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햇살 아래 폭풍
“형 장사 엄청 잘 되네.”
“오빠 오랜만이에요.”
“얼른 앉아.”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재필과 카페에 들어섰다. 카페의 모든 테이블에 손님이 가득이었고 음식을 사진으로 담고, 떠들고 즐기는 중이었다.
“형 장사 엄청 잘 된다. 밖에서 보는 거랑 비교가 안 되네. 안에도 사람이 이렇게 많았어? 가게 늘려야 하는 거 아니야?”
“이것도 주말만이야. 평일에는 이렇게 안 된다. 남들이 네가 하는 이야기 들으면 코웃음을 칠 거다.”
“다른 가게는 주말에도 이렇게 안 되거든요? 하여간 우리 형 엄살이 너무 심하다. 이렇게 대박 가게를 갖고 있으면서.”
“그래?”
선재가 자신을 보자 우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재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힘드시죠? 손님이 이렇게 많아서.”
“아니야. 너도 회사 다니느라 힘들지. 앉아 있어. 내가 제일 맛있는 걸로 가지고 올게. 너는 오랜만이니까 내가 제대로 쏜다.”
“네. 기대할게요.”
선재가 주방으로 들어가고 재필은 익숙한 듯 휴대전화를 꺼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재필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우리는 가만히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무슨 대화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정작 자신도 재필에게 할 말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 나 결혼식 못 가.”
“어?”
우리는 고개를 들어 재필을 바라봤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지. 재필이 가지 않으면 뭔가 더 초라할 거였다.
“왜 너 별 일이 없을 거라고 했잖아?”
“마땅히 입고 갈 옷도 없더라고. 그런데 괜히 그런 데 가서 네 격 떨어뜨리면 안 되잖아. 그건 좀 그렇지.”
“격?”
“아니야?”
우리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선재가 주방에서 나왔다. 우리는 겨우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무슨 심각한 얘기야?”
“아니요. 별 이야기 아니에요.”
재필이 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밝은 미소를 지은 채로 답했다. 아무리 재필의 사촌이라고 하더라도 하지 못할 이야기가 있는 거였다. 하지만 재필은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심각한 이야기 하는 거 아니고?”
“얘 친구 결혼식 이야기.”
재필의 말에 우리는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재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말을 이어갔다.
“응. 호텔에서 한다고 해서. 내가 그런 데 입고 갈 옷이 없잖아. 그래서 얘 괜히 기분이 상하고 그럴까. 안 간다고 그랬어. 뭐. 혼자 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뭐라는 거야?”
선재가 순간 미간을 모으며 목소리를 키우자 재필이 눈치를 살피며 휴대전화를 내려놨다.
“왜 그래?”
“야. 너는 여자를 그렇게 모르냐? 우리야 미안. 하여간 이 멍청한 자식. 너랑 우리 사귀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가 결혼식 혼자 가면 어떨 거 같아? 다들 뭐라고 할지 몰라?”
“그런가?”
심드렁하게 답하는 재필을 보며 선재는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얘를 잘못 키웠어.”
“아니에요.”
“형이 키웠나?”
“시끄러워. 그리고 그 휴대전화 좀 내려놔라. 데이트하러 와서 뭐 하는 거냐? 휴대전화나 보고.”
선재의 목소리가 꽤나 큰 모양인지 옆 테이블의 사람들도 조심스럽게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선재는 한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재필. 너 똑바로 해.”
“내가 뭘?”
선재는 그대로 주방에 들어갔다. 선재는 입을 쭉 내밀며 주방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자기도 제대로 하는 거 없으면서 남 이야기는 엄청 잘 한다니까. 도대체 왜 저러나 몰라?”
“오빠 말 틀린 거 하나 없어.”
“뭐가?”
“너랑 나랑 사귀는 거. 내 친구들 중에서 모르는 애들 없어. 12년이야. 12년을 사귀었는데 나 혼자 가면 다른 애들이 뭐라고 할지. 너는 그런 생각도 못 하는 거야? 거기에서 내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그런 생각 같은 거 하나도 못 하는 거니?”
“왜 너까지 그러냐?”
재필은 입을 쭉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하는 재필의 태도에 답답했지만 여기에서 싸울 수는 없었다.
“됐다. 너 가기 싫으면 가지 마. 너한테 제발 같이 가달라고 안달복달할 마음은 없으니까.”
“나는 너를 생각해서 그런 거라고. 나 나름대로 이것저것 머리를 굴려서 내린 결론이란 말이야. 너 마치 내가 너를 무시하고. 네가 무슨 곤경에 처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말하는데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도. 한 번 더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야? 너는 꼭 생각을 하다가 말더라. 생각을 하고 말하라고.”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뭐? 내가 뭘 어떻게 하는데?”
“됐다.”
재필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채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그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재필이 미간을 모으며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로 우리를 응시했다.
“너 뭐하는 거야?”
“나랑 이야기 좀 하자고.”
“내놔.”
“임재필.”
“내놓으라고.”
우리가 휴대전화를 주지 않자 재필은 그녀의 손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가져온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하는 거야?”
“너 혼자 먹고 와.”
“뭐라고?”
“너랑 같이 밥 먹을 기분 아니야. 브런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 기분에 무슨 브런치야.”
“임재필.”
