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의 시간[완]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4장. 우연한 만남]

권정선재 2016. 8. 25. 11:18

4. 우연한 만남

아빠는?”

나갔지.”

 

은화의 대답에 우리의 기분은 유쾌하지 않았다. 은화는 그런 우리의 기분을 안 모양인지 우리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저었다.

 

너 때문에 나간 거 아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 괜히 그런 생각을 하고 그래?”

아빠는 여전히 나랑 재필이 싫어하지?”

그렇지. 나도 마냥 좋은 건 아니야.”

그렇지.”

 

우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떤 부모가 딸이 결혼도 하지 않고 남자랑 동거한다고 하면 좋아할 수가 있겠는가? 공식적으로 동거는 아니지만 거의 매일을 재필과 시간을 보내는 그녀였다.

 

너 따로 집이 필요하면 내가 챙겨놓은 돈이 있으니까 해줄게.”

됐어요.”

?”

뭐하려고 집을. 나중에 나 시집이나 갈 때 제대로 혼수나 해줘요. 서울 집이 얼마나 비싼데.”

그래도 엄마 마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네가 처음에 그 집 들어간다고 했을 때 내가 뜯어 말렸어야 했는데.”

엄마가 말리면 내가 안 해?”

그건 그렇지.”

 

은화의 웃음에 우리는 혀를 살짝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은화는 우리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만졌다.

 

머릿결이 많이 상했어.”

그러게요. 요즘 일이 많아서 그런가봐.”

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집에서 너한테 뭐라도 해줄 수 있으면 네가 그렇게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집에서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엄마는 우리 딸이 이리 고생하는 것이 싫어.”

아이구. 그런 말 하지 마셔요.”

 

우리는 은화의 손을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은화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다른 집 애들은 취업을 하지 못해서 난리에요. 그런데 엄마 딸은 진작 취업해서 회사를 다니는데. 그런 말 엄마 친구들한테 해봐. 그러면 다들 화를 내고 그럴 걸?”

화를 내기는.”

화 낼 거예요.”

 

은화는 그제야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주스를 내밀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은화가 고개를 갸웃하자 우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별 것 아니라는 듯 지나가는 것처럼 대답했다.

 

오늘 집에 온다고 하니 재필이가 주더라고.”

어이구. 뭐 이런 걸?”

그러게.”

걘 아직도 그러고 있어?”

그렇지. .”

그래?”

 

은화의 얼굴에 순간 아쉬움이 스치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방에 가서 좀 있을게요.”

그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 우리 뭐 시켜 먹어요. 나 잠시만.”

그래.”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꼭 닫고 기댔다. 재필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재필에게 이런 마음을 품는 자신도 너무나도 우스웠다. 재필을 그렇게 사랑했는데 도대체 왜 이런 마음을 품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상황이 두 사람을 흔드는 거였다. 이런 마음을 품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괜히 재필의 상황이 미웠다.

 

답답하다.”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창가에 섰다. 그리고 창문을 여는 순간 그대로 몸이 굳었다. 눈앞에 정식이 있었다.

 

서우리 씨?”

팀장님?”

 

우리는 황급히 커튼을 닫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도대체 저 사람이 저기에 왜 있어?

 

우리는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엄마. 내 방 뒤에 저거 뭐야? . 언제 생겼어?”

오면서 못 봤어?”

? 그러니까.”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집 옆에 새 집이 생기기는 했다. 그런데 자신의 방 창문 쪽인지는 몰랐다.

 

누가 집을 저렇게 지어. 아니 창문끼리는 안 보게 지어야지. 이러면 서로 창문에서 다 보이잖아.”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법이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안 하냐? 근데 왜 갑자기 이래? 그 방에서 평소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그 집 아들 서울 가 있다고 하던데?”

아들? 엄마 옆집이랑 친해요?”

 

. 친해졌지. 어차피 우리도 네가 나가서 사니까 그 방을 그다지 쓸 일이 없고.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했지. 그러면 너 안방 가 있어.”

아니야. 커튼 치고 있으면 돼.”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방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다행히 커튼은 잘 쳐져 있었다. 우리는 침대에 앉았다.

 

이게 뭐야?”

 

집에 쉬러 왔는데 여기에서까지 조 팀장을 보다니.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우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야? 저기에 도대체 조 팀장이 왜 떡하니 있는 건데? 이게 무슨 상황인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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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

?”

어여.”

 

우리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잠시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새 잠이 든 모양이었다. 은화가 그녀의 다리를 문지르며 안쓰럽다는 눈으로 내려 봤다.

 

우리 딸 이리 고생을 하고 있었어?”

아니야.”

 

우리는 살짝 잠긴 목소리로 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잔 것이지만 꽤나 달게 잔 모양이었다.

 

아빠는?”

늬 아버지가 너랑 나 빼고는 다 잘 하는 양반 아니냐. 나간 길에 저기 최 씨네 송아지 받으러 간다고 하더라. 도대체 자기 딸이 왔는데 그 양반이 뭐 하는 짓인가 모르겠다.”

그래요?”

 

우리가 불편한 것과 같은 마음인 모양이었다. 우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옆집서 우리랑 같이 밥을 먹자고 하던데?”

옆집?”

