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소설이 꽤 좋아요.”
“그런가요?”
태현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소설은 그의 마음을 떠난 지 오래였다. 아무리 오랜 시간 로맨스 소설을 쓰더라도 그가 바라는 사람의 마음 하나 얻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연재를 선택하셨는데요.”
“제가 소설을 정말로 잘 쓰는 사람이라는 자각이 없어서요. 그리고 마감을 지키는 일도 요원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차라리 매일 열 장 씩만 쓰는 글을 쓰는 것이 어떨까? 그렇다면 마감을 지키는 일이 상대적으로 수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덕분에 이번에는 수월하게 연재를 하고 있네요.”
“반응도 좋고요.”
“그 부분은 겁이 났습니다.”
“설마요.”
리포터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정태현 작가님 같은 경우에 늘 자신만만하게 소설을 쓰시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겁이 나셨다고요?”
“아무리 제가 많은 책을 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처음 해보는 도전이었거든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제 글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셔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싫어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왜 작가님 글을 싫어하겠어요.”
“그런가요?”
“그런데 이번 글은 유난히 따뜻해요.”
“그렇습니까?”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리포터는 살짝 태현에게 몸을 가까이 하면서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이번 소설. 작가님이 진짜로 경험하시고 있는 로맨스가 아니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닌가요?”
“당연히 아니죠.”
태현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소설가는. 자신의 세상을 창조해서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을 그대로 쓰는 것은 참 바보 같은 일이죠. 소설을 처음 쓰는 사람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겁니다.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만 하는 거잖아요.”
“그렇군요.”
“그냥 모두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다들 작가님 많이 기다리신 거 아시죠?”
“그런가요?”
태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고민이 많았습니다. 로맨스 소설이라니 말이죠.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다른 소설 작가들이 보기에는 등단까지 한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되게 우습고 그런 모양이더라고요.”
“어머 누가 그래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죠. 아니 작가님이 어디가 어때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요.”
태현은 입을 꼭 다물고 카메라를 바라봤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싶은 건요?”
“그냥 다 괜찮다는 겁니다. 나 정말로 괜찮다는 거. 그냥. 그것 하나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태현의 말에 리포터는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태현은 그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엷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
“그 동안 고생하셨어요.”
“고생은요.”
우석은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저었다.
“태현이 녀석의 말이 맞네요.”
“네?”
“편의점 되게 재미있는 장소에요.”
“그래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산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저보다 나이도 한참 많으신 분이 아직도 그런 것을 모르시면.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라의 지적에 우석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자신이 그 동안 무얼 해왔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아쉽네요. 이렇게 같이 일을 하고 보낸 시간. 별로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말이죠.”
“그러게요. 그래도 저희 편의점 그렇게 형편이 좋지 않거든요. 아무리 잘 해주셨다고 하더라도 계속은 무리에요.”
“저도 반대입니다.”
우석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나라는 씩 웃었다.
“그나저나 안 묻습니까?”
“네?”
“그 녀석.”
“아.”
“싫습니까?”
“뭐.”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태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어차피 다 끝이 난 거잖아요. 제가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거고. 그 사람을 아프게 한 거니까 말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그냥 이렇게 포기한다는 거. 너무 우습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그쪽은 억울하지도 않습니까?”
“억울해요.”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억울한데. 정말 억울한데.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어요. 내가 잘못한 거잖아요. 그건 달라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도 없는 거죠. 내가 그 사람에게 실수한 거니까.”
“이나라 씨.”
“그러니까 안우석 씨도 아무런 말 하지 마세요.”
나라는 혀를 살짝 내밀면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우석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렇게 미련하게 구는 겁니까? 누가 보더라도 두 사람 서로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뭐가 있죠?”
“이나라 씨.”
“나이 차이도 많아요. 그리고 하는 일도 달라요. 우리 같은 사람. 전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어울리는 사람. 어울리지 않는 사람. 뭐 그런 것이 따로 있는 겁니까? 그냥 다 어울리는 사람이 되면 안 되는 겁니까?”
“네.”
나라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오랜 시간을 살지 않았지만 그 정도는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사람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자신과 그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고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흔들고 싶지 않아요. 애초에 그렇게 대단한 소설가였다면 이렇게 행동도 하지 않았을 거야.”
“그 녀석 대단한 소설가 아니라는 거 이나라 씨가 더 잘 알잖아요. 이나라 씨랑 별 차이도 없는 사람이라는 거 알고 있잖아요.”
“왜 차이가 없어요?”
나라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차이 많아요. 너무 달라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데. 왜 차이가 없다고.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그래요.”
“하지만.”
“그만 두세요.”
우석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나라는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이야기를 우석과 나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 없었다. 이미 태현은 사라진 후였고, 자신도 붙잡을 수 없었다.
“나는 되게 겁쟁이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것을 시작을 하는 것이 두려워요. 그리고 그건 정태현 씨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한 순간의 호기심으로 모든 걸 망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요.”
“당신이 곁에 있는 것이 더 좋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거 왜 모르는 겁니까? 나도 알고 있는데 말이죠.”
“그건 안우석 씨가 틀린 거죠.”
“이나라 씨.”
“그만 둬요.”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이런 말을 한다고 달라질 거 하나 없으니까.”
“하지만.”
“이나라.”
마침 편의점 문이 열리고 은우가 들어왔다. 우석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네. 제가 더 감사했어요. 멀리 안 나가요. 안녕히가세요.”
“누구야?”
“어?”
“저 사람 누구냐고?”
“야간 알바.”
“어?”
은우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나라를 바라봤다. 나라는 별 것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조끼를 입고 카운터에 섰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야간 알바 하는 사람은 그 소설가라는. 아무튼 그 사람 아니었어? 언제 바뀐 거야.”
“태은우. 네가 그렇게 신경을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누가 일을 하건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은우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은 네가 그 사람을 거절했다는 거잖아.”
“아니.”
“어?”
“아니라고.”
“이나라.”
“태은우. 조금 있다가 볼래?”
“어?”
“나 근무 끝이 나고 우리 보자.”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은우를 응시했다.
“나 너에게 할 말 있어.”
“그거 지금.”
“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 안 보여? 그냥. 그냥 조금 있다가 이야기를 하자. 그게 나에게도. 그리고 너에게도 더 좋은 일이 될 것 같아.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내가 하는 말 알겠어? 그냥 그러자고.”
“알았어.”
은우는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마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기다릴게.”
“응. 끝이 나자마자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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