“너 혼자 먹으라고.”
재필은 그대로 가게를 나가버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다 자신을 쳐다보고 수군거리는 느낌이 불쾌했다. 따라가야 하는 건가? 망설이는 순간 선재가 다급히 나와서 우리의 옆에 앉았다.
“괜찮아?”
“네.”
“저 자식이 요즘 되는 일이 없어서 저러는 거야. 뭐 이렇게 저 녀석 편을 들어주는 것도 네가 별로 듣고 싶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너무 미워하지는 말라고.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니니까.”
“알아요.”
“미친 자식. 아무리 그래도 여기에 너 혼자 두고 가버리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미친 거 아니야?”
선재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재필의 번호를 눌렀지만 무슨 말을 할지 아는 재필은 그의 전화를 피했다.
“망할 자식. 받지도 않네.”
“저 갈게요.”
“기다려. 내가 포장할게.”
“저기.”
“잠시만.”
우리가 괜찮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선재는 다시 주방에 들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자신에게 쏠려있었다. 하지만 이제 피할 수도 없었다. 선재는 우리의 손에 종이 가방을 건네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
“오빠가 왜요?”
“내가 저 자식 싸가지를 못 고쳐놔서 저래. 나한테는 안 저러는데. 너한테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너무 오래 사귀어서 네가 편해서 그런 거겠지. 네가 이해 좀 해라. 응?”
“네. 이해해요. 아. 여기 카드.”
“됐다.”
“네? 아무리 그래도 이거 어떻게 받아요.”
우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선재는 카드를 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내 식구 실수에 대해서 사과하면서 주는 거야. 가서 재필이 자식 주지 말고 너 혼자 다 먹어.”
“오빠.”
“알았지?”
“네. 고맙습니다.”
“미안하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선재를 바라봤다. 선재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우리를 보고 웃었다.
“재필이 녀석도 이제 어른이고. 내가 너희 두 사람 사이에서 관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뭐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알아요.”
“저 녀석이 조금 더 섬세하게 네 마음을 알아준다거나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건 아니니까.”
“네. 알고 있어요.”
우리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선재는 벽에 살짝 기대서 이리저리 목을 풀고 낮게 한숨을 토해냈다.
“나도 답답하다.”
“네? 오빠가 왜요?”
“재필이 쟤가 저렇게 자신감이 없는 애가 아니잖아. 내가 쟤 가족이라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재필이 그래도 뭔가 할 수 있는 애라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 나는 재필이를 믿어.”
“저도 믿어요.”
“그러니까.”
선재는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로 미소를 띈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거꾸로 재필이가 자신을 전혀 믿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아요. 자꾸만 자신에게 흔들리는 거 같아요.”
“자기가 하는 일이 제대로 안 되니까. 아. 잠시만. 나 손님.”
“아니에요. 저 이제 갈게요. 안녕히 가세요.”
“조심히 가!”
더 이상 여기에서 있어봐야 우스운 꼴이 될 뿐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날이 너무 좋았다. 이 거리를 혼자서 걷는다는 것이 청승맞았지만 괜찮았다.
“그래. 뭐. 혼자서 다니는 사람 많을 걸? 나만 있는 거 아니야. 그래.”
혼자서 중얼거리며 놀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늘 진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좋다.”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지나가는 소리.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고 여유로웠다.
“서우리 씨?”
우리는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정식이었다. 우리는 놀라서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그대로 종이 가방을 떨어뜨렸다. 종이 가방이 쏟아지고 브런치 상자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떡해.”
“괜찮습니까?”
“네? 네.”
정식은 다급히 바닥에 주저앉아서 종이 가방에 브런치 상자들을 담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손에 들려주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까?”
“네? 네. 그런데 지금 팀장님께서는 여기에서 뭐 하세요?”
“그냥 점심이나 먹으러 나왔죠. 오늘도 출근했거든요.”
“아. 그럼. 이거 드세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종이 가방을 내밀었다. 정식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우리와 종이 가방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제야 안의 내용물이 다 섞였을 거란 사실에 우리가 황급히 종이 가방을 뒤로 감추었다.
“이거 너무 지저분하죠?”
“아닙니다. 같이 먹죠.”
“네? 같이요?”
“아까 대충 보니까 혼자서 먹을 양은 아니더라고요. 나보고 같이 밥 좀 먹으라고 하더니 서우리 씨는 내가 같이 밥을 먹자고 하니까 피하는 겁니까?”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당황하자 정식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같이 가죠.”
“네? 그러니까.”
우리는 재필의 집 쪽을 한 번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결심을 한 듯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 먹어요.”
“혹시 누구 같이 먹을 사람 있었습니까?”
“아니요. 없어요. 없어.”
그 망할 자식이랑 왜 먹어?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재필과 한 판 해야 할 거였다. 그건 별로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사무실로 가요?”
“아니요. 갈 곳이 있어요.”
“네? 어디에요?”
“이상한 데 가는 거 아니니까 그렇게 걱정하는 표정 짓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서우리 씨한테 엄한 짓이라도 할 거 같습니까?”
“아니. 걱정이 아니라.”
도대체 왜 이렇게 친한 척 하는 건데?
우리는 아랫입술을 살짝 문 채로 정식의 뒤를 따랐다.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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