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의 시간[완]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5장.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

권정선재 2016. 8. 26. 10:45

5.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 어머니 많이 수다스러우시죠?”

아니요.”

 

어쩌다보니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 길에 건넨 정식의 말에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좋은 분이었다. 자신이 정식보다도 나이가 어린 데도 쉽게 말을 놓지 않는 분이셨다.

 

어머니 되게 좋은 분이에요. 사람도 잘 대해주시고. 저는 그런 분이 되게 부럽더라고요.”

지금 팀장 어머니라서 괜히 아부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거든요.”

 

우리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정식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그쪽을 바라보자 정식은 가볍게 양손을 들어보였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겁니까?”

저도 이제 스물아홉이거든요. 그런데 팀장님은 저를 보실 때마다 무슨 어린 아이라도 보는 것처럼 보시는 것 같아요.”

내가 그랬습니까?”

. 그러셨어요.”

 

우리의 대답에 정식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정식과 같이 이런 시간을 보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더욱 이상했다.

 

그런데 댁에는 자주 오지 않으시는 모양이에요?”

내가 일을 좀 좋아하는 편이니까요. 서우리 씨도 집에 자주 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

 

굳이 재필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괜히 그런 이야기를 하면 자신을 다른 눈으로 볼 수도 있을 거였다. 아직까지 그런 거에 대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는 않을 테니까.

 

아무튼 우리는 모르는 사이입니다.”

알았어요.”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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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어때?”

아주머니 성격 좋으시네.”

아니.”

 

은화는 우리의 팔을 붙들고 미간을 모았다. 우리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옆집 아들 말이야. 어때?”

뭐래?”

 

우리는 펄쩍 뛰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랑 재필이랑 사귀는 거 잊었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 아직 스물아홉이야. 네가 재필이랑 오랜 시간 사귄 건 알고 있는데. 그래도 너 꼭 결혼할 필요는 없어. 엄마는 네가 옆집 그 총각하고 만났으면 좋겠어. 회사도 좋고.”

엄마.”

 

우리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은화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서운했다.

 

재필이가 알바하면서 번 돈으로 그 비싼 음료수를 줬어. 그거 편의점에서 제일 비싼 거야. 걔가 뭐 그러고 싶어서 그래요? 엄마도 걔 착하다고 하잖아. 걔처럼 좋은 사람 없는 거 알잖아.”

세상이 착한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 너 그런 거 정도는 알아야지. 아니야? 너 이제 어린 아이 아니잖아.”

나 갈래.”

서우리. 너 정말 이럴래?”

. 나 이럴래.”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은화를 응시하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나도 알아요. 재필이가 많이 부족하다는 거. 그래도 아직 어리잖아. 우리 젊잖아. 아직 뭐 하나 제대로 이루지 않아도 괜찮은 나이인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급해서 그래요? 재필이나 나나 그냥 지켜보고 그러면 안 되나요?”

애가 비전이 없잖아.”

엄마.”

너 내 딸이야.”

 

은화는 엄한 목소리로 말하고 우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우리는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실망이야.”

서우리.”

엄마는 다를 줄 알았어. 그저 겉만 보고 그러는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을 했다고. 그런데 지금 이게 뭐예요? 재필이가 뭐가 어때서? 나 걔가 좋아. 걔도 나를 좋아하고.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니야?”

너희 지금 오래 만났어. 그래서 네가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야. 뭔가 특별한 거라고 그렇게 믿는 거라고.”

엄마!”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은화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알아요. 엄마가 내 걱정을 해서 그런다는 거. 그런데 이건 걱정이 아니야. 나를 그냥 가두겠다는 거야.”

엄마가 되어서 딸이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게 그게 잘못이야? 엄마가 너에게 잘못하는 거야?”

.”

 

우리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은화는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엄마는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정말로 내가 행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같아. 나는 재필이가 있어야 행복해. 엄마가 계속 그런 거면 엄마 보고 싶지 않아요. 나 그냥 갈래. 엄마랑 더 있다가는 싸우기만 할 거 같아요.”

 

우리는 그대로 가방을 들고 나섰다. 그리고 길가로 나섰다. 역시 집은 올 곳이 못 되는 곳이었다. 엄마라면 뭐가 다를 줄 알았는데, 결국 은화도 같았다. 아버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결국 같았다.

 

진짜 싫어.”

 

뒤에서 자동차 불빛이 비췄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옆으로 비켜났다. 그런데 자동차가 자신을 질러가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정식의 차였다.

 

어디 갑니까?”

서울에요.”

타요.”

?”

나도 지금 서울 가는 길입니다. 회사에서 내가 할 일이 갑자기 생겨서요. 어차피 가는 길이니 같이 갑시다. 어차피 이 시간에 여기에 다니는 차도 없는 거 같은데 말입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니지 않습니까? 일단 그냥 타죠. 걸어가는 거 힘들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정식에게 이런 호의를 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을 하니 정식의 차가 아니라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없을 거였다. 우리는 결국 한숨을 토해내고 짧게 고개를 숙인 후 정식의 차에 올랐다. 정식은 우리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지 말씀 안 드릴 거예요.”

그거 묻는 거 아닙니다.”

? 그럼 왜?”

안전벨트 매라고요.”

. 죄송합니다.”

 

우리는 혀를 살짝 내밀고 안전벨트를 맸다.

 

. 서우리. 조 팀장한테 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 저 남자는 너를 여자로 보지 않는데. 아니 애초에 여자들을 여자로 보지 않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 한심해. 나 왜 이렇게 미련하게 행동하는 거니?

