 손해가 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도와주면 안 되는 건가?”

네가 사라지고 나서 정태현 그 멍청한 자식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네가 더 잘 아는 거 아니야? 한 동안 글도 제대로 못 쓰던 놈이라고. 그리고 네 잘난 행동 탓에 평소에 쓰던 글하고 다른 스타일을 써야 하고. 지금 그 자리에 오르고 사람들에게서 사랑 받는 거. 그 녀석 엄청나게 노력한 거야.”

알아.”

 

지현이 입에 담배를 물자 우석은 곧바로 그것을 빼앗았다. 지현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여기도 금연이니?”

어디나 금연이야.”

치사하네.”

그리고 너도 출입금지야.”

그건 불법일 텐데?”

 

지현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실까? 그리고 나 그 동안 행복하지 않았어. 정태현이 힘든 만큼 나도 괴롭고 아팠다고. 이 정도면 내가 다시 그 사람을 만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거 아니야?”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

김지현. 너 정말 이기적이다.”

.”

 

지현은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머리를 자연스럽게 넘기면서 우석의 눈을 보며 가볍게 몸을 뒤로 젖혔다.

 

네가 뭐라고 하더라도 나는 정태현 만날 거야. 네가 이렇게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직접 만나야지.”

하지 마.”

네가 무슨 자격으로?”

걔 이제 행복해.”

그런데?”

뭐라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나?”

너 정말.”

내가 행복하지 않아.”

 

지현의 대답에 우석의 얼굴이 구겨졌다. 지현은 너무 당연한 것을 말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다른 게 필요해?”

너 정말 이기적이다.”

.”

 

지현은 혀를 내밀며 밝게 웃었다.

 

어차피 이기적이라는 소리 듣는데 내가 조금 더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 나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야. 이제 더 이상 숨기거나 그러지 않을 거야.”

너 나쁜 년이야.”

네가 나에 대해서 도대체 뭘 얼마나 알고 있기에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데?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네가 그에 대해서 알기나 하고 있는 거야? 너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그래. 나 아무 것도 몰라.”

 

우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하지만 내가 본 건 네가 정태현 버리고 간 거고. 그 녀석이 너로 인해서 아파했다는 거야. 알아?”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이유가 중요하잖아.”

아니.”

 

우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지현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치고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네가 뭐라도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말이야. 너 아무 것도 아니야. 너 더 이상 정태현 그 녀석에게 아무런 울림도 되지 못한다고. 이제 정말로 행복하게 연애하려고 하는 애 굳이 흔들어야겠어?”

.”

 

지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싶어.”

너 정말.”

도와줘.”

 

지현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잘 되고 나면 내가 다 설명할게.”

그럼 지금 말 해.”

그건.”

왜 말을 못 하는 건데?”

 

우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그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왜 이야기를 못 하는 건데?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면. 네가 억울할 이유가 있었더라면 나에게 그 정도는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너에게 이야기를 해도 이해를 하지 못할 거야. 너는 또 내 탓을 할 거고. 그리고 애초에 내가 태현이에게 상처를 준 거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녀석에게 먼저 말을 해야 하는 거잖아. 아니야?”

그렇게 중요한 거면 왜 나를 찾았어?”

그건.”

지금이라도 가서 말을 하면 되잖아.”

무서워.”

무섭다고?”

 

우석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지현을 응시했다.

 

그 녀석은 네가 직접 와서 무슨 말이라도 해주기를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데 지금 무섭다는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믿지 않았을 거야. 내 말을 귀담아서 듣지 않았을 거야. 이제야 겨우 내 말을 듣게 된 거라고. 내가 하는 말을 이제야 겨우 듣게 되었는데. 그랬는데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무릎이라도 끓어야지.”

꿇고 싶어.”

더한 것도 해야지.”

하고 싶어.”

그럼 해.”

못 해.”

김지현.”

너는 이해 못 해.”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봤다. 우석은 혀를 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김지현 지금 너는 아직까지도 네 자존심이 우선이라는 거야. 그 녀석보다도 네 자존심이.”

내 자존심이 우선이라는 것이 아니야. 그냥 내가 할 수 없는 말도 있으니까. 네가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고.”

이해하고 싶지 않아.”

너야 말로 이기적이다.”

내가 도대체 왜 이기적인 건데?”

안우석. 너는 그냥 네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거야. 나 하나 나쁜 년 만들면 일이 되게 편하니까.”

너 말 정말로 이상하게 한다. 내가 도대체 뭐가 편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 내가 그러면 내가 편할 것이 뭔데?”

모르지.”

 

우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네가 뭐라고 해도 나는 안 들을 거야. 절대로 너 돕지 않아. 너를 돕는 건 그 녀석을 다시 망가뜨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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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왜 온 거예요?”

우리 두 사람이 같이 나온 국민, 아니 초등학교가 여기더라고요.”

?”

 

나라가 바로 태현의 얼굴을 보더니 함박 웃음을 지었다.

 

방금 뭐예요?”

뭐가요?”

지금 국민이라고 했잖아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이 먼저 들어가는 국민학교. 내 말이 맞죠? 지금?”

아닙니다.”

에이. 뭐가 아니에요? 내가 두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정태현 씨가 나이가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웬일이니. 웬일이니? 푸하하하. 아니 초등학교도 아니고. 국민학교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요.”

지금 나 늙었다고 놀리는 겁니까?”

.”

 

나라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니 태현은 그녀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저 나라가 웃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아니 이게 무슨. 우리 두 사람이 이런 데서 세대 차이를 느끼고. 막 나이가 다르다는 걸 알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좋아요.”

 

나라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야기도 하고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이 얼마나 나이 차이가 나는지. 뭐 그런 것도 알 수 있잖아요.”

그래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나라가 내미는 손을 붙잡으며 태현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교정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우리가 같은 학교 출신이더라고요.”

그래요?”

몰랐습니까?”

뭐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알아야죠.”

왜요?”

우리 두 사람 일이니까.”

뭐래.”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태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나라의 손을 꼭 잡았다.

 

이나라 씨랑 어디에 가면 가장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뭐 어디에 가는 것도 웃기더라고요. 되게 피곤한 사람이고. 딱히 쉬는 날도 없는 사람이니까. 그러다 보니까 우리 두 사람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장소가 어디일까 고민을 하게 되었고. 우리 두 사람이 나온 학교가 있더라고요.”

정말 좋아요.”

 

나라는 아랫입술을 물고 태현의 어깨에 기댔다. 태현이 남자로 조금 더 든든하게 느껴지고 편안했다.

 

그냥 말만 잘 하는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자꾸 아저씨 아저씨 할래요?”

아저씨 맞잖아요.”

아니 아저씨는 맞는데.”

아저씨한테 아저씨라고 하는데 왜요?”

아우.”

 

태현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흥미롭게 보던 나라는 아랫입술을 물더니 잠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태현의 양 볼을 잡고 입을 맞추고 멀리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