 

우리는 순간 잠이 모두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옆집이면 조 팀장의 집이었다.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싫어요. 엄마 나 쉬려고 온 건데. 모르는 사람하고 같이 밥 먹고 그러면 불편해요.”

내가 벌써 간다고 했는데?”

엄마.”

 

은화가 혀를 내밀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데 거기에다 대고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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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이고. 서실 언니 딸이야?”

그려.”

 

은화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예의바르게 인사를 한 후 옆집을 살폈다.

 

새로 지은 집인데. 우리도 모르게 그렇게 지어버려서. 창문이 그쪽에 나서 많이 놀랐지?”

아니요.”

 

조 팀장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은 꽤나 사람이 좋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에게서 그 까칠한 사람이 나올 줄 거라고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이 좋았다.

 

그런데 조실 네 아들은 어디 갔어?”

읍내에 고기 사러 나갔어. 오늘 우리 아들도 오고, 서실 언니 딸도 오고. 그래 이름이 뭐여?”

서우리라고 합니다.”

우리. 이름도 예쁘네.”

조실네 아들 이름은 뭐라고 했지?”

조정식. 정식이.”

. 그래.”

 

혹시나 다른 이름이 나오기를 바랐지만 그런 기대 자체가 우스운 거였다. 분명히 눈이 딱 마주쳤으니까.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멀뚱멀뚱 마당의 자리에 앉았다. 두 엄마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수다를 떨더니 뭘 가지고 온다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게 뭐야?”

혼자서 뭐 하고 있습니까?”

. 팀장님.”

 

우리는 놀라며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정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없지 않습니까? 여기는 회사도 아니고요. 그리고 우리 두 사람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말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이쪽에서 할 말이었는데 정식이 먼저 해주니 다행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나를 장가를 못 들려서 안달이 나셨거든요. 분명히 서우리 씨랑 나랑 같은 회사라고 하면 엮으려고 할 겁니다. 아직 어머니가 제 상황을 모르시거든요. 그러니 앞으로도 그냥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죠. 서로 엮이고 그러면 굉장히 복잡하니 말입니다.”

. 알겠습니다.”

 

게이가 맞았나?

 

우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면전에 대고 남자를 더 좋아하는 거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서우리 씨도 그게 낫죠?”

저야 뭐 팀장님께서 하자는 대로 하시는 게.”

저한테 넘기는 겁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알겠습니다.”

 

정식은 평소와 다르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다른 얼굴을 본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아마 집에서 그는 늘 이런 모습으로 있을 거였다.

 

왜 그렇게 빤히 봅니까?”

?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서우리 씨가 나를 계속 그런 눈으로 보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그다지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아마 우리 어머니는 서우리 씨가 나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겁니다.”

아니거든요.”

그러니 말입니다.”

 

정식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져서 혹시나 정식이 알아챌까 고개를 숙였다. 정식은 그런 그녀를 본 것인지 봤으면서도 모른 채 하는 것인지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여기 좋죠?”

. 좋아요.”

오래 살았습니까?”

고향이에요. 제가 어릴 적부터 산.”

저는 어머니가 여기에 집을 짓겠다고 해서 처음에는 반대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어머니는 그게 더 좋으신 모양입니다. 여기에 오셔서 겨우 자유를 찾은 것 같으니까요.”

자유요?”

.”

 

정식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우리를 보며 살짝 미간을 모았다.

 

그런데 서우리 씨는 집에 자주 안 오는 모양입니다.”

? 그건 왜요?”

내가 여기에 이사 온 지 시간이 꽤 흐른 거 같은데 아직 서우리 씨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거 같아서 말입니다.”

. 여기는 회사랑 멀잖아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정식의 말이 정곡을 찔러 우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정식은 가만히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기가 좋습니다.”

그래요? 저는 여기 너무 싫어요. 아무 것도 없고. 밤만 되면 너무 어두워지고 그런 거 싫거든요.”

그게 좋습니다.”

? 그게 왜 좋아요?”

 

밤이 되어서 어두워질 수 있다는 것. 그게 정말로 좋은 거거든요. 서울에서는 이런 거 느낄 수 없지 않습니까? 서울에서는 아무리 어둡게 있고 싶더라도. 혼자서 머물고 싶더라도 빛이 올 수밖에 없죠. 빛은 괴로운 걸 떠오르게 만들거든요.”

괴로운 거요?”

 

순간 정식은 무서운 표정을 지은 채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집으로 향했다.

 

도대체 뭐야?”

 

원래 자기 마음대로 다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건 좀 심한 편이었다. 하지만 굳이 우리도 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유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자기 이야기도 하게 될 테니까.

 

여기가 좋기는 하지.”

 

우리는 다시 자리에 앉아 가만히 바람을 맞았다. 복잡한 기분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기분이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이상한 사람이었다. 분명히 냉정하고 싸가지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안쓰러운 사람이기도 했다. 말을 하려다 만 것을 보면 분명히 밤이 너무 밝으면 안 되는 이유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아 몰라. 내가 그런 것까지 다 신경을 쓸 이유는 없잖아. 더 자세히 알면 오히려 회사에서 복잡해질 거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자꾸만 정식이 사라진 곳으로 시선이 향했다. 우리는 입을 쭉 내밀고 한참을 거기에 서 정식이 사라진 곳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