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그래서 그냥 온 거야?”
“그럼 어떻게 해?”
우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는 바보도 아니고 도대체 거기까지 가서 뭘 어떻게 하자고 그냥 오는 거냐? 그러면 나라 씨가 그냥 어서 오세요. 그럴 거라고 생각을 한 거냐? 당연히 거절할 것도 생각을 하고 간 거 아니야?”
“그래도 싫더라고.”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강요가 되고 부담이 된다는 것 자체가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이나라 씨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을 따름이야. 그런데 내가 그 상화에서 고집을 부리면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잖아. 안 그래? 그냥 그 사람이 모든 결정을 다 내리게 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네가 그 소설을 쓴 것이 단순히 이나라 씨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잖아. 정말로 이나라 씨랑 좋은 사이가 되고 싶어서. 그래서 그런 거면서. 도대체 왜 그렇게 약하게 생각을 하는 건데?”
“그러게.”
“정태현.”
우석은 태현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너 도대체 왜 이렇게 답답하게 행동하는 거냐? 적어도 네 마음에 대해서 확신이 있으면 그냥 그대로 행동해야 하는 거 아니냐? 왜 이렇게 눈치를 보고 뒤로 물러나기만 하려고 하는 건데?”
“자신이 없다.”
“뭐?”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머리가 아파.”
태현의 힘없는 웃음에 우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정태현은 이러면 안 되는 거거든. 그 싸가지 없고 늘 자기 마음대로만 하는 정태현은 도대체 어디에 간 거냐?”
“그런 정태현도 있었나?”
“정태현.”
“그러게.”
태현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단 한 번도 약한 적이 없었다. 늘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더 이상 그렇게 하기에 너무나도 지친 사람이었다.
“아무리 부딪쳐도 그게 답이 아니라고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거잖아. 뭐라도 대답이 나와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그냥 물러나야 맞는 거잖아.”
“거절은 들었어?”
“아니.”
“그럼 아닌 거 아니야?”
“그런가?”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거였다. 자신이 누군가에 비해서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라에게는 더욱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나라 씨의 말이 맞는 거야. 내가 지금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이나라 씨인지. 아니면 그저 이나라 씨를 닮은 사람인지. 나는 그런 것도 하나 모른다고.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정말로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내가 소설 속에 적어내려간 그 사람을 좋아한 걸까 모르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우석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네가 단순히 소설 속의 인물을 좋아하는 거라면 여기까지 올 거야? 아니잖아. 지금 네 소설도 안 써져서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으면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고. 너 정말로 그 사람 좋아하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글이 안 써져서 고민하고 그럴 이유 없잖아. 안 그래?”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어.”
태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자신은 나라에게 두 번이나 거절을 당한 사람이었다. 무슨 말을 더 한다고 해도 달라질 건 하나 없었다.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더 뭐라고 말을 할 이유 같은 거 없잖아. 안 그래? 내가 더 이상 노력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하면 이나라 씨 마음이 불편하고.”
“그럼 너는?”
“그냥 참지.”
“정태현.”
“그냥 참으면 되는 거야.”
태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그냥 참으면 되는 거야.”
“너는 그게 되냐?”
“되겠지?”
태현의 대답에 우석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무리 친구라고 하지만 한심하게 행동하는 그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친 새끼야. 네가 좋아하면 그냥 무조건 부딪쳐야 할 거 아니야. 여기까지 와놓고서 그렇게 망설이기만 하는 이유가 뭔데? 네 마음에 대해서 너보다 더 확신을 가지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 그렇게 네가 네 마음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냥 그 마음 말하면 되는 거잖아.”
“아니.”
“뭐가 아닌 건데?”
“그건 이나라 씨에게 너무 가혹한 거야.”
“미친 새끼.”
우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의 친구가 이렇게 소심하게 행동을 할 거라는 것을 몰랐기에 더욱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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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싫다.”
바다를 바라보며 나라는 한숨을 토해냈다. 태현에게 그렇게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여수까지 와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하지만 자신이 그저 소설의 모델이라고 하니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하는 거야.”
아무리 자신이 가라고 하더라도 그냥 그렇게 가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태현은 그렇게 가버렸고 결국 자신은 혼자 남았다. 아무도 없이.
“이나라 정말 뭐 하자는 거니?”
나라는 어이가 없어서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분명히 자신도 그에게 관심이 있으면서 관심이 있다고 말도 못하는 것. 참 우습고 한심했다.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미 늦어버린 일이었다.
“그래. 이나라 차라리 잘 된 거야.”
졸업하고 취업하기도 바쁜 판이었다. 그러데 이 상황에서 연애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정말 잘 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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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말로 포기하는 거야?”
“응.”
“정태현.”
“왜?”
우석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말도 안 되잖아. 네가 왜 이렇게 기가 팍 죽어 있어야 하는 건데? 이해가 안 된다고. 그래. 그 사람을 가지고 소설을 썼어. 하지만 그게 이 정도로 네가 욕을 먹을 일은 아니잖아.”
“누군가는 불쾌할 수도 있지.”
“도대체 누가?”
“이나라 씨.”
“정태현.”
“아무튼 그냥 더 이상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고.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알고 있었으니까.”
태현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우석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여간. 저거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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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이라.”
나라는 호텔에서 가만히 소설을 펼쳤다. 여주인공. 당당하고 자기 말 잘 하는 여주인공이 거기에 있었다.
“이게 뭐야?”
자신과 닮으면서도 묘하게 다른.
“신기하네.”
하지만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마치 태현이 자신을 가지고 장난이라도 친 것처럼. 그냥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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