 

서우리 씨 사는 곳이 어디입니까?”

 

합정 쪽에. 그냥 합정역에 내려주시면. 아니 2호선 아무 데나 내려주세요. 아직 전철 막차 다닐 거예요.”

 

하지만 정식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입을 쭉 내밀고 창밖을 바라봤다. 드문드문 가로등만 있는 길. 살짝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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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리 씨. 일어나시죠.”

 

우리는 황급히 눈을 떴다. 밖을 보니 당산을 막 지나는 길이었다. 정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곤히 자서 깨우면 안 되나?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오늘도 회사에서 자게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여기에서 집이 멀리에 있습니까? 그런 거라면 내가 집까지 데려다 주겠습니다.”

아니요. 합정에서 가까워요. 고맙습니다.”

 

정식은 합정역 사거리에 있는 카페 앞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주말 푹 쉬고 월요일에 봅시다.”

. 들어가세요.”

 

금요일 합정은 불야성이었다. 많은 사람들. 술에 취한 청춘들. 우리는 상수로 가는 길에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방금 그 번잡함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함이 감돌았다.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그래. 여기가 내 집이지.”

 

엄마가 사는 집은 집이 아니었다. 이미 자신도 모르게 재필과 사는 집을 집이라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곳이 더 편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가 있는 곳이었으니까. 재필은 그녀가 없는 사이 친구들과 나간 모양이었다. 우리는 대충 집 정리를 하고 샤워를 한 후 맥주를 한 캔 들고 컴퓨터에 앉았다. 이것저것 클릭하며 맥주를 땄다. 청량함.

 

그래. 이게 휴식이지.”

 

엄마한테 그러고 온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먼저 미안하다고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었으니까.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재필이 뒤에서 안았다.

 

뭐 하는 거야? 술 냄새.”

 

우리 여보 보고 싶었어.”

뭐래?”

어머니 집에서 자고 온다더니. 싸웠어?”

아니야.”

아니긴.”

 

재필의 몸에서 풍기는 땀내가 섞인 체취가 좋았다. 약간의 술 냄새. 그리고 뜨거운 체온.

 

많이 마셨어?”

아니. 오늘 왠지 일찍 집에 오고 싶더라고. 자기가 오늘 집에 올 거 내가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많이 마셨네. 평소에 그런 표현 하지도 않더니. 오늘은 서비스 멘트가 엄청 나온다.”

그래? 사랑해.”

. 얼른.”

 

재필은 우리의 손을 끌었다. 우리는 싫은 척 하면서 그런 재필의 손에 이끌려 침대로 향했다. 뜨거운 입맞춤. 열기.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재필의 손끝을 타고 몸으로 흘렀다. 재필은 천천히 우리의 옷을 벗겼다. 시끄러운 홍대. 그리고 두 사람만의 뜨거운 파티가 시작됐다. 이렇게 재필에게 사랑 받는다는 확인을 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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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형 카페에 가서 뭐라도 먹을까?”

사람 많을 걸?”

그래도 집에 아무 것도 먹을 거 없고. 선재 형네 가서 먹으면 우리도 편하고. 가자. 간만에 기름진 거 좀 먹자.”

그럴까?”

 

이불에 함께 있던 재필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창가에 섰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창가에 선 재필에 우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 하는 거야? 얼른 옷 입어.”

? 나 섹시해?”

미쳤어?”

 

우리는 재필의 옷가지를 그에게 던졌다. 재필은 대충 옷을 꿰어 입고는 전화기를 던졌다. 우리는 목을 가다듬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이고. 서 여사. 무슨 일이야?’

오늘 카페 바빠요?”

오려고?’

. 오빠가 해주는 감자 피자 먹고 싶어서. 재필이랑 같이 가려고요. 오빠 음식 너무 먹고 싶어서요.”

어쩐다고 그 녀석이 다 행차를 하신대. 평소에는 내가 그렇게 오라고 해도 귀찮다고 하는 녀석이.’

그러니까요. 10년 넘게 키웠더니 이제 좀 말을 듣는 거 같기도 하고. 가도 괜찮아요? 이제 좀 쓸만하죠.”

. 너희 자리는 언제든 빼놓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대신 돈은 제대로 내야 한다.’

알았어요. 30분 안에 갈게요.”

. 조금 있다가 봐.’

 

우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재필을 바라봤다. 재필은 씩 웃으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다시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졌다. 그리고 정식에게 온 팀장에 자리에 앉았다.

 

팀장님이 왜?”

 

다행히 문자 내용은 별 게 아니었다. 그냥 잘 들어갔느냐는 안부. 그런데 평소에 이런 것을 보낸 적이 없는 그이기에 이상했다. 우리는 볼을 부풀리고 문자를 지웠다. 자신도 모르겠지만 재필이 보면 그다지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서우리 너 왜 이러냐?”

 

우리는 베개로 얼굴을 막았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재필이 씻다가 놀라서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그냥.”

?”

 

재필은 비눗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짜증을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누가 치우라고?”

사랑하는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데 안 나갈 사람이 어디에 있냐?”

말이나 못하면.”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바닥에 앉아 물을 닦았다. 그리고 침대에 기대서 눈을 감았다.

 

좋다.”

 

이런 여유 같은 거. 너무 좋았다. 평소라면 느끼지 못할 거였다. 굳이 다른 걸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얼른 준비해.”

알았어.”

 

허리에 수건을 두른 채 나오는 재필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재필이 놀란 사이 거울을 바라봤다. 아직 젊은 여자. 겨우 스물아홉. 그렇게 조마조마할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