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어요?”
“네.”
나라는 편의점에 들어와서 태현의 눈도 마주하지 않고 창고로 들어가버렸다. 태현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그대로 카운터에 있다가 돌아오는 나라의 앞에 서서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저기 이나라 씨.”
“퇴근 안 해요?”
“네?”
“저 지금 그쪽하고 이야기를 할 기분이 아니거든요.”
“아니 그러니까.”
“아니라고요.”
나라의 차가운 목소리에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의 차가운 태도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저기 그러니까.”
“내가 우스워요?”
“네?”
“내가 우습냐고요?”
“무슨 말이 그렇습니까?”
태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단 한 번도 그쪽을 우습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왜 내가 그쪽을 우습게 본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까?”
“우리 두 사람 무슨 사이죠?”
“우리 두 사람. 무슨 사이여야 합니까?”
“그렇죠?”
나라는 코웃음을 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 사람은 자신이 생각을 한 그런 사람이었다. 가지고 놀고 마음대로 하는. 그래 놓고서는 자신의 잘못도 모르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어제 그쪽이 저에게 한 행동. 그거 저는 되게 불쾌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정말로 최악이었어요.”
“미안합니다.”
“그게 다예요?”
“뭐라고 해야 하죠?”
“이봐요. 정태현 씨. 그런 상황에서는 그냥 미안합니다. 그렇게 끝을 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과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거 분명히 성추행이었어요. 성희롱을 한 거라고요. 모르겠어요?”
“내가 그랬다고요?”
“네.”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면서 나라의 눈을 바라봤다.
“내가 왜 그런 건지 모르는 겁니까?”
“뭐라고요?”
“내가 왜 그런 건지. 이유를 모르겠냐고요.”
“그냥 심심해서 그랬겠죠.”
“그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냥 심심해서 그러는 것 말고. 그런 식의 행동을 할 이유가 있습니까? 아무리 봐도 없는데요.”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숙였다. 나라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편의점 그만 둬요.”
“이나라 씨.”
“어차피 잠시만 일 하기로 한 거잖아요. 그리고 원래 그쪽이 없더라도 저희끼리 잘 하고 있었어요.”
“내가 분명히 실수한 것은 알고 있지만 이런 식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되는 거라는 거 모르는 겁니까?”
“그럼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데요?”
나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차가운 눈으로 태현을 응시했다.
“어제 그 일은 그냥 실수였으니까. 우리 두 사람 다 그냥 잊고 있어요. 나는 별 거 아니에요. 호호호. 이러기를 바라는 건가요? 정말로 그런 짓을 하고도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을 한 건가요?”
“그런 거 아닙니다.”
“좋아요.”
나라는 팔짱을 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해봐요.”
“네?”
“왜 그런 짓을 한 건지 설명을 해봐요.”
“이봐요. 이나라 씨.”
“그래요. 나 이나라에요. 그러니까 설명을 하라고요. 도대체 왜 그런 무례한 짓을 했는지 그거 말을 하라고요.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우리 두 사람이 도대체 뭐라고 키스를 해요. 도대체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어?”
“키스?”
은우는 성큼성큼 들어와서 태현의 멱살을 잡았다.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사람하고 네가 도대체 왜 키스를 해? 두 사람 키스를 할 이유 없잖아.”
“태은우. 그 손 놔.”
“이나라.”
“그 손 놓으라고.”
“젠장.”
은우는 손을 놓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당신 뭡니까?”
“태은우.”
“너 그만 두고.”
말리는 나라를 두고 은우는 태현의 눈을 바라봤다. 태현은 덤덤하게 그 눈을 마주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너는 뭐지?”
“뭐라고요?”
“일단 나야. 이나라 씨에게 실수를 한 건 그렇다고 치고. 도대체 너는 뭐라서 지금 이렇게 나서는 거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나라 씨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건가?”
