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단편 소설

[단편 소설] 토마토마토

권정선재 2014. 12. 29. 07:00

20141016일 오후

안녕하십니까? 20141016. SBC 저는 조원식입니다. 오늘 오후 두 시. 긴급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광화문에 토마토마토 별이라는 곳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외계인들이 나타났습니다. 아직 정부 당국에서는 공식적인 언급이 없지만 잠시 후 기자회견을 통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 들어오는 즉시 시청자 여러분께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141016일 자정

이걸 도대체 어떻게 국민들에게 알립니까?”

그렇다고 정부만 알고 있고 정치인만 알고 있습니까? 국민과 대화를 나누어야지요.”

어허. 말이 안 되는 소리. 국민들은 패닉에 빠질 겁니다.”

국민들을 멍청하게 보시는 겁니까?”

아니, 내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만들 하세요.”

정당 대표들의 다툼에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외계인들과 대화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언론에 알려질 대로 알려졌으니 내일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사실 유무만 전달하겠습니다. 청와대 결정 사안입니다.”

허나.”

더 좋은 방안 있습니까?”

대통령의 물음에 여당 대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입을 다물었다. 대통령은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찡그렸다.

나도 내가 내리는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이며 어디며 안 알려진 곳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청와대가 발뺌을 한다고 하면 그게 더 우스운 꼴이 될 거라는 거 모르십니까?”

그렇다면 왜 한국일까요?”

모르지요.”

야당 대표의 물음에 대통령은 숨을 내뱉었다. 왜 하필 미국도 아닌 한국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적어도 전 세계적인 관심이 한국에 쏠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그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실무진들이 노력 중입니다. 곧 뭐든 다 가능할 겁니다. 그럼 그들이 왜 하필이면 한국에 왔는지 그것까지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냥 죽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안 됩니다.”

보수 정치인의 발언에 대통령은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너무나도 많은 이들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가는 문제가 더 커질 겁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죠. 회의 마치겠습니다.”

대통령은 잰걸음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20141017일 새벽

이런 것들을 어떻게 조사하라는 거야?”

모르지.”

대화가 정말 되기는 하는 거야?”

여자 연구원은 초록색 토마토 모양의 외계인을 쿡 찔렀다. 외계인은 삐익- 하는 소리를 질렀지만 그것은 단발마의 비명과도 같은 것이지 어떠한 대화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일단 우리에게 해는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이대로 보고서를 올려도 되지 않을까? 오늘 무조건 브리핑을 한다는데.”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죠?”

모르지. 그런데 별 일은 없을 것 같아.”

후배 연구원의 물음에 여자 연구원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초록색 토마토 모양 외계인을 쿡 찔렀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녀석들이 우리를 물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야. 그리고 속은 그냥 말랑말랑한 토마토에 불과할 거라고.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진작 우리에게 겨눴겠지? 그러니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20141017일 오전

너 어제 그거 들었어? 토마토마토라는 별에서 외계인들이 왔대?”

너는 그런 소리를 믿냐?”

영빈의 호들갑에 재필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책상에 엎드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떠들 거면 그냥 잠이나 자라. 1교시 한자야. 졸면 또 난리라고.”

너 무식한 것은 알았지만, 뉴스는 좀 보고 살아야 하지 않냐? 파란 창 메인도 그거라고.”

재필은 궁시렁거리면서 영빈에게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뉴스 기사를 읽다가 살짝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거 사실이야?”

그렇다니까.”

대박이네.”

아이들도 재필과 영빈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까지 걸렸다면 그들이 지금 마주하는 현실은 단순히 누군가의 장난과도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거였다.

우리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재필의 물음에 아이들은 모두 멍한 표정을 지었다.

 

20141017일 정오

안녕하십니까? 20141017. SBC 저는 조원식입니다. 어제 정부가 밝힌다는 공식 입장은 오늘로 미뤄진 상태로 잠시 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서 발표가 될 예정입니다. SBC에서 단독 입수한 바에 따르면 토마토마토 별에서 왔다고 주정하는 외계인은 우리가 먹는 토마토와 닮은 외형으로 붉은색과 녹색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으며, . 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다고 합니다. 현장 연결해보겠습니다. 특파원.

. 특파원 권재순입니다. 저는 지금 청와대에 나와 있습니다. 청와대에서 지금 공식 브리핑을 시작하려는 중입니다. , 말씀드리는 순간 공식 브리핑 시작되었습니다.

