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이별 후에 여자가 겪어야 하는 일들
“그런데 우리 씨는 결혼 안 해?”
“네? 결혼이요?”
점심시간에 권 대리의 질문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모아졌다.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헤어졌어요.”
“너 뭐야?”
소망이 더 놀라서 반응하자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로 젓가락을 입에 물었다. 권 대리도 머쓱한 표정이었다.
“다들 뭐 큰일이라도 난 겁니까?”
정식은 덤덤하게 말하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다들 밥 안 먹습니까? 얼른 사무실 들어가야죠?”
“아니 팀장님. 지금 밥을 어떻게 먹습니까?”
정식의 말에도 불구하고 권 대리는 우리를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우리는 그런 그의 시선이 너무 불편했다.
“아니 12년이나 사귀었다고 하지 않았어?”
“네? 그렇게요.”
“그럼 완전 부부 아니야?”
“아니요. 그 정도는.”
“그러면 결혼을 해야지.”
우리는 어색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권 대리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다른 남자 만날 수 있겠어?”
“네?”
“대리 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당황한 우리를 대신해서 나서준 것은 소망이었다.
“그런 말 여성 차별적인 발언이에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나 괜찮아. 소망아 하지 마.”
소망이 더 나서려고 하자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말렸다. 권 대리는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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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이야기 안 했어?”
“뭐 좋은 거라고.”
“그래도.”
소망의 투정이 섞인 말에 우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소망은 그런 우리가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서운하다는 티를 냈다.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제대로 말을 해줘야 하는 거였잖아. 안 그래? 네가 말을 안 하면 도대체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냐? 요즘 너 분위기 약간 이상한 거. 그거 전부 다 헤어져서 그래?”
“어? 어.”
“그래. 너 이상하더라.”
우리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가만히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주스를 크게 한 모금 마시며 소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헤어졌어.”
“뭐가?”
“재필 씨랑.”
“뭘 잘 헤어져.”
“첫사랑도 로맨스 소설처럼 그렇게 낭만적인 사람이나 그렇게 보이는 거지. 그게 아니면 그렇게 오래 사귀는 게 말이 돼? 그리고 재필 씨 아직도 취업 못 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 찾고 있는 거잖아.”
“그런 거랑은 상관 없어.”
이미 헤어진 상태인데도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불편했다. 소망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아까 고마웠어.”
“아니야.”
어색함을 타파하기 위해 꺼낸 우리의 말에 소망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거지. 아니 권 대리님 되게 이상하지 않니? 뭐 여자만 뭐? 그런 말이 세상에 어디에 있어?”
“그러게.”
그렇게 사무실로 들어가려던 순간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그런 여자를 누가 만나?”
권 대리의 목소리였다.
“아니 12년을 사귀고. 사실상 동거도 하던 거 아니야? 그런 여자를 도대체 누가 만납니까? 이혼이나 다름이 없는 건데.”
“그러니까.”
다른 남자 직원의 맞장구.
“아니 그래서 만나는 남자는 도대체 무슨 잘못이야? 처녀인 줄 알고 결혼을 하는데 아닌 거잖아.”
“그래도 그건 아니죠.”
“자기 지금 서우리 씨 편 드는 거야?”
“아니요.”
여직원은 남자 직원들의 대화가 자신에게 올 것 같자 바로 뒤로 물러났다. 소망이 나서려고 하자 우리는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마.”
“하지만.”
“괜찮아.”
우리는 애써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나서는 게 더 우스운 일이었다. 나서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내 여자친구가 그런 거라면 나는 정말 싫다. 그런데 왜 헤어진 거야? 하긴 그거보다 앞이 문제지. 여자 나이 29이면 다 된 거 아니야?”
“그러게. 누가 30 넘은 여자를 취급이나 한데?”
“퇴물이지.”
시덥잖은 소리 우리는 주먹에 힘을 줬다. 하지만 나설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더 큰 소란이 될 거였다.
“한 남자랑 그렇게 살았으면 벌써 볼 거 못 볼 거 다 본 건데 그렇게 헤어진다는 게 너무 신기해.”
“그러니까.”
“진짜 오만 거 다 해봤을 거 아니야. 서우리 씨 보면 막 되게 주도적이고 그런데. 밤일도 그렇게 주도적으로 하는 건가? 서우리 씨 보면 매력이 없는데 그래도 12년 만난 거 보면 뭐가 있다는 건데 말이야. 궁금해.”
그 순간 누가 우리의 옆을 지나갔다. 소망인가 하고 봤더니 소망이 아니었다. 다시 사무실을 보니 정식이 빠르게 걸어서 그대로 권 대리의 멱살을 잡았다. 여직원은 비명을 지르고 권 대리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티, 팀장님?”
“도대체 그 더러운 소리는 왜 하는 겁니까?”
“그게. 그러니까.”
