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지섭은 물끄러미 한나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그에게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그녀를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섭은 자신의 온 몸의 신경이 바짝 서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서로의 욕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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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니야.”
자판을 두드리던 태현이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왜 이러냐?”
나라에게서 멀어지고 난다면 정말로 그녀가 모델이 아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자꾸만 이나라라는 사람이 눈앞에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소설을 그렇게 많이 썼는데 지금 도대체 뭐 하자는 거냐고. 애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 사람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거냐고.”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속상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가장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던 일이 지금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거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접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명확한 답이 내려지지 않는 그였다.
“나 지금 뭐 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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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 그냥 이렇게 여행 가면 후회할 거야. 말도 안 되는 거잖아. 도대체 뭘 바라고 그러는 건데?”
“내가 가지 않으면 도대체 뭐가 달라지는 건데? 나 여기에서 더 이상 견딜 자신이 없어서 그래.”
“이나라.”
“언니 제발.”
나라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언니는 내 편을 들어줘야 하는 거잖아. 언니는 내 편이어야 하는 거니까. 그런 거니까 지금 나에게 뭐라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나 지금 너무 힘들어. 버겁다고.”
“나도 알고 있어. 그걸 아니까 지금 너보고 도망을 가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야. 너 이렇게 떠나고 나서 마음이 편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니? 절대로 아니야. 너 이렇게 가면 너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을 거야. 내가 더 잘 알고 있어. 너 분명히 후회하고 아파하고. 그럴 거라고.”
“그런가?”
“이나라. 너 정말 사람 왜 이렇게 답답하게 하는 거니?”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숙였다. 나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눈을 바라봤다.
“한 번도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은 일을 한 적이 없어.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으니까. 그래서 그냥 덤덤하게 다 받아들이려고 했었거든? 그런데 그게 마음과 같지 않더라고. 그래서 이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걸 찾고 싶어서. 그래서 그게 무엇이건 일단 여행을 가보려고 하는 거야.”
“너 그거 도피야.”
“알아.”
우리의 지적에 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이게 그 어떤 해결책도 되지 못할 거라는 걸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라도 피하지 않는다면 견디지 못할 거였다.
“나 지금 너무 힘들어. 괴로워. 그러니까 언니까지 나에게 보태지 않아도 괜찮아. 나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노력하는 거니까. 언니가 자꾸만 그러면 내가 정말로 큰 잘못이라도 하는 것 같잖아.”
“내 말이 그런 게 아니라.”
“내게 질문을 던지고 올게.”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무엇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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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하네.”
악플들을 보고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조금 막혔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악플을 달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다들 너무하네.”
태현은 가만히 모니터를 들여다 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더라도 아무런 글도 쓰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이미 자신만의 뮤즈를 잃은 후였으니까.
“정태현 정말 찌질하다. 이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약하기만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왜 이러는 거냐.”
태현은 한숨을 토해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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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머.”
“뭘 그렇게 놀랍니까?”
옷을 쫙 빼입은 우석은 우리가 놀란 표정을 짓자 입을 쭉 내밀고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여기에서 일을 할 적에는 한 번도 그런 옷을 입은 적이 없으니까 그러죠.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요.”
“그럼 편의점에 일을 하러 오면서 옷을 쫙 빼입고 옵니까? 그게 더 이상한 거지. 뭐 별 것 아닌 거 가지고 놀라고 그래요.”
“구박은.”
우리가 입을 쭉 내밀자 우석은 음료수 두 캔을 계산했다. 그리고 한 캔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마셔요.”
“됐어요.”
“왜요?”
“내가 무슨 염치로 이걸 마셔요. 안우석 씨 친구 되게 아프게 한 년 언니가 되는 사람인데 말이에요.”
“그거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거 아닌가?”
우석의 농담이 섞인 물음에 우리도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되게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막상 입으로 꺼내고 보니 두 사람 사이는 너무나도 멀고 또 멀리인 사람들이었다.
“참 신기하네요. 은근히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생각을 해보니 그렇게 가깝지는 않으니 말이죠.”
“그런 시덥지 않은 소리 하지 말고요.”
“그러게. 왜 왔어요?”
“네?”
“여기 올 이유 없잖아요.”
“그냥 심심해서 왔습니다.”
우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일도 습관이라고. 요 며칠 일을 하고 나니 몸도 그것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집에 있기 뭐 하더라고요.”
“그래서요?”
“네?”
“내가 뭐라고 반응해야 하는 건데요?”
“아니.”
“당황하기는.”
우리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해본 말이에요. 내가 뭐 나쁜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눈치를 그렇게 보고 그래요? 사람 민망하게.”
“되게 무섭게 말하는 거 알죠?”
“내가요?”
“그럼 여기 또 누가 있습니까?”
“아닌데.”
“맞거든요.”
우석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우리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이내 미간을 모았다.
“그래서 그 사람은요?”
“누구요?”
“모르는 척 하지 말고요.”
“태현이 녀석이요?”
“네.”
“그냥 칩거 중입니다.”
“칩거요?”
“자기라고 뭐 이런저런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런 생각 하나도 안 들지. 그냥 칩거를 하더라고요. 뭐 제가 할 이야기도 없죠. 저는 그냥 옆에서 봐주는 거. 그거 하기도 힘들거든요.”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우석을 보며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고 바코드를 찍어서 환불을 하고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우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비싼 거 사준 거 알죠?”
“그래서 바로 환불한 거 알죠?”
“영리해.”
“제가 좀 해요.”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사람 다 너무 미련하지 않아요?”
“뭐가요?”
“나라도 여행을 간대요.”
“네? 여행이요?”
“한국에서는 너무 답답하고. 머리 좀 정리하고 오겠다는 건데. 솔직히 나는 이해가 하나도 안 가거든요.”
“그러게요.”
“두 사람 다 좋아하는 거 맞죠?”
“그런 거 같죠?”
“그런데 왜 인정을 안 하죠?”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는 뭔가 맴 도는 대화에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리에 앉았다. 오늘따라 편의점에 손님이 없었다.
“나라에게 되게 미안해요.”
“뭐가요?”
“늘 야간 알바는 나라 몫이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제가 하게 되었네요. 그 동안 아무리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제가 언니였는데. 그 녀석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짊어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다들 자기 몫으로 사는 거예요. 그리고 이나라 씨도 정말 힘들었다면 이우리 씨에게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아니요.”
우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라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였다. 그게 이나라였다.
“너무 착해요.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나도 못 한다고요.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내가 들으면 분명히 속상해할 거라는 거. 본인이 다 알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습니까?”
“그래서 두 사람이 조금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될지. 나는 정말로 모르겠어요. 그냥 두 사람 이어주고 싶은데요.”
“나도 그런데요.”
우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마음을 먹더라도 쉽게 태현에게 재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직접 결정해야 하는 거예요. 이나라 씨도 마찬가지고요. 이우리 씨나 내가 무슨 도움을 준다고 했을 때. 그걸 두 사람이 정말로 좋아할 수 있을까? 그런 건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렇죠.”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모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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