태현의 도발에 은우는 주먹을 세게 말아쥐었다. 그러다가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친구입니다. 친구. 아주 오래된 친구. 이런 친구가 지금 낯선 남자에게 그런 짓을 당했다고 하는데 그냥 참고 있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아무 것도 아니야.”
“뭐가 아무 것도 아닌데?”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니까. 태은우. 네가 더 부풀리지 마. 네가 괜히 그러면 정말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것 같으니까. 그냥 사고야. 경미한 사고. 그래서 이런 일이 다시 없기를 바란다는 거고.”
나라는 태현의 눈을 보며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지금 나에게 할 말은 없는 거죠?”
“그렇겠네요.”
“저보다 나이도 한참이나 많아서 훨씬 더 이성적으로 반응을 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닌 모양이에요.”
“그러게요.”
태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태현은 다시 은우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쿡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나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 뭐야?”
“태은우. 오버하지 마.”
은우가 다시 흥분하자 나라는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네가 그런다고 달라질 거 하나 없어.”
“이나라. 너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냐? 너를 잘 모르는 사람이 너에게 그런 짓을 한 건데 왜 그래?”
“나한테 한 게 아니야.”
“뭐?”
“저 사람 어제 힘들었거든.”
나라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왜 태현이 그런 짓을 한 건지 대충 알 것 같기도 했다.
“저 사람도 어제 되게 힘든 일이 있었거든.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일. 그래서 나에게 위로를 부탁을 했어. 그래서 내가 위로를 해줬고. 아마 그래서 분위기가 묘해서 그랬던 것 같아.”
“아무리 분위기가 묘하더라도. 너는 그런 일을 그냥 당연하게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아니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아.”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태은우. 너는 나를 아직도 모르니?”
“너를 모르는 게 아니라.”
“그냥 한 번은 이해를 해주고 싶었어.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도대체 저 사람의 속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그게 너무나도 궁금했거든. 정말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것 같으니까. 되게 불쾌하고. 뭐 그렇기는 했는데. 이미 다 지난 일이잖아. 다 끝이 나 버린 일을 가지고 다시 왈가왈부하는 것도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 되어버렸고.”
“그래도 이거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거야. 내가 지금. 네 친구로 하는 말인데 이거 분명히 따져야 하는 거야. 네가 그냥 이런 식으로 넘어가면 저 사람 다시 너에게 그런 짓 할 수도 있는 거라고.”
나라는 물끄러미 은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은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친구. 되게 든든하다.”
“이나라. 나 농담 아니야.”
“알아. 나도 지금 네가 농담을 하는 거 아니라는 거.”
“그런데 도대체 왜.”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고.”
나라의 대답에 은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러니까 너도 괜히 내색하지 마. 언니가 알고 나면 더 난리를 피울 테니까. 나 그거 뒷수습 못 해. 그거 되게 귀찮은 일이잖아. 그러니까 태은우. 네가 수습할 거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어.”
“나는 정말 네가 이해가 안 된다.”
“나도 내가 그래.”
나라는 혀를 살짝 내밀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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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을 하지 않으실 거라고요?”
“네.”
“저기 작가님.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제안을 했나요?”
편집자는 미간을 모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가 바로 작가님 책이랑 계약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희랑 하기로 대충 구두로 약속을 하신 거잖아요.”
“완결을 낼 자신이 없어서요.”
“네?”
“뭐. 어차피 매너리즘 끝에 나온 거니까. 그냥 이런 식으로 마무리를 짓는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작가님.”
“죄송합니다.”
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짧게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원고 생기면 다시 가지고 오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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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왔냐?”
“너 보러 온 거 아니다.”
태현의 대답에 우석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가볍게 태현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미친.”
“왜 치냐?”
“내 카페 와서 무슨 지랄이냐?”
“네 카페?”
“몰랐어?”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이 카페 장사가 안 된다고 그래서 좋다고 하지 않았냐? 다른 사람 없어서 조용할 수 있었다고.”
“그랬지?”
