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갑자기 바람이 분다.
“팀장님은 왜 그래요?”
“뭡니까?”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요!”
우리는 갑자기 정식에게 손가락질하며 비틀거렸다. 정식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우리를 응시했다.
“서우리 씨 지금 취한 겁니까?”
“아니 같은 팀원들이랑 같이 밥을 먹으면 무슨 병이라도 걸려요? 그런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래요? 같이 밥 좀 먹고 그러는 거지. 혼자서 잘난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막 행동하고. 진짜 재수 없는 거 알아요? 도대체 사람이 왜 그 모양이야.”
“서우리 씨 그만 하시죠.”
정식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하지만 우리는 멍하니 정식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양손으로 그의 볼을 잡았다.
“야. 조정식.”
“이봐요. 서우리 씨.”
“네가 그렇게 잘 났냐?”
갑작스러운 우리의 공격에 정식은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그렇게 잘 나서 그러는 거냐고.”
“네? 지금 도대체 무슨?”
“평소에 그렇게 화만 내고. 다들 팀장님한테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얼음이래. 얼음. 무슨 사람이 얼음이야. 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그러면 같이 어울리고 그래야 하는 거지. 그 나이에 과장을 달았다고 다른 사람들이 우습게 보여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전부 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도대체 사람이 왜 그래? 왜 그렇게 이상하게 행동하는 거야?”
정식은 혀를 살짝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뭐라고 하려는 순간 우리의 온 몸에서 힘이 빠졌다. 정식은 황급히 우리의 허리를 받치고 주위를 둘러봤다.
“도대체 뭐 하는 건지.”
정식은 한숨을 토해내고 우리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올려 사무실에 있는 소파에 그녀를 눕혔다.
“뭐 하러 이 시간에 온 거야?”
정식은 우리의 모니터를 바라봤다. 어제 시킨 일이었다.
“이거 하러 온 거야? 아니 다른 사람이 보면 무슨 악덕 상사인 줄 알겠네. 그렇게 급하지도 않은 일을 도대체 왜.”
“남의 컴퓨터 보지 말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우리의 고함에 정식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우리의 모니터를 끈 후, 우리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가만히 우리를 응시했다.
“뭐야 이 여자.”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그리고 짧게 헛기침을 한 후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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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우리는 출근길의 버스 안에서 모든 것이 기억이 나버렸다. 그러니까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저지르고 자신은 아무 것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거였다. 물론 정식도 자신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건 다른 거였다.
“나 정말 어떻게 하는 거야?”
출근하지 말고 무슨 핑계라도 대야 하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미치겠다. 아우. 서우리. 왜 그런 거야?”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정식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때야 그를 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지, 그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게 된 지금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 불편했다.
“나 진짜 어떻게 하냐?”
우리는 한숨을 토해내며 엘리베이터에 섰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거기에 정식이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정식은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봤다.
“안탑니까?”
“그러니까.”
“기억이 났습니까?”
“네?”
우리가 놀란 표정을 짓자 정식이 싱긋 웃어보였다. 그리고 이내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타요.”
“네.”
우리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힘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평소에 출근길에는 엘리베이터를 보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오늘은 왜 사람도 없는지.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이렇게 답답했나 싶었다.
“다 생각이 났습니까?”
“그러니까.”
“미안합니다.”
우리는 황급히 정식을 바라봤다. 정식은 아랫입술을 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모두 다 나를 괴롭히려고 한다고. 나를 견제한다고. 그렇게만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우리 팀의 팀장이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이 사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서우리 씨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계속 몰랐을 겁니다. 나는 나 혼자서 잘났다고 생각을 하고. 사람들이 내 곁에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이상한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 내 생각을 깨뜨려줘서 고맙습니다.”
“함부로 대한 것 죄송합니다.”
“아니요.”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가 낯설었지만 정식은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우리는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후다닥 내렸다.
“나랑 같이 가면 안 되는 겁니까?”
“네? 그러니까.”
“같이 갑시다. 같이.”
정식은 성큼성큼 우리의 곁에 섰다. 정식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가 왜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서우리 씨가 내 스파이가 되는 게 어떻습니까?”
“스파이요?”
“사무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으니. 뭐 그들이 하는 이야기 같은 것을 전해달라고. 아. 고자질 같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나도 지금 내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우리 씨가 전해주는 말들을 들으며 조금 변하려고 합니다. 나도 나보고 얼음이라고 하는 것까지는 알고 있습니다. 뭐 더한 이야기도 나오겠죠.”
“아니요.”
우리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그런 즉각적인 반응에 정식은 별 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니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네? 아니. 그게 아니라.”
도대체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아니 내가 왜 스파이를 해야 하는 건데? 내가 도대체 왜 자기 편을 들어줘야 하는 건데.
우리는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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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팀장 게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하더라.”
“어? 게이?”