어제 일부 언론에서 보도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토마토마토 별이라는 곳에서 온 외계인들이 대한민국에 도착한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무기를 지니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토마토마토 별이라는 명칭은 이들이 타고 온 우주선에 고대 한글로 토마토마토라고 적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정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청와대 공식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20141017일 오후

그러니까 그들을 모두 해체하고 죽이고 나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다는 겁니다. 그들이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우리가 그들을 그냥 관망합니까?”

이보세요.”

노 교수의 발언에 여자 패널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한국을 찾아온 손님입니다. 무작정 죽이자는 것이 어떻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대한민국 국격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거 모르세요? 귀빈입니다. 귀빈.”

귀빈이요?”

여자 패널의 말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노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소리가 나게 책상을 내리쳤다.

우리는 지금 다른 별에 가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 올 정도로 기술력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우리보다 월등히 나은 수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약한 이들이 왔을 때 처단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겉보기에 위험해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두면 나중에 더 큰 재앙을 불러올 거란 말입니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일단 두 분 모두 진정하시고요. 시청자 전화 연결 받겠습니다. 여보세요.”

어머. 저 정말 연결된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이번 토마토마토 별의 외계인이 국내, 그러니까 우리 대한민국만 찾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 우리나라 문화를 사랑하고 그래서 그런 것 같고요. 그런데 저 지금 정말로 방송에 나오고 있는 거 맞죠?’

 

20141028일 정오

우리. 괴롭히지. .”

후배 연구원은 놀란 눈으로 여자 연구원을 바라봤다.

아주 간단한 어휘이기는 하지만 이제 어휘도 구사할 줄 안다고요.”

여자 연구원은 빨간색 토마토 외계인 쪽을 더 가까이 바라봤다. 이쪽이 크기도 더 크고 언어를 배우는 속도도 빨랐다.

아무래도 이 녀석이 리더가 아닐까 싶어. 훨씬 더 학업 능력도 좋고.”

그래도 이런 언어를 구사한다는 거. 밖에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아직 연구를 하는 기간이 남았다고. 이거 알리면 미국에서 바로 가져가겠다고 난리를 칠 걸? 벌써 난리라고 들었는데?”

여자 연구원은 기다란 젓가락으로 빨간 토마토 외계인을 쿡쿡 찔렀다. 외계인은 울상을 지으며 몸을 뒤로 피했다.

우리. 풀어. . 우리는. 토마토마토. . 외계인. 우리는. 나쁜. 외계인. 아니야. 우리는. 대화. 나눌. 거야.”

대화를 나눈단다.”

여자 연구원은 낄낄거리며 빨간 토마토 외계인을 집요하게 찔러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초록색 토마토 외계인의 입에서 삐익-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여자 연구원은 그 날카로운 비명에 미간을 모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저 녀석 보호자라도 되는 모양이야. 하여간 우리가 실험하는 꼴을 가만히 보지도 않아요.”

그나저나 이 초록색도 조금 붉은 기가 도는 것 같지 않아요? 처음에는 완전 녹색이었는데 이제 군데군데 붉은 기운도 있는 것 같고요.”

그런가? 나는 모르겠다. 너 점심 뭐 먹을래?”

선배. 지금 밥이 넘어가요?”

그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여자 연구원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늘은 중국집 가자. 나 짬뽕밥이 무지하게 끌린다.”

아우, 선배가 그렇게 이야기하니 나도 침이 나오네. 그럼 얼른 먹고 와요.”

그래. 그리고 우리 말고 저 외계인들 연구하려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 우리는 좀 쉬엄쉬엄 해도 될 거다. 이번 걸로 간만에 연구비도 팡팡 나오고 있잖아. 얼른 가자. 날이 춥다.”

 

2014111일 오후

한국 정부가 미국에 외계인 둘의 생체 표본을 넘기기 바랍니다.”

안 됩니다.”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의 단호한 대답에 미간을 모았다.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애초에 우리 한국을 향해서 온 이들인데 저희가 도대체 왜 미국에 그들의 표본을 넘겨야 하는 겁니까?”