“동료 아닙니까? 그리고 서우리 씨가 이제 들어올 거라는 생각 같은 거 못 하는 겁니까? 아니 애초에 서우리 씨가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자각 같은 거 못 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만 두세요.”
우리는 사무실로 들어가서 정식과 권 대리를 떨어드려 놓았다. 정식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서우리 씨.”
“당연히 그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죠. 제 앞에서 한 이야기도 아니잖아요. 저 같아도 12년이나 사귄 사람하고 헤어졌다는 이야기하면 그런 이야기 할 것 같아요.”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정식의 말에 우리는 그를 올려다봤다. 정식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넥타이를 살짝 풀고 침을 삼켰다.
“권 대리. 서우리 씨에게 사과 해요.”
“미, 미안합니다.”
“나에게 말고 서우리 씨를 보고 제대로 하라고요.”
“미안합니다.”
“네.”
우리는 당황스러웠다. 권 대리는 다른 남자 직원과 같이 사무실을 나섰다.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팀장님 도대체 왜?”
“나랑 이야기 좀 하죠.”
정식은 먼저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우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런 정식의 뒤를 따라 사무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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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참고 있는 겁니까?”
“그럼 거기에서 제가 나서요?”
“당연히 나서야 하는 거죠. 도대체 그 안 좋은 이야기를 왜 듣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서우리 씨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겁니까?”
잘못한 것이 없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틀린 말이었다.
“여자는 잘못한 거거든요.”
“그런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원래 그래요. 사람들은 여자들만 이상한 눈으로 보니까요.”
“그러니까 더 말을 해야죠. 그런 사람들은 하나하나 시선을 다 교정해주지 않으면 그런 말을 계속 할 겁니다.”
“그래도 팀장님이 나서면 안 되는 거죠.”
우리의 목소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팀장님이 거기에서 나서면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이야기를 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하세요? 다들 저를 보고 무슨 말을 할지 모르시는 거냐고요. 팀장님은 저를 도와준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고요.”
“가만히 있었습니다.”
정식은 심호흡을 하고 자신의 머리를 뒤로 넘겼다.
“듣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그걸 듣고 있는 걸 보면서 나도 그 더러운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
“그럼 계속 들어야죠.”
“도대체 어떻게 그럽니까?”
“팀장님. 그래도.”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럽니까!”
정식의 대답에 우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정식은 난간을 잡고 고개를 숙이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서우리 씨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고백하고 싶지 않았다고요. 옆에 있으면서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친해지고 그러고 싶었어요. 나는 나이도 많으니까 고백 같은 거 할 생각 없었다고요.”
“그러니까.”
“왜 바보처럼 듣고만 있는 겁니까?”
정식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우리는 그의 슬픈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그런 망할 자식들은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으면 자신의 말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합니다. 서우리 씨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권 대리에게 무슨 피해라도 준 거 있습니까? 그런 거 아니잖아요.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 말을 듣고 있습니까? 서우리 씨가 나서야죠. 내가 하기 전에 나섰어야죠.”
“그러게요.”
우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순간 바람이 훅 불었다.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죄송해요.”
“서우리 씨가 뭐가 죄송합니까?”
“괜히 저 때문에 팀장님이 나서셔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요.”
정식이 화를 내자 우리는 고개를 숙였다. 정식은 크게 숨을 내뱉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서우리 씨가 미안해야 할 건 하나도 없습니다. 팀원 관리 못한 내 잘못이고. 권 대리의 인성이 잘못되어서 그런 겁니다.”
“그래도.”
“그래도가 아닙니다.”
정식은 애써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가 한 말 진심입니다.”
“네?”
우리가 살짝 당황하며 정식을 바라봤다. 정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넥타이를 이리저리 만지며 우리의 시선을 피했다.
“좋아한다는 말.”
“하지만 그건.”
“지금 대답하지 마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정식은 그녀의 말을 막았다.
“싫다는 이야기 하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아직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답하지 마요. 그냥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발적으로 나온 거 그냥 욱 한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거 말하려고 한 거니까. 서우리 씨는 조퇴 할래요?”
“아니요.”
우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고작 이런 걸로 조퇴를 한다는 것도 너무 우스운 일이었다. 그건 정말 겁쟁이였다.
“괜찮아요.”
“힘들면 말해요.”
“네.”
정식은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어미를 한 번 만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가 고마웠다. 좋아한다는 말에 아니라는 대답만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누군가 그렇게 나서준다는 게 신기했다. 이런 감정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네?”
“아니요.”
혼잣말에 정식이 대답하자 우리는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어색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우리는 살짝 그를 살폈다. 긴장한 듯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치는 모습이 낯설었다. 자신이 아는 정식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을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순간 극장에서의 설렘이 떠올랐다.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안 되는 거였다. 우리는 심호흡을 하고 초조하게 엘리베이터 층수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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