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창고/우리의 시간[완]

[로맨스 소설] 우리의 시간 [14장. 다르게 보이는 사람]

권정선재 2016. 9. 8. 11:13

14. 다르게 보이는 사람

혼자 마시는 겁니까?”

, 팀장님.”

 

재필과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나서 괜히 이상한 마음에 집 앞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는데 정식이 나타났다.

 

팀장님은 여기 어떻게?”

나도 술 좀 마시러 왔습니다. 하도 집에서 장가 좀 들라고 하셔서 피난 왔습니다. 같이 앉아도 되겠습니까?”

? 그러세요.”

 

도대체 이 자식은 왜 나랑 이렇게 친한 척 하는 거야? 한 회사 사람인 거 들키면 안 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우리의 답답한 마음과 다르게 정식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 우리의 앞에 앉았다.

 

미안했습니다.”

? 뭐가요?”

아까 낮에 서우리 씨를 괴롭혀서 말입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오후에 회의가 꽤나 중요한 회의였습니다. 나에겐.”

아니요. 제가 미리 했어야 하는 일인데 너무 여유를 부렸죠. 그리고 도시락 잘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정식은 평소에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우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나는 장가 들라는 성화에 이리 피난 온 건데. 서우리 씨는 도대체 왜 이 시간에 밖에 있습니까?”

, 아직 헤어진 거 말씀을 안 드려서요. 자꾸만 물으시거든요. 이것저것 말하는 것도 복잡하고.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여전히 복잡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일단 그 상황만 피하는 거죠.”

그렇군요.”

 

정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더니 단숨에 맥주 한 캔을 다 비웠다.

 

헤어진 겁니까?”

? . .”

 

도대체 왜 이런 걸 묻는 거야? 이런 건 개인적인 거라는 걸 모르는 건가?

 

따지고 싶었지만 정식의 표정을 보니 뭔가 묘한 표정이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이 그냥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찍 나와요.”

? 아침에 일찍요?”

그래야 같이 회사에 갈 거 아닙니까.”

 

정식의 말에 우리는 뭔가로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하루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여기에서 살면 매일 회사에 같이 가겠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우리는 조심스럽게 정식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데 왜 저를 태워다 주세요?”

 

우리의 물음에 정식은 잠시 못 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맥주를 한 캔 더 따서 단숨에 비워버렸다.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까칠하기는.

 

아니, 그러면 안 되는 게 아니라요. 그래도 매일 저 태워주시고 그러면 힘들고 그러실 거 같아서요.”

힘이 들거나 할 일은 없습니다. 어차피 나도 회사에 가야 하는 거니까. 그냥 서우리 씨랑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래도 불편하시잖아요.”

하나도 안 불편합니다. 서우리 씨는 불편합니까?”

아니요.”

 

우리가 화들짝 놀라서 손을 흔들자 정식은 낮게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입을 살짝 내밀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솔직히 편하지는 않죠. 혹시나 엄마가 보면 뭐라고 하실까 그게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또 그냥 회사 동료도 아니고 팀장님이시잖아요. 그런 분의 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타는 것도 그렇고요.”

전자는 걱정을 해도 되겠지만, 후자는 걱정 하나도 안 해도 될 겁니다. 뭐 나를 팀장 취급은 합니까?”

당연하죠.”

미친 놈. 개새끼. 미친 개. . 엄청나게 나를 부르는 거 같은데. 팀장 새끼는 되게 양호한 거 아닙니까?”

, 아니거든요.”

 

우리가 발끈하자 정식은 킥킥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짧게 헛기침을 하고 살짝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이유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두 가지요?”

 

우리는 가만히 정식을 응시했다. 정식은 잠시 묘한 표정을 짓더니 작게 웃고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됐습니다.”

이유가 뭔데요?”

내가 이유를 말하면 나를 보고 싶지 않을 겁니다.”

? 그럴 이유가 뭐죠?”

도대체 뭐지? 도대체 이 사람 뭐야?

 

정식은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짓다가 짧게 한숨을 토해내고 다시 허리를 세워 우리를 바라본 후 검지를 폈다.

 

이유 하나. 동료니까.”

그건 아까도 말했잖아요. 이유가 두 가지가 있다면서요.”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물음에 정식은 물끄러미 우리를 응시했다. 그의 시선에 우리는 괜히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숙였다. 정식은 쓴웃음을 짓고 맥주 한 캔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잠시 더 우리를 바라보다 한숨을 토해내고 맥주를 한 캔 더 비웠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다 맥주에 다시 손을 가져가는 순간 우리가 그의 손을 막았다.

 

됐어요. 안 듣고 말지. 이러다가 속 다 버리겠네.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말을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라고요. 내가 뭐 팀장님에게 들으면 안 될 이야기 강요하는 거 같잖아요.”

맞습니다.”

?”

