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오늘 재미있었어요.”
“정말로요?”
“네.”
나라는 행복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이야기. 믿지 않았거든요. 말도 안 된다고. 아니 어떻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뭘 해야 좋은 거죠? 그런데 정말로 그냥 같이 있는 것도 좋네요. 막 되게 어색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까 또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요. 다행이에요.”
“어색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래도요. 뭐. 내가 너무 튕긴 것도 있고. 사실 우리 두 사람 닮은 것보다 다른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뭐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괜히 나 때문에 힘들고 그랬죠?”
“아니요.”
태현은 나라의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나라 씨랑 같이 있는 게 힘이 들 것이 뭐가 있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는 건데.”
“자꾸 그런 말 하지 마요. 나 막 되게 민망하고 그러거든요.”
“민망할 거 있나? 좋아서 좋다고 하는데요?”
“너무 헤픈 거 아니에요?”
“뭐가요?”
“감정 고백이요.”
“이런 건 좀 헤퍼도 괜찮습니다.”
태현의 대답에 나라는 가볍게 눈을 흘겼다. 그렇게 차에서 내리려는 나라의 손을 태현이 이끌고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엉큼해.”
“이 나이에 더 가릴 게 있겠어요?”
“치. 아무튼 미안해요. 들어가서 자야 하니까.”
“아니에요. 내가 바쁜 사람 붙잡는 거지. 쉬어요.”
“네. 안녕.”
나라는 태현에게 손을 흔들고 차에서 내렸다.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가볍게 핸들을 두드리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저 사람. 이렇게 내 마음에 들어오면.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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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이제 와?”
“데이트.”
“부러운 년.”
출근을 하려던 우리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볍게 나라를 흘겨보더니 살짝 그녀를 살폈다.
“뭐 했어?”
“뭘 뭐 해?”
“아니 그래도 명색이 첫 데이트인데 선물은?”
“언니. 뭐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나 그냥 정태현 씨랑 같이 시간만 보내면 그걸로 충분하거든. 뭐 바라고 그런 거 전혀 없어.”
“너 그러다가 후회한다.”
“왜?”
“나중에도 정태현 씨가 계속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나는 그래도 상관없어.”
나라의 대답에 우리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연애를 못 해서 그래.”
“그래도 언니보다 낫거든.”
“뭐?”
“아무튼 그냥 좋아. 같이 있는 거.”
“즐겨라. 아무튼 나는 일 간다.”
“응. 고생해.”
나라는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 그대로 엎어졌다. 몸은 되게 무거웟지만 태현과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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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손님은 하나도 도움 안 되니까 꺼져.”
“어차피 손님도 없으면서.”
태현이 노트북을 들고 와서 아예 작업실처럼 카페를 사용하자 우석은 미간을 모았다. 하지만 우석이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콘센트를 연결했다.
“손님이 늘어나면 내가 알아서 비킬게. 지금은 어차피 내가 있으나 없으나 상관 없는 거 아니냐?”
“기분이 나쁘거든.”
“뭐가?”
“나는 아주 힘이 들게 일을 해야 하는데 너는 그렇게 설렁설렁 여유를 부린다는 게 말이다. 아주 짜증이 나요.”
“내가 제일 비싼 음료를 살게.”
“그런 거 하나도 도움 안 되거든?”
“그래도 그냥 비워두는 거보다 누가 이렇게 쓰는 거. 이렇게 누가 공간에 있는 게 더 도움이 되는 거 아닌가?”
태현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우석은 입을 쭉 내밀었다.
“너는 시간마다 뭐 하나씩 사.”
“다 못 먹어.”
“그럼 나중에 나라 씨를 가져다주던가.”
“편의점 하는 사람에게 무슨.”
태현은 중얼거리면서 카드를 내밀었다. 우석은 그런 태현의 손을 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왜?”
“현금 모르냐?”
“뭐?”
“아니 너는 친구가 지금 자영업을 하는데 싸가지가 없이 지금 카드를 내밀고 있냐? 그거 수수료가 도대체 얼마인 줄이나 아냐? 지는 세금도 제대로 안 내는 주제에. 당장 현금으로 내라.”
