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 말이 맞나.”
하품을 하며 댓글을 읽던 태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우석의 말처럼 사람들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무슨 반응을 해야 하는가 싶다가 이내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고개를 숙였다.
“뭐. 책이 나오더라도 악플을 다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른 건데 뭐 신경을 써.”
침대에 눕는데 자꾸만 헤실헤실 웃음이 나왔다.
“이나라.”
자꾸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나라도 일을 하니 쉬운 게 아니었다.
“그냥 좋다. 이나라.”
태현은 씩 웃으면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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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오지 않아도 괜찮은데?”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게 전부니까요. 뭐 특별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나라 씨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내가 이나라 씨를 보는 게 좋아서 하는 거라고요.”
“닭살이야.”
“그래서 이나라 씨는 아니라고요?”
“아니요.”
나라는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나도 맞아요.”
편의점 모퉁이 너머를 보며 나라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얼른 부모님에게 소개시켜줄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갈까요?”
“아니요.”
태현이 정말로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나라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태현은 씩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농담입니다.”
“그런 농담 하지도 마요.”
“내가 부끄러워요?”
“그런 게 아니라.”
“알았어요. 오늘은 바로 집에 가요.”
“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집 앞에 도착하고 나라가 내리려고 하는데 태현이 씩 웃으면서 작은 종이 가방 하나를 건넸다. 나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예요?”
“선물.”
“아니 이런 거.”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인형이에요.”
“인형이요?”
나라는 가방을 들여다보았다. 작은 인형 하나가 담겨 있었다. 나라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로맨스 소설을 쓴다는 사람이 여자 마음을 이렇게 모르나? 여자들 인형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냥 받아요.”
나라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조심해서 가요.”
“들어가요.”
나라는 태현이 없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냥 괜히 기분이 좋았다. 태현과 보내는 시간은 마냥 즐거웠다.
“이래서 다들 연애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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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지런한 새끼 오늘도 왔냐?”
“어.”
우석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라떼를 내밀었다.
“오늘은 제일 비싼 거 아니네?”
“돈만 비싸게 내.”
“뭐래.”
태현이 내미는 돈을 받고 바로 거스름돈을 받으면서 우석은 입을 쭉 내밀고 그의 앞에 앉았다.
“왜?”
“너 그 소설에 악플 달리는 거 말이야.”
“그게 왜?”
“아니. 내가 괜히 말을 하고 나니까. 그거 지금 내가 다는 거 아니거든? 내가 너에게 악플을 왜 다냐?”
“아니라는 거 알거든.”
태현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석은 무안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다 이내 멈칫했다.
“왜 그래?”
“아니.”
“있었네?”
지현이었다. 노트북을 열던 태현은 다시 노트북을 닫고 지현을 응시했다. 지현은 씩 웃으면서 태현의 앞에 앉았다.
“오랜만이야.”
“여기는 무슨 일이야?”
“어머. 말을 안 해?”
지현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입을 내밀었다.
“이거 서운하다. 안우석.”
“뭐가?”
“나 매일 찾아왔어. 우석이.”
우석의 얼굴이 곧바로 하얗게 질렸다. 태현은 그를 잠시 봤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아니. 그래도.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뭔가 할 이야기가 아직은 남아있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도대체 무슨 할 이야기가 아직 남아있다는 거야?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거 하나 없는데.”
“서운하네.”
지현은 입을 쭉 내밀면서 태현의 라떼를 마셨다. 그리고 가볍게 다리를 꼬고 우석을 보며 가볍게 턱을 까딱였다.
“우리 두 사람 할 이야기 있는데 비켜주지.”
“김지현.”
“아마 듣고 싶지 않을 거야.”
“그래.”
우석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있고 싶지 않다. 나는 김지현 옆에 있으면 알러지가 생기는 타입이라서. 알아서 이야기 잘 하고 가라.”
“고마워.”
우석이 사라지고 지현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태현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 눈을 마주하던 태현은 이내 심장이 묘하게 두근거려서 그러기를 관두고 고개를 숙였다.
“나 보는 게 편하지 않은 모양이냐?”
“좋을 리가.”
“그래?”
지현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하면서 다시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내쉬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보고 싶었어.”
“나는 그렇지 않아.”
“거짓말.”
지현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정태현. 너는 지금 거짓말을 되게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너 거짓말 하나도 못 해. 내가 너를 모르니? 너 지금 나에게 사실을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잖아.”
지현의 말에 태현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지 못햇다. 나라는 머리를 가볍게 매만지며 다시 태현을 바라봤다.