서우리 씨가 물으면 안 되는 걸 물은 겁니다. 나에게 물으면 안 되는 거. 서우리 씨가 나를 되게 싫어할 거.”

 

정식은 우리의 손을 치우고 맥주를 비웠다. 그리고 마신 맥주 캔을 모두 구긴 후 한 손에 잡았다.

 

서우리 씨에게 호기심이 갑니다.”

호기심이요?”

서우리 씨가 궁금합니다.”

 

궁금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우리가 멍한 순간 정식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재활용 통에 버리고 우리 옆에 섰다. 우리도 맥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식은 우리의 자리까지 치워줬다. 집으로 오는 동안 두 사람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도망이라도 치는 사람처럼 바로 집으로 들어와 방에 누웠다.

 

도대체 뭐야?”

 

머리가 쾅쾅 울렸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들어버렸다. 호기심이라니. 뭔가 이상한 느낌의 말이었다.

 

아니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지금 고백을 한 거야? 애인이랑 헤어졌다고 한 날에?”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정식이 한 말이 이해도 안 가고, 오늘 재필과 정말 헤어진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서우리 인생 왜 이러냐.”

 

우리는 입을 죽 내밀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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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갑니까?”

으왓.”

 

정식과 마주하기 불편해 아주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는데 이미 정식은 출근 준비를 마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귀신이라도 본 겁니까?”

아니요. 팀장님은 여기에서 뭐 하고 게세요?”

어제 말하지 않았습니까? 서우리 씨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그리고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귀신 같다는 이야기군요.”

그게 아니라.”

 

정식은 보던 서류를 정리한 채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매일 이 시간에 나왔습니다. 나는 늘 이 시간에 출근하거든요. 그래야 이것저것 챙길 수도 있고요. 서우리 씨는 매일 여유롭게 나오는 군요.”

아니 그러니까.”

어제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서우리 씨와 같이 회사에 가는 두 가지 이유. 그걸로도 부족한 겁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당황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정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토해내고 차에 올랐다. 정식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안 잡아먹습니다.”

? 아니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정식은 살짝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을 했다.

 

도대체 서우리 씨는 나를 어떻게 보는 겁니까?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상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차갑게 대할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내가 서우리 씨를 잡아 먹는 줄 알 알겁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면요?”

 

우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정식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핸들에 올린 검지를 가볍게 움직였다.

 

내가 그렇게 싫습니까?”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렇죠. , 어제 회의에서 서우리 씨가 준비해준 거 봤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래요?”

 

망할 자식이 점심도 못 먹게 하고 시킨 거라 욕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싫습니까?”

?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싫은 거 맞군요.”

 

정식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토해내고 어색하게 웃었다.

 

당연한 겁니다. 서우리 씨는 나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은데 내가 먼저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는 거니까요.”

저기 하나 여쭤봐도 되나요?”

물어봐요.”

도대체 제가 궁금하다는 게 뭐죠?”

 

우리의 물음에 정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신호에 걸려 차가 서자 우리를 바라보며 살짝 입을 내밀다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우리는 그런 그의 시선이 민망해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렇게 보지 말고요.”

알고 싶습니다. 서우리 씨가.”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우리의 반응에 정식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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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어?”

그럴 일이 있었어.”

 

소망이 출근하며 놀라자 우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우리 요즘 이상하단 말이야.”

내가 뭐가 이상해?”

뭔가 달라. 재필이랑 요즘 좋은가?”

그래?”

 

아직도 재필과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사실 그와 헤어졌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일 거였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연애인데.

 

팀장이랑 있는 거 안 불편해?”

? 아니.”

 

팀장실의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묻는 소망에 우리는 고개를 저었다. 같은 사무실 정도야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한 차를 타고도 오는데 고작 그 정도로 불편하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 순간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정식이 사무실을 나섰다. 우리와 소망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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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이거 마시고 하십쇼.”

 

직원들이 모두 츨근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이 양 손에 음료수를 가득 든 채로 나타났다. 한 손에 저걸 다 들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테이크아웃 잔들이 캐리어에 담겨서 회의 테이블에 올려졌다. 직원들이 나서자 우리도 음료수를 가지러 일어나는데 정식이 그녀에게 오더니 밀크티를 건넸다.

 

이게 뭐예요?”

서우리 씨 밀크티 좋아한다면서요?”

? 그건.”

 

그냥 지나가면서 한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한 모양이었다. 되게 예전에 소망과 이야기를 하면서 한 이야기였을 거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운 거 맞습니까?”

? . 고맙습니다.”

 

정식은 헛기침을 하고 그대로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소망은 우리의 옆에 서더니 눈썹을 가늘게 뜨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 왜 저러냐?”

모르지.”

너만 밀크티야.”

?”

 

그러고 보니 다른 직원들은 모두 커피였다.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소망은 그런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 비켜. 나 일해야 해.”

 

우리는 그런 소망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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