한국은 그들을 연구 기술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우리 미국이라면 그들이 왜 지구에 오게 된 것이고 목적이 무엇인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더라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말씀은 바로 하셔야지요. 그들은 지구로 온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서울로 바로 왔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중국 입장에서는 우리도 연구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중국 수석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아니, 이번 일은 그냥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외계인이라니요. 우리가 처음으로 조우하는 다른 존재의 문명입니다. 그런 이들이라면 적어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연구할 기회를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 됩니다.”

한국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단호히 대답했다.

이번 일은 우리 대한민국 정부에서 단독으로 처리할 사안입니다. 애초에 그들이 한국으로 왔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바랄 것이 있다는 것이고,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겁니다.”

아니 우선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3주가 다 되어가도록 아무런 성과도 없지 않습니까?”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마십시오.”

미국 대통령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국 대통령은 입을 쭉 내밀며 살짝 몸을 앞으로 기댔다.

아직까지 그들은 다치지 않았고 저희가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로 그 외계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저희 한국 정부에게서 그들을 가져갈 생각을 하지 마시고 그냥 지켜봐주십시오.”

그래도 너무 오래 걸리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다짜고짜 해부할 수는 없지요.”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입니까?”

미국 대통령의 이의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통령은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덤덤한 눈으로 회의 참여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에게 온 기회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 기회를 함부로 날릴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연구를 살펴보면 착실하게 뭐든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신다면 각국 정상들께서도 궁금해 하시는 모든 부분을 저희가 해소해드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41217일 오후

도대체 그 외계인들은 뭘까?”

또 그 소리냐?”

영빈의 물음에 재필은 입을 내밀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뉴스도 그날 나오고 끝이고. 별 것 아닌 거 아니야? 아니면 죽이고 모르는 척을 하던가.”

아닐 걸. 이미 죽인 거면 무슨 말을 해도 할 거야. 아직 아무런 말도 없다는 것은 그 외계인들이 살아있다는 거라고. 뭔가 어마어마한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을 걸? 그리고 이제 우리가 고 3이다. 그런 거 신경을 쓸 겨를 없다고.”

지금 수능이 중요해?”

그럼 안 중요하냐?”

재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검지로 영빈의 머리를 한 번 밀고는 먼저 교실로 들어갔다. 영빈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며 고개를 저었다.

 

20141220일 저녁

안녕하십니까? 20141220. SBC 저는 조원식입니다. 최근 한 캐릭터 전문 업체가 토마토마토 별의 외계인들을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 관련 상품을 출시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귀여운 캐릭터 상품을 만나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입장에서부터 지구를 침공하러 온 것일지도 모르는 외계인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우호적인 시각만을 지닌 것이 아닌가 하는 입장까지 다양한데요. 논란의 효과 덕분인지 해당 제품은 올 성탄절 완구류 상품 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 당국은 해당 상품에 대한 별다른 입장을 추가로 내놓지 않는 상황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두 달이나 지나도록 정부에서 새로운 발표가 없는 것을 보면 이미 외계인들이 사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141231일 자정

올 한 해도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올해 가장 핫 이슈였던 누가 뭐라고 해도 토마토마토 별의 외계인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각장 캐릭터 상품이 나올 정도로 빅 이슈인데요. 해외에서까지 인기라고 하죠? 과연 내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뭇 궁금해집니다. 올해는 이들이 가장 큰 화제였던 만큼 특별한 카운트다운을 해봤으면 하는데요. 올해는 1 대신 토마토마! 라고 외쳤으면 합니다. 모두 다 저희와 같이 해주실 거죠? , 이제 2014년도 10초 밖에 남지 않았군요. 다들 같이 외쳐볼까요? 10. 9. 8. 7. 6. 5. 4. 3. 2. 토마토마!

 

201513일 새벽

선배 이거 성분이 토마토와 똑같아요.”

정말이야?”

후배 연구원의 말에 차트를 확인하던 여자 연구원의 눈이 커다래졌다. 말을 하고 움직일 수 있기는 하지만 그 구성 물질이나 특성 등을 보면 일반 토마토와 하나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여자 연구원은 비커를 보더니 그대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배 연구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그녀를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그녀가 모두 비운 후였다.

선배 뭐 하는 거예요?”

맛있네.”

?”

그냥 신선한 토마토 주스 맛이야. 조금 덜 달기는 한데. 되게 막 건강해지는 느낌? 이거 나쁘지 않은데?”