“그런데 이 카페를 사?”
“조용하니까.”
우석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태현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 아무리 네가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나 돈 안 많아.”
“어?”
“이게 내 전재산이다.”
우석은 기지개를 켜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우리 꼰대가 안 된다고 하는 거 내가 겨우 설득을 해서 얻어낸 거라고. 나 같은 놈이 장사를 하면 무조건 망할 거라고 하잖아. 그래서 망하면 아버지가 나에게 주시기로 한 재산. 안 주셔도 된다. 뭐 그렇게 하고 받아낸 거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내가 지금 조금 미친 짓을 한 것 같기는 하다.”
“조금?”
태현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거 무조건 망한다.”
“그래?”
“그래가 아니잖아.”
“어차피 망해가는 곳이야.”
우석은 하품을 하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누가 해서 망하더라도 상관이 없는 거라면. 그냥 내가 망하는 게 낫잖아. 나는 어차피 한량이니까.”
“어제 내가 한 말이라면.”
“다 알아.”
우석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정태현.”
“응?”
“네 마음 너만 아는 거다.”
우석의 말에 태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네 말을 듣고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야. 나 스스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것을 고민하고 나서 결정을 내린 거라고. 그러니까 네가 괜히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늘 고민하고 있었어.”
우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나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주제에 그 동안 아무 것도 아닌 척.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있었던 거라고. 그러니까 네가 지금 하는 그 모든 말들. 그리고 네가 하는 그 모든 고민들. 그거 전부 다 네가 해결할 수 있는 거야.”
“해결이라.”
태현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보더라도 자신의 문제는 우석의 것과는 달랐다.
“아무튼 너 이 카페 확실히 돈을 다 주고받은 거 아니라면 직므이라도 무르자고 해. 다른 몫 좋은 곳에 하면 되는 거잖아. 아니면 너희 아버지 프랜차이즈 하나 내달라고 하던가. 안 그래도 지금도 망하기 일보 직전인 가게를 산다는 거. 그거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그냥 문을 닫고.”
“이미 돈 다 냈는데?”
“뭐?”
“왜?”
“야. 나한테 물어는 봐야지.”
“그래야 했나?”
태현의 말에 우석은 킬킬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거 아니야?”
“뭘?”
“내가 이 카페 좋아하고 있다는 거.”
우석의 말에 태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우석의 말이 맞았다. 그는 이 카페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중이었다. 두 사람이 늘 만나는 장소 역시 우석이 좋아하는 이 카페였으니까. 당연한 거였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친숙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그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그 여자 좋아하지?”
우석의 말에 태현의 얼굴이 굳었다.
“좋아하는 거구나.”
“안우석.”
“뭐라고 하는 게 아니야. 그냥 부러워서. 그래서 그러는 거야.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건 지금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게 보이니까. 단 한 번도 네 글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네가 연재하는 그 글에는 사람이 있더라. 거기에 사람이 있다는 건 네가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겠지.”
“그런 거 아니야.”
“네 마음은 너만 알 수 있어.”
우석의 말에 태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것 같았다.
“편하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 여자 재미있지.”
“안우석 그만 해라.”
“열 살이 어리면 어떠냐? 혼자서 그런 거에 벽 세우고 예민하게 굴지 마라. 그냥 네 마음이 어떻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거라고. 내가 하는 말이 틀려? 너 지금보다 더 늦으면 정말로 아무 것도 못해.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 그거 할 수 있을 때 그거 그냥 하는 게 맞는 거야.”
“미친놈.”
태현은 혀를 끌끌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소설 쓰러 간다. 미친 놈아. 그런 쓸데 없는 소리 할 거면. 여기 매상 올릴 궁리나 해라. 멍청한 놈아.”
“친구 내 말을 명심하라고.”
태현은 우석의 말이 자신의 발을 잡아끌자 가볍게 무시하며 손을 들고 중지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우석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도 그를 무겁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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