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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네게 가는 길 [18장 - 1]

권정선재 2014. 12. 28. 07:00

 

18

왜 자꾸 그러는 겁니까?”

이거 놔요.”

 

나라는 차가운 눈으로 태현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에 가득 담긴 원망에 태현은 가슴이 시렸지만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냥 가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내가 이 상황에서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가 있다는 거죠? 내가 본 게 사실이잖아요. 그게 전부잖아요.”

그게 전부라고 하면 안 되는 거죠. 나 그 사람하고 아무 사이 아닙니다. 적어도 내 변명은 들어야죠.”

아니요.”

 

나라는 차갑게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들을 이야기 없어요. 나 집에 들여보내고 모르는 여자랑 키스나 하는 사람이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 자존심은요?”

 

나라의 말에 태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나 말이에요. 바보도 아니고. 대충 알 거 다 알거든요. 정태현 씨가 나랑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 거죠. 당신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죠.”

무슨 일이 정확히 벌어지는지도 모르면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겁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당한 건지. 그거에 대해서 당신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는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본 것 말고 더 있는 건가요?”

당연한 거죠.”

그래서요?”

이나라 씨.”

 

그 여자랑 모르는 사이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된 거 아닌가요?‘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혀로 입술을 축였다. 나라의 말이 맞았다. 지금 그녀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와서 돌아간다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지금 이나라 씨는 우리 두 사람이 그냥 여기에서 끝이 나도 된다는 겁니까? 서로 힘들게 돌고 돌아 겨우 만난 겁니다. 서로의 마음에 대해서 이제 겨우 이해를 한 건데. 이렇게 그냥 끝을 내자고요.”

.”

 

나라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태현의 눈을 바라보더니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초에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었어요.”

이나라 씨.”

그냥 소꿉장난. 한 여름 밤의 꿈이라고 생각을 하면 되는 거죠. 뭐 애틋하고 뭐 그런 감정이 생길 여유도 없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태현은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서 나라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대로 그냥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당신이 들어야만 하는 겁니다.”

누구인데요?”

헤어진 사람입니다.”

미련이네요.”

미련 아닙니다.”

 

태현은 힘을 주어 대답했다.

 

지금 내가 내 마음을 꺼내서 그쪽에게 보여줄 수 없어서 미치겠지만. 그런 거 아닙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 다 버린지 오래라고요. 벌써 아주 오래 전 사라진 마음을 가지고 도대체 무슨 미련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10년도 더 지난 일이고. 이제 다 잊은 겁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잊는 것이 그렇게 쉬울 수 없잖아요. 그리고 분명히 그 사람하고 다시 마주하고. 지금 이런 식으로 엮이고 있다는 것. 변하지 않는 거잖아요.”

엮이는 거 아닙니다.”

 

태현이 한 발 앞으로 나섰지만 나라는 주춤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태현은 그런 나라를 슬프게 바라봤다.

 

제발 이러지 마요.”

내가 뭘 믿어야 하는 거죠?”

나를 믿어요.”

믿을 수 없어요.”

이나라 씨.”

끝내요.”

뭐라고요?”

아니. 끝내는 것도 아니네요.”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애초에 우리 두 사람 무슨 사이라기도 하기 우스운 거니까요. 뭐 연애 한 번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요. 어디 데이트를 나간 것도 아니고. 그냥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던 채로 끝을 내는 거니까. 남들이 다 이야기를 하는 썸. 그래요. 그 정도로만 해두면 되는 거네요. 썸이라고 해두면 되는 거네요.”

안 됩니다.”

 

태현은 절박했다. 겨우 나라의 손을 잡은 거였는데. 그냥 이런 식으로 그녀의 손을 놓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다른 사람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고 그게 나라였다. 그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고. 바꿀 수 없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건 나는 이나라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겁니다. 그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요?”

기회를 줘요.”

아니요.”

 

나라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끝이에요.”

이나라 씨.”

다른 사람하고 무슨 일을 하건 마음대로 하면 되는 거잖아요. 거기에 내 자리 같은 건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그런 거 아닙니다.”

 

태현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억울합니다.”

뭐가 억울하다는 거죠?”

당한 겁니다.”

당한 거면 되는 건가요?”

그런 말이 아니라.”

왜 만나는 건데요?”

그 사람이 나를 찾았고 피하는 길입니다.”

 

태현은 가볍게 발을 굴렀다. 하지만 나라는 그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볼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나를 믿어줄 겁니까? 내가 미쳤습니까? 당신을 두고 그런 일을 하게요.”

당신이 지금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그런 거 하나도 몰라요. 정태현 씨. 나는 그냥 보는 것만 믿어요.”

그러니 잘못된 것을 보았다고요.”

그래서요?”

이나라 씨.”

변하는 건 없죠?”

 

나라의 얼굴에 슬픈 미소가 어렸다.

 

그 여자랑 키스한 거고.”

아니. 막말로 그냥 키스입니다.”

뭐라고요?”

아니.”

 

나라의 얼굴이 곧바로 구겨지자 태현은 아차 싶었다. 그냥 키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별 것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 아닙니다. 나도 그 일이 되게 심각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럼 내가 다른 남자랑 막 키스를 하고 다니더라도 정태현 씨는 그게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 건가요?”

지금 그런 말이 아니라.”

나는 안 되는 건가요?”

 

나라의 물음에 태현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나라의 눈을 보고 가만히 있다가 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 그냥 끝은 말도 안 되는 겁니다.”

끝내요.”

이나라 씨.”

더 할 이야기 없어요.”

 

나라는 차갑게 돌아섰다. 그리고 태현이 붙잡자 다시 차가운 눈으로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태현 씨가 이런 일로 나를 아프게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이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당신은 아닐 줄 알았다고요.”

 

나라의 말에 태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나라는 그런 태현을 물끄러미 보더니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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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뭐가?”

 

지현은 덤덤한 표정으로 우석을 응시했다.

 

나는 그냥 태현이가 잡고 싶었어.”

김지현.”

저기. 이 살마 무슨 사이죠?”

우리 씨.”

 

우석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지현을 가만히 응시하고 심호흡을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가 열었다.

 

정태현 씨랑 무슨 사이죠?”

연인이었어요.”

지금은요?”

아무 사이도 아니죠.”

 

지현의 말이 끝이 나기가 무섭게 우리가 그녀의 뺨을 날렸다. 지현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했다.

 

너 뭐야?”

너는 뭐니?”

 

우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네가 정태현 씨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러는 거야? 저 사람에게 도대체 뭘 바라고 이러는 건데.”

당신이 끼어들 일 아닌데?”

 

지현은 쓴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우리를 노려보고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천박해.”

뭐라고?”

가진 거 하나 없으니까 손이나 들고. 당신은 나랑 정태현 사이의 일을 모르잖아. 그런데 도대체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야? 그리고 지금 당신의 일도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오버 아닌가?”

내 동생 일이야.”

아 동생.”

 

지현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 당신 일이 아니라는 거네.”

돌아가.”

 

우석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김지현. 너 지금 충분히 다 망친 거니까. 더 이상 망치지 말고 돌아가. 이미 너로 인해서 다들 지쳤으니까.”

.”

 

지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가볍게 우리의 어깨를 두드리고 멀어졌다. 그녀가 사라지자 우리는 비틀거렸다. 우석은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습니까?”

저 여자 뭐에요?”

그게.”

 

우석은 한숨을 토해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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