그래도 무슨 탈이 날 줄 알고 이걸 드세요. 안전하다는 증거도 하나 없잖아요. 이런 거 괜히 드시다가 문제라도 생길 수 있다고요.”

그냥 토마토 주스라니까? 이거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저 녀석들 교배하고 그러면 우리 농사짓고 그러는 수고도 줄일 수 있는 거 아니야? 우리 그 동안 저 녀석들에게 딱히 뭐 먹을 거 준 적 있어?”

아니요. 물을 제공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여자 연구원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리고 두 토마토마토 별 외계인들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숙였다.

이 녀석들을 이용하면 적어도 토마토에 있어서는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이 말씀이지.”

 

201517일 오전

여러분들께서 지금 마신 것이 바로 토마토마토 별 외계인들의 체액입니다.”

그게 무슨?”

뭐라고요?”

대통령의 발언에 의원들은 헛구역질을 하는 이도 있었고 멍한 표정을 지은 채로 자신의 잔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 몇 달 간의 연구 결과 그들이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지능은 가졌지만 체액이나 여러 성분에서 일반 토마토와 큰 차이를, 아니 전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동안 물만 제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을 보니 실제 식물처럼 광합성 등을 통해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 같다더군요.”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뭐 그들을 케첩으로라도 만들어서 패스트푸드점에 납품하자는 겁니까?”

그렇죠. 실제 생산 단가도 훨씬 더 낮아질 겁니다.”

국민 정서상 반감이 클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셔야지요.”

대통령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잔을 높이 들고 벌컥벌컥 들이켜 잔을 비웠다.

 

2015219일 오후

안녕하십니까? 2014219. SBC 저는 조원식입니다. 정부에서 토마토마토 별의 외계인의 체액을 가지고 각종 가공식품을 만들기로 결정한 이후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른 먹거리 학부모 모임에서는 혹시나 학교 급식에 토마토마토 별의 외계인 체액으로 만들어진 소스 류가 납품이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요. 이미 군대 등에는 해당 제품이 납품된 것으로 국정 감사 도중 밝혀지기도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의학계와 정부 부처에서는 인체에 아무런 해도 없을뿐더러 생산 단가도 크게 낮춘 경제적이고 안전한 식품이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실제로 청와대 각종 만찬 등에서 활용도가 높다고 합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대기업 현성 그룹에서 상품으로 출시하겠다는 일정까지 밝혀서 화제인데요. 과연 이 논란이 어떻게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201572일 오전

선배. 이거 봐요. 아이에요. 아이.”

초록색 토마토 외계인의 어느새 잘 익은 토마토 색으로 변하더니, 빨간색 토마토 외계인과 같은 공간에 둔 이후 점점 더 빠르게 붉어지다 작은 초록색 토마토 외계인 셋이 더 생겨났다.

이 녀석들 검사해봤어? 기존의 토마토마토 별 외계인들 샘플하고 같아? 같은 성분이야?”

각종 영양분이 조금 덜 들어있기는 한데 크게 차이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가임 기간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이대로 간다면 토마토에 있어서는 다양한 활용이 가능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일단 작은 녀석 하나만 꺼내 봐. 그 동안 사진만 주구장창 찍어댔잖아. 이제 이렇게 샘플이 많으니까 하나쯤은 갈라 봐도 되는 거 아니겠어?”

여자 연구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작은 토마토 외계인을 초록색이었던 토마토 외계인의 품에서 빼앗았다. 초록색이었던 토마토 외계인이 저항했지만 그런 것은 아무 방해도 되지 않았다. 50cm 남짓 되는 크기에 가느다란 팔 다리만 있는 그것이 연구원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미 빨간색 토마토 외계인은 모든 것을 포기한 모양이었다. 여자 연구원은 빼액- 빼액- 하고 우는 작은 초록색 토마토 외계인의 몸에 그대로 매스를 가져갔다. 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칼이 부드럽게 들어갔고 여자 연구원은 깔끔하게 반으로 잘라버렸다. 씨앗이 있어야 할 부분에 심장으로 보이는 것과 기초적인 내장 기관으로 보이는 것이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근육과 같은 것은 조금 질긴 섬유질처럼 보였고 눈이나 입과 연결된 섬유질은 뇌처럼 보이는 기관과 이어져 있었다. 다만 폐로 보이는 기관이 없는 것을 보면 허파 호흡을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여자 연구원은 징그럽다는 후배 연구원을 보며 의기양양하게 작은 초록색 외계인의 살점을 잘라서 입에 넣었다. 말캉하면서도 신선한 토마토 맛이 그대로였다.