“그래. 내가 조 팀장 전에 다니던 회사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물었거든. 그런데 여자랑 한 번도 스캔들이 없었대.”
“에이. 설마.”
우리는 젓가락을 물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그런 것을 가지고 게이라니. 하지만 소망의 반응은 달랐다.
“야. 그 회사에 미스코리아 출신 직원이 있었는데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니까.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에 있겠니? 조 팀장 게이가 아니면. 그래. 그거 안 되는 거야. 안서는 거라고.”
“야. 염소망. 한낮부터 뭐라는 거야?”
“아니. 뭐. 우리가 이런 거 부끄러워해야 하는 나이니?”
소망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닐 거야.”
“너 요즘 이상하다.”
“내가 뭐?”
“너 요즘 조 팀장 편 되게 들고 그러는 거 알아?”
“내가 무슨?”
우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넘기려고 했지만 소망은 달랐다. 소망은 손뼉을 치며 그녀를 가리켰다.
“그 날이지.”
“어?”
“얼마 전에 새벽에 조 팀장이 너를 부른 날 말이야. 그래. 서우리. 그 날부터 태도가 묘하게 달라졌단 말이야. 도대체 무슨 있었던 거야. 설마 너랑 조 팀장이랑 뭐 있었던 거야?”
“아니야.”
우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소망은 물을 마시고 입을 헹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게이라는 소문이 도는 남자가 너랑. 그리고 너도 그런 싸가지랑 뭘 하고 싶지 않겠지.”
“너 아저씨 같아.”
“그래? 그래도 그 사람 앞에서는 안 이러니까.”
우리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딱히 입맛이 없었다.
“왜 더 안 먹고?”
“날이 더워서 그런가? 입맛이 없다. 나 다 먹었어. 우리 이제 일어나자.”
“너 괜찮아?”
“응. 괜찮아. 그냥 더워서 그래.”
소망은 우리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정식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면 소망이 무슨 표정을 지을지 상상이 가니 더욱 불편했다.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도 마실래?”
“아니. 괜찮아.”
우리는 마치 뭐에 쫓기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바삐 걸음을 옮겼다. 소망은 입을 쭉 내밀고 그런 우리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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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 일이야?”
“왜? 나는 이 편의점에 오면 안 되는 거야?”
“아니 누가 그렇대?”
재필은 아이처럼 웃으며 카운터를 벗어났다. 그리고 바구니를 들고 우리의 곁에 섰다.
“나 이제 곧 퇴근인대. 같이 들어가려고 온 거야?”
“나 오늘은 집에 좀 가려고.”
“어? 왜?”
“그냥. 엄마 얼굴도 못 봤고. 아빠도 이제 너 좀 다르게 보시나. 그게 궁금해서 가려고 그래.”
“그래?”
재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우리의 손에 바구니를 쥐어주었다.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맥주 몇 캔을 골랐다. 아버지가 수입 맥주를 좋아하시니 일단 기분을 좋게 해주는데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거였다.
“계산 좀.”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뭐래?”
재필의 뜬금없는 고백에 우리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할인카드를 내밀고 카드를 내미는데, 재필이 카드를 받지 않고 봉투를 내밀었다.
“왜 이래?”
“믿음직스럽지는 않더라도 내가 그래도 네 남자친구인데 이 정도는 드릴 수 있는 거 아니야? 물론 내가 드린다고 이야기를 하면 아버님은 안 드실 수는 있겠다. 너라도 마시던가.”
“야. 임재필.”
“그리고. 이거.”
재필은 카운터에서 주스 상자를 내밀었다.
“미쳤어. 이거 마트에 가면 얼마나 싼대. 왜 여기에서 사고 그래?”
“지금 내가 여기에서 줄 수 있는 것 중에 이게 제일 비싼 거야. 나 때문에 서운한 거 있으면 집에 가서 다 털고 와. 나는 너 밖에 없다. 서우리 사랑한다. 내 마음 알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우리는 재필을 한 번 바라보고는 편의점을 나섰다. 양손은 무거웠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은 마음이었다.
“저기.”
“어?”
우리는 재필을 불렀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가만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싱겁기는.”
재필은 우리에게 다가와 가만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네가 뭐가 미안해?”
“나도 이미 알고 있어. 내가 되게 못난 놈이라는 거. 그래서 너 고생을 시키고. 너희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갈 수도 없다는 것도. 그리고 언제까지 이런 모습일 거라는 확신도 할 수 없고.”
“뭐래.”
“미안하다고.”
우리가 대충 웃으면서 넘기려고 했지만 재필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내가 확신할 수 있다. 서우리. 내가 너 정말로 좋아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서우리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지. 당연한 거지.”
재필은 조심스럽게 우리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우리의 등을 토닥이며 그녀의 머리에 자신의 턱을 올렸다.
“사랑해.”
“왜 이래. 낯설게.”
우리는 재필의 체온을 고스란히 느꼈다. 익숙함. 너무나도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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