“치사한 새끼.”
우석인 현금을 빼앗아서 카운터로 가는 것을 보고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줄 알았던 태현이지만 나름 열심히 자기 사업을 꾸리는 모습이 참 신기하면서도 낯설었다.
“이런 것도 할 줄 알고. 다 컸단 말이야.”
태현은 씩 웃으면서 나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일어나고 그녀가 가장 먼저 자신의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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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배고파.”
나라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손을 더듬더듬 탁자를 더듬었다. 휴대전화를 켜고 나라의 얼굴은 곧바로 밝아졌다.
“뭐야.”
자신을 보고 싶다는 태현의 메시지. 별 것 아니었지만 기뻤다. 나라는 씩 웃으면서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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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앞으로는 그냥 연재를 할 거라고?”
“응.”
달걀말이를 입에 넣으며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알고 있잖아. 그 동안 나 마감 제대로 못 지켜서 늘 멘붕이었다는 거. 그런데 연재를 하니까 저절로 마감을 지킬 수 밖에 없더라고.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앞으로도 가능하면 연재를 하려고. 사람들의 반응을 바로바로 보는 것도 재미있더라.”
“그래도 좀 그렇지 않나?”
“왜?”
“댓글도 신경이 쓰이고.”
“뭐.”
태현은 입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석의 말처럼 댓글도 궁금하고 사람들의 반응에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부정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에게 도움이 되는 거였다.
“어차피 나는 사람들에게 팔리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잖아. 사람들이 나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면 뭐 그게 나쁜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내 글을 읽는다는 거잖아.”
“뭐 그렇게 보면 다행이겠지만. 괜히 사람들 반응을 보려고 이상한 글을 쓰는 놈들도 많던데.”
“뭐. 이런 사람 있고 저런 사람 있겠지.”
태현은 진동에 고개를 돌렸다. 그냥 넘기려다가 나라의 문자라는 사실에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놀렸다.
“나라 씨야?”
“어.”
“미친. 그렇게 좋냐?”
“어.”
우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태현의 달걀말이를 뺴앗았다. 평소라면 난리를 칠 태현이 잠잠했다.
“재미없는 새끼.”
우석은 입을 내밀고 밥을 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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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 너 왜 이렇게 늦어?”
“미안.”
우리는 입을 내밀고 나라를 밉지 않게 흘겨봤다. 그러다가 그녀가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것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 줄 모른다더니.”
“어?”
“정태현 씨지?”
“아. 어.”
“그렇게 좋아?”
“응.”
나라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채 대답하자 우리는 혀를 끌끌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여자가 그렇게 쉽게 대답하면 안 되는 거야.”
“어?”
“네가 그러면 더 좋아한다는 것을 티내는 거잖아. 너는 여자가 그렇게 쉽게 티를 내면 안 되는 거다.”
“나는 그런 거 하기 싫어.”
“뭘?”
“밀땅.”
나라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태현 씨랑 나랑 이제 더 이상 그런 거 하지 않기로 했어. 안 그래도 내가 괜히 그 사람 마음을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시간만 버렸잖아. 더 이상은 그런 식으로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아. 정태현 씨랑 이렇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너무 우습고 한심한 거잖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다.”
“그럼 나는 질래.”
우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가볍게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이리저리 목을 풀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부럽다.”
“뭐가?”
“너.”
“왜? 언니는 그 동안 연애 많이 했잖아.”
“그 동안 아무리 연애를 오래 했더라도. 지금 하지 않으니까 늘 외로운 거거든. 아우. 이나라 미쳤어. 내가 살다살다 이나라가 하는 연애를 가지고 이렇게 부러워할 줄이야. 말도 안 되는 거지.”
“얼른 연애하셔.”
“너는 일이나 잘 해. 그럼 나 간다.”
“응.”
우리가 편의점을 나가고 나라는 한참을 더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그리고 태현이 이제 자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기지개를 켜고 보니 어느덧 새벽 두 시였다.
“피곤하겠네.”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일을 시작했다. 평소라면 귀찮고 지겨웠을 일도 오늘따라 너무 가볍고 즐거웠다. 나라는 바지런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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