맛있는데?”

 

201595. 오후

새로 나온 토마토마토 버거 먹어봤냐?”

아무리 그래도 그거 조금 징그럽지 않아? 외계인이라고 하고 토마토랑 성분 차이가 하나도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외계인을 잘라서 햄버거에 넣은 거잖아.”

너는 나보다 고기를 더 좋아하면서 그런 것들은 또 불쌍하냐? 불쌍할 것이 도대체 뭐야? 자기들이 사는 별이 아니라 다른 별을 방문할 때는 이 정도는 당연히 각오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나는 싫다.”

내가 사도 안 먹어?”

안 먹어.”

그럼 나 혼자 먹는다.”

재필은 입을 내밀고 카운터에 토마토마토 버거를 주문했다. 가게 안의 손님 중 대다수도 토마토마토 버거를 먹는 중이었다.

이거 되게 신선하다?”

채소는 먹지도 않는 놈이.”

이거 그냥 채소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 더 신선하다고 해야 할까?”

재필은 크게 한 입 토마토마토 버거를 베어 물었다. 신선한 육즙이 한 가득 입에 터져나오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거 정말 맛있어. 너도 한 입 먹어봐.”

영빈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속에서 괜히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2015111. 오전

안녕하십니까? 2015111. SBC 저는 조원식입니다. 정부에서 토마토마토 별 외계인과의 국교를 맺기로 결정해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중국 등의 정상은 한국이 단독으로 지구 대표권을 얻는 것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는데요. 이 논란이 어떻게 풀려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2016217. 오후

한국에서. 더 이상. 토마토. 농사를 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가족. 입니다. 우리가. 체액. 제공하니. 더 이상. 토마토를.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안정적으로 체액만 공급해주실 수 있다고 하면 그 정도는 당연히 약속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이라면.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빨간색 토마토 외계인에 손을 내밀었다. 빨간색 토마토 외계인은 잠시 멀뚱멀뚱 그 손을 바라보다가 대충 손을 내밀었다.

이제 우리는 토마토마토 별의 외계인들과 더욱 더 좋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정부는 토마토마토 별의 외계인들을 위해서 최대한 인도적인 대우를 해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2017421. 오후

안녕하십니까? 2017421. SBC 저는 조원식입니다. 토마토마토 별 외계인들이 가장 먼저 대한민국을 방문했을 당시 마음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잔혹한 실험을 행했던 여성 연구원이 구속되었습니다. 해당 연구원은 실험 탓에 어쩔 수 없다고 주장을 하지만 같이 연구를 했던 다른 연구원의 말을 통하면 고의성을 띈 살인 역시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 단체는 해당 연구원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01981. 오후

다른 음료수는 없냐? 왜 하필이면 토마토마토 주스. 그거 하나만 사오고 그러냐?”

그냥 마셔. 어차피 이게 제일 싸잖아. 그리고 딱히 맛도 나쁘지 않은데 뭐.”

그래도. 외계인 피라고 하면 뭔가 이상하지 않냐? 나는 괜히 꺼림칙하던데?”

영빈의 핀잔에 재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영빈은 한숨을 토해내며 수돗가에 입을 대고 수돗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토마토마토 주스를 마시느니 이 편이 마음이 편했다.

그 수돗물보다는 이게 백 배 나을 거다. 수도관이 녹이 쓸고 몸에 하나도 안 좋다잖아.”

그래도 나는 안 먹으련다. 그래도 좀 그렇잖아. 불편한 기분이 든다니까? . 너는 마시려면 마셔라. 나중에 그거 마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괜히 기분이 묘하다니까?”