“네가 좋아.”
“나는 아니야.”
“나 너 떠나고 싶어서 떠난 거 아니야.”
지현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적어도 내 변명. 그 정도는 네가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 두 사람 사이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야.”
“네가 사라지고 나서 나는 너를 오래 기다렸어. 네가 언젠가 반드시 돌아와줄 거라고 믿었어.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잖아. 그래놓고서 지금 나한테 뭘 바라는 거야? 내가 뭘 해주기를 원하는 건데?”
“내가 준 거 아니야.”
지현의 말에 태현의 얼굴이 굳었다.
“이미 가지고 있었어.”
“거짓말 하지 마.”
“거짓말 아니야.”
지현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너 나 몰라? 내가 도대체 왜 그런 걸 가지고 너에게 거짓말을 하겠어. 내가 준 게 아니야. 너 그 노트 나만 보여준 거 아니잖아. 그 노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거 나만이 아니라 변주명도 있었어. 그래놓고서 지금 왜 내 탓만 하는 거야? 그 사람이 직접 한 거라는 생각은 못 하니?”
“그래서 지금 와서 뭘 하자는 건데?”
“다른 것도 다 가지고 있었다고.”
태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네가 아니라 자신을 선택하면 네가 적어둔 그 아이디어들.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했어. 내가 그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잖아. 그냥 그 사람이 너를 괴롭히지 않기를 바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
“그게 만일 사실이었다면. 너는 그냥 나에게 이야기를 했어야 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을 해야 했다고.”
“아니.”
지현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너는 내 말을 믿지 않았을 거야.”
“말도 안 되는 거니까.”
“정태현.”
“변주명이 그걸 어떻게 알아?”
태현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지현의 눈을 바라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랑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
“태현아. 제발.”
“너랑 이야기를 하면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아.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건데? 이제 와서?”
“다시 시작해.”
“뭐라고?”
“다시 시작하자고.”
지현의 말에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자신은 충분히 망가졌고. 더 이상 같은 일로 인해서 괴롭고 싶지 않았다. 이미 자신은 지쳤다.
“네가 무슨 말을 하건 내가 다 들어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면 너는 내가 그렇게 한심하게 보이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뭐라고?”
지현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라고 평생 너만 붙들고 살 거라고 생각을 한 거야? 그런 거라면 너 틀렸어. 나도 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너를 잊을 수 있어. 내가 평생 너만 생각하며. 너 하나만 바라볼 거라고 믿었다면. 너는 나를 너무나도 우습게 본 거고 나를 한심하게 생각한 거야.”
“내가 여기에 있잖아.”
“그런데?”
“너를 받아준다고 했잖아.”
“그래서.”
태현은 차갑게 대답했다. 지현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녀에 대해서 남아있던 마음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게 어떤 마음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은 끝이 나버렸다.
“그만 하자.”
“정태현.”
“너에게 더 이상 붙들려 다니고 싶지 않아. 무슨 망령도 아니고. 네가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건데?”
“망령?”
태현의 말에 지현의 얼굴이 충격으로 얼룩졌다. 태현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 동안 너에게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 하지만 네가 고작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
“고작 이런 이야기 아니라 사실이야.”
“그게 사실이래도.”
“뭐라고?”
“나 이제 정말로 행복하다고.”
지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겨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이제 겨우 김지현이라는 사람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그런데 지금 너는 이 상황에서도 너를 잡아달라고. 너를 붙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너 정말 이기적이다.”
“진심이야?”
“그래. 진심이야.”
태현은 노트북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나를 찾지 마.”
태현은 지현을 차가운 눈으로 뒤로 하고 그대로 카페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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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카페 좀 가자.”
“언니 혼자 다녀와.”
“거기. 여자 둘이 가면 머핀 준단 말이야.”
우리의 말에 나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니 나 지금 퇴근했거든요.”
“정태현 씨가 데려다 주는 거 다 봤거든.”
“어?”
“좋아보이더라.”
“언니.”
나라는 밖을 내다보면서 입을 내밀었다. 부모님이 대충 알고 있을 거라고는 눈치를 채지 못한 그녀이기에 불안했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그러니까 같이 가자.”
나라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가 어디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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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현 거기 서.”
지현은 바쁘게 걸어가는 태현을 붙들었다. 그리고 태현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곧바로 그의 입에 뜨겁게 입을 맞췄다. 잠시 멍하니 있던 태현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뭐 하는 짓이야?”
“정태현 씨?”
태현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라가 우리와 함께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태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나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라는 그대로 뒤도 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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