이제 토마토마토 별 사람들 없이는 아무 것도 만들 수 없는데 뭘 그러냐? 그리고 별다른 것을 바라는 거소 아니라며. 그냥 물하고 약간 살 곳만 주면 된다고 하는 건데 나쁜 거 아니지. 솔직히 농사가 좀 어려워? 나는 다른 별에도 이런 외계인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영빈이 네가 너무 예민한 것 같아. 다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영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가를 대충 훔치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20251211. 저녁

안녕하십니까? 20251211. SBC 저는 조원식입니다. 올해로 토마토마토 별 사람들이 지구에 도착한 지 11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그들은 없어서 안 될 존재가 되었는데요. 최근 한 지자체에서 이들에게 주거지역을 공식적으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과도한 조치라 반발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존재들인 이상 당연하다는 의견도 많은데요. 이에 대해서 앞으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이상 토마토마토 별 사람들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은 모든 분이 공감하시고 계실 텐데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 일이 진행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들도 분명히 인권을 지닌 존재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사실일 겁니다.

 

203764. 정오

토마토마토 별 외계인들을 추방하라! 더 이상 세금 지원 못 하겠다!”

서민 주거 안정 지원해야 할 자금이 외계인들에게 지급되는 현실 개선하라!”

최초 주거지역 이후 계속해서 넓어지는 외계인 안전 지역. 축소하라.”

집회를 하는 사람들 위로 토마토 주스가 뿌려졌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이리저리 달아나는데 토마토마토 외계인들이 그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20381215. 저녁

안녕하십니까? 20381215. SBC 조원식입니다. 최초로 대선에 출마한 토마토마토 외계인이 득표율 17.2%로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 유력으로 보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그들과 조우한지 30년이 훌쩍 넘어서 대통령으로까지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역대 최저 득표율의 대통령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이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2038216. 정오

안녕하십니까? 2038216. SBC 조원식입니다. 최초 토마토마토 별의 외계인 출신 대통령이 된 검붉은 토마토 717호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토지를 지구인과 토마토마토인의 영토로 나누기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더불어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곳에서 살을 비비면서 살았기에 더 이상 외계인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기 바란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더불어 토마토마토인에 대한 차별 역시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한 사회로 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7391. 정오

안녕. 하십니까. 2073. 9. 1. TSBC. 덜 붉은. 토마토. 32819. 입니다. 인간들의. 집회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지적이. 있는. 가운데. 인간을. 가둘. . 있는. 수용소의. 규모가. 한계에. 부딪쳤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준 것에. 비해서. 터무니. 없이. 작은. 것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지구인들에게. 검붉은. 토마토. 9581. 대통령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궁금해. 집니다. 그들은. 우리. 토마토마토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던. 연구원과. 같은. 종족으로. 우리를.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자들입니다.

 

2081228. 아침

할아버지 옛날에는 우리가 토마토마토인들보다 강하고 토마토도 먹었다는 게 사실이에요?”

그랬지. 이전에 토마토마토인들은 그저 우리를 위해 도와주는 자들일 따름이었는데.”

손주의 물음에 영빈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맨 처음 그들을 마주했을 때가 생생했는데 이제는 인간들이 자신의 목소리도 내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힘이 강해졌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서 살아야 해요? 보호 구역 안에서요.”

그러게 말이다. 언젠가는 우리도 자유를 가져야 할 텐데. 그런 날이 올까 모르겠다.”

아버지. 우리들이 나서야 합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이들에게 나쁜 꼴만 보인다고요.”

아들의 말에 영빈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건만 무조건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미 토마토마토인의 수는 너무 늘어있었다.

그게 정말 가능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냐? 그런 일은 너무 어렵게만 보이는구나.”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요.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주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요.”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이대로 그냥 견디다가는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구나.”

영빈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마토마토인들의 수탈이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처음에는 물만 마시면 된다고 했던 이들이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바라고 있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식량도 부족해지는 중이었다. 영빈은 아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2081815. 저녁

안녕하십니까? 2081815. SBC 저는 조정원입니다. 드디어 인간들이 토마토마토인들에게 해방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일본, 대만 등으로 독립 열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동안 토마토마토인들에게 억눌려 있던 시민들의 함성이 거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다시는 주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기 같은 것도 느껴지는데요. 지난 세월 동안 학대를 당했던 이들은 드디어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무려 40년에 가까웠던 식민지 생활. 이제는 우리 국민들의 힘으로 새롭게 일굴 때입니다.

 

30141016일 오후

안녕하십니까? 30141016. SBC 저는 조정원입니다. 오늘 오후 두 시. 긴급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광화문에 옥수수수수 별이라는 곳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외계인들이 나타났습니다. 아직 정부 당국에서는 공식적인 언급이 없지만 잠시 후 기자회견을 통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 들어오는 즉시 시청자 여러분께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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